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동락재 통신 38-어항 놀이

sosoart 2007. 3. 26. 07:37

 

 

아들이 아비를 닮아(역시 피는 못 속이는지....) 젊었을 적 하던 짓(?)을 그대로 따라 합니다. 

요즈음은 사진에 미치다시피 하여 눈에 보이는 것을 닥치는 대로 찍어 댑니다.

하기야 연습이 대가를 만드는 것이긴 하지요.  가끔은 이 애비가 아들녀석의 사진을 써 먹기도 합니다. 

솔직히 이 애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사진이나 등산이나 낚시나 여행이나 또 글을 자주 쓰지는 않지만,

여성을 후리대는 솜씨는 아직 머리에 쇠똥도 안 벗어졌지만, 글솜씨는 이 보잘것 없는 애비를

훨씬 능가할 것 같습니다. 

 

 

 

담쟁이 넝쿨 같은 것이 바위에 찰싹 붙어서 강인한 생존력을 과시하는 군요.

 

 

 

가을 山寺 범종 누각의 단청과 단풍이 조화롭게 가을을 적셔 갑니다.

 

 

<동락재 통신 38- 어항 놀이>     2003. 8. 18


지난 광복절 연휴 첫날에 친구가 오랜만에 찾아 왔습니다. 내외가 함께 오는 줄 알았는데, 혼자 왔더군요.  다시 반복되는 이야기이지만 오늘은 천렵을 위주로  엮어봅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친구로서 평소에는 서로 그리 자주 연락을 하지 못하는  편인데, 요 근래 한 달 사이에 연락도 잦았고, 한 1주일 전엔 대포도 한 잔 했습니다만, 요즈음 이 친구가 사업이 좀 문제가 생겼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심각한 경영상의 문제는 아닌것 같고, 가뜩이나 경기도 안 좋고, 올 들어 수 억대인지, 십 억대인지, 아마 적지 않은 돈을 회사 내부적인 문제로 손해를 본 모양입니다.


그러나, 사업하는 사람들의 특성상 항상 흑자만을 낼 수는 없는 일이란 것을 잘 아는 그로서는 돈의 문제보다 이제는 정신적인 피로함 때문에 저의 동락재를  찾아와, 오랜만에 친구와 냇가에 나가 그물도 던지고 어항도 놓고 하면서, 소위 천렵을 즐기며 강원도에서의 해맑은 하루를 아무런 부담없이 보내고 싶어서 왔다고 합니다.


하루 전에라도 미리 저에게 알려왔으면, 서울에서 같이 출발을 했겠지만, 목요일날 제가 학교를 끝내고 홍천으로 거의 반쯤 거리를 가고 있는데 연락이 와서, 광복절날 동락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습니다.


광복절 아침 일찍, 양평에서 아침 요기를 하고 출발을 한다고 8시경 전화가 왔고, 이내 한 시간쯤 되어 친구가 도착을 했습니다.


사실, 휴일에는 아내와 시간을 같이 보내기 위해, 그리고 아들에게 휴식의 시간을 갖게 하려고 제가 운전을 하고 아내의 춘천에 있는 가게로 같이 갑니다만,  그날은 친구가 와서, 아들과 집사람이 계속 근무?를 하기로 하고, 저와 친구는 내린천이나 횡성이나 원주 방향의 냇가로 가기로 의기투합하여 집을 나섰습니다.


갈림길이 지척이기에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내린천보다는 횡성쪽으로 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저의 동락재를 한 2-3분여 지나오면 서석, 인제 방향으로 가는 444번 도로가 홍천군립공원인 공작산 (수타사를 품고 있는 산으로, 상류의 계곡수도 일품입니다) 입구의 삼거리에서 횡성, 원주 방향의 오른켠 좌운리로 핸들을 돌렸습니다.


손님 대접상 제 차로 가려 했으나, 친구가 자기 차에 모든 짐을 다 싣고 왔으니,  자기 차로 가자고 하여 친구가 자기차로 운전을 하였습니다.


