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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락재 통신-3: 봄은 고양이 발자욱처럼 조용히.......

sosoart 2007. 3. 23. 21:56

 동락재의 뒷동산 산책코스에서 바라보는 자작나무 숲

 

 

<동락재 통신-3>     2003. 2. 26


요사이 며칠동안은 고양이 발자욱 처럼 살금살금 다가오는 봄의 기운을 시샘

하듯 날씨가 구물구물..... 잿빛하늘에 이곳 강원도의 산골은 어제도 가는

눈발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어제는, 이제 며칠만 있으면 이 동락재에 항상 있지 못하고 주말에만 내려와

야 하겠기에, 우리 복순이(1년 조금 안된 하얀 진돗개)가 자그마한 능금열매

를 맺는 꽃사과나무 가지 밑둥을 이빨로 갉아 놓아서, 지금의 복순이 집-

닭을 키웠던 닭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집을 만들어 주려고 준비를 하다

가 날씨도 스산하고, 꾀도 나고 하여 나무를 갉아내지 못하도록 쇠 그물망

으로 가려놓고, 다음 주에나 집을 지어주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내일은 또 볼일이 있어서 서울엘 가야겠기에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챙기려

다, 게을음만 잔뜩 늘어 "에이! 모르겠다" 하고 오늘 일을 또 내일로 미루고

인터넷으로 신문을 훑어보고 있는 중에, 용도예가 궁금해서 들어 왔습니다.


내일은 모처럼 만에, 차를 가지고 가지 않고 기차를 타고 서울엘 갈까 합니

다. 가끔 서울엘 가면, 이제는 차가 너무 많고 밀려서 머리가 아파짐을 느낍

니다. 서울을 떠나길 잘했다 싶기도 하지요.


내일 아침에는 아들 녀석의 차를 타고, 춘천의 집사람 가게엘 들렸다가 춘천

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 여행을 가렵니다.


요즈음엔, 아니 이번 겨울엔 눈이 너무 자주 와서 이제는 지겹게 느껴집니다.


2월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뒷산의 깊지 않은 골짜기를 타고 이름 모를 새들의

난생 처음 듣는 듯한 노래 소리를 연일 듣습니다.


어김없이 계절의 순환은 계속되며, 아무리 추워도 봄은 제 날짜를 잊지않고

제자리를 찾아 오더군요. 올해로 세 번째의 봄을 맞게되며 느끼게 되었습니

다만.


자연의 이치와 순리는 이 자그마한 인간의 모습을 더욱 더 작게 여기도록

만드는것 같습니다.


이제 꽃샘추위도 반짝하고 찰라적으로 심술을 부리고 가겠지만, 봄기운은

그 커다란 대세를 몰고 거침없이, 그러나 소리없이 조용히 우리 인간을 압도

하며 모습을 서서히 보여주기 위해 큰 첫 발자욱을 내디디고 있음을 감지

하게 합니다.


자연의 의지는 우리네 같이 쫄짜와 같은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그 커다란

기운으로 우리의 하찮은 모습을 더욱 초라하게 느끼게 합니다.


그 자연이 펼쳐놓은 커다란 손바닥의 아주 조그만한 공간 한 켠에서 인간

들은 내가 잘났니, 네가 못났니........, 하고 꼬물거리며 허우적대며, 때로는

뻐기고 어그적 대며, 때로는 거만함을 감추지 못하며, 때로는 제가 가지고

있는 아주 조그마한 것을 보여주지 못해 안달을 하는 가엾은 인간의 모습

들을 보이게 하며 스스로를 너무 작게 만들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이 산촌에 어둠이 그 커튼을 내릴 즈음에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나"라는 존재는 얼마만큼 인생을 달려왔고, 지금은 어디에 두 발자욱을

딛고 서 있으며, 무엇의 완성을 향해 전후좌우를 살피지 않고 소위 나름대로

전력질주하여 왔다고 하지만 인생의 어느지점에 서서,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것도 없이, 아무것도 가진것도 없이, 아무것도 누구에게 준것도 없이,

아무것도 잘 난것도 없이....., 후회와 부족과 존재의 의미도 터득하지 못

하고 어디쯤 있음일까?


그 답의 발견을 위해 해탈 아닌 일탈과 도피의 비겁한 모습을 가지고, 피안

을 향해 무엇을 얻고자 손짓함일까?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삶에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가?


무어, 이런 저런 대답없는 허공을 향해, 思惟와 망상의 날개를 접을 곳을

가늠하고 있는 철새처럼 비상하고 있는 착각에 젖어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데.....


인간으로 이 세상에 첫울음을 트고 태어나서, 그 영욕의 시간들을 소유하고

때로는 망각하고 버리면서 지금을 살아가고 또 내일을 살려고 관성에 의해

시간의 앞을 걸어가는 모습들이 가엾기도 합니다.


내 스스로를 내가 가엾다고 하다니.....


어디 매든 갈 곳이 없다고 시간을 거슬러서 갈 수는 없으려니.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너무 혼돈과 무력함과 마음을 잡아줄 기둥이

없음이니, 나에게 또 내 자식들에게 무슨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의 한 복판에서 우리 또래의, 또 우리 선배들의 고뇌

와 후회가 있음을 서로 얘기하곤 합니다.


우리 사는 세상, 정말 잘 되어야 할 터인데........


내가 사는 이 시간, 내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정말 좋은 시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치매스러운 이야기로 오늘의 이야기를 접습니다.


동락재에서 동산 드림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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