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스크랩] 능소화 - 이원규 외....슬픔이라면....저 능소화만큼은 돼야지 ....

sosoart 2013. 7. 21. 20:08




♥능소화 - 이원규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화무십일홍
비웃으며
두루 안녕하신 세상이여
내내 핏발이 선
나의 눈총을 받으시라
오래 바라보다
손으로 만지다가
꽃가루를 묻히는 순간
두 눈이 멀어버리는
사랑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기다리지 않아도
기어코 올 것은 오는구나
주황색 비상등을 켜고
송이송이 사이렌을 울리며
하늘마저 능멸하는 
슬픔이라면
저 능소화만큼은 돼야지 


♥저 능소화 - 김명인 

주황 물든 꽃길이 봉오리째 하늘을 가리킨다 
줄기로 담벼락을 치받아 오르면 거기,  
몇 송이로 펼치는 생이 다다른 절벽이 있는지 
더 뻗을 수 없어 허공 속으로 
모가지 뚝뚝 듣도록 저 능소화 
여름을 익힐 대로 익혔다 
누가 화염으로 타오르는가, 능소화 
나는 목숨을 한순간 몽우리째 사르는 
저 불꽃의 넋이 좋다 
가슴을 물어라, 뜯어내면 철철 피 흘리는 
천근 사랑 같은 것, 
그게 암 덩어리라도 불볕 여름을 끌고 
피나게 기어가 그렇게 스러질 
너의 여름 위에 포개리라 


♥ 당신을 향해 피는 꽃 - 박남준 

능소화를 볼 때마다 생각난다
다시 나는 능소화, 하고 불러본다
두 눈에 가물거리며 어떤 여자가 불려 나온다
누구였지 누구였더라
한번도 본 적 없는 아니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던
여자가 나타났다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어 나무에, 돌담에
몸 기대어 등을 내거는 꽃
능소화꽃을 보면 항상 떠올랐다
곱고 화사한 얼굴 어느 깊은 그늘에
처연한 숙명 같은 것이 그녀의 삶을 옥죄고 있을 것이란 생각
마음 속에 일고는 했다
어린 날 내 기억 속의 능소화꽃은 언제나
높은 가죽나무에 올라가 있었다
연분처럼 능소화꽃은 가죽나무와 잘 어울렸다
내 그리움은 이렇게 외줄기 수직으로 곧게 선 나무여야 한다고
그러다가 아예 돌처럼 굳어가고 말겠다고
쌓아올린 돌담에 기대어 당신을 향해 키발을 딛고
이다지 꽃 피어 있노라고
굽이굽이 이렇게 흘러왔다
한 꽃이 진 자리 또 한 꽃이 피어난다
 [박남준시집[적막]-창비]


 ♥능소화 - 김영남 

오해로 돌아선 이
그예 그리움으로 
담을 타는 여인 
아래 벗겨진 신발 
모두 매미 소리에 잠들어 있구려 
내 아직 늦지 않았니? 


♥ 능소화 - 김광규

7월의 오후 골목길 
어디선가 해피 버스데이 노래를 
서투르게 흉내내는 
바이올린 소리  
누군가 내 머리를 살짝 건드린다 
담 너머 대추나무를 기어올라가면서 
나를 돌아다보는 
능소화의 
주황색 손길 
어른을 쳐다보는 아기의 
무구한 눈길 같은 


♥ 능소화 - 나태주
 
누가 봐주거나 말거나 
커다란 입술 벌리고 피었다가, 뚝 
떨어지는 어여쁜 
슬픔의 입술을 본다 
그것도 
비 오는 이른 아침 
마디마디 또 일어서는 
어리디 어린 슬픔의 누이들을 본다 

Giovanni Marradi(지오반니 말라디)-Innocence(이노센스)


 
★ Namaste ★

2013 / 07 / 20 / by 블루로즈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블루로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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