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동락재 통신-20: 귀촌 주택, 새로 지을까?

sosoart 2007. 3. 26. 06:14
 


                                                   

                                                                                            수타사 대웅전의 단청

 

                                                   

                                                                                              수타사 입구의 오솔길

 

 

 

<동락재 통신-20>   2003. 6. 16


오늘은 유월의 절반이 시작되는 첫 월요일입니다.


서울의 학교로 등교하기 위해 아침 5시30분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6시경에 홍천의 동락재를 출발하였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학교수업을 마치고 춘천의 집사람 일터(?)에 도착을 하면 6시30분쯤 됩니다.

요즈음은 주5일제 근무를 하는 곳이 많아서인지 금요일 오후시간만 되면 서울을 빠져나가는 차들이 아주 많습니다.


3년 전 쯤만 하여도 저도 그 차량의 행렬에 끼어, 강원도의 어느 곳을 향하여 가족들과 드라이브삼아 여행을 즐겼을 법하지만, 이제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언제 직장을 다녔던가 싶게 남의 일처럼 느껴지기만 하는군요. 이런데서 퇴직자들은 어느 큰 무리에서 탈리되어 외톨이가 된 느낌, 상실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한답니다.


사람이 일자리가 있다는 것,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다시금 뼛속 깊이 느끼는 시간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춘천에서 만 5일 만에 만나는 아내와 그동안의 서로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주고받으며,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춘천의 매장 문을 닫고 홍천 동락재로 향하는 50분정도의 시간, 도중에 춘천의 대형마트에 들려서 1주일분의 양식을 준비하고 동락재에 도착하면 그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우리 집의 바깥식구 네 녀석들이 마당으로 들어서는 차의 불빛만을 보고도 반갑다고 짖어대며, 산촌의 밤 마당에 깔린 정적을 깨며 잠시 거두어 버립니다.


네 녀석들(복돌이, 길동이, 복순이, 해피- 2남2녀)과 간단한 5일만의 해후를 그 녀석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 만남의 세리모니를 한다고나 할까요?

금요일엔 모처럼, 아들 녀석이 주중 내내 제 어머니 출근을 시켜 드리고 일찍 동락재로 돌아와 휴식을 시작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금요일 퇴근부터 일요일까지는 제 어머니 출퇴근의 임무를 이 아비와 바톤 텃치를 하는 거지요.


남들처럼 젊은 나이에 친구들과 만나서 술 한 잔...., 젊음의 낭만...을 즐기지도 못하고, 어머니의 출퇴근에 발이 묶여 꼼짝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비로서 미안하기도 하고 안됐기도 합니다.

모처럼 2-3일 연휴를 주말에 가지게 되어, 서울에 올라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여기저기 도시의 사람들과 時空의 격리됨을 메우기라도 하라고 하면, 이 아들놈도 벌써 전원의 사람이 되었는지, 복잡한 서울을 싫어하는 눈치입니다.


가끔 마당에 나와서 나비도 잡고(이 녀석은 취미로 나비를 채집하여 표본을 만들고 있는데, 보기에도 괜찮더군요) 개들 밥도 주고, 배설물도 치우면서, 제 공부도 하고 책도 보며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엔 일찍 매장의 문을 닫고, 홍천강을 마주하고 이쪽은 춘천시ㅡ 저편은 홍천인 춘천의 남면인 강촌과 광판리를 거쳐 경치가 빼어난 가정리, 관천리 등에 전에 봐 두었던 집을 가보았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또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세태의 흐름을 짐작하기 위해서랄까요?


일반적으로 경치와 경관이 빼어난 곳은 교통편과 일상생활이 불편한 것이 통례이지만, 우리네 서울이나 도시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땅값이 너무 비싸다는 단점이 있게 마련이지요.


제가 작년에 봐두었던 홍천강(모곡지구 건너편)-이곳은 서울의 기업체 휴양시설과 수상 레저시설과 그들을 상대로 민박을 치루는 곳이 많아서 인지, 땅값이 사,오 십 만원은 예사이고, 경치와 상업성을 겸한 곳은 백 만 원 이상을 呼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냉정하게 생각해 본다면, 일 년에 몇 번 가는 별장으로 사용하기에는 값이 너무도 비싸고, 비 사용시에 유지, 관리하기가 어렵고 돈이 너무 많이 들며, 전원주택으로 삼아 붙박이로 살기에는 너무나 외롭고 불편하고 텃세가 심하다는 점을 비추어 보면, 거품이 크다고 할 수 있겠지요.


