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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락재 통신-82: 남도기행 2 순천에서 목포까지

sosoart 2007. 4. 7. 15:49

<동락재 통신-82: 남도기행 2- 순천에서 목포까지>

 

여수 돌산도에서 다리를 건너 시내로 들어서면서 한참 찾아 헤맸던, 현지민들이 적극 추천한 황소식당

이다. 게장백반이 단돈 5,000원인데 푸짐하고 맛도 그만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아침시간 너무 일찍 가서 맛도 못보고 나왔다.  바로 길 건너에 식당 직영 게장판매소가 있다. 여수로 여행하는 분은 꼭 들려 보시기를...

 

 

여수에서 순천가는 길의 가로수가 제주도처럼 이국적이다.

 

순천만의 갈대밭 입구의 나무다리에서 내려다 본 수로의 모습.  고깃배가 한가로이 떠있다.

 

갈대밭 초입의 선착장. 순천만을 돌아볼 수 있는 관광선과 고깃배들이 떠있다.

 

순천만 갈대밭 탐사를 위하여  입구의 이 다리는 꼭 건너야 한다.   다리에서 멀리 바라보는 갈대밭이

장관이다.  

 

갈대밭이 펼쳐져 있는 사이로 수로들이 여기 저기서 보인다.

 

아직 조금 이른 시기여서 갈대가 누렇게 되지는 않았다.

 

갈대밭 사이로 데크가 놓여져 있어,  갈대와 뻘을 관찰할 수가 있고, 이 길은 전망대로 오르는 길로 연

결되어 있다.

 

갈대밭 중간 중간에 뻘들이 보이고, 그 뻘 위에서 이러한 작은 게들이 기척에 놀라 순식간에 구멍을 파

고 숨는다. 이러한 뻘과 수서 생물들의 보고이며 철새들의 도래지이기도 하다.

  

이 뻘밭 위엔 수천 수만 마리의 게들이 오물거린다.

 

데크의 길이가 모두 십리는 조히 될 것 같다.

  

아직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인지 버린 쓰레기 등이 보이지 않아 유쾌한 마음으로 뻘과 갈대와 바다

의 수로를 감상할 수가 있었다.

 

민물 수로 같았으면 아마도 붕어, 잉어들이 득시글 거릴 것만 같다.

 

유람선인가 보다. 무리의 사람들이 뱃머리에서 뭐라 큰소리로 얘기하는 소리가 스쳐 지나간다.

 

하얀 갈대의 깃털들이 가을로 치닫고 있다.

 

이 수로 속에는 아마 망둥이나 그쪽 사투리로 짱뚱어도 많이 있을것 같다.

 

산으로 올라 전망대에서 바라 본 순천만의 모습

 

군데 군데 둥그런 섬과 같은 갈대밭은 인위적으로 조성해 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일엽편주가 넓은 바다를 힘겹게 가르고 지나간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사람들

 

갈대밭이 짐짓 어림잡아 3-4십만평은 될 듯하다.

 

갈대밭 초입의 선착장.

아쉬운 것은 순천만 갈대밭에 관한  안내 팜프렛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순천의 낙안읍성 입구의 잔디광장.

마침 초등생들이 소풍을 나왔는지, 조무래기들의 지저귐이 활기를 준다.

 

조금은 너무 인위적이기도 하지만, 그나마 이렇게라도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

 

왜 성문앞을 시야를 가리며 답답하게도 이렇게 성곽을 쌓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적들에게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위한 자구책이었나? 생각을 해본다.

 입장료는 대인 2,000원이다.

 

실제 주민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낮이라서 그런지 거의 기척이 없는 집들이 많다

 

초가집과 돌담 골목길.  아련한 어렸을 적 기억이 향수에 젖게 한다

 

대갓집의 건물처럼 솟을 대문이다.

 

전시관에 마련된 옛 생활도구들.  아직도 사용되는 것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사용하던 일상의 도구

들을  이제는 이런 전시관에서나 볼 수 있다는 것이 점점 아쉽고, 안타까워진다.

 

이 낙안읍성의 위치는 전남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서내리, 남내리에 걸쳐 있다고 한다.

