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동락재 통신-4: 채송화를 좋아한 그녀

sosoart 2007. 3. 23. 22:40

뒷산 산책로 가을의 낙엽송 수림

 

 산은 내 마음의 포근한 고향이기도 하다.

 

 

<동락재통신-4>     2003. 2. 28


어제는 남춘천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엘 갔습니다.


모처럼 혼자서 기차여행이라........ 그런데, 이제는 젊은날의 여행처럼 설레임과 새로운 풍경에 대한 기대는 어디론가 상실한지가 오래 된것처럼 쪼그라든 보잘것 없는 한 시골의 설늙은 촌부처럼 보이는 내 모습을 보았습니다.


옛날, 이 경춘선 기차는 여행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아주 자주 이 기차에 혼자서 몸을 싣고, 강 길을 따라 청평, 가평, 경강, 백양리, 강촌....

이렇게 철길따라 펼쳐지는 강을 끼고 도는 경치에 저의 눈은 아주 부자가 된 기분이었는데......


그리고 버스를 타고 경춘가도를 달리면, 지금처럼 4차선이 아닌 구불구불 2차선의 도로를 타고 저만치 앞에 굽이돌아 나타나는 강마을의 운치 또한 나의 시선에 많은 향수와 그리움을 느끼도록 해주었었지요.


어떤 때엔 애인은 아니지만 이야기 친구로서, 아가씨와 같이 하는 2시간 남짓의 여행은 참 많은 사유(思維)와 싫지않은 외로움도 즐길 수가 있었지요.


어쨋던 어제는 그렇게 서울에 올라가 목공예디자인 수강학생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다시 밤기차를 타고 춘천에 도착하여, 아들의 차를 타고 동락재에 귀환을 했습니다.


3월3일부터 수업이 시작됩니다.

이 봄부터 몸도 마음도 바빠질것 같습니다.


그런데, 명퇴 전 직장을 다닐때 같으면 워낙 여행을 좋아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하루 종일 연속18시간을 운전해도 피곤한 줄을 몰랐는데, 특히 작년에 다시 잠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부터는 5-6시간만 운전을 하거나, 남이 운전하는 차를 2-3시간만 타고 다녀도 그날 밤은 코를 골고 골아 떨어지는 모양입니다.


맥을 놓고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그래서 더욱 더 올해 1년은 긴장을 하고 무언가 배우려고 계획을 했었지요.


오늘은 문득 이 쪽 살림집에 공간이 모자라, 저쪽 별채 작업실 겸 창고에 옮겨놓은 서가에서 지나간 자료들을 찾다보니, 왕년(?) 총각때 써 놓은 작업노트를 발견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니, “아... 내가 이런 때가 있었지!, 이 사람이 누구였지?” 하면서 기억을 더듬어 보는 시간을 잠시 가졌었습니다.


이런 여자가 있었었지요. 옮겨 보겠습니다.

 


<채송화를 좋아한  그녀>

 

자그마한 그 몸에서 풍겨주는 부드러운 말씨가 좋았다.

불안한 나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게 하는

그 조용한 목소리와 언어의 리듬

안정된 그 모두가 좋았다.


순종하는 겸양, 결코 역행하려 들지 않는 그 마음

백치와도 같이 맹종하는 그 노력이

날 믿는다는 -내가 자기의 모두를 포용한다는-

그런게 좋았다.


스스로의 고고한 자태에 누구도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말을 하는

조용한 자부(自負)가 좋았다.


그 까맣고 긴 속 눈썹, 웃어주는 그 귀여운 얼굴

갸날프게 날 의지하는 그 자세 모두가 좋았다.


모두를 나에게 숨기지 않음이, 자기의 전부가 나 인양

갈망을 표현하는 토라짐 모두가 좋았다.


가을엔 우린 더 잘 어울릴 그런 사람들이었다.

낙엽과 쓸쓸함이 무척이나 잘 어울릴것 같은

사람이었다

 

코스모스, 채송화를 좋아하는 사람

깔끔함을 좋아하는 사람. 가을에 온 여자와 같은

단풍 내음을 주는 사람.

비오는 날의 코피 내음과 같은 사람.

 

 

가을 밤 늦은 보도(步道)위에

잔인하도록 쓸쓸하게

나의 옷깃 위에 떨어지는 낙엽과 같은 사람.