글쎄요, 오랜만에 좌석이 얕은 승용차를 타서 그런지, 운전석이 높은 짚차를 타는것 보다 속도감이 더 빠르긴 하지만 시야가 낮으니 조금은 답답하더군요. 그래서 짚차를 타던 사람은 계속 짚차를 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딸아이  녀석은 한 대는 승용차로 바꾸던지, 아니면 제 차를 승용차로 사달라고 하는데, 백수건달 주제에 가족 수대로 차를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저는 강원도의 특성상 제 차나, 아들의 차도 4륜구동이며  , 4륜구동이 아니면 겨울에 아주 고생을 하기때문에, 이제는 짚차를 타야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낍니다.


남의 차를 타는 것이, 아주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남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서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거의 다 운전대만 잡으면 "헐크"처럼 달라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저 역시도 남이 제 타를 탔을 때에 조금이라도 불안함이라던지,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긴, 제가 운전하는 차를 타면 아내는 무어가 그리 불안한지 옆에서 그저 잔소리, 잔소리의 연속입니다. 아예, 자기가 지령을 내립니다. 깜박이, 우회전, 좌회전, 앞에 교통신호, 저 앞에 경찰차(이 때는 거의가 다 거짓말입니다. 아내가 경찰차가 앞에 있다고 했을 때엔 한 번도 경찰 아니라 방범도 보질 못했으니까요), 천천히..... 등 등, 아예 운전을 마음대로 못하도록 오금을 박습니다.


저와 같이 간이 크니까 그 잔소리를 견뎌내지, 요즈음 젊은사람들 처럼 제 아내에게 벌벌 떠는 친구들은 아마 그 잔소리에 오금이 저려 운전대를 잡지도 못하겠지요.


그러나, 다 인과응보 아니겠습니까? 원칙주의자에다 성격이 불같아서, 또 운전대만 잡으면 왠 상서롭지 못한 말이 그리도 쉽고 자연스럽게 준비된것 처럼 튀어나오니 상대방이 난폭운전을 하거나 위협운전을 하면 제 나이들어 기운도 하나도 없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대거리를 해대니 평생 욕 한 번 못하는 아내인들  죽을 맛이겠지요.


어떤 때는 그래서, 제가 아내에게 농담을 합니다. 당신 내가 욕을 할 때에는 정 그렇게 창피하면 남들이 당신 얼굴 보지 못하게 의자 밑으로 얼굴을 수그리라고 말입니다.

 

수그리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경상도 참새 떼가 전깃줄 위에 앉아 있었는데, 잡자기 사냥꾼이 총을 쏴대자 대장참새가 나머지 참새보고 무어라 외마디 소리를 질렀답니다.  뭐라 했게요?

"수그리라.......!!!!" (고개를 숙여라) 라네요.


그런데, 이 못난 사내들의 특성이라는 것이 아내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것 있지 않습니까? 아내가 나이가 아래인데도, 마치 어머니나 누님의 말에 심통을 부리는 것처럼 어깃장(표준말을 몰라 그냥 사투리로 적습니다)을 놓는 그런 치기어린 마음이 있지요.


어쨌던, 친구가 운전하는 차에서 옛날 대물잉어의 유명한 낚시터였던 홍천과  횡성의 경계인 좌운저수지가 있는 홍천군의 좌운리를 지나 횡성군 공근면으로 들어 섰습니다.

벌써 아침나절의 외기는 습기가 없고 가을날처럼 햇볕도 건조해 바람에서 가을냄새가 묻혀오고 있었습니다.


홍천의 경계에서 공근면과 홍천-원주간 4차선국도가 만나는 지점까지에는 아마 섬강인가? 그 강줄기의 지,상류가 되는 곳이어서 개울이 길을 따라 나란히 달리게 됩니다.


몇 군데, 할만한 곳을 점찍어 두며 가다보니, 국도와 교차지점까지 왔기에 아까 보아 두었던 장소로 돌아가려다 맷돼지 전문사육장겸 정육점에 들어가 소주 안주를 사기로 했습니다.

 

들어가보니 KBS 멋자랑 맛자랑인가에 나온 집이라고 사진을 액자에 걸어두고  선전을 하더군요.


어디를 지나다가 인지 그런 문구를 본적이 있는것 같았습니다.


