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工藝作家끼리 하는 얘기가 있다. 작품이 꼭 작가를 닮는다고.....
그런데 이 양반탈은 나를 훨씬 능가하게 잘생기고 유머러스 하게 생겼다.
나도 이 탈을 닮았으면.
이 말뚝이 탈이야 말로 내가 닮은 것 같다. 저 욕을 무지하게 잘 할것 같은 입이, 왕년 젊었을 때의 내
별명 "原子辱 硏究所 所長" 지금은 "더러운 욕쟁이 할배"와 한 군데도 틀린 곳이 없다.
꼴에 油畵를 그린답시고, 붓깨나 닳게 하고, "Grumbacher"니 "Holbein"이니 "Namura"니 "
Babara"니 하면서 국산 물감과 붓은 표현과 텃치에서 제대로 표현이 안된다는 둥, 눈부시게 꼴값을
떤 적이 적지 않았던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山村의 어두운 밤 눈오는 밖에 나가서, 날리는 눈발에 삽질을 하다가, 제풀에 지쳐
삽을 두어개 눈밭에 꽂아 놓고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눈발을 세어 본, 촌에서의 미친날도 있었지........
지금 여기에 서있는 차는 강원도의 구석구석을 돌아 다녔던, 나의 애마 갤로퍼 였는데, 눈길 사고로
종이처럼 구겨져 폐차를 시켰다.
4-5년전 동락재에 혼자서 머물면서 이 녀석과 말없는 대화를 나누곤 했었지........
그러다가 한 겨울도 지나 봄이 다 가고, 여름이 문지방을 넘어 올 때, 주둥이 크고 길다란 기러기의 뒤에
구상나무의 솔방울같은 열매를, "솔방울도 아닌 것이 술을 담그면 맛이 있을까?" 하고 멍청한 뱃놈처럼,
한심한 마음을 먹더니, 결국은 그 탐스런 구상나무를 부정타게 하여 죽여놓지 않았던가........?
아! 옛날 나의 구상나무여. 이제는 볼 수 없는 나의 구상나무야!
나무 관세음.............
<동락재 통신-62: 미친 놈이 詩를 쓰다> 2006. 4. 29
술을 먹으면 詩가 나온다
新春文藝 등단한지 40년 된
詩人인 내 친구가 보면
"개나, 소나 다 詩를 쓰고"
"더구나 너 같은 놈이 詩를 쓴다고
지랄하고 자빠졌으니,
나는 가야 겄다”라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말을 하겠지.
그런데, 詩人아!
詩란 것이 무엇이냐?
너는 진정 詩란 것이, 무엇인줄을 알고
詩라는 것을 쓰고 있는 것이냐?
나는 네 놈이 나에게
꼴 값, 六甲을 떤다고
얘기를 한다 해도,
또, 네가 앞에 둔,
盞에 있는 말간 물이
술이라며
너는 “술을 마신다” 하지만,
나는 “술을 먹는다” 이놈아!
네 말처럼
지금은 개나, 소나,
돈이 조금 있으면, 책을 낼
여분의 돈이, 아주 쬐끔 있어도
詩人이 되고자, 作家가 되고자
글을 쓰고 詩도 쓰더라만은
그런데, 글이란 것이
추천이다, 제자다,
나의 무엇이다 하며
地緣, 學緣, 人緣,
어쩌구....... 하며
돈이 있는 사람만 쓰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그냥 끼리끼리,
패거리 끼리, 희희덕 놀다가,
또 서로 웃다가, 욕하며
아니면 배짱이 서로 맞는다며
2 차라던지, 노래방이라던지
아니면 密室에서 더욱
詩다운, 글다운
글 얘기를 한다며
밤을 지새우며 논다고(Playing)
네가 얘기하지 않았더냐?
이젠 너도
모두를 버리는 것이
그리 아깝지 만은 않을 거다.
그냥 버리면
모두를 얻는다는 것이
나의 詩이며, 나의 肉聲이란 것을
너에게 얘기하며,
이제는 손을 잡자.
악수를 하자.
그러나 손끝만 살짝 잡는
시건방진 짓거리는 하지마라.
그러면 네 놈은 나에게
손목이 부러져
글을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하찮은 놈들
손잡을 나는 아니지만,
세상은 또 그런 놈들 혼내주라고
내 등을 떠민다 할지라도,
그러나, 이제 나도 나이 六十,
“육실 할”이 아닌, 육십을 넘어
고갯마루에 앉아
몇 년을 끊었던
담배 한 대 물고
저 산 골짜기 자락 위에
허전한 視線을 던지며
나를 버리고 있다.
