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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비평〕김미루전 / 누추한 공포와의 동거-김성호

sosoart 2012. 11. 1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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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비평〕김미루전 / 누추한 공포와의 동거

김성호

〔전시비평

Miru Kim 展 -The Pig That Therefore I Am, 2012. 3. 29~4. 30, 트렁크갤러리

누추한 공포와의 동거

김성호(미술평론가)

Oops! 돼지와의 소통이라고? 현실계에서 가당치 않아 보이는 이런 질문과 대답은 오늘날 철학과 예술의 세계에서 무수히 제기되어 왔다. 데카르트의 이분법을 조롱하는 데리다의 경구 “동물,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나 들뢰즈의 ‘동물-되기’와 같은 타자에 대한 성찰은 ‘인간 아닌 존재들’을 인간과 동등한 주체로 일으켜 세운지 오래이다.

이러한 사유를 인용하는 김미루의 사진전 “돼지,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에서는 작년 마이애미의 바젤아트페어에서 선보였던 104시간의 돼지와의 동거 퍼포먼스 “돼지, 나는 돼지를 좋아하고 나도 돼지를 좋아한다”를 찍은 영상물을 함께 선보인다. 그것은 요셉 보이스의 퍼포먼스, “코요테, 나는 미국을 좋아하고 미국도 나를 좋아한다”(1973)에 대한 하나의 오마주이자 패러디이다. 다만 보이스에게서 코요테가 미국 인디언들의 숭배의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미국을 상징했다면, 그녀에게서 돼지란 그저 돼지 자체일 뿐이다. 보이스와 달리, 그녀는 돼지를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구현하기 위한 ‘살아있는 오브제’로 도구화시키기 보다는 소통의 상대인 ‘인간 아닌 또 다른 주체’로 추슬러 일으킨다.


김미루, 돼지, 나는 돼지를 좋아하고 나도 돼지를 좋아한다, 퍼포먼스영상, 마이애미 바젤아트페어, 2011


김미루, 돼지, 나는 돼지를 좋아하고 나도 돼지를 좋아한다, 퍼포먼스영상, 마이애미 바젤아트페어, 2011

김미루의 작업에는, 인간에게 자신의 살점들을 봉헌하기 위해 사육당할 뿐 아니라, 탐욕, 게으름, 불결함으로 풍자와 조롱의 대상으로 천대받았던, 돼지라는 존재에 대한 연민으로 꿈틀댄다. 그것은 인간과 특별히 다를 바 없는 돼지의 생리적 유사성을 목도했던 의학도시절 해부학 실습의 경험에서 이미 내재된 것이었다.

도시의 폐허를 찾아 나선 자신의 누드를 사진으로 담아 망각의 공간들과 소통해왔던 그녀는 이번에 자신의 나신을 누추한 돼지들의 공간으로 내던진다. 프로젝트의 실현을 위해 돼지농장의 허가를 힘겹게 받아내는 과정을 거치거나 아예 허가 없이 게릴라처럼 침투하는 일차적 모험은 부차적이다. 그보다는 그녀가 돼지의 배설물로 뒤덮인 불결하고도 ‘누추한 공포’의 공간에서 300파운드가 넘는 돼지들과 동거하면서 부대끼며 배워가는 몸의 대화에 주목할 일이다. 철학자 미셀 세르(Michel Serres)의 피부에 대한 성찰로부터 감명받아 구체화된 그녀의 최근 프로젝트에서, 벌거벗은 몸, 혹은 ‘피부’는 그녀가 타자와 만나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그것은 인간의 언어를 버리고 찾아낸 ‘살아있는 것들의 공통 언어’이다.


김미루 NY 1, Digital C-Print, 101x152cm, 2010

그러나 그것이 곧 소통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늘 미끄러지는 소통의 괴리가 존재한다. 따라서 작가가 돼지들과 피부를 부비고 체온을 나누면서 살아있는 것들의 공통 언어인 몸의 언어를 배워나가면서도, ‘어떻게 해도 인간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 귀결점은 하나의 화두이다. 그런 의미에서 뻔한 결과를 향해 달려가는 그녀의 작업이 아방가르드를 표방하는 젊은 예술가의 치기로 치부되거나 낯선 충격과 가십거리를 생산하는 쇼맨십으로 폄하된다고 할지라도 그녀의 작업에는 분명코 곱씹어야 할 부분이 있다. 인간들이 내팽개친 누추한 존재들을 대면하는 애정 가득한 시선과 더불어 일상의 삶과 동거하고 그것과 끊임없이 소통하려는 김미루만의 진중한 예술창작 태도가 그것이다. ●

출전/

김성호, “누추한 공포와의 동거”, 『월간미술』, 2012. 5월호, pp.160-161, (김미루전 : The Pig That Therefore I Am, 2012. 3. 29~4. 30, 트렁크갤러리)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