"TV나 매스컴에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맛있는 집"


얼마나 재미있는 반전의 표현입니까? 요즈음에야 맛이 있던 없던 신문이나 잡지는 물론이고, TV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돈만 주면 광고해 주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TV에 방영된 맛집"하면 이젠 눈에서 신물이 납니다.


그 멧돼지 집에는 마당에 바베큐 장치를 해놓았더군요. 그래서 올해엔 손님이  좀 많으냐?고 물었더니 작년보다 더 없다고 울쌍을 하더군요.

작년의 수해를 아직도 복구하지 않은 곳도 많고, 이제야 복구작업을 하고 있는데, 휴가를 왔던 손님들이 계곡의 흙탕물이나, 길이 어수선한 것을 보고는 며칠 쉴려고 왔다가는 그냥 가버린다는 거지요.

이 나라 일선 공무원들, 아니 그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마는 일부 공무원들이라고 표현을 해야 되겠지요? 아니면 후환이 두려우니.....

총체적 무책임을 제일 윗선에서부터 장려하는 꼴이니.......무엇 하나 국민들의  마음에 들게 하겠습니까?


하긴 대통령이라는 위인이 나라의 경제나 살림걱정하며 팔을 걷어 부치고 불철주야 노심초사 국민에게 봉사하는 게 아니라, 강사료에 탐이 나서 그런가? 웬 공무원과 시도 때도 없이 토론회 입니까?

 

그리고 매일 제 잘못과 제 심복들의 잘못을 허구헌날 언론에게만 돌리고, 고소다 뭐다 참 목불인견한 꼴만 해대고 있으니, 이 민초들의 고통은 누가 어루만져 줄런지..........


잠깐, 또 신호대기 중에 빗나갔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서 고기 한 덩이 맛있게 썰어달라고 하면서, 이 근처에 어항을 놓으면 잘 잡히는 곳도 가르쳐 달라하니, 바로 그 근처, 실은 우리가 짐을 풀려고 한 곳이긴 한데, 길바로 옆 다리근처가 아니라, 농로를 따라 한 700여미터 가면 좋은  곳이 있다고 하여 그리로 향했습니다. 물론 그 농로의 폭은 차가 한 대 겨우 지나갈 폭이지요.


드디어 그 농로의 입구로 들어서서 가니, 앞에 경운기가 딸딸 거리며 지나가더군요. 타지에 와서 그것도 농사짓는 땅에 와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나 그들이 사용하는 농기계들이 아무리 천천히 지나가더라도 의례히 그들을 앞지르지 않고 뒤 따라가는 것이 우리네 낚싯군들의 불문률입니다.


해서 천천히 따라가고 있는데, 맞은편 약 50미터 전방에서 고급모범택시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럴 경우엔 경운기가 우선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교육받은 정도의 고하를  떠나서, 자기 땅에 농사 짓는 사람들의 통행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마 유치원생들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을 합니다만, 이 고급모범개인택시 운전사,  막무가내로 그냥 밀고 오더군요.


그래서 잠시 그 택시와 경운기, 그리고 경운기 뒤에는 우리가 탄 차(공교롭게도  그 모범택시와 같은 차종), 또 우리 뒤에는 추럭 한 대, 서로 1대 3의 대치상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럴 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무래도 우선은 농사를 짓는 경운기가 최우선이겠지요. 농사가 우선이지 고기 잡으러 놀러 다니는 타지의 나그네가 우선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친구....  고급차를 모는 개인택시운전사라 그런지 한참을 버티고 있더군요. 이 친구 고급차가 국내산으로서는 제차가 최고급에 속할 수 있겠지만 (그래봤자 다이너스티란 승용차였지만).....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 현지 농민에게 양보를 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결국은 한참을 버티다가 제풀에 뒤로 물러나더군요.  나이도 우리 또래는 되었겠더구만.......

 

이런X들 때문에 되먹지않은 젊은놈들에게 "늙으면 죽어야한다"는 소리를 듣게되는 것 아닌가 몰러...... .....


지금 세상이 이런 세상입니다. 상식과 정의가 통하지 않는, 이런 놈의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려. 정말 얼마나 통탄할 현실입니까?

이런 얘기하는 기성세대만 고리타분하고 무얼 모르는 걸까요?


하긴...., 말 나온 김에 제가 한 말씀 더 하지요.

