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동락재 통신-66: 치과 치료를 받으러....

sosoart 2007. 4. 3. 22:30

팔당대교에서 바라본 양수리 풍경 


 <동락재 통신-66: 치과 치료를 받으러....>

 

지난 화요일 서울에 볼일이 있어,  올라와서 온 가족이 식탁에 앉아 같이 저녁을 먹다가,

고기 한 점에 야채를 먹기 위해, 고들빼기 김치를 집어들고 입에 넣었는데, 야채가 덜 씻겨 졌는지 뭔가 씹히든 듯하다가, 한 7년동안  사용한, 부분 틀니가 두 동강이 났다.


다른 것은 고사하고, 틀니를 다시하기 위하여 치과에 다니려면 그 진땀이 나도록 지겨운 작업을 참고,  입을 벌려야 하는 고통이 먼저 머리에 떠올라, 아내에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아무리 치과에 가기 싫어서 안 가려고 참으려 해도,  일 년에 한 번씩 꼭 치아에 탈이 나서, 치과에 가게 되는 일이 생기게 되므로,  치과에 가서 입을 크게 벌리고, Scaling이나 기계로 이를 갈아 다듬는다든지, 치아를 빼게 되는 일이 일어나니, 치료를 하지 않으면, 먹고사는 일, 즉 음식의 맛을 즐기는 일을 할 수가 없으므로, 그 또한 이 가엾은 衆生의 커다란 고통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오늘이 이틀째로,  병원의 치과엘 갔는데, 아래쪽의 틀니는 물론, 오른 쪽 위의 치아를 덮어씌운 곳이 작년부터 이상이 생겨, 음식물이 이 사이로 끼어, 고기나 야채등 섬유질의 야채음식 등,  씹기 어려운 음식을 먹을 때엔 고통이 여간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어서, 치과에 가려고 마음은 항상 먹었지만, 치료의 고통이 두려워서, 식사를 할 때마다 잇 사이에 음식물이 끼어 대단히 아팠지만, 그 고통을 참으며 견딜 때까지 가보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틀니가 부러지는 바람에 할 수 없이 3백만 원 이상 하는 거금(?)을 지불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다음 주 월요일 경에나 다시 나가서, 치아를 갈아 끼고, 틀니도 다시 끼워야 하니, 나머지 5일간을 잘 먹지도 못하고, 어떻게 견뎌야 할 지 감감하다.


2-3일에 고기를 한 번 먹지 않으면, 속이 허허로워 견딜 수가 없는 것은 고사하고, 그 좋은 술 한 잔도 입에 댈 수가 없으니, 앞으로의 며칠을 산다는 것이 요즈음 들어와서  겪게 되는 제일 큰 고통이 될 것 같다.


好事多魔라고 하더니, 요즈음 모든 일들이 기분 나쁘지 않게 잘 풀어져 가는 것 같더니, 잠깐의 브레이크가 걸렸다.


건방끼를 부리지 말라는 부처님의 啓示인 듯 여겨진다.


다시금 겸손한 마음으로 마음을 정리하며 初心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 세상을 다시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라는 제동장치가 작동 되었으니, 순응하며 또 반성을 해보며, 내일을 기약해야 겠다.


내일은 모처럼 홍천의 동락재로 돌아가 다시금 치아 때문에, 식사를 잘 챙겨 먹지는 못할 것 같기에, 씹기에 부드러운 카스테라, 빵류, 죽류 등 인스턴트  식품이나 기성식품을 먹지 않을 수가 없겠다.


이번 주말경엔 고추농사를 짓기 위해, 고추모를 사서 심기로 했으므로, 이웃 집 할머니와 매년 고추모를 사(구입)는 윗마을 농가에 가서 한 100여 개를 사서 땅에 일단 비료를 뿌리고 고추모를 심는 일을 해야한다.


이번엔 정정하고 건강하신, 목사님의 사모인 연세가 70이 되신 처형께서, 재미삼아 나물도 뜯을 겸 고추농사를 돕기 위해 같이 가 주신다니, 또 바로 아래 처제 내외가 와서 또 도와준다고 하니, 이 사람은 주말엔 산림청 숲해설가의 일을 하여도 별반 걱정은 되지 않는다.


단지 오랜만에 오는 아랫동서와 치아의 치료 때문에 술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쉬울 뿐이다.


