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동락재 통신-16: 서석 장터의 할매집 순대국

sosoart 2007. 3. 26. 06:04

동해의 시원한 바닷물이 그리운 날입니다.

 

 

풍력발전을 하기 위한 바람개비

 

 

동락재의 자작나무 울타리에 곱게 핀 넝쿨장미

 

 

동락재 옆뜰 층층나무에 꽃이 피었습니다.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히면 파랗고, 노랗고, 빨간 색의 온갖 예쁜 새들이

 열매를 쪼아 먹기 위해 날아 온답니다.

 

 

<동락재통신-16>     2003. 4. 8


 오늘 아침에는 일기예보처럼 비가 계속 오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쳤더군요.


일요일에 심은 나무들이 아주 좋아할 것 같아서, 이 마음도 한결 가벼워 졌습니다.


유실수는 집 마당에 처음 심어 보는데, 동락재는 겨울엔 워낙 추운 곳이 되어 잘 자라줄지 걱정이 많습니다.


오늘은 작년에 받아 두었던 꽃씨를 뿌리고, 집사람이 출근을 한다고 했습니다.


실은 제가 젊은 시절 어여쁜 팬(?)이 數도 없이 많았었는데(절대 거짓말이 아님?????), 그 중 한 사람이 채송화 꽃을 아주 좋아했었지요. 물론 저도 그녀의 체구처럼 아주 자그만 하면서도, 올망졸망 예쁘게 분홍색, 빨강색, 노랑색, 흰색 등으로 피어나는 그 모습을 좋아했었는데.....

 

꽃씨 하니까 채송화를 심으려고 했었는데, 꽃씨를  팔지도 않고 구하지 못해서 심지 못했었습니다만.  문득 생각이 났었습니다.

 

 작년에 잠깐 동락재를 떠나 내면(홍천군 내면), 삼봉약수, 구룡령, 미천골 휴양림 등이 있는, 양양 쪽과 평창 방면, 그리고 인제 내린천 방면, 또 정선과 오대산 월정사, 진부 등 강릉 쪽으로 연결된 444번 도로를 따라 서석이란 곳을 가서, 마른 나물과 더덕, 도라지 등 산에서 직접 캐온 것을 사러 갔었습니다.

 

토종 나물과 약재를 사기위해 가끔은 그곳을 가곤 합니다.


그곳엔 또 순대국을 맛있게 말아서 파는 장터 뒷골목의 할머니 혼자서 하는 음식점이 있기도 해서 그곳엘 가면 꼭 들리곤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마침 순대국을 먹으러 집사람과 그 집을 들어가다가 입구 골목길에 핀 채송화와 분꽃이 아주 화사하게 꽃밭가득 피었기에, 주인의 허락도 받지도 못하고 씨를 받아 왔었지요.


이제 나무심기는 끝내고, 꽃을 심어야 하겠기에 분꽃, 금잔화, 채송화, 그리고 국산의 토종은 아니지만 노란 꽃이 예쁜 이름 모를 꽃과 코스모스와 몇 가지 야생화는 씨는 받아 놓지는 않았지만 올해에도 아마 자생하여 꽃을 피울 것으로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가 들으면, 이 동락재가 무슨 수목원처럼 나무와 꽃이 울창하고 넓은 곳으로 착각을 하시겠지만, 그렇지는 않고 시골에서 100 여 평 정도의 남은 마당에 심어 보았자,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맛도 나지 않습니다.


전에 인연이 있었던 홍천 군업리의 공작산 뒷편 계곡 따라 3,000여 평의 땅에 나무와 꽃을 재배하였다면 많은 수종과 꽃의 종자를 심어서 보고 즐길 수 있었을 테지만 ...........


어쨌던 지금은 마당이 200평도 안 되는 동락재에 꽃과 나무를 가꾸지만 마음은 넉넉함을 느낍니다.


내년엔 마당에 木彫刻, 장승, 木 조형물 등을 만들어 아름다운 정원을 꾸며볼 계획에 들떠 있습니다.


이제 저의 은밀한 계획대로 우리 동락재를 에워싸고 있는 땅을 인수, 구입할 수 있게 되면 어느 정도 조형물과 나무와 꽃, 그리고 자그마한 연못을 만들어 아름다운 전원속의 동락재를 가꾸어볼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만 계획대로 되려는지.....


오늘은 비교적 이른 시간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컴퓨터 주인인 딸이 남자친구를 만나고 늦게 들어온다고 하여 마음 놓고 마냥 컴퓨터 앞에 앉아 있습니다.


