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동락재 통신-59: 세무쟁이 오랜 친구의 편지를 받고

sosoart 2007. 4. 3. 22:01

 

 

 

<동락재 통신-59: 세무쟁이 오랜 친구의 편지를 받고>

 

 

오랜만에 자네의 편지를 받아 보네.


자네가 홍천을 떠난 지가 벌써 5년이나 되었나?


아무튼 이 백수들이 세월이 그렇게 빠르게 지나는 것을, 어이 알기나 하겠나?

강요된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섞는 줄은 모르고, 제 얼굴의 터럭이 언제 하얗게

세었는지, 머리털은 어느 사이에 다 빠져, 등잔 없이도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

는지도, 전혀 가늠을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네.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仙界의 神仙이 따로 없다고들 말들을

하고 있네만,  衆生들과 섞여 호령하는 자네들이야,  어찌 神仙의 인간에 대한

걱정살이를 알 리가 있겠는가?


자네도 자네의 직업에서 한 길로 계속 정진하였기에, 국세행정에 관해서야 당

연히 입신의 경지에 올라야 하는 것 아니겠나?

자네의 세금 징수에 관한 일화는 젊었을 적,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膾炙되며 우

리를 즐겁게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자네처럼 국가 세무직 공무원들은 순환보직이 되어 근무지를 자꾸 옮

기게 되니, 그것이 좀 애로사항이긴 해도, 이 나이까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의 경우에는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되어 있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순간 적인

판단착오로, 제발로 명퇴를 하고 좋은 직장을 차고 나왔으니, 후회가 막급이지

만, 어쩌겠나?

세상사 너무 모른 책상물림 탓에 제 복을 제가 차버린 꼴이 되었으니.


이제와 생각하면, 명퇴 후 다른 곳에서 또한 일을 하게 된 것이,  또한 나에게는

福이었는데,  그 또한 이사장과의 운영방침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그 좋지

않은 性情을 이기지 못해, 또 한 번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으

니, 나라는 존재는 아마 영원한 철부지 아니면, 항상 理想만을 꿈꾸며, 제가 무

슨 正義社會 具現의 사도랍시고, 꼴값을 떨었는지?

지금 생각을 해보면, 절로 웃음이 나오는 일일세 그려.

철이 나려면 멀었지.  그런데, 그게 다 내 팔자려니 하며 마음을 고르고 있다네.


무릇 인간이란 제 앞길은 제가 닦아 나가는 것이니, 그것이 잘못 닦여졌다고,

세월이나,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가 그렇다고 엉뚱하게 거기에 모든 탓을 뒤집

어 씌울 일은 전혀 아니고, 모두 다 내 탓이 아닌가?


그렇다고, 옛 추억에 젖어 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그 꼴이란 것은 더 우

습게 되어버리거나 우울증의 늪에서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 아니겠나?


퇴직 후, 많은 일들을 겪었네.


“사람 사는 일이란 것이 다 그렇고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활과의 타협도

하게 되었고, 종국에는 까마귀 노는 골에 가기 싫어서 내 발로 이 홍천의 산골

짜기, 좁은 자락의 한 모퉁이에서 “그저..... 숨 쉬며 살고” 있다네.


남에게 죽었다는 모습 보일 필요 없고, 또 그렇게 보이기 싫어 몸부림을 치고

있을 뿐, 허위로 가장하지 않으며, 내 마음을 내 스스로 속이지 않으며, 그냥 비

우며 살고자 하네.


이제 가진 것 하나 없지만, 한 티끌의 남은 먼지라도 無心히 털어 버리며 無念,

無常의 어렴풋한 안개 속을 거닐며, 내 비록 佛子는 아니지만 諸法無我, 一切皆

苦와 함께 모든 존재의 속성  三法印을 이룬다는, 그 理致가 무엇인가?를 내 숨

을 멎는 날까지 알 수 있을까? 생각을 하며 山村居士로 모든 것에서 벗어나, 나

의 木藝術의 四圍 內에서 몸소 생각하고, 작업하고, 책 읽으며, 生佛이 되리라

는 夢幻 속에서 오늘이란 시간을 아깝지 않게 써 버리고 있네.


속세의 진한 緣과 더불어 생활하는 자네들은 나를 보고 神仙입네, 부럽네, 좋겠

네 하며 립 써비스(lip service)를 하지만, 이렇게 살아본 사람들만 아는 시답지

않은, 쌉싸름한 세계도 있기는 하네.

남들이 나를 속세의 잣대로 가엾게 보든, 걱정스러운 이상한 눈으로 보든 나에

겐 전혀 상관은 없네.

인생이란 사는 법이 다, 다르듯이 나는 이제 이렇게 살다가 갈 것이네.


세월이 급변하게 되어, 언제 또 下山하여 뭇 衆生들과 아귀다툼을 벌이며 살아

갈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서, 무어라 예측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네 자그만

인간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되도록 이면 나는 여기서 오랜 시간을 살고 싶네.  그것이 내 소박한 소망일세.

그래서, 이런 저런 만남(因緣)을 통해,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에 대해, 더 省察

을 해보고,

또 우리네 인간들이 겪고 있는 희로애락도 마다하지 않고, 더욱 겪어볼 생각이

기도 하네.

내가 깊은 산사의 선방에서 참선을 하는 스님이 아닐진데, 나에게 가까이 다가

오는 모든 인간 속세의 연을 일부러 끊으려 하지는 않겠다는 말일세.


그렇게 이런 저런 모든 세상의 人間事를 겪으며, 나의 구축된 세계에서 일탈하

지 않으며 살고 싶다는 희망이 있다네.


그리고 자네가 國稅誌에 기고한 글의 내용을 보기 위해선, 아무래도 도서관엘

가서 보아야 하겠지만, 가능하다면 한 권 보내주면 좋겠네.


산촌에서 그런 글을 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말일세.


자네가 홍천세무서장 시절, 여러 친구들과 이곳 동락재에서 하루 밤을 보냈던

것이 엊그제 같고, 난 자네가 여기서 1-2년은 더 머무를 줄 알았는데, 근무가 1

년 단위로 순환이 되는가 보네.


어쨋던 시간이 나면 한 번 오게나.


홍천에서 옥수수시험장 장을 맡고 있는 민군은 그 사이에 한 번 잠깐 보았네.

이 근처에 왔다가 잠깐 동락재에 들렸다 갔는데, 역시 산골에 묻혀 있는 직업이

없는 백수를 만난다는 것이, 거리나 시간상으로 모두들 마음이 편하진 않은 모

양일세.     


오랜만에 자네의 소식 들어서 반갑네.


국가의 합리적인 稅政具現을 위해 나머지 길지 않은 시간, 헌신하여 주시기를

바라네.


자네의 벗이 동락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