언젠가 말씀을 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 10여 년 전쯤이었을 겁니다. 과천을 가는 길이었는데, 옆 차선에서 깜박이라든지 수신호라든지 전혀 낌새가 없이 벼란간 차 앞 대가리를 제 차 앞으로 들이대는 바람에 깜짝 놀랐고, 그 노는 폼새가  괘씸해서 양보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옆으로 따라오면서 무어라 인상을 쓰며 욕을 하는겁니다.  그래서, 저도 성격꽤나? 있다고 듣는 사람 중의 하나이며, 옛날 별명이 "원자욕연구소 소장"이란 사람인데, 그런 젊은 놈 하나, 겁을 내겠습니까? 욕을 하며 도망가는 놈을 앞질러 차로 막고서 "야, 임마 나와!  이 자식아" 했더니, 이 녀석이 문을 꼭 잠그고 앞유리를 1-2센티쯤 내리더니, (제가 좀 머리가 사십대 초반부터 일찍 세었습니다) “노인네가 좀 양보좀 하지 뭐 그렇게 빡빡하게 그러세요?” 하는겁니다.


아니 이런 호로새끼가 있습니까? 그래서 문을 잡고, "너 이새끼 안내리면 차를  부숴 버린다고, 유리창을 발로 깨 버리고 죽여버린다"고 하니 유리문 마저 위로 올려 잠그는 겁니다. 그러고는 날 잡아 잡수 하고 있습니다 그려.  그러니, 지나가는 차에서는 처다보고, 뒷차들은 빵빵거리고........

얼마나 창피합니까? 어린 호로 상놈과 시비를 하고 있으니......


그때만 해도 소나타는 중년층이 주로 몰 때였고, 젊은 아이들은 프레스토, 엑셀, 프라이드 정도 였는데, 그 녀석은 제 부모를 잘만나 저와 같은 소나타를 모는 녀석이라 그런지 아새끼가 아주 싸가지가 없더군요.


나이 많이 든 사람을 공경은 커녕, 존중도 할 줄 모르고, 오히려 젊은 애들에게  나이 많이 든 사람이 모든 것을 양보해야 된다는 그런 논리를 가지고 있는 아새끼였습니다.


그런 부류의 녀석들이 아마 지금은 386세대니, 코드가 어쩌니, 김정일이 만세!  하고 기고만장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렇게 된 세상이 기성세대, 우리의 부모, 선배, 그리고 우리와 같은 동년배들만의 책임일까요?

그 아이들에게는 전혀 책임이 없을까요? 물론 "다 내탓이오!"들 하고 우리 세대들은 숨죽이고 있습니다.


"보릿고개, 물자의 부족, 눈물과 서러움 섞인 밥"을 먹고 자란 기성세대들이 자손들도 그럴까봐 그저 "오냐, 오냐" 하고 물질로만 풍요롭게 해주었기 때문에 작금의 이런 세상이 펼쳐지는 것은 아마, 당연한 귀결이겠지요.

 

남의 어린 자식이 공공장소에서 버르장머리 없고, 공중도덕이라곤 전혀 제 에미, 애비에게 예절과 도덕과 기본 소양이라곤 전혀 배워먹지 못한 것 같은, 아이들의 행동을 조금이라도 뭐라고 하면, 눈을 흰죽사발처럼 뒤집고, 대가리 처들고 대드는 저 어린 에미, 애비들을 그저 가만 놓아두어야 하는 지금이 서럽게 느껴진다고들 이 기성세대들은 큰 소리로도 말 못하고, 뒤꼍에서 그저 일제 순사의 뒤쪽에서 고개를 조아리며 땅만 쳐다보고 속삭이듯 눈치보며 말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는 정말로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어디까지 말씀드렸지요? 아~ ~ , 그 개인택시가 억지 양보를 한 후, 장소를 잘 찾아서 주차를 하고 짐을 풀었습니다.

 

그 친구 참 짐도 많더군요. 저도 낚시를 다닐 때는 항상 차에다가 낚시도구 일체를 항상 싣고 다니곤 했지요.


같이 짐을 들고 뚝을 내려서서, 파라솔을 펴고 짐을 내려 놓은 다음, 우선 발을 담그니, 이처럼 시원하고 상쾌할 데가 없더군요.