 

면적은 67,490평(성내 41,018평, 성외 보호구역 26,472평)이라 한다.

 

인구 및 가구는 229명, 85세대로서 성안에 63세대, 성밖에 22세대가 실제 거주하고 있다한다.

 

국가지정 소장문화재는 성곽 1,410미터, 중요민속가옥 9 동이 있다고 한다.

도 지정문화재는 객사 1동, 노거수 15주(여기에도 한 5백년은 됨직한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다)가 있으

며 도 문화재자료로는 임경업 군수비각 1동이 있다.

 

해남 땅끝마을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바다.

  

땅끝마을 안내도

 

관광안내도 

 

마을의 유래를 알리는 안내판에도 군수명의로 해야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던 해남군의 군수는 지역의 관광수입 증대를 위해 많이 노력한다는 이웃 주민들의 말을 들은적이 있다.

   

유람선 선착장.  여수, 진도, 목포 행의 여객선이 운항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선착장 부근은 모텔과 음식점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전망과 시설이 좋아 보이는 숙박업소들이

비수기라서 그런지 객실 1박 + 조식 제공에 25,000원이라 하니 아주 싼 편이 아닌가?  

 

 땅끝 전망대 안에 게시되어 있는 땅끝 전망대에 관한 홍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망대 외부에 마련되어 있는 데크에서 맡는 바다바람이 시원하다.

 

땅끝마을 전망대.  조형미가 그런대로 어울린다.

입장료는 성인이 1,000원이다. 

 

 

뱃길 안내도. 보길도, 완도 등으로 연결되며 카페리가 있어 자동차를 싣고 가면 더욱 편리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선착장과 마을이 조용하다.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여행객들은 초여름 6월초나 10월이후가 관광의 적기가 아닌가 싶다.

 

땅끝마을의 전망좋은 숙소에서 붉은 황혼의 바다를 바라보고 싶었지만, 시간 절약을 위해 목포로 나가서  저녁식사도 하고 숙소를 정하기 위해 길을 재촉했다.  

 

남도기행-둘째 날(06. 10.11)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아침 6시경이 되니 밖이

환해져서 자리를 차고 일어나, 세수를 하고 TV를 조그맣게 틀어놓고 뉴스를 보

았다.

지방에 여행을 오면, 이른 아침에  그 지방의 뉴스와 날씨를 보는 것은 필수사

항처럼 되었다.

아무래도 여행의 스케쥴을 잡는 데에 도움이 되니 다행스런 일이 아니겠는가?

아들은 어제 오랜 시간동안  운전을 해서인지 아직 일어나지 않아서, 좀 더 자

도록 두었다.


8시나 되어서 아들을 깨우고 9시경에 어제 밤 생맥주집 주인 아주머니에게 물

어서 알게 된 그 게장백반을 아주 맛있고 푸짐하게 잘한다는 황소식당이란 집

을 찾아가서 아침을 먹기로 하고, 시내로 향했다.


가는 길이 좀 이상한 듯해서 어제 보았던 주유소로 유턴을 하고 기름을 넣으며

물었더니, 시내로 나가는 길은 반대방향이라고 한다.

착시현상이었을까? 전혀 반대 방향으로 아들도 차를 몰았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주유원에게 그 황소식당이란 집을 물으니 여수지방에서는 아주 유명한 듯, “아!

거기요?” 하면서 가르쳐 주는데, 초행길이기도 하지만 찾아가는 길이 간단치가

않아서 대충 가르쳐 주며, 그 근처에서 또 물어보라고 한다.


가르쳐준 초등학교를 찾으니, 보이질 않아 다시금 어느 젊은 아주머니에게 물

었다. “골목길처럼 좁은 길로 들어서 가야하므로 초행길에는 찾기가 어려우실

텐데....”하며, 얼마쯤 가다가  또 다시 물어보라고 한다.


어찌어찌 몇 번을 물어서 간신히 찾아내고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차도 사람도 보이질 않아서, 아침시간이라 없으려니 하고 들어가니, 아주머니

들이 분주하게 음식준비를 하는데, 아직 1시간은 더 있어야 한단다.


갈 길은 멀고....., 한 시간이나 기다릴 수가 없어서, 이 곳은 다음 기회에 꼭 한

번 찾아오기로 하고 순천 쪽으로 향했다.


