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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그 서문〕제17회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 사람을 갈망하는 인간조각의 미래적 지평 / 김성호

sosoart 2014. 9. 11. 21:10

〔카탈로그 서문〕제17회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 사람을 갈망하는 인간조각의 미래적 지평

김성호

카탈로그 서문〕

제17회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사람을 갈망하는 인간조각의 미래적 지평

 

 

 

 

김성호(미술평론가)

 

 

 

 

 

스퀘어앵글의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은 조각 장르를 지향하는 국제미술행사로서, 2012년 창원조각비엔날레가 등장하기 전까지, 국내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해온 유일의 행사였다. 특히 1998년 개최된 이래, 매년 행사를 이어와 올해 17회째를 맞이한 만큼, 국내에서 개최된 조각 관련 국제행사로는 역사가 제일 깊다.

 

매년 국내외 작가를 초대해 이천시의 설봉공원을 무대로 22일간의 일정으로 창작과 세미나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이 조각심포지엄은 조각가들의 개인 연구와 상호교류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초대된 조각가들에게는 영예(榮譽)의 장이라 할 것이다. 이후 한 달간 그 결과물을 전시의 형식으로 시민들에게 공개함으로써 관객들의 예술 향유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이 행사는 이천시민은 물론 모든 관람자들에게 예술체험의 소중한 마당이기도 하다. 또한 한 해의 행사를 마감하면서 참여 작가들의 작품이 설봉공원과 이천시의 공공장소로 이동하여 영구 설치됨으로써, 이 행사는 이천시로 하여금 예술도시로서의 위상을 갖추도록 하는데 있어 손색이 없다고 할 것이다. 해마다 발전적 모습을 도모하면서 특색 있는 국제적 행사로 자리매김해온 이 행사는, 그런 면에서 한국미술현장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쳐온 것 또한 사실이다. 즉, 초대작가, 관람자, 이천시라는 트라이앵글을 넓혀 한국미술현장이라는 목표 지향적 상수(上數)를 잊지 않음으로써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은 오늘날 가히 스퀘어앵글을 갖추고 발전을 지속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주제의 의미: 인체조각으로부터 인간조각으로의 변주

이번 조각심포지엄의 주제는 '조각, 사람에 반하다(Fascinating Figures)'이다. 이전 행사들에서 '조각, 빛을 품다'(15회), '조각에 말을 걸다'(16회)로 지속되어 온 서술형의 주제는 일반 관객들에게 조각이란 장르를 쉽게 접근시킬 수 있는 네이밍(naming)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행사가 미술인들뿐만 아니라, 시민과 대중을 관객으로 삼는 페스티벌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에게 친근한 네이밍은 홍보와 관객 참여를 도모하기 위한 유효한 포석(布石)이다.

 

올해의 주제 '조각, 사람에 반하다'는 조각이 인간으로부터 출발했던 존재론적 근원을 더듬어 올라간다. 최초의 조각이라 밝혀진 구석기 시대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of Willendof)가 인간의 인체를 다루고 있음에도 사실적인 인체의 재현에는 별반 관심을 두지 않고, 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 의식에 집중했다는 미술사가들의 해석은 이번 조각심포지엄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과학과 기술을 도구로 인체 형상의 외관을 재현하는데 집중했던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인체조각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이번 조각심포지엄은 '사람'을 주제로 내세워 참여 조각가들 각자의 인간에 대한 재해석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것은 인체 외양의 '그럴듯한 옮김'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요구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행사가 지향하는 인체조각이란 결국 인간조각에 다름 아니다. 이번 행사의 박장근 예술감독이 '인체의 아름다움과 삶의 모습들을 독창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국내외 조각가를 초청하여, 현시대 우리의 모습을 고찰하는 다양한 조각을 선보이고, 시민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듯이, 그가 이번 행사를 통해 언급하는 인체조각은 다름 아닌 인간조각이다.