친구는 어항을 놓기위해 고기가 나올만 한 곳에 3개를 설치하고, 저는 고기를 구울 준비를 했습니다.

술꾼들 이라는 게 참, 하는 짓은 다 똑같지 않습니까?


물 좋다고 한 잔, 공기 좋다고 한 잔, 좋아서 한 잔, 화나서 한 잔, 모든 것이 술을 마실 핑개와 구실이 되는 거지요.


준비해온 버너에 불을 지피고 고기를 구웠습니다.

대덕의 연구단지에서 근무할 때, 동학사 근처의 멧돼지농장에서 맷돼지 고기를 먹은 후론, 참 오랜만에 맛보는 멧돼지고기구인데 맛은 있더군요.

맷돼지 농장주인 말로는 순종을 구해서 교배에 교배를 거듭하여, 자기네 멧돼지는 순종이나 다름없다고 하는데, 저야 뭐, 고기는 고기지, 고기가 산삼이 될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별로 상관은 하지 않습니다.


그저 맛 있으면 좋은 거고, 맛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지, 돼지나 소를 무슨 인삼이다 한약재를 먹여 키웠다, 어쨌다 하는 짓거리들은 그렇게 혹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저 맛있게 먹으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모처럼 친구와 단 둘이, 이렇게 강원도 한 구석의 산촌에 들어와, 물을 바로 옆에 하고, 오래 묵은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눈다는 것이, 이 또한 얼마나 은은하게 느껴지는 행복입니까?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친구와 소주 4병을 훗딱 비웠습니다. 저는 그 즈음 내리 한 열흘간을 술 속에 쩔어 살았기에, 처음 잔은 좀 뱃속에서 거부감이 있었는데, 몇 잔 들어가니 "어서 들어오라"고 재촉을 하더군요.


백수 주제에 정말 건강을 조심해야 하는데, 요즈음 어떤 때는 자포자기하는  것처럼 막가는 때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실리적으로 풀어나간다기 보다 가끔은 엇나가게 딴 청을 부리면서 풀어보기도 합니다.


이것이 퇴직한 자들의 세상의 순리?라고 하는 것에 대한 반기 인가? 도 생각을  해보며, 스스로 고소를 금치 못할 때가 있습니다.


어항을 한 번씩만 하고 걷었는데, 한 냄비가 찰 정도로 잡았습니다. 쏘가리 새끼도 있었고, 꺽지, 통칭 피라미 등을 잡았는데 이 친구가 술을 마시고 금방 물 속에 들어가서 인지, 살림망에 고기를 쏟아넣고 가지고 오다가, 살림망의 주둥이 한 쪽이 벌려진 것을 모르고 물속에 질질 끌고 오다가, 다 와서 보니 피라미 한 10 마리 밖에 남지를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 왈, "야 네 佛心때문에 고기가 다 도망갔다"고 저를 원망하는 겁니다. "야 임마, 내가 불자도 아니고 네 놈이 술이 취해서 그런 거지 누구에게 뒤집어 씌우냐? 하여간 사업하는 놈들이란..."  하며 심기를 좀 긁어 놓았지요.


그 친구는 부친께서 고등법원장까지 지낸 분이었는데, 부친께서도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을 좋아하셨고, 어려서 부터 그 친구를 부친께서 귀여워하셔서 꼭 어디든 밖에 가실 땐 데리고 가셔서, 고기를 잡는 것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라고 제 천렵실력을 꽤나 입에 게거품을 물고 자랑하는, 아주 꽤나 모자란 녀석이지요.


고기를 잡았으니, 매운탕을 해먹자고 집에서 미리 준비해온 호박찌개에 피라미의 배를 따고 깨끗이 씻어서 매운탕을 끓였습니다.

"야, 임마. 너희 천렵하는 놈들은 그래 겨우 손가락만한 피라미 10마리 가지고  매운탕을 끓여먹냐? 우리 낚싯군은 손바닥만한 고기를 잡아도 그냥 살려준다.

