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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헌 / 가상-현실의 기상도-이선영

sosoart 2012. 11. 19.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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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헌 / 가상-현실의 기상도

이선영

김영헌의 작품에 잔뜩 끼어있는 구름은 그 불투명성으로 인해 매혹과 공포를 동시에 자아낸다. 가상세계의 몫이 커짐으로서 결과 된 현실의 모호한 풍경에는 즉물적 현실로부터의 도피와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는 양면성이 내재해 있다. ‘cloud map’(전시부제) 전은 현실과 가상, 또는 양자를 구별할 수 없는 경계지대의 지도를 그리려 한다. 그것은 불투명한 것을 투명하게 밝히려는 계몽주의적 의지라기보다는, 자신에게 다가온 친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에 대한 예견적 지형도에 가깝다. 그의 그림에는 만질 수 없고 보이지 않지만, 일상을 강력하게 지배하는 정보들이 공기나 구름처럼 떠있다. 기후나 기상현상과도 같이 편재하는 정보들은 크고 작은 인터페이스에 둘러싸여 사는 현대인에게 이미 도래한 현실이다. 일반화된 가상은 현실이 되며, 다수에게 무시되고 외면되는 현실은 가상이 된다. 에너지가 충전, 방사되는 듯한 파장이나 그 파장이 만들어내는 것들, 즉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온 전자구름은 물질과 몸의 만남인 회화를 통해 구현된다.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던 흐릿한 주사선의 전자적 파장은 생경한 색채와 형태를 구체적 물질성을 획득한다. 의미와 경계가 모호한 무지갯빛 구름은 가상/현실을 비롯한 여러 양면성을 수렴하는 도상이다. 구름은 지구의 생명체를 보호하고 생존하게 해주지만, 원자폭탄의 구름이라든가 기상이변으로 인한 재난을 알리는 징후이다. 편재하는 정보는 차이의 공존과 이해, 그리고 대화를 이끌기보다는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내고 격화시키며, 이렇게 커져가는 가상세계의 구름은 현실 속에서 직접적 파괴력으로 전화되곤 한다. 공격 대상과 멀리 떨어져 조작되는 계기판은 게임하듯이 대량살상을 가능하게 하고, 버섯구름의 화려함은 몰살의 공포조차도 온 우주와 하나 되는 듯한 희열로 변화시킨다. 화려한 색채와 복잡다단한 형태로 만들어진 원자폭탄의 구름 한가운데 미키 마우스 얼굴이 둥 떠 있는 작품 <electronic nostalgia-p09016>(2009)은 게임/현실의 한 가운데에 있는 죽음의 그림자와 열락의 에너지를 하나로 만든다.

프로이트의 이론이 예시하듯, 죽음본능이 쾌락원리와 결합되어 있는 이러한 체험에는 경계의 와해라는 공통점이 있다. 구름은 작품 <Cloud Map-p1211, p1212>처럼 미시적인 차원으로 구현되기도 한다. 미시-거시적 차원의 구름이나 파장들은 미소 세계의 원자핵에 대한 물리학적 연구가 흔적 없는 대량살상의 가능성을 개시한 것에 상응한다. 여러 가지 파장이 얽혀있는 무중력적 공간에서 대결이 펼쳐지는 작품 <Cloud Map-Electronic blood-p1210>에서, 전자 검을 든 전사는 해치운 적과 자신에게서 나온 체액 속에 잠겨 있다. 끔찍한 파괴의 증거인 피는 전자적 단계에서 쾌감과 재미로 다시 태어난다. 대부분 상대를 어떻게 죽이는가에 집중되어 있는 게임의 상상력은 경쟁과 전쟁이 편재하는 현대사회에서 카타르시스를 낳는다. 삶과 죽음에 대한 관점이동이 이루어진 만큼, 주체에 대한 중심이동도 확실하다. 그의 작품에는 머리가 절단되고 여럿으로 불어나 있는 도상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주체의 분열임과 동시에 집단지성을 상징한다.