둘 다 고등학교는 外高를 나왔는데, 다니는 대학교는 다르지요.

 

딸이 관심을 가지고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이기에 궁금해서 물어 보았었지요.

부모님과 가정환경이 어떤지 물어 보았는데, 잘 모른다고 하기에 우선 파악해야 할 사항이 그것이 아니냐? 고 강요를 했었지요.


처음엔 학교 서클 모임에서 만난 포항공대 재학생인데, 저와 마찬가지로 그쪽 아버님도 연구소에 근무하는 현직 연구직이며, 가족들도 저희 가족처럼 아이들이 대학생이라 할지라도 함께 여행 다니기를 좋아하고, 가족 중심과 가족 우선의 생활을 한다하니 저의 마음을 조금은 안심을 시키더군요.


그 녀석이 이번 주에 군에 입대를 하는데, 올해 초 독일에 교환학생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아마 더 가까워진 모양인데, "남자친구는 신중하게 사귀어야  한다"고 했더니, 그냥 써클 친구일 뿐이라 하더니, 무슨 심경의 변화에서인지 3월 하순 경에 둘이 사귀기로 약속(?)을 했답니다.


요즈음의 젊은 애들의 사귐의 예절을 잘은 모르니, 무어라 속단하기는 아직은 이르지만, 아마도 사내 녀석은 군대를 가야하니 마음으로 약속이라도 하고 가야 조금은 위로가 되겠고, 딸 아이 녀석은 어쩼던 호감이 있으니 응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의 만남이 언제까지 지속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만남으로 계속되어 어여쁘고 사랑스런 젊은이들의 사랑으로 발전되면 더 바랄나위는 없겠지요.

그러나, 딸아이니까 마음의 부담이 더 되는 것은 숨길 수 없으니, 저도 자식의 문제에서는 어쩔 수 없는 구닥다리인 것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둘이 아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이제 막 정이 들기 시작하는 단계인 모양인데, 군대에 가있는 동안 헤어져 있는 시간이 마음들이 아프겠지요.

앞서 인생을 산 사람으로서 그 마음들이 안 되었고 가슴이 시리지만 또, 그런 과정도 있어야 진정한 사랑의 마음이 무언지를 깨닫게 될 터이고, 삶과 세상을 사는 지혜와 마음이 좀 더 성숙되며 삶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감성과 지성을 만들어 가겠지요.


그렇지만, 입대하는 날엔 배웅을 하지 않기로 본인 스스로 이 아빠, 엄마와 약속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젊은 남자들은 군대문제로 많은 번뇌와 고민을 하게 되지요. 인생 최대의 중요하고 황금 같은 시기에 말이지요.


우리 아들 군대에 보내는 날, 남자이지만 아비로서 그 녀석과 가족들 몰래 눈물을 감추느라 애를 먹었지요.


남몰래 흐르는 눈물....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감추기도 여간해선 참 힘이 들었지요.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부모의 심정은 겪어 보지 않고는 실감이 잘 되지 않지요. 


북쪽에 대치하고 있는 공산 빨갱이 놈들 때문에 이 나라의 젊은이들과 그 가족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데, 한총련인가 무언가 하는 빨갱이 사주 받은 어린 빨갱이 새끼들은 무언지? 한심스런 이 나라의 작태는 심히 우려가 되는 바입니다.


잠적해 있는 빨갱이와 잠재적 빨갱이들의 비율이 엄청나게 많은 이 나라에, 그 놈들도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라고 대통령이나 정치하는 자들은 그놈들의 눈치를 보고, 빨갱이를 빨갱이라 하지 못하고, 또 제 스스로가 빨갱이인 것도 감추는 워낙 많은 놈들이 있으니, 귀신은 무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려. 그런 놈들 잡아 가지 않고.....


또 얘기가 조금은 빗나갔군요.



<하루 하루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루 하루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를 떠나며 산다

너와 작별을 하며 산다

나를 버리며 산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스스로의 보이지 않는 줄에 매여

스스로의 운명을 살다가

스스로의 사그라진 운명 끝에서


그 멍에를 벗고

홀 홀

또다른 곳으로 떠나는 거지만


이 떠남

이 작별


가까운 거리에서

너와 나


하루를 너를 생각하며

열흘을 너를 생각하며

한해를 너를 생각하며

시시각각을 너를 생각하며


소리없이 소리없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를 떠나며 산다

너와 작별하며 산다

멍, 나를 버리며 산다


아, 이 적막

너는 거기에서

나는 여기에서


우리가 산다는 것은 스스로 나를 버리고 사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나를 버리며, 시간을 버리며, 소유를 버리며, 서로의 인연을 버리며, 끊임없이 나의 있음을 버리며 사는 작업의 연속이라 할 수 있겠지요.

