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시도 때도 없이 코스모스가 핀다. 세상이 막 돈다. 제멋대로, 술 취한 비렁뱅이처럼
모든 더러운 것을 불태우듯, 나는 이 산촌구석에서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더러운 찌거기를 태운다.
이 거대한 풍력발전기처럼 우뚝 솟고 싶다. 높은 산 꼭대기 위에서..... 그리곤 바다를 굽어보고 싶다.
멀리 고깃배 하나, 가랑잎처럼 힘겹게 밀치고 나가는 어부의 삶을 그냥 바라보고 있다. 무념에서.
가을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이 가을인지 아니면 어느 계절쯤에 서 있는지 잘 가늠을 못하겠습니다.
차라리 홍천의 산촌에서 칩거하면서 계속 머물러 있었다면 시간의 돌아감에 아주 민감하고, 땅의 숨 쉬는 호흡소리, 자연의 옷을 갈아입는 모양새를 아주 가까이서 보고 느낄 수 있을 텐데, 홍천의 산간과 중소 도시, 또 목공예디자인을 배우는 학교에 다니기 위해 서울을 오가며 생활을 하다 보니, 도대체 시간의 흐름과 세상의 흐름이 혼재되어 뚜렷한 눈을 가지지 못하고 온갖 잡동사니의 흐름에도 눈을 뗄 수 없이, 그저 눈이 떠 있으니 보고 있는 이 즈음입니다.
나라의 경제가 최악이다, 부동산 폭등이 어떻다, 북한의 핵이 어떻고, 미국의 이락 파병요청이 어떻고, 경제는 다 무너져 회복 불가능의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느 당이 돈을 많이 먹었네, 다음 총선이 어떻네, 환율이 어떻고, 주식은 어떻게 돌아가고, 행정도시의 투기가 어떻고, 송두율 이란 놈이 어떻고.............
귓구멍이 뚤려있으니, 들려오는 소리 듣지 않고 넘어갈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일개 서민, 필부에 지나지 않는 저로서는 그저 나라 돌아가는 꼴만 눈부시게 보고만 있습니다 그려.
그렇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바로 얼마 전 수해를 당한 시골의 우리네 형제들은 당장 먹고 입고 잠 잘 그것만이 아주 절박한 시간이라 생각을 합니다.
정말 제가 60을 거의 살았어도, 6.25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어렵고, 어처구니 없고, 개판(?)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정치인은 저희들끼리 놀고, 권력을 잡은 자들은 저희들끼리만 희희덕 거리고, 일반 국민들은 무정부상태와도 같은 이 시절에 어디로 가야할 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채 표류만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제가 다니던 연구소의 부설기관의 창립 40주년 기념식에 초청을 받아 갔다 왔습니다.
이제는 노인이 되어있는 동료들, 어느덧 삶의 주름이 얹혀진 후배들, 현직에 있는 옛 직원들을 만나 보니, 살다보면 만나는 날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고 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즐겁지 만은 않습니다.
전원생활하시는 우리 카페 가족 여러분, 요즈음 전원생활 행복하십니까?
전원생활도 나라가 순조롭게 돌아가고, 희망이 있고, 무언가 끝이 있다고 생각할 때에 그래도 외롭지 않고, 자연의 속에서 모든 것이 하나로 일체가 되어 마음이 평화롭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주변에서는 올해 농사가 잘 되지 않아 한숨만 들리고, 농사를 짓지 않는 도시에서 전원으로 생활의 터전을 옮긴 이 도시의 나그네들도 따라서 당연 마음도 몸도 편치가 않습니다.
주변의 이웃과 더불어 추수의 즐거움을 맛보고, 같이 흥겨워하며, 결실의 깊은 의미를 새길 수 있어야 좋을 텐데 말입니다.
요즈음은 총체적인 걱정과 우울함이 都農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휩쓸어가는 것 같아 정말 걱정입니다.
저는 이번 주는 학교에서 체육대회가 있어, 젊은이들과 어우러져 응원하고, 승부에서 이길 때에는 같이 얼싸안고 춤추고, 질 때에는 못내 아쉬워하는 학생의 생활을 그나마 이 나이에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조그만 행복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실은 제가 옛날 야구 명문인 백인천의 00고교 출신이기에, 야구를 하기도 보기도 좋아해서 우리나라 최초(?)의 아마츄어 야구의 연구단지 리그를 만들고, 실제로 투수와 포수, 외야수로 뛴 장본인이어서, 운동을 무척 좋아하기에 이번에도 마음으로는 뛰고 싶었지만, 이제는 젊은이들이 아예 선수로 끼어 주지도 않으려 해서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암울한 시대에 이런 학교에서 모든 것에서 격리되어 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것도 복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내일이면 체육대회가 끝나고, 다음 주 부터는 새로운 목공예 작업에 열중해야 하겠지요.
학생생활도 이제는 아주 오랜 된 일이긴 합니다만...., 하기야 저희 때는 MT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만, 이제 젊은이들과 MT도 가려합니다. 학생 때의 일이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젊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가치 있는 일입니까?
어떻게 보면 저무는 인생의 발악이라고 일부 학생들이 흉을 본다 해도, 저에게 주어진 아주 좋은 기회, 젊은이들과 같이 어울려 얘기하고, 술도 마시고, 세상을 토론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 줄 모르겠습니다.