주체는 게임 속 캐릭터나 아바타가 되어 여러 대역을 동시에 맡는다. 그의 그림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입체작품 <열 개의 미소>는 얼굴이 앞뒤로 무려 열 개다. 몸체는 거품처럼 하얀 공들의 집합으로 되어있고, 얼굴 또한 공이나 스티로폼처럼 가벼운 소재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그림자 없는 유령처럼, 뒤가 없이 앞만 여러 개 있다. 이 수수께끼같은 존재의 실체감 없음은 경계의 가변성에 의해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 괴물은 가상/현실에 존재하는 생명에 대한 그의 생각이 집약되어 있다. 작품 <Electronic Cloud-p1203>에서 머리 여럿 달린 사람 옆의 머리 여럿 달린 개는 산과 물, 구름이 골고루 배치된 풍경을 신화적 환상으로 변화시킨다. 가상세계는 실재와 역사, 주체를 괄호 치는 가운데, 다시금 먼 머나먼 신화의 시대와 손을 잡는다. 가상의 현실성은 이전시대에 신화가 가졌던 현실성과 비슷한 위상을 가진다. 아바타 스타일의 얼굴 4개에 에너지 파장이 회오리치는 꼬리들이 달린 동물이 등장하는 작품 <Electronic_Cloud-p1205>에서, 무엇인가 출현하고 사라지는 차원이동 통로처럼 보이는 기저면은 동심원 같은 기하학적 패턴이지만, 배경은 매우 회화적(painterly)이다.

그것은 가상성에 의해 산산이 흩어질 것 같은 도상, 그리고 비례와 스케일, 방향과 중력을 초월한 형태들에 깊이와 실체감을 부여한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미묘한 색채와 질감을 부여하면서 선으로 이루어진 도상이 지배하는 가상세계에 결핍된 요소를 부각시킨다. 그림이라는 물질적 형식이 가지는 생생한(tangible) 표현 방식은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들을 구체화한다. 그림은 이러한 현전을 가능하게 하는 형식이다. 작품 속 편재하는 역설처럼, 그에게 회화는 애증의 관계에 있다. 김영헌은 회화과를 졸업하였지만, 1995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 이래, 영상 설치 작가로 알려져 있었고, 외국에서 다시 그림을 시작하기 전에 한동안 붓을 놓고 영상과 설치작업에만 몰입했다. 1990년대 중반에 ‘회화라는 형식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겠구나’는 생각을 하게 된 그는 ‘손과 머리가 그림을 잊어버릴 때까지’ 적어도 10년 동안은 그림을 안 그리겠다고 결심했다. 2003년 독일 전시에서 벽에 털을 붙이는 작업을 통해 다시금 평면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2006년 영국에서 다시 회화를 전공하면서 근 10여년 만에 다시 그림으로 돌아왔다.

표현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초 문법을 제공하지만, 결국은 자유로운 표현의 발목을 잡는 제도 교육의 어법은, 주체를 사회적 주체이게 하는 상징적 언어의 위상과 유사하다. 다른 매체에 대한 가능성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오랜 우회의 과정을 통해 돌아온 회화라는 형식은 가상/현실에 편재하는 뿌연 현상들을 더욱 분명하고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그에게 회화는 그냥 회화가 아니라, 다른 매체의 경험들을 다시 종합할 수 있는 넉넉한 장이 되었던 것이다. 자신의 여러 작품에 나타나는 요소들이 집결되어 있는 대작 <Cloud_Map-p1209>에 나타난 바처럼 말이다. 여기에서 돌연변이적인 여러 도상들을 이어주는 것은 회화적으로 처리되어 있는 바탕 면이다. 그의 회화적 바탕 면은 신화적 도상과도 다른 야생성을 가진다. 그의 작품은 서로 다른 언어의 호환 내지 상호작용에서 새로운 것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회의 좀 더 조밀해 지는 체계화는 이질적 언어가 존재할 구석을 남겨두지 않으려 한다.