더러운 인사들
눈길 섞지 않으려........
내 손, 내 마음에
"겨"도 "똥"도 묻히지 않고
그냥 가련다.
주접의 흔적을 망각하며,
그냥 부처처럼
흔적 없이,
산비탈 자락에서
나무를 다듬으며
나를 버리고,
찾고, 또 버리고
그러면서 모두를 얻기 위해
나는 부자가 된다.
그냥 그 뿐이다.
"이게 다"이다.
이제 잠시 글 올리는 주접은 그만 떨고, 작업에 정진을 해야 할 것같습니다.
옛날 한 2-3년 전엔 카페에 글을 올리면 제법 적지 않은 이들이 공감과 격려도
하며, 서로의 교감을 나누었는데,
이제는 그 십분지 일도 않되는 사람만이 들렸다가는........,
사람들이 써먹지도 않는 감각과 사상, 그리고 요즈음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과는 전혀 다른, 如夢幻泡影의 세상에서 노는 것 같아서, 이제 그만 말도, 글
도 같지 않은 헛소리 그만하고, 내 작업에 정진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깊은 이야기를, 그리고 명경지수와 같은 "인생의 비움"을 실천하고자 하는 소
위 마음을 통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과의 교감을 하고자 합니다.
공연히 남들의 신명나는 잔치에서, 탁배기 그릇을 내 던지는, 물을 흐리는 존
재는 되지 않아야 되니, 이제 그만 나의 우거 同樂齋에서 기약없는 시간을 머물
고자 합니다.
또 적막의 깊은 시간 속에서 견딜 수 없는 외로움에 몸서리가 쳐지면, 또 그간
몇 분의 육성이 그리워 못견디게 된다면, 다시 나의 고적함을 걷우어 주십사며
글을 올릴 날이 있겠지요.
그러나, 글을 올리지는 않더라도 자주 들리기는 할 터이고, 좋은 자료는 스크
랩도 할 겁니다.
그러한 利己를 욕하지 말고,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莊子의 無聽之以耳 라는 말을 남기고 갑니다.
혹여, 카페의 가족들께 섭섭하다거나 마음이 허전하여서는 전혀 아니니, 곡해
는 하지 말아주시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밝고, 따뜻하게, 누구하고나 공감하는 정감을 나눌 수 있는 마음으로 돌아오고
자 합니다.
나는 글을 쓰는 작가도 아니며, 인기를 위해 허상과 허위의 열거를 밥먹듯 하는
단지, 글을 業으로(?) 쓴다는
나의 지인을 포함한, 일부 문인(?)들의
가증스런 일상을 혹여라도 모방하지 않을까 하여
잠시 자신의 숨을 고르는 春安居에 들어가려는 작업이니까요.
그동안 허접하지도 못한 "젊은오빠"의 글에 귀찮으셨을 텐데도, 일일이 댓글을
달아 격려 해주신, 우리 주인장님, 그리고 여러 가족님들 대단히 고맙습니다.
그리고 비록, 잠시 카페에 글을 올리지 못하더라도, 제 블로그에는 일기처럼 저
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으니, 만에 하나 저의 작품이라도 보실 마음이 있으시면,
블로그에 들려 주십시오. 그윽한 茶香과 정이 넘치는 차를 대접하겠습니다.
또한, 이곳 강원도의 산촌 홍천이 멀다고는 하지만, 서울에서 1시간 30분 거리
이므로, 강원도의 맑은 콧바람도 쐴겸, 이 사람이 내놓는 차 한잔 앞에 두고, 우
리네 사는 이야기 그냥 부담없이 나누실 분,
잠시 머리를 쉴겸 나들이 하실 분들은 언제고 들려주시면, 버선발로 뛰어나가
반가이 맞이 하겠습니다.
부담없이 들리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채찍을 들어, 스님에게 죽비를 맞는 마음으로 莊子의 말씀을 되새겨 봅
니다.
귀로 듣지 말고(無聽之以耳) 마음으로 들어라(聽之以心)
그러나, 이것으로 만족하지 말지어다
마음으로 듣지 말고 (無聽之以心)기로 들어라(聽之以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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