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동락재 통신-21: 흐르는 세월과 mail 친구

sosoart 2007. 3. 26. 06:18
 

동락재의 토끼(숫놈 토돌이) 

 

 

 암놈 토순이

 

<동락재 통신-21>   2003. 6. 18


 <세월>


잊어야지

잊어야지

하면서 잊어지지 않은 채

봄, 여름, 가을

올해도 어느덧 세월 갈리는

바람의 언덕

 

밀리며

밀리며 


이 인간의 세계

쓸쓸한 건 그 저문 풍경이다


가진 사람이나

갖지 않은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나

 

동행하면서

동행하면서 

이 혼자

이 혼자를 견디며

세월을 넘는다

 

잊어야지 

잊어야지, 이 비밀

하면서,


조병화 님의 <歲月>이란 시입니다.


요즈음은 시집을 거의 사질 않습니다. 무언가 요즈음의 시들은 우리들 젊었을 적, 낭만적이거나 인간의 냄새가 물씬 풍기지 않는 것 같고, 너무 메말라서 "dry" 네!, 정말 너무 메말라서, 너무 똑똑해서, 너무 어려워서, 너무 잘나서 그야말로 영어의 "dry"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만큼 사람 사는 땀 내음이 너무 나지 않는것 같아서, 새로나온 시집을 사거나 읽지 않고, 그저 옛날 읽었던 시집들을 꺼내어 차근차근 음미를 해봅니다. 아!..... 이제서야-그야말로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서야 겨우 그 시의 뜻을 알듯합니다.


김소월, 박목월을 비롯해 대충 70년대 까지의 발표된 여러 시인들의 그 시들. 그 고운 서정적 언어와 감성으로 우리들의 메마른 영혼을 촉촉이 적셔주는 그러한 시들이, 이제서야 진정 눈에 보이며, 그 뜻을 음미해 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시와 그림과 음악, 그리고 글........ 이 모든 것들이 도회적이지만, 산촌의 전원생활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양식이자 영양소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라 생각이 됩니다.


제가 홍천의 산촌에 보금자리를 정하고, 솜씨는 없지만 손수 나무 판위에 同樂齋라 글씨를 써 올려놓고, 조각도로 서각을 하여 현관문 입구 오른 켠에 떡하니 걸어 놓으니, 그럴 듯 한 것 같아서 내심 만족한 웃음을 진 적이 있습니다.


한 일년간은 가족들과 떨어져서 동락재에서 홀로 보냈던 시간이 있었는데, 일상의 하루가 집 앞으로 지나가는 차량들은 많지만, 누구 하나 저와 얘기를 나누기 위하여 방문(?)하는 손님은 하나 없으니, 하루 종일 말을 나눌 수 없는 벙어리로 거의 일년간을 견디게 되니, 자연 가까이 할 친구가,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는 복돌이, 길동이 두 녀석과 책과 음악과 컴퓨터, 그리고는 가끔 그리는 그림과 나무와 조각도를 이용한 목각(지금 돌이켜 보면, 참으로 한심한 손장난에 지나지 않지만), 그리고 기분이 좀 울적해 지면, 제대로 치지도 못하는 피아노 건반을 기타의 코드에 맞추어 화음을 고르고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옛날에 즐겨 치던 기타를 치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모두 잊어버려, 기타 코드 잡는 손의 위치도 희미하고, 손끝에 못이 배기지 않아 기타를 치려면 손끝이 아프기도 했었습니다.


다행히, 책을 많이 가지고 있고, 또 명퇴 전에 인터넷을 통하여 앞으로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하기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프린터로 출력해 놓은 것이 서류철로 2백여권은 되어 시간 보내기는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사람과 나누는 말이 하고 싶었고, 사람 내음을 맡지 못해서 오는 그 적막감과 격리감은 심심산골 末寺,  암자의 수도승과 같다고도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며칠동안 계속되는 그 무료함을 견디지 못해, 한 달에 몇 번은 서울로, 몇 번은 집사람의 일터와 집이 있는 춘천으로, 또 몇 일은 강원도의 아직 가보지 못한 찻길이 닿는 산골을 골라서 저의 애마 짚차를 타고 홀로이 여행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일 가까이 한 것은, 다행히 홍천의 산골이지만 인터넷전용선을 이용할 수가 있어서, 컴퓨터의 뉴스를 통해 세상물정을 살며시 엿볼 수가 있었고, 제일 중요한 것은 메일 친구를 사귈 수가 있어서, 그 시간들을 잘 견디고, 값있게 보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메일 친구도 다양해서 남녀노소 한 10여명은 되었으나, 오랜동안 서로 마음을 열고 얘기할 수 있는 진정한 메일 친구는 그저 두, 세명 정도라 할 수 있겠지요.