인간조각은 '재현적 언어에 충실한 상투적인 인체조각'을 지양하고, '표현적 언어를 탐색하는 인체조각'을 지향한다. 그것은 이번 조각심포지엄에서 국내외 초대작가 9인의 접근하는 인간에 대한 재해석임은 물론이다. 이들은 필자가 보기에 대략 4개의 범주에서 자신들의 작품세계를 펼쳐나간다. ①보편적 인간 존재론, ②인간과 자연, ③인간과 의인체, ④인간과 사회가 그것이다. 이러한 범주는 조각가들이 끊임없이 인간을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유하고 해석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러한 관계지향적 사유는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자 주체'라는 근대적 인간관으로부터 탈주하면서, '인간이란 지속적인 상호작용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세계 속 한 부분'이라는 동시대적 인간관을 여실히 드러낸다.

 

 

 

 

초대작가 작품 해설: 타자들과 상호작용하는 인간

먼저, 필자가 '①보편적 인간 존재론'의 범주로 파악하는 작가 중에서 루마니아 작가 티보 코로치(Tibor Kolozsi)는 세 개의 다른 화강석으로 '꿈꾸는 소녀의 두상'을 아케익(archaic) 조각으로 형상화한다. 미국 작가 에밀 알자모라(Emil Alzamora)는 윈터스톤과 화강석을 통해 사색하는 인간 좌상〈흔들리는 인체(Oscillator)〉를 선보인다. 그것은 역동적 움직임을 연속사진처럼 하나의 조각체에 구현했던 1920년대 움베르토 보치오니식(式)의 미래주의 조각의 이상에 대한 새로운 번안을 멋지게 실천한다. 한국의 신치현은 어느 방향에서도 정면으로 보이는 〈Human-L〉이라는 제목의 거대한 인간 입상을 선보인다. 그것은 작가 신치현이 한 개인으로부터 보편적인 인간 정체성을 찾아내는, 인간에 대한 해석이자, 익명의 한 개인이 곧 '사회적 인간'이라는 하나의 메타포로 상정된다.

  

필자가 규정한 '②인간과 자연 환경'라는 범주에서 한국의 김홍석은 포천석을 재료로 눈을 감고 사색하는 인간의 두상과 더불어 그 좌우로 물보라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파도의 모습을 대조시킴으로써 소멸성과 영원성 사이의 간극을 허물고 인간이 대자연과 맺고 있는 네트워크와 그것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스코틀랜드의 롭 뮬홀란드(Rob Mulholland)는 스테인리스 스틸판으로 이루어진 한 명의 분신임이 분명한 세 명의 인간상을 선보이는 작품 〈환생(Transmigration)〉을 통해 자연 속으로 회귀하고 있는 인생의 시간을 시각화한다. 아울러 거울과 같은 스테인리스 스틸의 표면에 반영되는 자연과 환경은 인간의 관계 지형을 드러내기에 족해 보인다.

   

'③인간과 의인체'의 범주에서 한국의 전경선은 인간과 교감하는 얼룩말 두상을 통해 양자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일본의 마샤요시 카메타니(Masayoshi Kametani) 역시 인간과 말을 함께 등장시킨 작품,〈철의 말〉을 통해서, 언어적 소통이 아닌 정서적 교감으로 상호작용하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소통의 가능성을 꿈꾼다. 그것은 짐바브웨 작가 빅터 냐카우루(Victor Nyakauru)에게서 의인화된 쥐의 모습으로 변주된다. 여행용 가방을 끌면서 나들이를 떠나는 쥐의 모습을 여인의 모습으로 의인화시킨 작품 〈여행하는 여자(Travel Lady)〉를 통해 매우 익살스러운 방식으로 인간과 동물 사이의 소통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세 작가 동일하게 동물을 의인화된 의인체로 살펴보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④인간과 사회의 범주로 살펴볼 수 있는 이종희의 작품 〈바퀴〉는 알루미늄과 석재로 인간 군상이 새겨진 바퀴를 형상화함으로써 사회적 인간 공동체를 드러낸다. 이 모든 작품들은 타자들과 상호작용하는 인간에 대한 저마다의 해석을 서로 공유한다.