화가들은 기계복제를 일반화시킨 사진이 출현한 이래, 늘 상 위기의식에 시달려 왔고, 손바닥 안의 작은 창(핸드폰)으로 세상의 모든 정보들이 수렴/발산되는 오늘날, 미술 작품 역시 잠시 눈을 끌다가 사라지는 스펙터클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을 뿐이다. 시각적 소비의 한 항목으로 환원되어 버린 회화의 입지는 이전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좁다. 회화는 느릿하고 스펙터클은 빠르다. 전면적인 코드화와 상호작용하는 이질적 언어를 구사하는 자로서의 현대 화가는 그 만큼 특별하고 그만큼 난처한 국면에 처해있다. 회화 언어의 이질성은 그것이 육체의 현존과 밀접하다는 것에 있다. 그것은 카메라의 외눈박이 시점이 아니라 육안에 의해 추동되며, 자판이나 인터페이스를 누르는 손가락이 아니라 손으로 그려진다. 몸과 반응하는 질척거리는 회화의 촉각적 대지는 전면적인 시각적 코드화를 상대화시킨다. 우리 주변을 에워싸는 다양한 인터페이스는 어느 시대보다 많은 접촉을 추동해왔지만, 정작 실재와의 접촉은 금기시되어 있다.

실재는 포착하고 다루기 힘든 구제불능의 골칫거리가 된 것이다. 그러나 대박 나는 이윤과 진정한 창조성은 역시 실재계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자본가만큼이나 예술가는 실재에 관심이 있다. 물론 실재에 이르게 하는 다양한 언어적 매개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영헌의 작품 속 구름은 진리의 태양과도 같은 실재를 가리고 있는 불길한 존재이자, 겹겹이 감싸여 있는 진리의 핵심에 이르게 하는 매개라는 이중적 상징으로 다가온다. 구름의 선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는 파장들은 신학적 세계관의 ‘존재의 사슬’처럼 불연속적 존재들을 이어주곤 하는 것이다. 작품의 전경에 놓이게 된 가상세계는 그것을 추동하는 육체적 욕망 및 현실이 요구되며, 지배적 질서가 고착된 현실세계는 가상화된 필요가 있다. 가령 그의 그림에는 컴퓨터 그래픽, 뇌파나 전자파 구조, 열 감지 카메라의 시점 등이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전자 미디어와는 다른 언어를 통해 전자미디어로 매개된 경험들이 더욱 생생하게 표현된다.

이 전시에서 집중적으로 보여 지는 유화는 북유럽 정물 화가들에 의해 전성기를 구가한 이래, 오래된 시각적 전통 속에서 현실을 붙잡아 놓을 수 있는 조형언어로 자리 잡아왔다. 특히 작가가 가상공간의 경험 뿐 아니라, 그것이 실제의 경험과 뒤섞이는 혼성적 경험을 다루면서, 회화는 다시금 유력한 매체가 된다. 가상세계가 단지 가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재화 될 때 그림은 가상세계와 긴밀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그것은 가상적 풍경을 재현하는 문제는 아니다. 전자적으로 매개된 의사소통의 시대에서 재현주의는 그 입지가 더욱 좁아진다. 정보적 시뮬레이션은 기호의 재현과 달리, 재현주의가 성립되는 주체와 객체 사이의 분리 및 거리감 자체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 이론가 장 보드리야르는 실재가 사라졌으므로 상상 역시 사라졌다고 말한다. 손으로 무엇인가 잡을 수 있게 되자마자 컴퓨터를 접하는 아이들에게 실재와 상상의 구별은 더욱 사라진다.