어쨌던, 제가 전에 마음에 두고 있던 집은 대지가 200평에 조립식 주택 15평인데 급매이기 때문에 9 천만 원에서 한 푼도 에누리가 없다고 홋가를 했었습니다.

바로 앞에 강물이 조그만 灣처럼 한 2천 평정도 들어와 있고 수초가 잘 깔려 있어, 개인 낚시터로 삼기에는 너무나 좋은 곳이었지요.


일요일은 비가 오락가락 하였었는데, 그 집을 찾다가 좁은 시골의 농로를 잘못 들어 서너 차례 헤매다가 찾기는 찾았습니다만,  요즈음 누군가가 그 집을 사들여 수리를 하고 있더군요.


부동산에서는 그 집이 상업적 목적, 즉 매점이나 민박용으로 활용하기가 그만이라 하지만, 강원도의 이 곳 저 곳을 한 10여년 돌아다녀 봤었고, 땅과 집을 처음 볼 때 느낀 인상으로, 그저 감성적으로만 보아왔다가, 몇 차례 사고팔고 일을 저질렀던(?) 경험으로 보아, 정상적인 투자 면이나 휴양시설로 이용한다는 면에서도, 웬만한 땅과 집은 섣불리 구입을 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흔히 나이가 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하면서, 노부부가 먹고 살만한 수익성이 있는 전원주택을 선호하는데, 그 선택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지요.

낭만만이 노후생활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절대 아니니까요.


노후에 전원생활을 계획하시는 분은 절대 심사숙고해서 결정할 일입니다.

시골로 들어가 실패와 성공을 한 선배(?)들의 경험담을 토대로, 자기의 환경과 입장에 대입하여 타산지석을 삼아야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말씀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요즈음은 펜션주택의 구입이 유행이지만, 그 투자와 수익성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더구나 아무 연고도 없는 시골에서 생활을 한다는 것이 각오만 가지고 된다고 생각하면 노후에 돌이키기 쉽지 않은 실패가 기다린다는 것을 예상하고, 치밀하게 계획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무료한 시간을 어떻게 값있고 의미 있게 보낼 것인가에 만반의 준비를 하여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는 필수조건이지요.

물론 가진 게 돈만 있는 사람은 그래도 덜 하겠지만 말입니다.


전원생활을 계획하시는 분들과 이런 저런 많은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를 도와 가며 조언을 하는 것도 아주 좋은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우리 카페도 그러한 큰 목적이 우선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만.


어쨌던, 그곳을 가보고 다시 느낀 것은, 그 집을 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싶더군요.

경치가 밥 먹여 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우선 시골의 전원주택이라 할지라도 누구든지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접근성이 최우선이라 생각을 합니다.


나의 벗, 친지, 자식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고, 여차한 일이 발생했을 경우 쉽사리 이동할 수 있는 그렇게 멀지 않은 도시근처라야 좋을 듯싶습니다.


저도 4 년전 처음에는 전원주택은 땅도 넓고 경치가 좋아야 한다고 3,500평이나 되는 땅을 그것도 잘 포장된 지방도에서 거리는 2키로 정도 밖에 안 되지만, 도로가 좁고, 인적이 아주 적은 그런 곳이었는데, 도로에서 자동차로 10여분이상 걸리는 그런 땅을 구입하여 종국에는 모든 여건이 열악하여 매입한 값에 터무니도 없이 못 미치게 처분할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지방도에 붙어있는, 땅도 넓지도 않은 이곳(이 곳을 찾기 위해 2년여를 돌아다녔지만 말입니다) 동락재에 정착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지만 있고 밭이나 임야가 없어 답답하기는 하지만, 이는 차차 살면서, 가능하다면 집 옆에 붙어 있는 땅이나 근처의 땅을 구입하면 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긴 앞, 뒷산과 앞의 저수지가 다 내 정원이라 생각하고 사니까요.


