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아이가 외고 2학년때 그린 그림인데, 제 아비의 어떤 한 가지를 물러 받은것 같기도 하다.
실은 이 녀석이 국민학교 때에는 피아노를 잘 쳐서 신문사 주최 음악콩클대회에도
나갈정도로 피아노는 수준급이었는데, 어렸을 때에 너무 진을 빼서인지 요즈음은
아빠가 피아노 연주를 해 달라고 졸라도 해주질 않는다. 그 아까운 재주를 싹이다니.....
<동락재 통신-22> 2003. 6. 21
어제는 학교에서 주로 불교와 관련한 목공예작품 전시를 하는, 여주의 "목아박물관"이란 곳에 견학을 갔었습니다.
이곳은 몇 번 가본 곳이긴 한데, 목공예를 배우는 학생의 입장으로 가기는 처음입니다.
박물관하면 그래도 풍부한 전시자료가 있어야 하는 곳이지만, 이곳은 일개인이 만든 사설박물관으로서, 박물관이라기보다는 불상작업을 주로 하던 목공예가가 자기작품과 본인을 과시하는 홍보전시실이라는 것이 옳은 표현이라 생각을 합니다.
예전보다 전시물의 수량이나 질이 향상된 것은 아니고, 전시장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사사로운 PR이나 상업적 목적이 너무 우선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어쨌건, 학교의 일정에 따라 가보았지만, 그래도 하릴없이 시간을 버리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박물관 견학이 끝나고 여주의 강변공원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을 빙 둘러 앉아 맛있게들 먹고, 강변의 둑에 앉아 강바람을 쐬는 시간도 참 오랜만에 가져보는 여유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하루의 일정이 끝나고 학생들은 서울로 돌아가고, 저는 주말이면 돌아가는 나의 보금자리를 향해, 우선 아내의 일터 춘천으로 핸들을 잡았습니다.
이번 주에도 딸은 무슨 자격시험 준비를 한다고 학교를 휴학하고 학원을 알아보기위해 서울에 있어야 한다기에, 함께 가지 못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1주일만에 아내와 아들을 보는 즐거움도 하나의 규칙적인 기쁨이 되었습니다.
춘천에 도착한 후, 아내와 일터의 근무를 마감하고, 홍천으로 향하는 길에 오늘 저녁에 맛 볼 "닭갈비"의 재료를 준비하고 동락재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다 된 시간이었습니다.
아들과 나머지 네녀석의 개(Dog)구(狗)장이의 반가움에 밤하늘이 찢어대도록 짖어댐을 달래면서 짐을 집안에 들여놓고, 아내는 저녁준비를 하고, 저는 마당에서 앞,뒤에 일궈놓은 푸성귀 밭에 물을 주었습니다.
요즈음 며칠 사이, 별다른 일들 때문에, 바빠서 밭에 물을 주지 못했다 하기에 제가 밤이지만 물을 주었습니다.
물을 주기도 번거롭고 힘든 노릇이어서, 한 2주전에 고무 호스 50미터짜리 2개를 사서 한개는 뒤꼍에, 한개는 앞마당에 놓고 물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귀찮아서, 스프링클러를 이용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커다란 밭도 아니고, 조그마한 텃밭이지만, 푸성귀를 심어놓은 밭과 꽃과 나무를 심어 놓은 곳에 골고루 물을 주려면 그것도 시간이 한 30여분은 조이 걸립니다.
금요일에 가면 밤에도 할일이 많습니다.
밭도 보아주어야 하고, 그동안 밀렸던 쓰레기도, 뽑아낸 잡초의 몸체더미(?)도, 청소하다 모아놓은 여러가지 나무 부스러기 등도 태워주는 일을 하여야 하니까요.
또 개똥도 땅을 파서 묻어주고. 마당 주변도 살펴보고, 작업실도 한 번 돌아보고...........
그래서 시골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모든 형태가 총체적으로 집약된 노동의 연속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자연 운동량도 많아지고, 정신과 건강관리에 부정적인 측면 보다는 이로운 측면이 더 많다는 것이지요.