재현주의에 전제되는 합리적 자율성의 주체는 전자적 단계에서 ‘끊임없는 불안정 속에서 탈중심화 되고 분산되면서 여럿으로 불어나는’(마크 포스터) 자아로 변화한다. 주체의 상징인 머리가 잘려있고 세포처럼 분열되어 있는 김영헌의 도상이 나타내는 바는 이 새로운 의사소통의 단계에서의 주체의 모습인 것이다. 주체/객체 간의 모호한 관계는 말/사물, 안/밖, 인간/자연, 관념/물질 등의 관계로 연동된다. 자연적 욕구를 충족하는 대상을 넘어서 상징적 기호를 생산, 교환, 소통하는 시대에 미술의 언어 또한 지각변동을 겪는다. 이전과 똑같은 캔버스와 물감을 사용하더라도 색과 형태, 그리고 의미의 원천들은 달라진다. 그러나 기술적 한계에 의해 아직까지는 시각성에 호소하는 가상현실의 특성상, 재현주의는 더 강화되기도 한다. 3D기술이 적용된 최신 영화는 놀라움을 주긴 하지만, 전경/중경/후경으로 나뉜 이전시대의 시각 상으로부터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기술의 발전에 의해 점차 그 간극은 점점 줄어들겠지만, 가상현실은 여전히 재현의 도식을 재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사이먼 페니는 [계몽기획의 완성으로서의 가상현실]에서 르네상스 이래로 감각들 중에서 가장 정확한 감각으로 특권화 된 눈이 가상세계를 기록한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모든 중요한 매체의 기술적 발달은 르네상스 이래로 시뮬레이션 극장의 건설을 목표로 한다. 가상현실은 회화적 재현의 자동화인 것이다. 이 논의에 의하면, 가상현실의 개발자들은 보는 이의 눈을 막히는 것 없이 환히 볼 수 있는 위치에 놓는 휴머니즘적 세계관, 즉 세계에 관한 특권화 된 관점을 물려받았다. 가상현실은 눈을 무장시키며, 육체 전체는 시각적 욕망에 의해 내몰린다는 것이다. 자동차 산업을 통해 알려졌다고 하는 가상현실의 패러다임은 강력하게 감시하는 시선, 즉 군사정보 모델 및 전망 감시적 모델이다. 가상공간에서의 표준화된 항해 패러다임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관음주의적 욕망을 충족한다. 가령 김영헌의 작품에서 시각성에 얽힌 소유 및 공격 본능은 가상현실이 실제상황이 되는 전시 체제에서 더욱 힘을 발휘한다.

조종석 앞의 인터페이스를 마주하는 전투기 조종사들의 게임 같은 전쟁 수행은 가상현실이 식민화를 위한 재현의 장치임을 확인시킨다. 판의 형태를 넘어선 인터페이스는 더 빠르고 정확하게 현실을 조종하게 하기 위해 몸과 더 직관적인 방식으로 맞붙는다. 물리적, 또는 자연적인 현실을 직접 다루는 듯한 느낌을 주는 가상공간은 몰입의 체험을 주며, 점차 현실공간을 식민화 한다. 크리스 체셔는 [가상현실의 식민화]에서 가상현실 기술의 기원의 일단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현존하는 많은 기술들이 군사적 기원을 가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살 게임과 비행 시뮬레이터의 확산이 군사용 무기의 유도 및 추적 연구가 게임에 스며있다고 강조한다. 몰입과 항해의 경험은 또 다른 탐험 공간으로, 새로운 개척지를 창조한다. 가상현실은 단순한 상징의 처리를 넘어서 현실을 생성하고, 물리적 현실에 추가된 또 하나의 현실로 비춰진다. 비트로 바뀐 정보만이 존재하는 현실을 중시할 때 실제의 현실은 무력화된다.

그러나 가상현실에 관련된 기술이 시장에서 판매되는 주력 상품이 되기 시작한 시대에, 물질과 정보를 혼동하는 것은 현실에서와 똑같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낳고, 그것을 더욱 가속화시키며, 결국은 세계를 항시적인 전쟁 전야의 갈등상태로 만든다. 새로운 시대의 자연으로 대두된 데이터 뱅크에 접근하는 기회는 권력과 가본, 그리고 기술을 모두 갖추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단지 상상력만으로 기술 유토피아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상상력이 만개하다 못해 해체 지경에 놓여있는 김영헌의 그림에 묵시록처럼 파국의 그림자가 어려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동질적 유토피아로부터 멀어지는 이질적 헤테로피아로의 움직임이 있다. 작품 속 전자구름은 참조대상을 은폐하며 도깨비 방망이처럼 이것저것으로 변모한다. 뉴미디어 시대의 담론의 전제는 육체를 포함한 모든 것을 코드화할 수 있다는 것인데, 과연 그것이 가능하며 더 나아가 바람직 할 것인가?