 

 

①보편적 인간 존재론    

 

티보 코로치(Tibor Kolozsi/ 루마니아)​, 무제

 

 


에밀 알자모라(Emil Alzamora / 미국), 〈흔들리는 인체(Oscillator)〉

 

신치현, 한국〈Human-L〉

 

 

 

②인간과 자연 환경 

김홍석, 한국, 무제 

 

 

롭 뮬홀란드(Rob Mulholland / 스코틀랜드),〈환생(Transmigration)〉

 

  

 

③인간과 의인체,


전경선, 한국, 무제

마샤요시 카메타니(Masayoshi Kametani/ 일본),〈철의 말〉

 

 

빅터 냐카우루(Victor Nyakauru/ 짐바브웨), 〈여행하는 여자(Travel Lady)〉

 

 

④인간과 사회

이종희, 한국, 〈바퀴〉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의 미래적 전망: 직각의 스퀘어앵글로부터 '예각의 트라이앵글'로

사람을 화두로 인체조각을 통해 인간조각을 지향하는 이번 17회 조각심포지엄은 20회를 목전에 두고 있다. 20주년에는 분명코 조각심포지엄의 그동안의 경험과 연륜이 총체적으로 실현되고 새로운 비전을 제안하는 하나의 전환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의욕적으로 시작되었던 그간의 행사가 안정적으로 정착되어가면서 야기되는 위기감을 곱씹어보아야만 할 것이다. 물론 이천조각심포지엄만의 고유한 행사 방식으로 안착한 여러 장점과 지향점은 유지되어야 하겠지만, 국제적 행사, 특히 미술행사를 진행하는데 있어 상투적이고 관습화된 행사의 반복은 경계해야 할 적이다. 미술이란 언제나 아방가르드적 실험과 태도로 우리 사회에 예측 불가능한 메시지를 던지는 주체가 아니던가?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이 안정화란 이름으로 그동안 어떻게 관습화되고 관성화되었는지를 검토하는 일은 운영 주체들의 시각으로 '자가 판단'하는 일이란 쉽지 않다. 스스로에 대한 냉정한 비판은 외부의 눈을 빌어 객관적으로 볼 때에 가능해진다. 그런 면에서 20주년을 앞둔 조각심포지엄은 먼저 그간의 성과들을 아카이빙하고 그 자료들을 외부와 공유하면서, 외부로부터의 쓴 소리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행사의 미래적 방향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따라서 외부의 기획전문가를 예술감독으로 위촉하는 일도 이러한 새로운 수혈의 과정 속에서 요청되는 일이다. 국제적 네트워크를 통해 기획을 실천하는 전문가를 통해서 아시아와 국내의 미술행사의 이곳저곳에 단골처럼 오고가는 몇몇의 국외작가들을 검증하고 초대 자체를 걸러내는 일도 필요해 보인다. 또는 국제 경쟁을 통해서 작가를 공모하는 방식도 글로벌 신진 발굴 측면에서 검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시민과 미술인들에게 매해 새로운 기대를 품게 만드는 조각심포지엄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현장 제작과 전시 프로그램 외에도, 심포지엄 본연의 유의미한 프로그램, 즉 주제에 대한 심층적인 학술행사가 병행해야 될 필요가 있다. 또한 현장 제작 기간 중 짧은 시간 동안 일회의 행사로 그치고 있는 '아티스트 토크'를 정기적으로 개최해서 작가들의 교류와 대중들의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다.

 

이 모든 일들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운영위원회의 사무국을 상설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실험성을 견지하는 행사의 지속성을 위해서도 사무국의 상시 운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행사 기간에 근접해서 꾸려지는 임시 사무국은 실험과 변화를 도모하는 역동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기념비적 전통 조각으로부터 커뮤니티형 공공미술 그리고 프로젝트형 도시디자인으로까지 발전해온 조각의 위상을 오늘날 되새기고 그것의 유의미를 되묻는 실험들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관성적인 직각의 스퀘어앵글의 틀을 깨뜨리고 날카로운 예각의 편대를 꾸려내는 트라이앵글을 구축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이 전제될 때,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은 보다 튼실한 미래지향적 국제미술행사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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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김성호, '사람을 갈망하는 인간조각의 미래적 지평', '제17회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카탈로그 서문,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추진위원회, 2014. 

 

 

출처: 김달진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