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놈은 사냥개라고 어찌나 바스락 거리는지, 방안에서만 놀다가 밖에서 가끔 풀어놓으며제 세상이다. 그저 만져주고 보듬어 주어야 좋아하니..... 꼭 가냘픈 여성과 같고녀.
이런 문짝으로 가리개를 만들어 달라는 사람이 많은데, 기실 이런 문짝의 가리개가 그리도 좋나?
어쨌던, 아내도 이런 것 하나 집에 놓자고 하니, 슬슬 만들어 볼까나?
그런데, 문창살 자르고 엮어 놓으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성질이 급하고 과격해서, 이런것 만드는 것은 조금.......
그래도 아내는 많이 놀란다. 그 性情에 소품들을 만들고, 목조각을 하는 것을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않된단다. 그럼 나는 뭐 그저 부수고, 차고 하는 것만 잘 하나?
얼마나 예술적 감각이 섬세한 줄을 알면서도..............
<동락재 통신-64: 때는 바야흐로 나물 캐는 철> 2006. 5. 2(화)
어제로써 사흘 연휴가 끝났다.
숲 해설가의 일을 맡고 있기는 하지만, 연 사흘 동안의 행락 철을 맞아 산림의 숲 보호 및 산불감시와 순찰 일을 병행하여 수행하느라 바빴다.
날씨도 좋았고, 연휴 기간 중, 단 하루 밤 사이에 豪雨性 비가 이곳엔 내렸지만, 아침이 되니 햇살이 언제 그랬냐는 듯 상쾌한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기도 했었다.
더구나, 이 강원도의 홍천은 산간지방이 되어서, 이제야 갖가지 나물을 따기 위해, 소위 읍내와 주로 근처 경기도의 직장인들과 여인네들이 나물을 캐러 다니느라, 혈안이 될 정도로 경쟁이 심하다.
이산 저산 모든 등산로나 출입구에는 승용차나 승합차, 트럭들이 어김없이 몇 대씩 서있고, 나물을 캐서 담을 망태기나 배낭을 메고서 다니는, 등산인 보다는, 나물 캐는 사람들이 더 많을 지경이다.
우리 동락재의 뒷산에도 나물을 캐러 가기 위해 운전을 하다, 부주의로 나무 울타리를 부수고 올라가기에 “멈추라”고 소리를 질러도. “나는 모르쇠”하고 도망가는 인사들도 있는 지경이다.
그러나, 오르고 내리는 길목이 여기 한 곳 뿐인데, 제 아무리 기름챙이 같이 도망을 간다 해도, 어디로 갈 것인가?
길목을 막아 놓으면 끝이지.
마침 뒷산의 주말별장에 휴일마다 내려오는 이웃 치과의사 부부가, 읍내로 아침 일찍 나무묘목을 사러 내려 갔다가오기에 “혹시 누가 댁의 집에 오기로 하지 않았느냐?” 물었더니, 아니란다.
그러면 분명히 모르는 사람들이 나물을 캐러 산에 오르기 위해, 간 것이 분명하므로, “그 차가 조금 아까 선생 댁의 철대문 안으로 제집 드나들듯이 주인의 양해도 없이 들어갔는데, 그네들을 보면, 남의 울타리를 부숴트린 것도 모르고 올라간 모양이니, 내려올 적에 날 좀 보고가라”는 말을 전해 달라 했는데,
조금 있다가 멀리서 보니, 그 차는 그 의사 댁에서 내려왔는데, 바로 그 의사댁 철문 밖에 세워두고는, 나의 전해 달라는 말을 듣고서도, 나에게 일언반구의 말도 없이, 콧방귀도 뀌지 않는 모양새였다.
하긴 남의 집 철문 안으로도 거리낌없이 차를 가지고 들어가는 인사들이니....
해서, 하도 괘씸한 자들이기에, 남의 기물을 부숴놓고도 모른 척 하는 호로 상것들이기에, “어디 이놈들 혼 좀 나볼래?”하는 생각에 카메라를 들고 올라가보니, 차 주인은 없고 차만 혼자 덩그라니 서 있었다.