여수에서 순천 가는 길은 항상 차가 많이 밀리는 곳이지만, 아들이 순천만은 꼭

가고 싶어 하기에 시장함을 참으며,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순천으로 들어섰다.


우리나라 도로의 이정표나 길 안내는 악명이 높을 정도로 부정확하고 무성의하

기에, 여행을 갈 때마다 겪는 일이지만, 여기서도 또 한 번 이정표 등 도로표지

판 관리자의 무감각과 대국민 서비스 부재를 거듭 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순천만이란 안내판이 신호등 앞에 오니 별안간 없어지고, 다른 곳의 이름만 써

있는 것이 아닌가?


신호등 앞에서 우물쭈물 할 수도 없고 그냥 좌회전하는 것이 그럴듯할 것 같아

서 차머리를 돌려서 한 참을 가다보니 “이게 아닌가벼...”

지나가는 노인께 길을 물으니, “쩌~기 저 쪽으로 해서 왼쪽으로 가다가 다시 왼

쪽으로  가시오....” 한다.


그 노인장  말씀대로 경지정리가 잘 된 농로의 큰길을 따라 가보니, 자그만 수

로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다시  돌아 나와  몇 번을 헤맨 끝에야 겨우 제 길을 찾아 달렸다.


길을 찾느라 배고픈 줄도 모르고, 순천만 갈대밭 입구에 다 달으니, 며칠 후부

터 “갈대축제”라고 선착장 앞길을 넓히느라 분주하다.


한 이틀 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 공사가 다 끝날지  괜시리 걱정이 된다.

왜 우리나라의 공무원들은 이렇게도 날짜가 임박해야 부랴부랴 공사를 시작하

는지 모르겠다.

군사정부의 밀어붙이기를 탓하던 휼륭한 문민(?)이 다스리는 정부는 더 한 꼴

을 보이고 있지 않나싶어 야릇한 웃음이 절로 나온다.


어쨌던 차를 주차장 아닌 주차장에 대놓고 식사할 곳을 찾으니, 아직은 식사를

할 시간이 되지 않은 듯, 식당이 문을 연 것 같지 않아서, 할 수 없이 갈대밭 탐

사 후에 식사를 하기로 하고 나무다리에 올라, 앞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갈대밭

을 바라보았다.


멀리 순천만의 바다도 보이고, 수로로 연결된 갈대밭과 논들이 아련하게 펼쳐

지며 그 긴 꼬리가 하늘과 맞닿아 가물가물하다.


내일 모레면 갈대축제를 한다면서, 입구에는 변변한 주차장도 없이, 어떻게 그

많은 인원과 차량을 소화할 것인지 걱정이 되었지만,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인데

오지랖 넓게 참견할 일은 아니어서, 갈대밭 가운데로 놓인 데크를 따라 아직은

좀 이른 수십만 평은 될 것 같은 갈대밭의 갈대들의 하늘거림과 속삭임과도 같

은 잎사귀의 비벼대는 소리를 들으며, 때로는 갈대밭 뻘 속에서, 사람의 기척에

놀라 제 집으로 얼른 기어 들어가는 아주 조그만 게들과 게 구멍을 보면서, 사

진도 찍고,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기도 하며 전망대로 향했다.


아들은 갈대밭의 풍경과 수로를 넘나드는 고깃배와 유람선의 풍경을 부지런히

찍어대고 있었다.


나 역시 젊은 한 때, 사진에 미쳐서 시간이 나면 카메라를 둘러메고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또는 우리 아이들 어릴 적엔 아이들을 모델삼아, 참으로 많은 사진

을 찍었었는데.........


사진 또한 예술의 창조 작업이기에 아들과 나, 역시 보는 시야가 다르고 느낌이

달라  찍고자 하는 주제가 다를 때가 더 많기도 한 것 같다.


갈대밭 속에는 아직은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관찰이나 관람을 하러 온 사람

들이 많지는 않았다.


갈대밭이 끝나는 지점에 작은 동산이 꾸며져 있어 잠시 쉬기엔 좋은 벤취들이

놓여져 있었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아들과 1.5Km 정도 떨어져 있는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여

기서부터 가벼운 등산이 시작되었다.