대충 마당 하늘 위에 펼쳐진, 별을 보며 서둘러 했던 밤일을 마치고 집안으로 들어와, 아내의 솜씨있는 닭갈비에 곁들여, 아내는 포도주, 나는 매실주, 아들은 맥주.... 이렇게 각각의 잔을 들고 "건강을 위하여!"를 외쳤습니다.
밖에서 난리가 난 듯 소란한 개구리의 울음소리와 가끔은 고요한 산촌의 적막감에 쩔어 돌아버린? 난데없는 한 밤중의 수탉의 "꼬끼오~" 소리를 들으며 시원하고 청량한 바깥공기 속에서 먹고 싶었지만, 오늘은 좀 바깥으로 가져가기가 귀찮으니, 집안에서 먹자고 하기에 그럽시다 했지만......
그런데, 밤늦게 전화가 와서 딸인가? 하였더니, 이번 일요일에 이사를 들고 나기로 한, 서울의 세를 준 아파트의 이주자와 입주자가 토요일날 이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니, 동락재에서 하루 밤 밖에 머물지 못하고, 토요일날 아침에 아내를 춘천에 태워다 주고 세를 들사람, 나갈 사람들의 인계인수를 위해 서울로 올라가야 할 형편이 되었습니다.
미리미리 연락을 주었으면 토요일 일을 마치고 홍천으로 왔으면 좋았을 텐데....... 어쩝니까? 요즈음 젊은세대들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보다 이기적인 마음만 넘쳐나서, 나이먹은 사람이 모든 것을 양보하고 덮어두어야 좋다고 하니......
지금은 서울입니다. 오후 1시가 못된 시간에 부동산에 도착하여, 잔금을 받고 주고, 조금전에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서울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아들과 동락재 앞의 저수지에서 낚싯대 드리우고, 낚시파라솔 아래에서 시원한 캔맥주 한 잔씩 하면서, 오랜만에 부자지간의 정이 깃든 이야기도 많이 하였을 텐데.
조금 전에 아들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친구들이 홍천으로 놀러와서 친구들과 낚시를 하겠다고....,
어제 기말고사가 끝나서 방학이 시작 되었다더군요. 모두 다, 군복무를 끝내고 복학한 늙은? 졸업반 학생들이지요.
낚시도구와 간편한 소도구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으려고 말입니다.
하긴 바로 저수지가 옆에 있어도 제대로 낚시 한번 해보지를 못했었지요. 그래서, 낚시도구가 어디에 박혀 있는지 잘 알 수가 없어서, 창고에서 잘 찾아서 쓰라고 했습니다.
낚시경력이 30여년 이상되니 그동안 대나무 낚싯대에서 그라스롯드(Glass Rod) 낚싯대, 카본 낚싯대, 케브라 낚싯대 등 많은 낚싯대를 사고 쓰고 버리고 했지만, 아직도 낚싯대는 20여대는 되니, 날씨와 저수지 상황에 따라 골라서 쓰는 재미도 있었지요. 그밖에 다양한 미끼를 가지고, 붕어들과 한 판 승부를 겨루는 일도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단, 살생을 한다는 그 관념이 마음을 편케 해주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친구들이 와서 같이 낚시를 한다하나, 저희들이 경험이 있는 낚싯군도 아니고, 낚시도구나 잘 다루기나 할런지, 낚싯대 부러트리지는 않는지 걱정도 됩니다. 그래도 고급 카본 낚싯대인데......., 함부로 휘두르다 나무에 걸린다던지, 저수지 밑바닥에 바늘이 걸려, 초보자들이 억지로 낚싯대를 꺼내 올리려다 부러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래도 그렇게 몇 번씩을 경험해야 낚시를 배우는 것이기도 하지요.
모처럼, 아들 녀석도 몇 년 만에 이 아비와는 아니지만, 친구들과 낚시를 하게 되어서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보상이 되는 것 같군요.
