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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비평〕홍순환전 / 중력에 대한 조형적 은유-김성호

sosoart 2012. 11. 19. 16:29

〔전시비평〕홍순환전 / 중력에 대한 조형적 은유

김성호

전시비평〕

홍순환-structure of gravity 전 2012. 3. 9~31, 신라갤러리

중력에 대한 조형적 은유

김성호(미술평론가)

아침녘, 풀잎 끝에 맺혀있는 이슬방울들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그것들은 제 몸의 무게를 못 이기고 추락하거나 태양열에 서서히 달아오른 제 몸의 온도를 가눌 길 없어 터져버리고 만다. 그 죽음은 결코 자살이 아니지만 마치 자살처럼 보인다. 어찌 보면 그것은 중력의 폭압에 정면으로 저항하면서 몸을 내던지는 투신사(投身死)이자 태양의 고문에 장렬히 대항한 분신사(焚身死)일 수 있다. 아서라! 새벽 공기로 아침식사를 짓는 시인들은 그것들을 모두 ‘자연의 아름다운 순환’이라 부를 뿐이다.

그렇다면 작가 홍순환은 그것을 무엇이라 부를까? 자기 이름과도 같은 ‘순환’이란 이름에 고개를 끄덕일까? 아니면 까칠하게 자살이라 항변할까? 그의 작업은 이러한 두 입장들 사이 어디엔가 모호하게 걸터앉아 있거나 그 둘 사이를 아주 느릿한 보폭으로 왕래한다. 이러한 ‘애매모호한 이동성’은 애초부터 그의 전략이다. ‘중력의 구조’라는 것이 ‘편향된 절대 힘’의 논리가 저마다 질량이 다른 사물들에 다양하게 미치는 ‘힘의 분산’을 의미하고 있듯이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관객들의 눈앞에 중력이 작동하고 있는 현실계의 긴장을 드러내는데 보다 더 집중한다. 지지대가 숨겨진 거대한 테이블 위에 타일들을 격자형으로 올려놓고 그 위에 숨을 불어넣어 만든 구형 유리들을 올려놓은 이번 전시는 이러한 긴장이 은닉하고 있는 하나의 풍경이다. 풀밭 위에 맺혀 있는 이슬방울들의 덩치를 키운 것 같은 유리 구체들은 흰빛 풀밭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위태로운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들은 간신히 균형을 잡으면서 기대어 있거나 떨어질듯이 천정에 힘겹게 매달려 있는 오브제들의 ‘중력에 대한 힘겨운 저항’보다는 백배천배 편안해 보인다.



홍순환, 중력의 구조, 2012

그럼에도 이러한 나른한 풍경은 모종의 긴장을 은폐시킴으로써 우리를 더욱 더 불안하게 만든다. 그것은 공간에 개입하는 시간의 문제들로부터 비롯된다. 일테면 벽에 걸려있는 두 점의 사진(풍경과 인물 군상)을 보자. 전시된 사진들은 작가가 독일의 한 벼룩시장에서 헐값에 사들인 이름 모를 누군가의 슬라이드 100여점 중 선택되고 인화된 것들이다. 시공간의 정보를 특정할 수 없는 인물군상사진과 풍경사진의 낯선 개입은 한편으로 그가 구축한 거대한 공간 즉 ‘중력에 순응하는 구조물’을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이미지와 풍경들로 대면하게 만드는데 일조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우리로 하여금 ‘중력의 관성에 저항하는 구조물’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것은 다분히 공간에 개입하는 시간의 문제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중력이란 시간과 연속하면서 끊임없는 운동성으로 꿈틀대는 것이지 않던가?

홍순환, 중력의 구조, 2012

그런데 우리는 간혹 잊고 있다. 시간성과 맞붙은 중력이란 시계, 캘린더, 저울 따위가 계측할 수 있는 한정적 범위가 아니라는 것을... 홍순환의 중력에 대한 조형적 탐구는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망각을 새삼 일깨운다. 그의 작품에는 중력의 구조와 맞장 뜨지 않으면서도 그것의 구조를 비틀어대는 ‘멋진 불온함’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필경 그의 작품이 오늘날 ‘권력의 구조’라는 사회적 현실계를 영민하게 은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출전 /

김성호,“중력에 대한 조형적 은유”, 『아트인컬쳐』, 2012. 5월호, p. 177, (홍순환전 : 중력의 구조, 2012. 3. 9~31, 대구 신라갤러리)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