물론, 오래묶은 술처럼 오랜 친구는 남성들이지요. 여성 메일 친구들은 너무 감성적이고 이기적이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을 땐 소리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어떤 여성들은 제가 혼자 있다하니, 동락재에 오겠다고 하나, 제가 오히려 회피를 하게 됩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쓸 데 없는 오해를 살 일은 삼가하는게 좋을 것 같고, 또한 여성 혼자서 온다면 아직은 펄펄한 젊은 저로서는 무슨 일을 벌일지(?) 장담을 할 수가 없어서 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지금도 2년여를 계속하는 남성의 메일 친구가 있습니다. 저보다 몇 년 아래이지만, 서로 의기투합하여 한 번은 만나기도 했지요.


또 한 친구는 한 10여세 아래 이지만, 뚝심과 매력의 경상도 사나이로 지금도 줄곧 소식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올해의 초봄 어느날, 면에 있는 파출소에 근무하는 경찰관이 무얼 물으러 왔다가, 현관에 붙어있는 동락재 현판을 보고 자기를 제자삼아 글씨를 가르쳐 주십사 하더군요.

아마, 서예가인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는 서예가는 더더구나 아니며, 취미삼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지금은 내가 다른 것을 더 배우기 위해 학교를 다녀야 하니, 내년에나 봅시다. 그때에는 나나 우리 집사람에게도 아주 기초적인 것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전달(?)은 해줄 수 있으니, 그때 보자고 한 적이 있습니다.


저희 동락재에 들어와 보니, 동양화나 서양화, 게다가 접시에 그린 그림, 바가지에 그리고 목각을 한 그런 그림들을 보고, 저를 대단한 서예가나 화가로 보아준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정말 시간이 되면 지역사회에 봉사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한 일도 해볼까 합니다.


실은 제가 공직에 근무할 적에 도서관장의 직도 맡은 적이 있었고, 그러한 자격증도 하나 가진 게 있고, 집 사람 역시 대학졸업후 잠시의 공간이 있을때 덤으로 사서교육을 이수하여 사서자격증을 가지고 있기에, 산촌에서 마을주민과 지나는 길손들에게 책이 있는 휴식공간을 만들고 봉사하려는 계획도 제 전원생활 계획의 한 부분입니다.


제가 근무하던 연구소에 부설 병원이 있고, 거기에서도 몇 년을 근무한 적이 있는데, 이미 정년퇴직을 하신 원장직을 수행하셨던 제 대 선배님이시지만, 낚시의 애제자였던 분이 계시고, 후배들 또한 의사들이 몇이 있기에, 여건만 된다면, 그들을 동락재에 초대를 하여, 매월 1회 정도 의료혜택을 별로 받지 못하는 마을 주민들에게 전문진료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봉사를 부탁하는 것도, 또한 계획의 일부로 잡혀 있습니다.


너무 계획이 많고 요란하지요?

그러나, 언제고는 하고 말겠다는 것이 저의 단호한 의지입니다.


언제고 할 수 있다는 굳은 신념만이 실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돈은 더구나 아니고, 가진 것은 보잘 것 없지만,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나누어 주는 것도 불교에서 말하는 적선 아니겠습니까?

善을 쌓아 가는것도 아마 아주 가치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여담입니다만, 제가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동락재에 누구나 찾아와서 편히 쉬고, 마음 평화롭게 가지며 며칠을 묵어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되, 그냥 쉬기만 하는 공간이 아닌, 마음 열어 서로를 이해하고 위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즐거움을 만드는 공간, 게다가 더하여 그림과 음악, 목공예 등 시골과 전원의 정취에 흠뻑 젖어, 사람과 예술이 더불어 생활하는 공간을 만들려고 합니다.


