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 (unkle kim)의 캐릭터
아내의 화실 이름 또한 "동락재"이다. 몸소 서각하여 아내에게 헌정하다.
<동락재 통신-18> 2003. 4. 28
올 봄에는 비가 자주 오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새벽에 일어나서 오전 6시 10분전쯤 홍천의 동락재를 떠나 학교로 향했습니다.
새벽시간엔 차가 별로 많지 않으니, 속력을 내고 싶은 강한 유혹을 떨쳐 버리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계속 80Km로 달리면 졸립기도 하기에 가끔은 100Km로 달리기도 하면서 서울의 팔당대교쯤에 오면 1시간 10분여가 걸립니다.
지난달에는 금요일 밤에 서울을 떠나 홍천과 춘천에서 집사람과 같이 시간을 보내다가 일요일 오전에 서울로 오곤 했었는데, 요즈음은 불경기가 되어 집사람이 매장에도 손님이 많지 않아 조금은 신경이 곤두서 있고, 장사라곤 전혀 몰랐던 사람을 장사를 하게끔 만든 죄 때문에, 가급적 집사람과 같이 있는 시간을 많이 갖기 위해서 일요일까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에 서울을 향하곤 합니다.
집에 갔다 오는 날이면 조금은 피곤하기도 합니다.
요즈음은 솔직히 조기 자진명퇴를 한 것이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세상살이가 그리 간단치만은 않은데, 그 편하고(장사에 비하면 신선놀음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좋은 직장을 버리고, 겁 없이 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며, 세상물정 모르고 함부로 덤벼, 겨우 이제 서야 많은 것을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 후회가 됩니다만, 어쩌겠습니까?
다시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한다 생각하며, 마음을 추스리고 있습니다.
되도록이면 만났다 가세
네가 너를 세우기 위하여
간교롭게도 저질러 놓은 것들이
얼마나 남의 생애를 갉아먹었던가를
알기 위하여
내일 어느 자리
내가 원하는 데서
잠시 만났다 가세
너의 지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철면피한
시골 자객의 녹슬은 송곳이라는 것을
알기 위하여서도
부디 오래 살아 주게
그리고 네가 정말로 인간이라면
더구나 붓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면
시간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 날이 있을 걸세
지금은 무식하니까, 그리고
기운이 세니까
모든 것 맛 모른 채 잘 먹고, 더럽게도
아무데나 잘도 배설하지만
참 용감도 하네
그러나 조심하게
남의 새로운 옷에
똥이나 오줌을 마구 싸고 흘려서야
되겠는가
아무리 예의가 없다손 치더라도
되도록이면 만났다 가세
용서를 하기 위하여선
내겐 긴 세월이 필요하네
<내일 어느 자리에서> (어느 평론가에게)
무에 이런 시가 있는가? 도 생각을 하셨겠지요?
김00 시인에게 보내는 조병화님의 격렬한 비난의 시였습니다. 이 두 시인은 숙명적인 적대감이 있습니다.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조병화 시인은 그 미워하는 마음을 다 태우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비록 상대와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제가 명퇴 후 몇 년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일(소위 천한 말로 사업)을 벌리기 위해 상대를 하여야 했던 인간들에게 주고 싶은 말을 찾다보니, 조병화님이 쓴 이 시가 생각이 나서 적어 보았습니다.
희망에 차서 명퇴를 하고, 그리고 일을 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그리곤 야바위꾼에게 당하듯 결과적으로 처참히 인간들에게 배신을 경험하면서 황폐해진 내 마음의 표현이라고나 할까요?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되는데, 모두가 내 탓인데도 남을 탓하는 이 못난 마음은 아직도 인생의 수양이 저 멀리에만 있고 내가 가까이 하기엔 아직도 나는 까마득한 소인배라는 얘기가 되겠지요.
조병화님이 안성의 난실리에 편운재란 집을 짓고, 詩作을 하며 사람기 없는 곳을 찾았듯이, 저 또한 짧은 시간에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으며 발견했던 곳이 저의 동락재였습니다.
조병화님의 편운재기(片雲齋記)라는 시가 저의 마음을 대변해 주기도 합니다.
보이는 곳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눈이 오가는 곳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사람의 목소리 들리는 곳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작별이 바쁜 이 무상 부근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이 세상에선 평생토록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하늘 이 자리, 한 생각 묻어
있을 수 있는 동안, 그냥
떠 있으려 했어요
차례가 있는 자리, 차례 속에
누구의 것도 아닌 이 차례, 가벼이
떠나려 했어요
번창의 페허
이 이웃 부근, 버려진
영혼의 의자
시간에
앉아
보이는 곳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눈이 오가는 곳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사람의 목소리 들리는 곳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내일은 또 비가 온다고 하는군요.
오늘 또 다시 내가 지금을 산다는 것이, 어디매쯤 내가 와 있나를 생각해 보니, 술이 마시고 싶어집니다.
어제는 동락재의 깊은 밤, 앞마당에서 점점 밝아 오는 별빛을 나의 눈에 담으며, 고요와 어둠과 함께 그리고 모닥불을 피우며 집사람과 마시는 커피 맛과, 이렇게 주말에나 가족과 만나며 산다는 것이 어떠한 것 인가?를 되새김질을 해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슬슬 밤이 펼쳐지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 술 벗 하나 불러내어 한 잔 하려 합니다.
술이 마시고 싶을 때, 술 벗 하나 쯤 있다는 것도 자그마한 행복이겠지요?
그리고 술 마시고 싶을 때, 불러내면 언제고 마다하지 않고 나와 시간을 같이 해주는, 생활의 푸념을 같이 안주해 주는 그런 술친구가 몇이 있다는 것이 고마운 행복으로 여겨집니다.
오랜만에 흔적을 남기고 돌아갑니다.
희망의 5월엔, 싱그러운 신록의 5월엔 아주 희망적인 일들만이 우리 모두를 맞이해 주기를 바래봅니다.
건강한 하루를 마감하십시오.
동락재의 동산 드림
<댓글>
다정이아빠: 선배님! 소식 놓치지 않고 접하고 있습니더........얼마나 큰 행복이 있겠습니꺼....내 주위에 작은 행복이 고마울 따름이지예~ 2003/04/28
장미: 동락재님 사시는 모습을 늘 접하고 있습니다. 저의 남편도 56인데 엊그제 그런말 하드군요 '45정'에 이어 '56도'란 말이 있다고...... 56세까지 회사에 있으면 도둑이래나요. 점점 설자리가 없어지는 모양인가 봐요. 하여튼 "화이팅" 2003/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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