작물을 심고, 가꾸고, 김을 매고, 수확을 하는 노력과 기쁨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만이 느끼는 자연에의 경이와 신비라고 할 수 있겠다.


고추모 심는 밭농사가 끝나면, 週初엔 서울에 올라와서 틀니와 덮어씌우는 작업을 끝내고 다시 동락재로 돌아와, 정원에 잔디를 심을 계획이다.


이제 동락재를 탐하는, 남에게 동락재와 동산방을 넘기려는 마음을 접고, 一路邁進하여, 홍천의 名物로 거듭 가꾸어나갈 예정이다.

건물이 명물이 아닌, 건물과 사람이 다 조화롭게 名品과 名物의 구실을 하도록 가꾸어 갈 것이다.


사실은 앞으로 일본이나 유럽쪽의 민박객(Home stay)을 유치할 생각도 가지고 있으니, 매우 한국적인 환경과, 행복한 부부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간 치아의 치료를 위해 병원을 다니느라, 또 병원에 간 김에, 아내와 건강보험에서 실시하는 무료 건강검진 외에 위와 장의 수면 내시경 등, 정밀 검사, 아내는 간의 정밀검사를 추가하여 일부는 했고, 또 예약을 해 두었으므로 병원의 출입을 앞으로 3회 정도는 더 해야 할 것 같다.


세상에서 출입을 하지 않아야 할 곳이 병원과 감옥과 경찰서와 법원이라 하는데, 어디 사람 사는 일이 그리 마음대로 되겠는가?


기왕에 검진을 하는 것이니, 아무 탈이 없고 건강하다는 판정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동락재로 향하고자 한다.


마당의 식구들 네 녀석의 양식은 충분히 주고 왔고, 두 마리의 토끼녀석 들도 충분히 먹이를 주고 왔는데, 혹시 토순이가 새끼를 분만하지나 않았는지 걱정이다.


이제 새끼를 낳을 때가 되어서, 집안에 새끼를 낳고 돌보아줄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 주기위해 적당한 나무상자를 만들어 그 안에 볏짚을 넣어 주고 오긴 왔는데, 부디 순산을 하여 건강한 새끼를 잘 길러 주었으면 좋겠다.


그 녀석들을 분양하기 위한 이웃들이 선착순으로 줄을 서 있는데........


어쨌던, 무덥고 공해에 찌든 서울을 떠나니, 마음이 가볍다.


그곳 동락재에 있으면, 세상의 모든 煩雜事를 깨끗이 잊어버리고, 살아갈 수 있는 순수함과 맑음이 있기에, 나와 나의 아내는,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복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아닌가? 부처님과 하늘에 감사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동락재를 떠나서 다른 곳에서 雜文의 글이라 할지라도, 자판을 두드리면 머리속의 생각이 실타래 풀리듯 풀리지 않고, 어딘가 매듭이 자꾸 지어 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벌써 나도 서울에서는 살 수 없는 토종 산골사람이 되어간다는 싫지 않은 증거가 아니겠는가?


동락재를 오래 비워두는 것도 싫은 것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동락재가 비어 있을 때엔, 이웃의 세 가구에서 뻔히 들여다보이는 곳이기도 하고, 더구나 요새는 농사철이 되어서 항상 이웃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감시를 하여 주시고 계시니, 아무런 걱정은 없다.

더구나 대로 옆에 있으니, 이웃의 많은 눈(眼)이나, 마을의 순찰대나 경찰의 순찰이 밤낮으로 빈번하니, 그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다.


그리고, 남이 가져갈 것이라면, 이 사람의 혼이 담긴 밖의 조각시설물이지만, 이제는 마을 모든 사람들이 아끼는 명물이 되어, 누구하나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어찌 매우 고마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제 또 다시 동락재에서 쓰는 통신이어야, 저절로 남이라도 쓴 시가 절로 머릿속에서 풀려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내 님을 그리사와 우니나니

산 접동새는 이슷하여이다.......“.라는

옛 시가 생각이 난다.


이름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팔자가 쎈 접동새.....


그것이 또한,  나도 그런 축에 끼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막연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생각을 해 보며, 

오늘을 접는다.


이 밤에도 피죽새의 울음소리는 간헐적으로 이어져, 동락재의 창에 울고 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