매일 제 어머니 출퇴근 운전 때문에 제 마음대로 쉬는 시간,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도 갖지 못하다가 모처럼 이틀간을 친구들과 낚시도 하고, 마당에서 숯불 돼지고기도 구워 먹으며, 여유로운 술 마시는 시간의 즐거움과 친구들과 호방한 웃음으로 밤하늘의 별과 함께 같이하는 산촌의 밤을 모처럼 만끽할 수 있겠지요.
개구리 울음을 박자 삼아 콧노래 흥얼거리며, 젊은이들의 나름대로 유익한 시간을 갖겠지요.
저희들끼리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라고, 오늘은 아내가 춘천에서 오늘의 일을 마감하면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오기로 했습니다.
모처럼 쉬는 일요일, 내일은 집사람과 정말로 오랜만에, 한 5년 만에 인사동을 가볼까 합니다.
매주 아니면 한 달에 두, 세 번은 꼭 인사동과 그림 전시회장에 들려서 새로운 그림 전시회를 보았었는데, 산다는 것이 무엔지 발목을 잡혀 움쩍달싹을 못하고 있는 형편무인지경에 있습니다만.
머지않은 시일에 제가 제작한 목공예 작품, 회화와 목공예의 어울어진 조화로움, 그리고 일부 재간과 예술성있는 학교의 젊은 친구들의 작품을 전시겸 판매할 수 있는 장소의 예비조사겸, 나의 허락 없이 인사동이 얼마나 변하였는지? 구경도 할 겸, 겸사 겸사 집사람과 인사동에서 데이트를 할까 합니다.
오랜만에 서울에서 집사람과 딸과 맛있는 것도 먹고, 생활의 분주함에 찌들은 삶을 단 하루만이라도 잊어볼까 합니다.
휴식의 기쁨은 고단하게 일을 해 본 사람만이 진정 느낄 수 있듯이 말입니다.
동락재 앞, 뒤 마당의 붉은 상추 잎파리가 많이 자랐습니다.
물론 요즈음도 상추와 쑥갓을 뜯어서 먹고 있지만, 올해는 늦게 심어서 인지, 가지와 호박, 고추의 생장이 더뎌지는 것 같습니다.
중부지방 이북에 많이 피는 노란 야생화 꽃잎이 코스모스를 닮았는데, 이름을 모르겠지만, 그 꽃을 앞마당에 많이 심었는데, 지금쯤이 제일 환하게 피어서 보기가 좋습니다.
이제 조금 더 있어야 채송화, 봉숭아, 꽃, 해바라기 들이 그 뒤를 쫓아 피어나겠지요.
동락재의 솟대
어쨌던 여름은 풍요로운 계절이라 마음도 풍족해 집니다.
낮에는 파라솔을 몇 개 마당에 펼쳐 놓으면 그늘도 생기고, 운치도 있어 좋고, 밤에는 마당 왼 켠에 몇 그루의 심은 나무들이 제법 커져서 3-5미터 크기로 자라 낮에는 그늘도 만들어 주고, 밤에는 그 앞에 걸어둔 조명등 들이 시골 밤의 정취를 더해 줍니다.
솟쩍새, 부엉이, 이름도 모르는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 그리고 개구리 소리, 나방이 푸들 거리는 소리..... 이런 모든 소리들이 함께 펼쳐내는 심포니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자연의 생생한, 우리의 살아가는 소리로 펼쳐지면서, 그 안에서 가족들과 또는 친구들과 정이 듬뿍 든 술 한 잔씩을 나누는 즐거움은 산간의 한 구석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生(live) 즐거움입니다.
이제는 서울에서는 살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정리되고 다듬어 지면, 아주 홍천의 동락재에서 올라오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저 어쩌다가 꼭 일이 있으면 그때만 올라오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 숨 막히는 공기, 번잡함, 분주함, 생존하기 위한 경쟁과 스트레스(이보다는 스트로크(Stroke: 의학용어입니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만)........ 인간들의 이전투구와 철저한 利己..... 더 이상 그 속에 쩔어 살고 싶지가 않습니다.