아들은 카메라 장비를 배낭에 매고, 나는 간단한 디지털카메라 한 대 손에 쥐고

올라갔다.  점점 오를수록, 저 멀리 순천만의 톱니바퀴 같은 뭍과 바다의 만남,

그리고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듯한,  동그랗고 아주 작은 갈대섬들이 옹기종

기 놓여져 있는 것이 보인다.


가을은 이미 여기에도 도착하여 하늘의 뭉개구름도 더러는 흘러가고 있었지만,

파랗게 그리움을 토하고 있었다.


30분 정도 땀을 흘리며 오르니, 전망대에 다 달았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전망대에 올라서니, 순천만 앞바다가 발아래 펼쳐져

있고, 전망대의 바로 옆에는 자손 없는 묘처럼, 작고 발가벗은 초라한 묘 2기가

버려져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의 주인공들은 순천의 어느 전문대학생과 인솔 교수들 처럼 보

이는데, 묘를 밟고 장난을 치는 학생아이들에게 주의 한 번 주지 않고 있는 젊

은 교수(?)는 과제를 내주고 있었다.


“지금 보이는 이 전망대 자리를 개발하려면 어디를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개발

을 해야 할 것인가?”에 관하여 다음 주까지 개발 계획서를 제출하란다.


소위 대학 강단에서 시간 강사이던, 정직 교수이던 간에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는 인사가 “왜 하필이면 철새의 도래지이며 자연의 보고인 순천만에 와서 무엇

을 어떻게  누구를 위한 개발을 한답시고, 학생들에게 그런 과제를 내주는가?”

의아하기도 하면서, 그의 자질을 의심해 보기도 하였다.

오늘날의 학교 교육이란 것이 이런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책

임을 돌려야 하는지, 선생들에게, 혹은 학부모에게, 아니면 교육당국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우리의 교육에 대하여 국민

과 정부 모두가 정말로 걱정을 하는 마음으로 백년대계를 세워야 할텐데.......


물론 나는 무지하고 맹목적이거나 더구나, 좌경 환경론자는 더더욱 아니다.

경주의 천성산 도룡뇽 사건으로 수천 억 이상의 국가적 손해를 끼친 어떤 제정

신이 아닌 일개 여승이나 사패산 터널 공사를 지연시켜, 그도 역시 수천억과 몇

년이라는 짧지 않은 막대한 국가적, 국민적 손해를 끼친 어느 절의 얼빠진 중

과, 또 그들과 합작하여 국가적 분열과 손실을 유도한 좌경 환경론자와 노무현

정권의 무능한 무정책에 절대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합리적인 환경보호와 자연

보호운동에는 지지를 보내고 있는 사람의 하나일 뿐이다.


사패산 터널공사를 방해하던 그 중이란 자는 제 입으로 실토를 하지 않았던가?

제 행동이 이렇게 막대한 손실을 끼칠 줄 몰랐다고.

감정만 같으면 그런 자들은 국민의 이름으로 처단을 해도 시원찮은 것이 아니

겠는가?


원전(원자력발전)을 반대하고 핵 폐기장 건설을 무조건 반대하는 좌경세력과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면서 덩달아 춤을 추는 꼭두각시들의 한심한 작태는 이

제는 사라져야 한다고 본다.


본인은 원자력을 연구하는 본거지에서 30년 이상 한 길을 걸어 종사해 온 사람

으로서, 우리나라의 전력생산을 위하여는 원자력 밖에는 대안이 없기에, 혹여

발생할 수 있는  환경방사능사고를 최대한 억제하고, 원자력 안전에 총력을 기

울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좌경세력과 원자력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없이 국가

의 거대사업을 무조건반대하는 환경운동가라 자처하는 세력에 대한 동조는 없

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새만금, 천성산 터널, 사패산 터널, 원전폐기장 사태 등,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을 낭비케 하고,  국론분열과 국민간의 반목질시만을 목표로 활동한

좌경세력이 북한의 핵개발, 북한 주민의 인권과 우리네 선량한 사람들의 인권

에는 눈과 입이 있어도  못 본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그 자들의 관심 밖의 일이

아니었던가?   