적어도 한 7치 이상이나 되어야 매운탕을 하던, 찜을 하던, 어죽 아니면 폭 고와서 먹는다. 너희같은 천렵하는 종놈들이나 많이 먹어라~ "하고 그 친구 창자를 비틀어 놨습니다 그려.

어쨌던 비린내라도 나니 매운탕이라 하고 한 숟가락 떴습니다.


그리곤 낮잠 한 숨. 친구와 함께, 바닥도 울퉁불퉁한 돌밭 위에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맛있게 낮잠이 들었었습니다. 잠이 깨어 높아진 파란 하늘을 보니 뭉게 구름이 둥실 떠서, 눈의 피로를 말끔하게 풀어주는 느낌입니다.


어느덧 5시가 지난 시간이어서, 아쉬운 물가에서의 즐거움을 뒤로하고 동락재로 향했습니다.


동락재로 돌아오니, 네 녀석의 마당식구들이 짖어대며 반갑다고 난리를 칩니다.


차나 한 잔하고, 좀 있다가 앞의 저수지로 밤낚시나 하러가자 하였더니, 이 친구, 가 보아야 한다며 굳이 서울로 올라가겠다더군요.


그래서, “저녁은 아내가 닭갈비를 준비 한다고 일찍 온다고 했으니, 닭갈비에 소주 한 잔하고 하루 자면서 얘기 좀 하다가 내일 가려마” 했는데, 꼭 가야할 일이 있다고 하니 어쩔수 없이 보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왔다가 횡하니, 흔적 하나 없이 가버리면 집에 남아 있는 것은 정말 외로운 정적과, 밤하늘 흔드는 야광막대가 만드는 선의 흔적처럼 쓸쓸함과 적막의 슬퍼진 궤적만이 남게 되는 것을 이곳을 왔다가 무심히 가버리는 그들은 알까.......? 모르겠습니다.


전원생활을 계획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그러한 정적과 슬픔의 흔적을 마음에 깊이 남겨놓지 않을 자신이 있는, 그러한 준비가 되신 분만이 실행에 옮기시기를 바란다면 시건방진 얘기가 될까요?



일체의 수속이 싫어

그럴 때마다 가슴을 뚫고드는

우울을 견디지 못해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나는 먼저 아버지가 된 일을

후회해 본다


필요 이상의 예절을 지켜야 할

아무런 죄도 나에겐 없는데

살아간다는 것이 지극히 우울해진다

한때 이 거리가

화려한 화단으로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력서를 쓰기 싫은

그 날이 있어부터

이 거리의 회화를 나는 잊었다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그러한 수속조차 이미 나에겐 권태스러워

우울이 흐린 날처럼 고이면

눈내리는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산다는 것이 권태스러운 일이 아니라

수속을 해야 할 내가 있어

그 많은 우울이 흐린 날처럼 고이면

글 한 자 꼼짝하기 싫어

눈 내리는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아버지가 된 그 일이

마침내 어쩔 수 없는 내 여생과 같이


조병화님의 한 20년전의 시집 <바다를 잃은 소라>에 실려 있는 "주점"이란 시

로 오늘의 안녕을 가족 여러분께 대신합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은 날 되소서!!!!!!!!!! 

 

 

<댓글>

 

벽계수: 냇가에서의 천렵. 참 추억이 머릿속에 어른거리는군요. 이 여름이 가기전에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 추억이 새롭습니다. 동락재에서 가까운 천렵할 수 있는 그 곳으로 한 번 초대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언젠가 한 번 뵙고 싶습니다. 2003/08/19

 

전원의꿈: 글 너무 잘 보았습니다. 꼭 친정 아버지가 들려주는 얘기처럼 포근한 느낌이 들었어요. 저희 친정아버지 낚시 좋아하시고, 고향이 정선이라 냇가에서 고기 잡아 매운탕 끓여 먹구 했었던 기억이... 행복하세요. 2003/08/20

 

richwood: 글 잘 읽었습니다. 인생의 선배님 안목이 보이는 것같아 경건한 마음까지 드는군요. 종종 의미있는 글 올려주시면 젊은 사람들에게 지표가 될것입니다. 2003/08/23

 

<Re:전원 생활의 꿈을 잠시 접으며....>

글쓴이 : 동락재

조회 : 211 스크랩 : 0 날짜 : 2003.08.27 20:13

 

안타깝군요.