살면서, 즉 그곳을 경험하면서 그곳의 생리와 여건을 알고 적응하면서 차차 내 터전을 넓혀 간다면 시간은 걸리지만, 그것이 正道가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이야기가 딴 곳으로 한 참이나 지나쳤군요.


오래간만에 집사람과 드라이브삼아 콧바람을 쐬고 동락재에 돌아오니 6시경이 되어서, 마침 보슬보슬 비도 오기에 상추와 쑥갓, 그리고 고추밭을 솎아 주고, 지나 번에 모종했던 꽃나무, 그리고 저절로 씨가 날려 자생한 아기 꽃나무들을 마당 여기저기에 다시 옮겨 심고 저녁나절을 보냈습니다.


집사람도 이러한 시골생활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저희는 이런 생활을 미리 예습을 많이 했었습니다.

생계만 아니면, 모든 것 다 뿌리치고, 그저 이 동락재에서 아침, 저녁 나절엔 야채와 꽃나무 가꾸며, 낮에는 집사람과 동양화, 서양화 습작을 하며, 목공예 작업도 하며, 아주 자그마한 까페를 꾸며, 찾아오는 도시의 길손들과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 나누며 살자고 왔는데, 몇 번의 실패 때문에 할 수 없이 집사람이 생계의 목적으로 00체인점을 운영하며, 저는 생전 장사라면 아무런 경험도 없는 집사람을 생활전선에 내보내고, 목공예를 배운답시고 서울의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뻔뻔스럽게도........


학교를 마치면 자그마한 작업실을 꾸며, 테마가 있는 카페를 시작할까 계획 중에 있습니다.


동락재는 먹고사는 생활의 방편의 목적도 있지만, 산촌 시골에서 사람냄새 맡으며,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생활의 공간을 갖기 위해 선택한 노후의 공간이지요.


아이들 출가시키면, 어차피 두 부부만이 남아 있을 텐데, 아이들에게 손 내밀지 않고 자립하는, 추하지 않게 살아가는 그런 부모가, 그런 늙은이가 되기 위해 여러 가지로 궁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네 서민들 늙어가는 인생의 사는 모습이겠지요.


동락재 앞에는 저수지가 있고 주변 풍광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안온한 분위기에 이곳에 와 보았던 친구나 친지들이 모두 좋아합니다.

모르지요. 동락재 마당에서 숯불 피워놓고, 돼지고기 구워먹는 그 맛이, 밤하늘에서 우수수 쏟아지는 별들을 주어 담는 청아한 마음이 좋아서인지....


동락재의 밤은 앞산과 뒷산에서 피울음 우는 피죽새의 애절한 노래로 깊어 갑니다.


안개 짙은 날이나 어제처럼 이슬비 나리는 날이면 列兵한 앞산 자락의 골짜기 사이사이가 동양화보다 더 신비로운 雲霧로 싸여 아름다운 산수화를 그려 냅니다.


산 중턱에 걸처져 멈추듯 흘러가는 구름은 하염없는 그리움을 솟게 합니다.


전원생활이 쉽지는 않지만, 인간은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연으로................. 


오늘부터는 지난 이야기들이 아닌 그때그때 갓 찌어낸 찐빵처럼 뜨끈뜨끈한 현재의 이야기로 전해드립니다.


그간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쳐서, 산촌별곡을 엮어가지 못했습니다만, 이 카페에서 유익하게 얻는 정보도 많고, 카페의 가족들과 그야말로 진정한 가족이 되고저, 저의 산촌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도 전해 드리고 또 다른 가족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틈틈이 소식을 올리려 합니다.


졸렬한 표현 나무라지 마시고, 그저 한 촌부의 살아가는 이야기려니 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으면 합니다.


 

 

 

동락재의 동산 드림

 

 

<댓글>

 

배비장: 드디어 생방송이 시작 되었군요.그래서 그런지 동산님 글읽으면서 전보다 더 집중이 되네요. 2003/06/16

 

 

뜨락: e동락재통신 아주 좋습니다. 강건 하시길... 2003/06/17

 

 

장미: 갓 찌어낸 찐빵처럼 뜨끈뜨끈한 이야기를 계속 기다립니다 2003/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