해서 그 차의 뒷부분에 우리 울타리를 부수면서 긁힌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 있어서, 증거삼아 사진을 찍고,
앞 차창에 "이러저러 해서 당신이 우리 나무울타리를 부숴트렸는데, 아무리 큰소리로 불러도 듣지 못해서 그냥 올라 갔는지 모르지만, 내려오는 길에 나에게 들렸다 가시기 바랍니다“라고 정중하게 메모를 해놓고, 내려오면서 우리 울타리의 부서진 기둥과 나무와, 뒤로 후진하면서 생긴 그 자동차 바퀴의 흔적도 찍어 놓았다.
그리곤 경찰서에 전화를 해서, “어느 차가 우리 울타리를 부숴놓고 갔는데, 만약 그 차주가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를 하거나 원상복구를 해준다는 의사가 없다면 뺑소니로 신고를 하려고 하는데, 뺑소니의 죄가 성립이 되느냐”고 문의를 하니, “당연히 뺑소니이므로 신고를 하십시오” 하기에,
“좀 있다가 그네들이 내려와서 사과를 하고 인정을 하면 합리적인 선에서 양해가 되도록 해보고, 그렇지 않으면 신고를 하리다....”며 전화를 끊었다.
한참 후에 그들이 내려오다가 앞길에 차가 떡 막혀 있으니, 도망을 가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운전을 하던 친구가 차에서 내려,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있던 나에게 다가와, “아니 뭐가 어떻게 되었다고 그러십니까?”라며 아주 뻣뻣한 태도로 거만을 떤다.
나이도 40밖에 먹지 않은 녀석이.
그래서 “아니..... 여보시오 선생! 내가 할 일이 없어서, 저 산위에 세워 놓은 당신 차 있는 곳까지 가서, 이런 쪽지를 붙였겠소?
경우가 있는 사람이라면,
나도 운전을 하다보면 잘 모르고 가는 적이 있겠지만, 당신말을 그대로 믿고, 당신도 몰랐었다 칩시다.
그러나 내가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중, 울타리가 부숴지는 소리가 나기에, 내가 "스톱, 스톱, 스톱 하면서 후진하는 차를 서라고 악을 쓰듯이 소리를 지르면, 당연히 서서 뒤를 보고, 상황을 판단해야 할 것 아니겠소?
그리고 당신들은 네 사람이나 차에 타고 있었는데, 그걸 몰랐단 말이오?"
"그런데, 당신은 못들은 척, 그냥 내빼지 않았었소?"
"당신 눈에는 이 부러진 나무들이 안보이오? 이 바퀴 자국도 보이지 않고?"
“좋소! 그러면 그냥 가시오. 내가 증거로 사진을 찍은 것이 있고, 나는 경찰에 당신을 뺑소니로 신고하면 되니, 알았시다. 그냥 가소!”
라고 하니, 서너 놈이 “웬 늙은이가 별거 가지고 떼를 쓴다”는 눈초리로 쳐다 보고 있다가,
그제서야, “저는 정말 아무 소리도 못 들어서 그랬으니,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라며 야비한 꼬랑지를 내린다.
요즘 돼먹지 못한 젊은 놈들은 우선 목소리 크게 하고, 내 배 째시오! 하면 되는 줄 알지만,
내가 아무리 저보다 늙었다 하지만, 힘에서나 배짱에서나, 속된 말로 깡을 부리는 일에서나,
감히 하룻강아지만도 못한 놈이, 어디서 까불고 있다는 말인가?
내가 퇴직을 하고 이 강원도라는 바닥에 와서 속칭 일부 되먹지 못한 야바우 감자바위들에게 당한 생각을 하면 정말로 이가 갈리고 껍질을 벗겨도 시원찮은 놈들이란 마음을 가지고 있던 판이었고,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나한테 걸리는 놈만 있으면, 그야말로 단 한 놈이라도 뽄떼를 보여, 흔적 없이 모가지 부러트려 없앤다고 마음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 정도로 이 지역에서 나는 적지않은 재난(?)을 당했기에, 소위 이가 갈릴 정도였다. 물론, 다 내가 못난 탓이긴 하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자식을 위하여, 내 가족을 위하여, “다 내 不德의 소치로 여기고, 착하고 부처처럼 살자”고, 마음에 마음을 거듭 다짐하며 이렇게 부처연하고 살고 있는 터였다.