비록 지금은 백수로서 학교의 생활을 하고, 늙은 학생으로서 젊은 학생들에게 누를 끼칠 줄은 모르겠으나, 더불어 같이 호흡한다는 이 학교의 생활이 저에겐 제2의 인생을 즐길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준 것 같아 마음으로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마침내 깊은 안개가 개어지듯이
으스러진 내 가슴에서
당신의 그림자가 고이 사라질 때까지
당신은 잠시 내 곁에 그대로 있어주십시오
먼 옛날 당신을 만났을 때와 같이
그렇게
당신을 그대로 상처없이 돌려 올리기 위하여
당신은 잠시 내 곁에 그대로 있어주십시오
살아서 한번 피는 꽃
나 먼저 져서
당신을 먼 옛날 그대로 그 자리에 남기고
당신과 내가 그날과 같이 멀어질 때까지
남은 시간 당신은 잠시 그대로 내 곁에 있어 주십시오
희망은 내것이 되다 말고
나는 나를 버리고
소리 없이 지나는 외로움
마침내 깊은 안개가 개어지듯이
으스러진 내 가슴에서
당신의 흔적이 고이 사라질 때까지
당신은 잠시 내 곁에 그대로 있어 주십시오
왜 지금 이 시간에 조병화님의 <마침내 깊은 안개가 개이듯이>라는 시가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언가가 모든 것이 내 곁에서 하나하나 사라져가고, 내 손 안에 있던 자그마한것마저도 하나하나 조그만 빈틈으로 공기가 빠져 나가듯이 안녕이란 말 한마디도 없이 떠나가는 것만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가을이라 그런 걸까요? 아니면 흐르는 시간 하나 하나 모두가 소중하게만 여겨져 그런 것일까요?
여담하나 늘어놓을까 합니다.
제가 실은 약 20년 전 저희 어머님을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 가시는 길을 막지 못하며, 6개월을 병원 입원실에서 병구완 하면서 기식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 아내는 어린 아이들 두 녀석을 장모님께 맡기고, 하루도 빠짐없이 제가 병원에서 출근을 하면 교대하여 아내가 출근을 하고, 제가 퇴근하고 어머님이 계신 병원으로 올 저녁 시간까지 2교대(?)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어머님은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는 선고를 받고 집으로 모시고 온지 2개월 만에 이 세상을 하직하셨습니다만.
그때 제 머리가 하얗게 변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40이 갓 된 나이였지만 그렇게 머리가 희게 바뀌었습니다.
게다가 요즈음은 머리도 많이 빠져 앞이마가 훤하다 못해 반질반질 해져서 조금은 가리려고 모자를 쓰려 하니(예전엔 중절모가 그렇게 쓰고 싶어서 지금 써보니 키가 작아서 그런지 멋이 없어 보여 실망을 했습니다만) 딸아이가 제 아빠 늙었다는 증거를 보기가 싫어서인지 모자 쓰기를 극구 말렸었지요.
그런데 어제 딸아이가 마침 백화점엘 갈 일이 있다고, 아빠하고 같이 가자고 하기에 백화점엘 갔다가 모자를 샀습니다.
딸아이가 만류하는 것을 고집을 부려 모자를 써 봤습니다.
그랬더니, 흰머리와 앞 대머리가 가려지니 딸아이도 썩 보기 싫지는 않았던 것 같은지 말리지를 않더군요.
그래서 어제 밤부터 모자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계속 쓰고 다닐까 합니다. 오늘 학교엘 가니 학우들이 잘 어울린다고 하더군요. 늙은 학생의 기를 꺽지 않으려고 기를 살려주려고 그러는 거겠지요. 그러나 싫지는 않더군요. 그런데, 마음 한 편으로는 “이거 내가 늙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여간 섭섭한 게 아니었습니다. 모자를 계속 쓰고 다녀야겠다는, 훵한 머리를 가려야겠다는 마음 뿐 이었으니까요.
멍하니 서있을 때가 있읍니다
나와 내가 유리되어
그냥 멍하니 노상에 서있을 때가 있읍니다
당신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그 누구도 아니고
잎새들이 사라진 나무 그대로
그냥 언제까지나 노상에 서있을 때가 있읍니다
눈이 내리어
고요한 당신의 마음과 같이 눈이 내리어
마냥 그대로 하얀 눈에 덮이고 싶은
그러한 때가 있읍니다
언제까지나 미지근한 이 외로운 자리에서
깨지지 않기를 원할 때가 있읍니다
당신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그 누구도 아니고
가랑닢들이 내린 나무 그대로
멍하니 마냥
당신과 같이 고요한 눈에 덮이고 싶은
그러한 때가 있읍니다.
<잎 떨어진 나무와 같이> 였습니다.
가을이 점점 익어 갑니다.
가을걷이를 마친 쓸쓸한 들녘을 향해 부지런히 길을 재촉합니다.
추위와, 그리고 시리도록 고적함 속으로, 마치 블랙홀에 빠져드는 것처럼 시간은 그렇게 갈 것입니다.
빨리 따뜻한 마음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얘기하는 그런 시간이 와주길 희망하며, 오늘을 접습니다.
많은 것을, 좋은 것을 거두는 추수의 시간을 가지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댓글>
심심도방: 제 남편도 얼마전 부터 모자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민머리를 가리기 위해서 제가 사서 주었어요. 안쓰려고하는걸 막 칭찬해주고 올려줘가면서 쓰도록했는데 요즘은 으례 어디가면 모자부터 챙긴답니다.^^* 2003/10/10
벽계수: 아니,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인데..... 정말 큰일났습니다. 국민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대비를 해야 할때 같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줄 생각은 않고 저희끼리만 지랄처럼 패거리 짓거리나 해대니, 총선과 다음 대선에서 보여 주어야겠지요. 20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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