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등산로 입구에 있는 성황당
홍천 구성포에서 인제, 서석, 창촌, 양양 방면으로 향하는 56번 도로의 솔치재 터널.
이제는 홍천에서 수타사방면의 동면의 속초, 노천, 서석으로 가는 지방도 444번 도로가 더 호젓
하고 경치가 좋아, 이쪽 길로 인제, 양양, 평창, 강릉으로 가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다.
서석의 어론리 너사메기라는 임도 입구에서 바라본 밤나무골의 수려한 풍광. 금강산보다는
못하지만 설악산의 정취는 느낄 수 있다.
지금은 입산금지 기간이지만, 5. 1 5이후에는 트래킹을 할 수가 있다.
<동락재 통신-63: 자원봉사를 자처하며> 2006. 5. 1
벌써 5월의 첫 날이다.
예전 젊을 적엔 가을이 좋다고 겉멋을 부려 보았는데, 지금은 따뜻하고
화사한 5월이 좋다.
4월은 너무 황무지처럼 삭막하고, 黃砂에, 바람에,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않아서 싫다.
산과 낚시에 한참을 미쳐 있을 60년대 말에서 70년대까지에도 4월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4월의 釣況이라는 것이 그리 좋지도 않았지만, 그저 긴 겨울, 忍苦의
세월을 봄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지루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얼음낚
시를 하긴 했었지만, 추위에 뜨거운 라면 국물에 쇠주 한 잔, 그리곤
따끈한 커피 한 잔에 꾼 친구들끼리 정담을 나누는 그러한 재미였지,
실로 붕어을 많이 낚는 그러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낚시는 아니었기에.......,
낚시의 계절도 5월이 좋다.
新綠의 푸르름, 그 속에서 나의 온 마음의 넋을, 자연의 변화하는 푸른
색에 도취하고, 철 이른 잠자리가 낚시의 초릿대 끝에서 졸고 있는 그
靜寂 속의 낭만을 낚시를 해보지 않은 이라면 어찌 알겠는가?
낚시를 배우던 초기 한 10년간은 釣況과 낚이는 붕어의 크기에 집착을
하고, 왼갖 낚시 미끼의 秘法을 알아내고 傳授받기 위해, 별의 별 짓도
다 해 보았지만, 그 10년이란 세월이 지나면서부터는, 그냥 하늘의 흘
러가는 구름과 대화를 하며, 머릿속에서 구름의 이야기를 彩色하고
그림을 구상하면서, 비록 옆에는 없지만 많은 벗들과 아내와 자식들과
의 대화를 나누는, 그러한 午睡가 밀려오는 오후의 寂寞을 간간이 깨는,
낚시를 던지는 시끄럽지 않은 조용한 소리만이 주변에 꽈 차있어,
졸려옴의 시간을 깜짝 놀라, 무거운 눈꺼풀을 잠시 열어보는 나른한 오
후의 균형을 깨곤 했었다.
산을 다니면서는 정상을 오르고자 말도 아끼고, 오로지 산을 오르는
그 행위 외에는 모든 잡념을 물리치고, 젊을 적 나이의 사람이 오직 세
상의 頂上만을 향하여 오르듯, 정상만을 향해 정진했지만, 그 모든 것
들을 다 움켜쥐기 위해, 양보도 自制도 없이 그저 자기 인생의 “自重自
愛”의 적절한 울타리를 넘어, 모두를 탐하는 그 시절을 겪었지만,
결국은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빈 하늘만 가득한 모습이 아니었던가?
떠도는 구름마저 잡지도 못하며, 그저 덧없이 바라보는 하염없는 시선
만을 보이지 않았던가?
요즈음은 농사철이 되어, 자그만 텃밭에 씨를 뿌리고, 가꾸어, 되도록
자연 그대로의 소채를 먹기 위하여(아니 그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멀
리 장에 나가서 돈을 내고 사먹지 않고, 내 테두리 주변에서 자급자
족하기 위한 것이, 우선이겠지만) 정성을 들이고, 청정채소 수확의
기쁨을 느끼기 위해 밭을 일구는 일에 매어있어 바빴었다.
