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스크랩] 고쳐 말했더니/ 오은영

sosoart 2014. 8. 3. 15:18

 

 

 

고쳐 말했더니/ 오은영

 

 

사다리가 전봇대를 보고 놀렸어요.

"넌 다리가 하나밖에 없네."

전봇대도 사다리를 보고 놀렸어요.

"넌 다리가 두 갠데도 혼자 못 서지?"

 

사다리가 말을 바꿨어요.

"넌 대단해!

다리가 하난데도 혼자 서잖아."

전봇대도 고쳐 말했어요.

"네가 더 대단해!

사람들을 높은 데로 이끌어 주잖아!"

 

- 월간『아동문예』200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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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아동을 대상으로 쓴 동시입니다. 하지만 요즘엔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는 동시 동화도 많이 있고, 심지어는 어른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동시와 동화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대개 삶의 전반에서 유용한 은유와 메시지가 담겨있기 마련인데, 이 동시도 역시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고갯길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걷기가 너무 힘이 들어 애교 섞인 목소리로 할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영감~, 나 좀 업어 줘!" 할아버지도 힘들긴 마찬가지였지만 사내 체면에 할머니를 업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물었습니다. "무거워?" 할아버지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럼 무겁지, 얼굴이 철판이지 머리는 돌이지 간뎅이는 부었지 심장은 강심장이지, 그러니 안 무거워?" 한참을 그렇게 걷다 지친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할멈, 이젠 할멈이 나 좀 업어주면 안될까?" 기가 막힌 할머니는 그래도 할아버지를 업었습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가볍지?" 그러자 할머니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습니다. "그럼~가볍지. 골은 비었지 쓸개는 빠졌지 허파엔 바람 들어갔지 양심 없지. 너~무 가볍지."

 

 요즘 유행하는 말로 ‘디스’의 결정판이라 할 만합니다. 말 나온 김에 언제부턴가 우리의 일상에서 이 ‘디스’라는 영어가 교묘하게 '있어보이는' 말처럼 포장되어 방송이고 학교에서고 마구 퍼져 유통되고 있습니다. 무례와 결례라는 뜻을 가진 disrespect이란 단어의 앞 철자를 딴 것인데, ‘비하하다, 험담하다, 폄훼하다, 깎아내리다’란 의미로 폭 넓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원래는 힙합 음악에서 래퍼가 손가락질 해가며 ‘디스 배틀’을 벌인데서 유래되었다지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했습니다. 아니 요즘은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지’ 라고 고쳐 말하기도 합니다. 가끔 웃는 낯에 침도 뱉는 세상이라 왼쪽 뺨까지 내미는 경우는 오기와 깡의 발동이 아니고서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철저히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대응하는 탈리오의 법칙만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상대를 귀히 여기면 상대도 나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자명한 이치인데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공격본능 탓일까요. 의도된 폭언이나 막말은 물론이거니와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도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 있고, 그 상처는 곧 비수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아름답고 향기 있는 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언어의 순환법칙을 염두에 두고 말의 온도를 재어가며 말을 하는 습관의 절실함이 느껴지는 무더운 날들의 연속입니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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