지금 거슬러 생각을 해보면 감성적으로는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모든 것이 마음에 들 정도로.....

그런데 딱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려서, 결국은 그녀를 뒤로 했었는데....


저도 홀어머니에 독자였고, 그녀도 무남독녀 홀어머니의 외딸이었기에....


내가 너무 외로운 것이 싫어서 결국은 서로를 잊기로 한 적이 있는..., 그런 여자가 있었지요. 물론 지금 집사람에게는 자세히 얘기를 하지 않았었지만.


비밀로 지키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그저 아름다운 추억 속으로 지나간 일이라고 할까요?

 


그때 제가 그녀에게 보내준 시가 있었습니다.


잊어 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조개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가는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조병화님의 <추억>이란 시 이지요.


그리곤 또 다시 이 시를 되 뇌이게 되었었지요.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서러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외로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사나운 거리에서 모조리 부스러진

나의 작은 감정들이

소중한 당신 가슴에 안겨 들은 것입니다


밤이 있어야 했습니다

밤은 약한 사람들의 최대의 행복

제한된 행복을 위하여 밤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

눈치를 보면서, 걸어야 하는 거리

연애도 없이 비극만 깔린 이 아스팔트


어느 잎파리 아스라진 가로수에 기대어

별들 아래

당신의 검은 머리카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나보다 앞선 벗들이

인생을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한 것이라고

말을 두고 돌아들 갔습니다


벗들의 말을 믿지 않기 위하여

나는 

온 생명을 바치고 노력을 했습니다


인생이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하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믿고

당신과 같이 나를 믿어야 했습니다


살아있는 것이 하나의 최후와 같이

당신의 소중한 가슴에 안겨야 했습니다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저는 제 자신에게, 또 상대의 여성에게 완벽은 아니지만 어떤 완성된 모습을 원하는, 잠재적 강박관념(?)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쉽게 인연의 끈을 매듭지어 이어나가지 못하는 구조적 결함이 있는 거라고 스스로 인식을 했었습니다. 그것이 결코 인생을 살아가는데 하등의 힘은커녕 걸림돌인 줄을 알면서 말입니다.


그것이 어떤 숙명에서 연유된 것 같기도 하다고 단정 지었고, 전생의 풀지 못할 나의 生 내내 짊어져야 할 그런 것, 원하지 않아도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전생의 업보이겠지요.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제가 스스로 선택한 쉽지 않은 길이지요.


이제 며칠 있으면 젊은 사람들과 서로 어우러져 강의도 듣고, 실습도 하고 같이 뛰어놀고 이야기도 나누고 하다보면, 어느새 빠졌던 머리칼도 많이 심어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새 봄이 오면 몸도 마음도 바빠지지만, 더욱 기대되는 건 용도예에서 차 한 잔, 막걸리 한 사발, 두부김치, 지글지글 돼지삼겹살 앞에 놓고 우리 주인장, 주인마님과 또 다른 회원님들과 무릎을 마주하고 마치 오래 묵은 벗처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날이 빨리 오리라는 행복한 마음입니다.


아! 그리고 이건 우리끼리 얘긴데, 이 東山이 용도예 카페의 주인자리 넘보는 것을 어떻게 눈치 챘지요?


모쪼록 우리 용도예가 많은 회원과 손님들로 매일 북적거리는 웃음 넘치는 저자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시간이 그리 많지가 않을 것 같아 아쉽군요.



또 다른 내일을 기약해야겠습니다.


홍천 동락재에서 동산 

 

 

<댓글>

 

한림신전: 글 잘 읽었습니더. 읽는 순간 한편의 영화처럼 스~윽 지나갔습니더. 저두 그런 기억이 있습니더. 하시는 일 잘되시길 바랍니더. 건강하시고 항상 행복한 하루하루가 되셨으면 합니더. 2003/05/24

 

형아: 그래서 지금은 훨씬 더 젊어지셨을것 같네요.마음이 아름다우십니다. 2003/05/24

 

구름 나그네: 정말 춘천가는 기차 여행은 우리네의 가장 호사스런 동화같은 추억입니다. 마석을 끼고 돌아 굽이굽이 돌던 기차길은 우리네 주름이 되어 추억에 웁니다 아~``````이젠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에 목메어 웁니다 . 오늘은 하늘도 울것 같네요 20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