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100 - 고라니의 죽음 / 김시철
눈 내리는 아침 현관을 나서려니
현관마루로 올라서던 <고라니> 녀석
후닥닥 도망을 친다.
놀라서 심장이 멎을 뻔 한건
나다.
도망가는 놈의 꽁무니를 바라보며
이 아침 놈이 웬일로
우리 집엘 온 것일까
나에게 무슨 용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눈 쌓인 산속엔 먹을 것이 없어서
혹여 내 집엘 동냥 온 건 아닐까.
그날 이후 내내
도망치던 놈의 뒷모습이 선해
먹을 것을 내다놓고 닷새를 기다렸지만
종무소식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닌 걸 안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
덫에 걸린 고라니가 마을 사람들
술안주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부터.
강원도 118 - 수목장 樹木葬 / 김시철
요 며칠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만큼을 살았으니
이제는 비켜서야 할 때다.
혼(魂) 다 빠진 육신(肉身)
굳이 무덤 만들어 썩힐 것이 아니라
뒷동산 어느 소나무 밑에 다가
한 줌
수목장(樹木葬) 을 하면 어떨까.
요 며칠
그 생각에 깊이 들다보니
뒷산이 모두 내 집이요
소나무가 모두 내 몸만 같네.
강원도 38 - 다람쥐와 정화백 / 김시철 가평골 산자락에 사는 정 화백 손바닥에 올라앉아 먹이 먹는 삼년 내리 다람쥐 식솔들과 뒤늦게 짐승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제 그의 여생은 겨울 산장 / 김시철 산자락에 토담집 한 채가 적막(寂寞)을 둘러치고 앉았다. 세월을 돌아앉은 한 시인(詩人)의 입김으로 찍어 놓은 점(點) 하나라 할까. 비도 눈도 먼저 와 들렀다가 먼저들 가버리는 매산봉 턱 아래 외톨이라 하늘 아래 첫 집이다. 손 놓은 지가 감상한 화전(火田)터 암자(庵子) 하나가 들앉아 들릴 법도 한 목탁(木鐸)소리는 안 들려오고 산새만 눈 털며 날아가는구나. 아바이들 歸鄕 / 김시철 40년 전, 처음 내가 束草를 찾았을 땐 피난 온 <아바이> <아마이>들 억센 함경도 사투리가 어시장 좌판마다 깔려 있어서 아, 예가 바로 떠나 온 내 고향이지 싶었지요. 30년이 지나 다시 또 가보았으나 그때 그 좌판들은 볼 수가 없고 사람도 사투리도 그곳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꾸 그때가 생각나서 오늘도 또 부둣가로 가보지만 끼륵, 끼륵, 끼륵 갈매기만 뭐라 하며 날으는군요. 아마도 그때 그분들은 하나 둘, 저기 저 갈매기로 이승에 남고 저승길로 해 고향집엘 모두 가신 모양입니다.
오 년 뜸 드린 끝에
다람쥐 가족과 친구가 되었다.
할아버지와 손자녀석 사이처럼.
재롱둥이 다람쥐
일찍이 맛 본적 없는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 했다.
친숙하게 지내오는 정 화백
고것들 맞이하는 아침나절이
유일한 낙인 듯.
정 화백,
내일은 또
고라니 오소리 너구리 가족들과의
화해와 친숙을 궁리하고 있었다.
공심(空心)으로 돌아가
베풀면 돌아온다는 평범한 진리가
뼈저리게 실감되는 나날들로
깊어가는 늦가을의 결실처럼
가슴 가득 보람으로 영글고 있다.
김시철 시인 1956년 김광섭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 시집 < 林檎 > < 조용한 無題 > < 생활 > < 시가 안 되는 밤에 > 등 다수 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 시집 < 나를 찾고자 하네 > 김시철 시인 을 짓고 창작에만 몰두해 온 김시철시인이 11번째 시집 `나를 찾고자 하네'를 펴냈다. `공심산방' `금당계곡'에 이어 평창에서 엮은 세번째 시집이다. 강원도를 소재로 쓴 시 43편이 고백시 형식을 띠고 종서(縱書)로 수록됐다. 나무와 물/순결이 물신거리는/ 축복 받은 이 자연 속에서// 텃밭을 일구는 노동의 대가와/ 꽃밭 가꾸는 마음의 순화로/ 조화로운 삶의 의미를 얻고자 함이었네”로 강원도를 찾은 심경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그 어느 것도 강원도를 말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며 “이 작업은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을 시리즈로 엮어 올가을 산문집으로 펴낼 계획이다.
- 끊임없이 부르는 강원의 노래
지난 2001년 평창군 용평면 재산리에 내려와 `공심산방(空心山房)'
이번 시집에는 야생화와 텃밭가꾸기를 전업으로 삼아 지내며
시 `강원도·57-나를 찾고자 하네'를 들여다 보면 “산과 들과
김시인은 “강원도를 소재로 99편의 시를 썼지만
김씨는 현재 월간 시문학에 연재중인 문단이면사 '김시철의
/ 鄭明淑 강원일보 기자
시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시인 자신의 체험이다.