아무리 적은 텃밭이라 해도, 농사를 짓는 농사꾼이 5,000평의 밭을
農機械로 일구는데 5시간 밖에 안 걸린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50평의
땅을 직접 손수 삽과 곡괭이로 땅을 파고 일구는 데는, 하루 종일의 시
간이 걸림은 물론, 그 많은 땀을 흘리며, 다음 날은 허리가 아파서 제
대로 펴지 못하고 엉거주춤 일어서서 일하는 꼴을 보면, 가히 可觀이
라 혀를 끌끌 찰 일이다.
그래서 해마다, “에잇! 내년에는 아주 조금만 농사를 짓자! 고추 모 50개
상추, 쑥갓 약 5평, 오이 모종 댓 개만 심는다며, 막상 땅을 일구고 파고
하다보면, 또 욕심이 생겨 다시금 콩도 심고, 도마도도 심고, 고구마,
옥수수, 부추, 아욱, 파........별의 별 야채를 또 다 심게 된다.
매년 올해는 농사 그만 짓고, 목공예작업에 전념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해도, 作心三十分이다.
더구나 아내가 “이것도 좀 심고, 저것도 좀 심자”고 하면, “그러자”며
해놓고, 막상 심을 때는 힘이 들어, 아내에게 짜증을 내며, “자꾸 이것
저것 심자고 얘기하지 말라”며........화풀이를 하곤 한다.
그러면 또 싸움이다.
그러면 그렇지, 하루도 싸움을 하지 않으면 입안에 커다란 까시가 돋는
데 어쩌랴.
그렇게 싸우면서 서로 얼굴을 보고 웃는다.
아내는 그러면 “내가 심자고 했을 때, 왜 가만히 있다가 힘들면, 나에게 뒤
집어 씌우냐”는 얘기고, 나는 “순진한(?) 서방에게 이것저것 자기가 먹고
싶은 야채는 다 심자고 슬며시 꼬드겨 넘어가게 해놓고서, 이렇게 힘들게
한다”고 악다구니를 쓴다.
아내도 교통사고 이후로 오른 팔이 매우 아플 테지만, 그저 내 손으로 깨끗
하게 가꾸어 먹고, 자식에게 좋은 청정야채를 먹이는 흐뭇한 마음, 또 친구
에게도, 친척에게도 나누어 주는 재미에 이미 익숙해 있어, 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마음은 이 서방이라는 인사도 아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
지만 서두.
하여튼 지간에, 일을 할 때는 힘이 들어, 곡괭이를 내 팽개치고 싶을 때가
있다.
더구나 요즈음은 나물이 나기 시작하는 철이라서, 고사리, 곰취, 미역취, 그
리고 이름을 모르는 많은 청정 나물과 두릅을 따기에 하루해가 모자란다.
마당의 꽃도 함께 가꾸어야 하고, 벌써부터 잡초를 뽑아내야 하니, 이제부
터는 잡초와의 싸움이다.
나훈안진 뭔지 하는 가수는 “雜草니 어쩌니” 하면 노래를 불러댔고, 명이
아주 긴 金大中이라는 인사는 지난 방북때, 대통령이라는 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게 김정일이 놈과 어디서 무슨 짓거리를 했는지도 모를 시
간을 또 즐기려는지, 또 북한엘 못가서 안달 발광을 하는데, 그 인사가 대
통령이 되고자 제 조상 묘를 호화판으로 옮겨놓은 것 은 고사하고, “民草”
다 어쩐다 하며, 어리석은 자들을 이용해 제 일신상의 욕심을 채우려고,
죽어도 대통령 한 번 해 먹으려고 “民衆”이라는 잡초를 진저리가 나도록
이용해 먹었지만, 그 결과 지금 이 나라가 이 꼴이 된 것 아니겠느냐?
제가 노동하여 벌어먹지 않은 인사가 무슨 “民草”니 “雜草”를 알겠느냐?
어디 한 번 너희들이 농민들을 괴롭히는, 너희들과 같이 질기고, 명이 길며,
뽑아도 뽑아도 다시 살아나는, 난도질을 해도 시원찮은, 징그러운 잡초 한
번 뽑아 보아라.
쥐뿔도 모르는 인사들이 주둥이만 살아서 제 일신의 영화와 욕심을 채우는
데 부려먹는 것이 “民草”이고 “雜草” 이지만. 정작 “민초”들은 너희들이 이
용해 먹은 “잡초” 때문에 죽을 지경이라는 것을 아는다? 모르는다?