결국은 제 놈이 정중히 사과를 하기에, 용서를 하고 보낸 것이 엊그제의 일이었다.
지금, 이 지방 사람들은 나물 캐기 경연대회가 열렸는지, 산이나 들에 나물이란 나물은 싹쓸이를 해간다.
엊그제는 또, 요즈음은 하도 나물을 캐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거실 옆창 위에 바로, 마주 보이는 밭에 옥수수 씨를 뿌리고,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가지 않도록 끈을 매어 놓았는데, 그 밭을 태연히 밟고 다니면서 나물을 뜯는 젊은 30대 초반의 여자가 있었기에,
아내가 “거기는 씨를 심고, 울타리 까지 쳐 놓았는데, 함부로 밟고 들어가면 어떻게 해요? 빨리 나와 주세요!” 했단다.
나는 그 시간에 숲 해설가의 일로 산림관찰을 하던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미안한 기색은 전혀 없이 그것도 어슬렁어슬렁 아니꼽다는 듯이 기어 나오더란다.
이 시골이란 곳이 정말 싸가지 없고 경우없는 물건들이 많은 곳이다.
차를 운전해도, 좁은 샛길에서 나오면서도, 전 속력으로 돌진을 하며 나오는 것들은 거의 촌에사는 뱃짱 좋은 여자들이다.
이 물건들이 도대체, 사고로 인해 제 한 몸 죽어 없어지는 것이야 누가 상관하겠냐? 만은
왜 아무런 죄도, 잘못도 없는 선량한 다른 운전자까지 세상을 뜨게 만들려고 하는가.......?
얼마 전에는 신호가 파란색 신호등으로 바뀌어서 앞차를 따라 건너가고 있는데, 별안간에 앞차가 아무런 이유 없이, 교차로 상에서 속력을 급격히 줄이기에, 깜짝 놀라 급 정차를 하면서,
교차로를 지나 그 차 옆을 보니, 옆사람과 희희덕 거리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것 또한 젊은 30대나 됐을까하는 미즈족인가 하는 아이들이었다.
그 운전자가 남녀노소건 간에, 너무 화가 나서 그 차 앞에 내차를 세우고 “야! 이 쌍물건아, 죽으려면 너나 죽지, 무슨 짓이냐?”며 내려가서 정말 XXX를 비틀어 버리려고 했다.
그 낯짝에 짙은 화장을 해서, 화냥녀보다 더 하게 생긴 것이, 혼비백산을 하며 공포에 질린척 하기도 하고, 차들이 뒤에서 계속 오는 바람에 참고 그냥 보내기는 했지만......
만약에 호젓한 사람들의 눈이 없는 곳에서 그랬다면, 그것들을 멀쩡하게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의 심사가 요즈음 그렇다.
사람이 청운의 푸른 꿈(?)과 의욕을 가지고, 자진 명퇴를 하여, 일을 벌리다가, 모든 것을 다 잃게 되니, 포기와 증오와 殺氣만 등등 해졌다.
그런고로, 그런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보자고, 마음을 다짐해 보지만, 불뚝불뚝 惡毒한 생각들이 행동으로 뛰쳐나올 만큼 꿈틀거릴 때가 있어, 나도 내가 두렵다.
生佛이 되려고 피나는 노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얘기를 바꾸어서, 참 사람이 그렇게 생각을 하면 무슨 일이던지 다 부정적으로 생각이 되는 것이..........,
얼마 전에는, 나의 블로그를 방문한 사람의 블로그를 答訪한 적이 있었는데, 요즈음 세상에 자기의 시국과 정국에 대한 진심과 실상을 얘기하는 사람은 보기가 힘든 세상이고, 더구나 현 노무현 정권의 失政을 정당하게 비판하는 뜻있는 인사들이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아주 보기 드물게도 더러운 세상이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 않은 용기 있는 인사라고 느꼈기에, 그 블로그에 同質感과 意氣投合의 감정에 겨워 長文의 댓글을 띄운 적이 있었다.