물론 최소한의 저의 부부, 두사람의 생존만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입만을  보장할  수 있는 방편의 준비와 더불어서 이지요.


그래서 내 집을 찾은 손님은 곧 내 가족으로 변하게 하고 싶고, 그 가족들이 서로를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더불어 지낼 수 있는 그런 시간과 공간과 어울림의 끈끈한 매개체를 준비하기 위해 지금도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긴, 제가 지금 배우는 목공예디자인도 그런 맥락에서, 하나 하나 준비하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목표하는 바를 다 이루지 못할지라도, 나이가 늙어가서 늦었다 할지라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는 마음으로 다시금 의지와 투혼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잘 될까나............?


오늘은 학교에서 옛날 우리가 사용했던 촛대를 디자인, 제작하고 있습니다. 며칠씩 작업시간을 요하기에 지루한 점이 있습니다만, 그 짬짬이 실패(실을 감는 작은 나무 판)라든지, 탈이나 장승, 도깨비얼굴의 소품들도 깎아, 목걸이 같은 것도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석 달 남짓 배웠는데, 많이 발전하긴 한 것 같아 스스로 대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첫발의 발톱 끝만 살짝 들여놓은 형편이기에, 욕심은 많지만 차근차근 하려는 마음을 다잡아 먹고 있습니다.


목공예의 목조각도 하지만 전통가구도 제작을 합니다.

이제까지 만들어 본 것은 뒤주, 콘솔 정도 입니다.


이제 겨울이 되면 자유 개인작품을 만들게 되는데, 그때에 제작할 가구와 조각품 등의 디자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내년쯤이면, 동락재에 목공예작업실이 차려질 테고, 그 후엔 작품들을 제작하여 공개할 수가 있겠지요.


어느덧 밤이 어둠을 내렸군요.

<밤의 이야기-11장>을 옮기며 오늘을 작별 합니다.

날마다 더 좋은 날 되소서. 님들이시여.


생명은 내 것이 아니며

빌어서 

살아 있는 것뿐인데

너무도 허망한 너와 나의 세상


해 지면 피곤히

밤은 가슴에

하루의 잠자릴 찾아든다


아 무거운 시간의 발걸음이여

역사는 머물고

몸만이 간다

행복하다는 건 얼마나 쓸쓸한 것이랴


온 생명은 모체의 고통으로부터

시작이 되어

스스로의 고통으로

종말을 짓는

고요한 작별


네 것 내 것도 아닌 것을

빌어서 

잠시 그저 서로 살아 있는 것뿐인데

이곳은 너무도 쓸쓸한 장소


이웃이 서로 문을 닫고

밤을 경계하는

너와 나의 장소


해 지면 생명의 변두리

밤은 피곤히 가슴에

하루의 잠을 청해서 찾아든다  

 

 

<댓글>

 

하늘지기: 세상과 삶  요즘 어르신들 (80_90세 이상)들에게 봉사를 가면서 삶의 모습은 자연과 같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나를 위한 삶이 곧 모두를 위한 삶이란걸 알게 되었습니다 참 멋진 삶(그건 바로 자신이 살고 싶은)을 살고 계시네요 계속되시길....... 2003/06/18

 

barnava: 동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요즈음 들어 저도 사람과의 접촉이 줄다보니 말도 주네요. 그러다 얘기를 하려하니 말에 힘이 들고..저도 며칠전에 가설재로 일단은 작업실을 만들기는 했는데...홍천이시면 moon님댁과 저희 가평 설악과도 멀지는 않을 듯 하네요. 조만간 moon님이 근처분들의 모임을 준비하신다는데... 2003/06/19

 

서해승: 나이 먹음을 오히려 세상에 불 밝힐 수 있는 자랑으로 아시고 지역사회에 봉사하고자 함과 목표를 세워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그 의지와 실행력을 보니 진정 존경감이 앞섭니다. 목공예디자인 초기라 할찌라도 울회원님 방문 좀 받아 주시기를..... 2003/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