하긴 아직도 덜 떨어진 일부 00놈들은 김대중이다 노빠다 하면서 10년 20
년 해먹을 벼락 맞을 짓을 하고 있기는 하다.
고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이 10년 집권한다고 지랄발광, 게거품을 물던 놈
들이, 이제는 저희들이 20년 30년 해먹자고 눈깔들이 벌개 있다.
얼마나 웃기는 자들인가? 물론 당사자들은 안 그러리라고 믿고 싶다.
狐假虎威하는 개만도 못한 놈들이 하는 짓거리들이겠거니 생각하고 싶다.
잡초 얘기하다, 또 더러운 정치하는 놈들 얘기에 또 입을 버렸다.
아! 이제는 정말 더러운 놈들 때문에 흥분하지도, 관심 박으로 나가 있을 것
이다.
더러운 것은 치우고, 좋고 밝은 것만을 생각하고 이야기하고자 한다.
어쨌던, 이제부터는 농사일로 하루가 모자란 판인데, “숲 생태전문가”니
“숲 해설가”니 하면서, 일을 한다고, 매 주말 토, 일요일에 하루 종일 산에
가서 산림이나 산불 감시, 순시 업무도 하며, 입산금지구역에 출입하는 무
법자들 계도하는 일로 바쁘게 보내는데,
며칠 전엔 또 오지랖 넓게,
부근의 軍敎育隊에 도서관 운영(도서관장의 직도 겸직한 경험도 있을뿐더러,
사서의 자격증도 소지하고 있으므로)과 敎育兵과 基幹兵들의 兵營生活의
애로와 고민에 대한 相談士를 자처하고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군부대장에게
서신으로 제의를 하였더니,
오늘 부대장께서 동락재로 찾아와 봉사의 개략적인 협의를 하고, 조만간 확
정이 되면 시작을 하기로 약조를 하였다.
이 한 몸 필요한 곳이 있다면,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하는 한, 열심히 일을 한
다는 것이 나의 의지이다.
더구나, 병역기피를 하고자, 종교인지 저희들 하느님인지, 뭔지를 팔며 회
피하는 그 부모와 그놈의 자식이라는 물건들이 우선적으로, 이 나라에서 없
어져야 할 종자들도 있지만, 오로지 국가의 부름에 비겁하지 않고 당당하게
응한, 우리의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내가 도울 수 있다면, 퇴직한 퇴물이
봉사를 할지라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어쨌던 나는 나에게 주어진 나머지 시간을 최후의 한 조각까지 열심히, 共
同의 利益과 弘益人間을 위하여 쓰고 싶다.
그런데, 걱정인 것은, 나의 주된 전통목공예와 그림 작업의 일은 아예 멀리
제켜 놓고, 다른 일만 벌려 놓으니, 어쩔려는지 나도 모르기는 하다.
그러나, 의도가 불순한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내가 지방의원에 나가고
자 기반을 다지는 일도 아니고 인기관리를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니, 나를 보
호하는 수호신께서 나의 건강과 청정한 마음은 지켜 주시리라 믿고 있다.
그래도 금요일 밤에 딸이 내려와, 같이 밥도 먹고, 잠도 같이 자고
제 또래의 친구들 부모보다 나이가 많은 엄마, 아빠의 힘든 밭일을 도와준
다며,
할 줄도 모르는 호미질도 해보는 자식의 모습이 옆에 있으니, 마음은 부자
처럼 넉넉하다.
아들마저 같이 와서 우리 온 가족이 밭을 매는 날이 빨리 오기를 부처께 깊
은 열망으로 염원하니, 좋은 날이 빨리 오리라 기대한다.
오늘은 모처럼 法句經의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본다.
나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며......
好經道者 不競於利
有利無利 無欲不惑
바른 道를 즐기는 사람은
이익을 위해 다투지 않나니
이익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욕심이 없어 혹하는 마음을 갖지 아니한다.
'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 > 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락재 통신-65: 사랑하는 후배의 방문 (0) | 2007.04.03 |
---|---|
동락재 통신-64: 때는 바야흐로 나물 캐는 철 (0) | 2007.04.03 |
동락재 통신-62: 미친 놈이 시를 쓰다 (0) | 2007.04.03 |
동락재 통신-61: 길동이 집 페인트를 칠하고....> (0) | 2007.04.03 |
동락재 통신-60: American Cocker Spaniel을 입양하고..... (0) | 2007.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