1년도 안되는 짧은 귀촌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실망과 좌절로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심정이야 얼마나 쓰리고 힘이 들겠습니까? 

 

저도 홍천의 동락재에서 겪어오는 일이지만, 전원생활은 낭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요.

 

저의 통신에도 언급을 했지만, 6개월에서 2년이 고비가 아닌가 합니다.

준비를 했다해도, 마음의 준비, 몸의 준비, 이런 저런 많은 준비를 했다해도, 실패하는 일이 다반사 이지요.

 

전원생활의 적응은 우리 가족님들의 생각보다는 더욱 힘들고 심각하고 처절하답니다.

 

괴산 참 산골이지요. 누가 뭐라해도.

저는 청주가 어머님의 고향이고, 괴산은 우리 이모부님의 고향입니다.

낚시를 자주갔어도 괴산은 산골이지만, 그러기에 무엇보다도 전형적인 전원의 모습과 인심이 아직도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전주조 가족님들, 좀 더 준비를 철저히 하세요. 그리고 전원으로 귀의 하십시오.

 

실패하고 나온다는 것이 얼마나 쓸쓸한지는 겪어보지 않고는 모를겁니다.

 

부디 님이 하루 빨리 다시 괴산으로 컴백홈 하시기를 바랍니다.

 

 

 

열어도 열어도 남는 마음이 있다

마셔도 마셔도 남는 하늘이 있다

그리고 지금 너와 같이 하는 더위가 있다

 

텅 열린 너와 나의 창을, 지금

지나가고 있는 것은 실상은 바람이 아니다

 

몸을 열면 썩어 가는 냄새와

살아가는 냄새

 

너와 나를 더웁게 하는 것은

- 실상은 태양이 아니다

 

시간은 스스로 견딜 때마다 열을 뿜고

순간은 스스로와 충돌을 하여 더위를 뿜는다

그리고 너와 나는 생존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니다

- 실상은 더위를 같이 하는 것이다

 

지금 어디메서는 여름의 살결을 대며

바람이 바람이 낄낄낄 흘러내려도

마을 멀리 산줄기 중턱엔 나팔꽃이 피어도

풀잎들의 잎술들을 적시며

개울물은 흘러 내려도

 

벗어도 벗어도 남은 몸에 있다

마셔도 마셔도 남는 하늘이 있다

그리고 지금, 너와 같이 하는 더위가 있다

 

조병화님의 <밤의 이야기> 다섯번째 이야기 였습니다.

 

호우경보가 또 내렸습니다.

럭비공, 노무현과 같이 전혀 예측을 못하는 요즈음의 비 쏟아지는 날씨입니다.

 

나에게 좋지않은 일이 오지 않도록 우리 가족님들,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이 땅의 젊은이들이 북한의 응원단 아이들의 얼굴이 예쁘다고 떠들거나, 법썩을 떨지 않기를 부탁합니다.

 

-빈 머리의 기자들도, 좀 더 역사공부는 물론 부모님들의 말씀을 잘 듣고 이 조국을 살리는 길이 어떤 것인가를 뜨거운 마음으로 한 번 깊이 생각하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위의 글은 카페의 가족 중 한 사람이 귀농의 푸른 꿈을 안고 충북의 오지라고

할 수 있는 괴산에 둥지를 틀기위해 내려왔다가, 모든 현실과 여건의 짓누르는

무게가 너무 무거워 다시 도시로 생존을 위해 나가는 모습이 안타깝고,  

또한 시대의 상황이 일순에 많은 것을 잃은 사람과 없는 사람, 그리고  젊은이

들에게   희망보다는 절망만을 주고있는 것이 너무 가슴아파 당사자에게 조금

이라도 위로의 말을 하고 싶어서 보낸 사연이었습니다. 

 

<댓글>

 

벽계수: 괴산댐에서 낚시도 했었지요. 상류의 타는듯한 가을의 단풍이 넋을 빼앗기도 하지요. 괴산 참 좋은 곳입니다. 동락재님 말씀처럼 님의 탄탄한 계획과 실천으로 꼭 재 탈환하시기를 바랍니다. 2003/08/28

 

 

물가: 힘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3/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