버려도 버려도 끝이 없는 인간의 욕심은 스스로를 포기하지 못하고, 중단하지 못하곤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용천수처럼 끊임없이 솟아나는 가 봅니다.


버린다는 것과 얻는다는 것, 이것은 어쩌면 똑같은 것으로 귀결된다고 생각이 됩니다.

남에게, 내 스스로에게 적선을 하는 그 방법을, 마음을 배우고 싶습니다.


<적선을 배우면서>


거리에서, 골목에서,

지하도에서 

손을 내미는 측은한 사람 보면

올해 들어부터 부쩍 어머님 생각


한푼이고, 두푼이고, 빠짐없이

동전을 집어 주고 지나시던 어머님 모습

불쌍도 하지,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적선을 하시던 먼 어머님 생각


나도 그렇게

적선을 배운다


광화문 지하도 젖물리고 앉아 있는 여인

종로 지하철 입구

아이 잡아매고 앉아 있는 눈 먼 여인

덕수궁 긴 담 모퉁이

장안의 먼진 다 쓰고

지장보살처럼, 묵묵히

그저 묵묵히

세월을 마냥 앉아 있는 다리 없는 사나이


보이는 게 모두 눈물

느끼는 게 모두 눈물

생각 도는 게 모두 눈물

아, 나무아미타불

 

어머님! 

어머님처럼 적선을 하며

적선을 배워도 배워도

모자라는 게 적선이옵니다.




이제 날이 몇 날을 더 지나고, 십 여일을 지나면 어느덧 화려한 라일락은 그 꽃을 피우고 은은한 향기를 바람에 날리며, 봄을 한 가운데를 맞이하고 있는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오늘은 조병화님의 <밤의 이야기 제39장>을 소개해 드리렵니다.


내가 어느 날 취해서

어느 동리

골목길 깊이

달 아래 혼자서 돌고 있을 때


라일락은 가득히

달 아래 피어오르고 있었다


행복한 사람들은

보금자릴 찾아서 돌아들 가고

취중처럼 적적한 나의 골목


달은 번져서

하늘에 가라앉고

텅빈 가슴을 혼자서 머물고 있었다


마침내 가난한 나라의 길 잃은 시인처럼

남은 골목

뿌옇게 취해서

마냥 꽃 아래

혼자서 있었다


내가 어느 날 밤 깊이 취해서

어느 동리

골목길 깊이

달 아래 혼자서 돌고 있을 때


라일락은 달에 젖어

가득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늘은 점심을 먹고 식당에서 나오는데, 마침 식당 건물 앞 화단에 라일락 나무가 활짝 핀 그의 화사한 자태를 내 보이기 위해 꽃망울을 막 터뜨리려 하는데, 한 중년의 여성이 그 잎파리 한 잎을 따서 다른 여성에게 씹어 보라고 하더군요.

쓰거나 아니면 표현하기 오묘한 쌉싸름한 맛이랄까? 아무튼 “첫사랑의 맛”이 난다며.......

 

첫사랑의 맛이란 그런 것일까......?  하긴 그렇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튼 꽃과 봄은 여성들을 위한 계절인가 봅니다.


진한 습기를 머금은 밤공기가 으스스한 밤입니다.

좋은 내일을 꿈꾸시기 바라며......


동락재의 동산 드림

 

<댓글>

 

farm: ~~~~유월은 라일락의내음이 진동하는 계절 ,아까시아,라일락향기를 동락재님 덕분에.... 2003/04/08

 

라아파에르: 아니?.. 라일락이 벌써 피었습니까 참 시간이 빨리가는군요.. 목련꽃 타령을 한지가... 2003/04/08

 

장미: 아직도 지난 내용인가요? 어째 좀 시기적으로...... 지난것이면 날자를 적어주심 더욱 좋겠네요 2003/04/09

 

남박구미: 라일락 이라고 해야 더 문학적이지요! 그러나 수수꽃다리 하고 해도 괜찬지 않을까요. 달밤의 그 꽃 향내!........ 2003/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