오늘의 등산로 들머리는 성산터이다. 이 들머리는 도시 사람이 지어놓은 별장 바로 옆에서 시작된다.
이 집엔 진도개가 한 마리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이 진도개는 사람을 많이 대해보지 않아서인지 사람을 무서워하고 사람을 쳐다보는 눈이 공포에 가득차 있으며, 꼬리를 잔뜩 감추고 비굴한 모습으로 사람을 피하고 있었다. 이런 산촌에서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외로우면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는 것을 또 확인한 느낌이다. 이런 곳에서는 개도 2마리 이상 키워야 한다. 서로 의지하며 외롭지 않게......
아무리 미물이라 하지만 그도 생물이 아닌가?
이 별장 옆으로 난 길이 희미하지만 이정표가 서있어서 예전의 나무하러 가던 길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길을 잃을 정도는 아니다.
입구에서 약 10여분 오르면 성황당이 나타난다. 이 길은 옛날 성산터와 먹실을 잇는 길로 추정이 된다.
성황당을 요즈음엔 치성을 드리지 않아서 인지 다 쓰러져 간다.
이 성황당 뒤로는 아름드리 커다란 소나무가 하늘을 찌르듯 서있다.
길목 우측으로 이정표가 서있다.
이 코스는 다른 코스보다는 이정표가 서있어서 비교적 어렵지 않게 길을 오를 수 있다.
등산을 다니면 동네 어구 쯤에서 이런 성황당은 어렵지 않게 볼 수가 있지만, 이 성황당은 너무 허술하게 지어져 있고, 전혀 관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
커다란 소나무의 뿌리가 밖으로 노출되어 나뭇가지처럼 수피모양을 하고 있다.
소나무가 병이 들었는지 건강하지는 않고 몸의 일부 수피가 벗겨지고 허연 속살이 보여 안타깝다.
비록 미신으로 간주되긴 하지만 요즈음엔 마을의 성황당도 잘 보존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여긴 어쩐 일인지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성황당을 방치해서인가? 뒤를 받쳐주고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수령은 100년 가까이 됨직한데, 병이 든 것 같아서 매우 안타깝다.
지금은 성황당에서 치성을 드리는 사람이 전혀 없는것처럼 보인다. 안을 보니 누가 과자 2봉지를 놓고 갔다. 촛불을 켠 흔적이나 정화수를 떠 놓은 흔적은 없다.
이렇게 목수나 대목들이 지은 집은 아니지만 그런데로 짜맞춤의 약식 기법으로 나무를 엮어 놓았다.
옛날 시골사람들은 집도 짓고 농사도 짓고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수 있어야 했을 것이다.
마을엔 장승도 있고 솟대도 서있는 곳이 지금도 적지 아니 있지않은가? 예술가도 되고.... 참으로 재주가 많은 우리네 평범한 농촌의 사람들이었다. 투박하지만 옛 모습 그대로 대중의 민속을 그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광경이다.
나도 언젠가 헛간이나 간이 투박한 정자를 세울 요량으로 구조를 살펴보기 위해 사진에 많이 담았다.
눈썰미 하나로 저렇게 집을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재주가 많은 우리네 서민들이고 농민들인가?
나무의 뿌리가 노출되어 비늘이 거칠은 뱀이 또아리를 튼 것처럼 보인다. 나이를 많이 먹은 나무라서 뿌리의 굵기가 웬만한 소나무 줄기만 하다.
뿌리가 노출되고 비, 바람에 부대껴도 굳건히 살아가는 저 소나무들을 보면 저절로 경외감에 잠긴다.
들머리에서 1시간쯤 오르니 먹실과의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 이정표의 부근엔 수령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소나무와 굴참나무 군락이 있다.
거의 비슷한 수령이라 할지라도 굴참나무 등은 소나무에 비해 너무 늙어 노쇄하고 약해 보인다.
소나무와 다른 나무 들을 간벌 등으로 잘 관리를 해주었으면 더욱 굵고 늠름하게 자랐을 터인데.....,
앞으로는 나무를 심는 것만큼 나무를 가꾸고 거두어 들이는 데에도 정성과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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