가상세계에서 일어나는 마법 같은 현실의 본질은 신체를 부재기표로 구성하는 것이다. 사이몬 페니에 의하면 육체적 수준에서 가상현실의 경험은 탈구이자 분리이다. 가상현실은 육체를 조각내며, 파열된 육체 위에 씌워진 강력한 눈을 낳는다. 가상현실에서는 모든 것이 저 너머에 있으며, 육체는 공허해 진다. 사이몬 페니는 이것이 감각적 육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절반을 물질적 세계에 남겨두고, 다른 절반을 가상세계에 남겨두는 것이라고 본다. 이 같은 분열된 육체적 조건을 피하기 위해서는 모든 감각을 조화롭게 흉내 내야 한다. 새로운 육체감각의 구성은 지각공간에 대한 물리적 탐색과 시각적 입력에 의해 실현된다. 그러나 육체의 총체적 재현이라는 것이 가능하다면, 인간은 이미 생로병사의 비밀을 모두 꿰고 있는 신적 단계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재현주의를 추동하는 욕망-가령, 근대의 임상의학적 시선이 몸을 투명하게 가시화하고자 했던 욕망-이 결국은 지배와 소유의 욕망이라면, 인간의 육체가 속속들이 재현된다는 것은 몸의 도구화와 상품화가 극대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의식과 꿈, 몸과 자연처럼 코드화 되기 힘든 것조차 코드화 된다면 양극화는 더욱 심해진다. 코드화란 값을 매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010년 성곡 미술관에서 열렸던 개인전 부제 [electronic nostalgia-broken dream]이 암시하는 바처럼, 기억과 꿈조차도 스캐닝 될 수 있다면 지배와 착취는 보다 전면화 된다. 착취를 착취로 알 수 없게끔 하는 허위의식과 헛배부름 현상이 사회에 만연하게 되고, 그것이 바로 그가 그리는 구름의 실체가 아닐까. 모든 정보에 무한히 접근할 수 있다는 가정은 절대적으로 모든 것이 디지털 형태로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정보에 대한 보편적 접근의 꿈은 모든 것을 네트워크로 접근할 수 있는 형태로 기록해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가상공간에 드러나지 않는 약호, 즉 0,1, 또는 on, off에 의해 작동되는 디지털 신호로 재현 할 수 없는 것들은 남아있다. 우리는 컴퓨터로 검색되지 않는, 이 여분의 것들을 주목해야 한다.

반대로 김영헌의 작품에서 도상 및 변형된 도상의 안팎을 형성하는 비정형 패턴이나 회화적 처리는 완전히 코드화 될 수 없는 물질 및 육체의 현존을 일깨운다. 경계가 모호한 구름과 파장은 매혹과 기만이라는 양가적 상징을 극대화하면서 회화의 물질성과 결합된다. 회화를 통해 복귀된 몸과 물질성은 동질적 구조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는 가상/현실 세계에서 말과 사물이 일치되지 않는다고 하여 사물을 폐기하지 않는다. 사물 없는 말이나 말 없는 사물은 모두 반쪽의 진실에 불과하다. 말과 사물 양자는 어느 하나로 환원되거나 폐기 됨 없이, 긴장에 가득한 상호작용을 한다. 정보이론이나 현대의 정신분석학이 예시하듯이, 주체는 기존의 언어나 코드로부터 만들어지는 존재이지만, 그것을 변형, 재배치하는 근본적인 현실은 역시 인간의 몸이며, 전신적 감각에 의해 추동되고 수행되는 언어인 회화는 가상현실과 긴밀한 길항작용을 하는 상보적 현실로 다가온다.
출전; 누오보갤러리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