그 체험은 시를 의미의 세계보다 한 단계 높은 존재의 세계로
끌어 올리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T.S.엘리엇의 “시란「무엇은 사실이다」하고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좀더 리얼하게 느끼도록
해 주는 것”이란 말도 시의 창작과정創作過程에서 체험을
중요시한 시론으로 해석된다.
이 시론은 “시에서 모든 관념은 어떤 형태든 물리적 존재에
실려 운반되어야 한다"는 문덕수의 수퍼비니언스(supervenience)
의 원리도와 맥을 같이 한다.
김시철 시인의 연작시「강원도」에는 그가 서울을 떠나서
강원도 평창 산골에 터를 잡고 산 몇 년간의 생생한 생활체험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의 시가 현대시의 기법과는 거리가 먼
순수한 자연발생적인 정서의 표현에 머물고 있지만, 사실(fact)이
주는 시적 감동 속으로 독자들을 들어가게 하고 시를 읽는 맛을
진하게 한다.
특히 그의 사상이나 견해가 직설적으로 들어있지 않고, 그것이
사실적 체험 속에 융합되어서 표현된 (물리적 존재에 실려
운반된) 시편들은 독자들에게 공감의 깊은 울림을 준다.
「강원도 100-고라니의 죽음」은 그런 면에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이 시에는 시인의 특별한 언어적 수사가 없어서 언어와 사실이
등가관계等價關係를 이루고 있지만 독자들을 뜨거운 피가
흐르는 감성과 사유의 공간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그는 어느 눈 내린 겨울 날 아침, 현관에서 고라니와의 예상치
않은 마주침에 놀란다. 그때 그는 도망가는 고라니의 뒤꽁무니를
보면서 <이 아침 놈이 웬일로/우리 집엘 온 것일까/나에게 무슨
용무라도 있는 걸까//아니면,/눈 쌓인 산속엔 먹을 것이 없어서
/혹여 내 집엘 동냥 온 건 아닐까.//그날 이후 내내/도망치던
놈의 뒷모습이 선해/먹을 것을 내다놓고 닷새를 기다렸지만/
종무소식이다.>라고 고라니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서술하고
있다.
그 심경 속에는 인간과 동물이라는 경계선을 넘어선 따뜻한
마음이 들어 있다.
그 마음은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삶을 누리는 순수한
동화同化의 마음이다.
추운 겨울철을 견디는 산속의 동물들에게 무엇보다도
고통스러운 것이 굶주림이다.
몇 년 동안 산골 생활을 한 시인은 그들의 어려운 처지를
잘 알고 있으며 그들과 공생共生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터득하고 있다.
그 방법에는 관념적인 사상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자연과의
화합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삶의 원리가 들어있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은 겨울철 산짐승들이 다니는 산길에
덫을 놓고, 그 덫에 걸린 짐승들을 술안주 감으로 삼고 즐기는
것을 농한기 놀이의 방법으로 당연시 한다.
그는 이 시의 끝 연에서 그 인습적因襲的(원시적)이고 무지한
삶의 현장을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닌 걸 안 것은/그로부터
며칠 후/덫에 걸린 고라니가 마을 사람들/술안주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부터.>라고 담담한 어조로 드러내고 있다.
그의 어조는 담담하지만 그 어조 속에 담긴 그의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은 시의 여운으로 남아서 독자들의 마음을
휘어 감는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이런 현실을 인정해야
하느냐고, 독자들에게 인간의 잔혹한 행위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자연관(자연친화 사상)은「강원도 118-수목장
樹木葬」에서 더 개성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면서<혼(魂) 다 빠진 육신
(肉身)/굳이 무덤 만들어 썩힐 것이 아니라/뒷동산 어느
소나무 밑에 다가/한 줌/수목장(樹木葬) 을 하면 어떨까.>
라고 죽음을 맞이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요 며칠/그 생각에 깊이 들다보니/뒷산이 모두
내 집이요/소나무가 모두 내 몸만 같네.>라고, 한없이
넓은 또 하나의 세상을 만나는 상상에 젖어들고 있다.
그의 상상은 관념의 문을 열고 나온 사실적인 이미지가
되어서 이 세상의 생명의 뿌리와 만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불변하는 자연의 원리 속으로 벌거벗은 시인의
정신이 들어가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저 뒷동산의 나무와 내가 한 몸이 된다는 상상은
인간의 우월성을 모두 벗어버린 인간존재에 대한
인식의 변화, 인간이라는 굴레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는
큰 깨달음의 세계를 열어준다.
그것은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이 시의 향기를 즐기면서
철학적 사유의 공간 속으로 잠시 들어가게 되는
키워드가 되고 있다.
/ 심상운 시인, 문학평론가
'同樂茶軒-문화와 예술 > 詩가 있는 뜨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능소화 - 이원규 외....슬픔이라면....저 능소화만큼은 돼야지 .... (0) | 2013.07.21 |
---|---|
[스크랩] 도반(道伴) / 이성선 (0) | 2013.07.21 |
[스크랩] 낚시질/마종기 (0) | 2013.07.21 |
[스크랩] 지장암 - 김용택 (0) | 2013.07.18 |
[스크랩] 빗소리를 듣는다 / 천상병 (0) | 2013.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