물론 그래서 홍천 동락재를 택했지만, 속세? 의 인연이 아직 다 끊기지 않고, 질긴 인연의 끈이 고래 심줄처럼 버티고 있으니, 때를 기다리며 서서히 완전한 자유를 위해 준비를 해 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러한 바람직하지 않은 삶은 피하고 살만한 나이가 아닌가?, 진정 나에게 남아 있는 시간, 아니 나와 같이 해야 할 사랑하는 사람과 그 시간들을 위해 나만의 우리만의 모든 가진 것을 바쳐, 화려하지 않은 잔잔하고 가득찬 悅樂의 마음을 열어가야 하는 것이라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그 실현을 위해 나머지의 내 생의 의무를 다 해야하지 않나? 하고 한 발짝 한 발짝 나가봅니다.
이야기를 바꾸어 우리 카페 님들의 소망은 내가 가장 편안하고 경치좋은 背山臨水의 자리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과 영원토록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어떻게 쓰고 보니까, 유행가의 가사와 똑같네)
얼마 전 타계하신 시인 조병화님의 안성에 지어 놓은, 님의 돌아가신 어머님을 기념하기 위하여 또한 작업실 겸 편안한 휴식처 片雲齋라는 집을 지으며 지은 시를 소개합니다.
<片雲齋記>
보이는 곳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사람의 목소리 들리는 곳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작별이 바쁜 이 무상 부근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하늘 한 자리 한 생각 묻어
있을 수 있는 동안, 그냥
떠 있으려 했어요
시간에
앉아
보이는 곳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햇어요
눈이 오가는 곳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사람의 목소리 들리는 곳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그가 편운재라 이름지은 내력을 잠깐 소개드립니다.
<片雲齋라고 이름을 지었지요. 작년 여름방학에 집을 짓는데 내려가 일을 하다가 하늘을 보니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한 점 떠 있더군요. 순간 아! 저것이구나, 인생은 저 뜬 조각구름처럼 한동안 이 세상에 떠 있다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거지, 하는 생각에서 이런 이름이 떠올랐지요. 편운재! 나의 어머님의 집, 그리고 내가 쓸쓸할 때 내려가서 파묻히는 곳..............>
그런데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시골로 전원으로 내려가서 집을 지을 땐 절대 사람기 없는 곳은 피하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소리, 사람의 온기, 사람의 눈이 없는 곳은 내 자신도 없는 곳이 될 수 있기에, 수도승을 자처하거나 지향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왠만하면 들렸다 가세......, 그리고 나와 함께 대포 한 잔 나누세......, 그리고 하루만이라도 머물렀다 가세........."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곳이어야 쓸쓸하지 않은 인생의 마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모처럼 서울에서 맞는 주말, 그간의 피로가 누적되어서 인지 스르르 눈이 감기는 군요.
오늘의 인사를 조병화님의 제24시집 "딸의 파이프"라는 시집의 시로 마감을 하렵니다.
내일도 좋은 휴일들 되소서.
<이렇게 생각을 하면>
이렇게 생각하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면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잇는 그것을
비밀로 알아 오며 나는 가쁘다
나를 서툴게 만들고
세월을 서툴게 만들고
인생을 서툴게 만든 건
실로 그것
그것이 모든 걸 어설프게 만든 거다
때문에 나는 살아서 산 거 같지도 않고
이 세상에 있으면서 있는 거 같지도 않고
너와 너희와 같이 동거하면서도
동거하고 있는 거 같지도 않고
기쁨도 즐거움도
한 번 없이
그저 그저 살아 왔을 뿐
나는 내 곳이 없었다
잘 생각했는 건지
잘못 생각했는 건지
그런대로 살아온 지금
너의 파이플 물고, 멍 내다보는 먼 하늘
아, 이 오해
<댓글>
서해승: 내일 인사동에서의 데이트를 위해 오늘 밤 편히 쉬셔요 2003/06/21
화니: 드디어 실시간의 동락재통신 잘읽고 있습니다 건강하십시요 2003/06/22
초롱영롱: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고향의 냄새가 나는것 같아요. 제 고향은 춘천이랍니다. ^^ 2003/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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