블로거라고 하는 사람들이란 儀禮的으로라도, 제 글이 하찮은 잡글에 지나지 않아도, 상대방이 댓글이나 관심을 표하면, 짧은 인사성 글에는 일일이 댓글을 달지는 못하더라도,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게 마련이며,
더구나 장문의 댓글로 격려를 해주면, 그에 대한 관심의 고마움으로 답글을 쓰기 마련인 게다.
그가 아무리 최고의 권력자이건 석학이건 간에.
아니 돈이 아주 많은 벼락부자나 벼락재벌이라면 몰라도. 왜냐? 그네들은 돈이 지상최고의 목적이므로.
그런데, 나의 댓글에 아직도 그 인사는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내심 “내가 그 인사의 속마음과는 전혀 다른 오해를 하고 있는 바보가 아니었나?”라고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어쨌던 간에, 저 만 못하게, 知識과 學識과 현실에 대한 認識과 사회적인 인정을 받지 못한 개차반은 아니었는데, 그런 자에게 홀대를 받은 기분이어서, 생각같으면, 불러내어 자식의 건방진 버릇을 고치고 싶은, 매우 격분에 하여 격앙된 마음이었으나,
生佛이 되려고.........,
단군왕검 神話의 곰이, 인간이 되기 위해 그 긴 忍苦의 세월을 견뎠듯이, 나 역시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그런 하찮은 자들에 대한 기억은 버리기로 했다.
참 시답지 않은 자들에게, 시답지 않은 꼴을 당했을 때처럼,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 같다.
다 내 탓이 아니겠는가?
전생의 두텁고, 깊은 업장을 멸하기 위해 마음을 다시 가다듬으며, 그 강력한 욕설의 上王인, 원자욕연구소의 소장직은 이제는 탄핵되기 전에 사퇴를 하는 바이다.
나의 가족들을 위해, 나의 맑은 정신과 마음을 위해, 오로지 웃는 염화시중의 미소를 만들다 보면, 스스로 가식의 표정과 마음도 반복하다보면, 다 진정한 내 것으로 변모가 되리니.
세상이란 어차피 가식과 허위로 살아가는 인생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지 아니한가.....?
나는 요즈음 나를 갈고 또 닦고, 또 갈기 위해 五車書는 아니지만 옛 고전의 말씀을 틈틈이 마음에 담으며 자신의 허물을 하나하나 벗겨 나가고 있다.
지금은 “大學”의 “致知在格物”이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모든 사물을 더욱 더 알고, 사랑하기 위하여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하여 삶에 精進하고자 한다.
“앎에 이르는 것은 사물을 극진히
탐구하는 데 있다.“
속이 좁고, 모든 것을 시류와 남의 탓으로 돌려 위안 받고자 하는 어리석고, 비겁한 마음과
남의 잘못된 행동과 마음을 보면, 내가 바로 잡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날뛰며, 모질게 욕하고, 행동으로 고쳐준다 한들, 세상 모든 인간을 고쳐 나갈 수가 있겠는가?
그보다, 나를 고쳐 나가는 것이, 더욱 쉽고, 더욱 편안한 일이기에, 나도 이제 편안함과 적당한 타협과, 적당한 더러움을 참으며 즐기고자 한다.
莊子의 “德湯乎名”이 곧 나에게도 맞는 말이겠거니 하며 스스로를 높이기도, 낮추기도 하며 춤추는 世波에 아울려 살고자 한다.
덕이 없는 명성이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니
덕이란 것은 명성이란 것에 이르면 끓어서 증발되어 버린다 하지 않는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기 위하여 전봉건의 “사랑”을 吟味해 본다.
사랑한다는 것은
열매가 맺지 않는 果木은 뿌리째 뽑고
그 뿌리를 썩인 흙 석의 해충은 모조리 잡고
그리고 새 묘목을 심기 위해서
깊이 파헤쳐 내 두 손의 땀을 섞은 흙
그 흙을 깨끗하게 실하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아무리 모진 비바람이 삼킨 어둠이어도
바위 속보다도 어두운 밤이어도
그 어둠 그 밤을 새워서 지키는 일이다
훤한 새벽 햇살이 퍼질 때까지
그 햇살을 뚫고 마침내 새 果木이
샘물 같은 그런 빛 뿌리면서 솟을 때까지
지키는 일이다. 지켜보는 일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
'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 > 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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