잠시 얘기가 빗나갔다.


순천만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바다와 수로와 갈대밭, 그리고 구름이 그어진 가

을 하늘은 조용하며, 깨끗하고, 가슴을 트이게 해주는 그런 풍경이었다.


순천만에서 약 두 시간을 갈대와 더불어 바람을 맞으며, 낙안읍성으로 향했다.

낙안읍성으로 가서 식사를 할까 하다가, 가는 길에 000백반이라는 식당으로 들

어갔다.

백반을 시키니, 반찬이 한 열 다섯 가지는 나오는 것 같다.

이 남도의 인심은 아직도 이렇게 후한 곳이 적지 아니 남아있다.


그 전엔 거의 모든 남도의 모든 음식점에서 정식을 시키면 그야말로 교자상에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많은 반찬들이 나왔었다.

술을 시키면  안주로 그 많은 반찬들이 숫자도 셀 수 없을 만큼 차려졌고, 남도

의 해산물은 물론 소, 돼지, 닭 그리고 자라 등 벼라 별 음식들이 너무 많이 차

려져, 일면 흐뭇하기도 했지만 그 많은 반찬들을 다 먹지 못할 것이  뻔한 노릇

이어서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남도는 예부터 우리나라의 곡창지대였고, 모든 산물이 넉넉하여 음식 인심은

참 좋았던 것 같다.

본인의 경우에는 남도의 젓갈이 많이 들어간 음식은 입맛에 맞지 않아 전라북

도 전주의 음식만을 즐겨 먹고. 좋아했었는데, 최근 10여 년 동안 남도의 음식

맛에 많이 길이 들여져, 남도 음식도 먹을 만한 맛깔스런 음식이 제법 많다고

여기고 있는 터이다.


남도란 쌀과 해산물이 풍부함은 물론 인심 또한 아주 후한 곳이 아니던가?

단 한 사람을 빼 놓고는 난 남도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


지역감정을 천년만년 이용해 먹는 그 인사는 제발 국민을 위해 거듭나서, 국민

들을 갈갈이 찢어져 분열되게 하지 말고, 이제는 다 같이 힘을 합쳐 적화통일이

아닌 민주통일이 될 수 있도록, 마지막 목숨을 걸고 국가와 국민에게 은혜를 갚

는 사람으로 태어나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낙안읍성의 민속마을은 실제 주민이 살고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인위적인 조

성으로 인하여 적지 아니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곳이다.


그러나, 그나마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옛 우리네 모습을 어디 가서 쉽게 볼 수

가 있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전시관에서 우리네 전통 삶의 생활도구나 농기구 등 전시물을 보기도 하였고,

대장간에서 나의 목공예작업에 필요할 듯하여 문고리도 몇 개 구입을 하였다.

비교적 판매하는 물건의 값이 관광지라 하여 비싸게 파는 곳은 아닌 것 같다.


낙압읍성 민속마을을 뒤로 하고 해남으로 향했다.


몇 년 전의 남도여행에서 땅끝마을은 가보지 못하고 완도엘 갔기에 이번에는

아들과 땅끝마을은 꼭 가보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해남읍을 지나 땅끝마을에 도착하여 전망대 입구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위

로 올라갔다.


평일임에도 전망대에는 관광객들이 심심치 않게 오르고 있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풍경은 날씨 탓인지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다가 없는 도시나 육지에서 사는 사람들은 바다만 보면 왠지 탁 트여지는 가

슴이 좋아서일까? 바다를 다들 좋아하는 것 같다.


마음이 넓어지고, 나의 가슴이 보잘 것 없는 한 점에도 이르지 못하는 소인배임

을 확인시켜 주는 시간임에도, 선해지고자 하려는 밉지 않은 욕망 때문일까?


어쨋던 바다는 넓고 탁 트여서 좋다.


왜 그렇게 인간들이 작게 살려고 하는지? 를 돌아보게 해주어서 좋다.

바다에 던져지면 흔적도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미물일진데......


아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그동안 생활에 갇혀, 자신의 시간표에 갇혀서 캄캄하고 좁은 상자 속에 마음을

감추고 있다가, 너른 바다에 펼쳐지는 시선이 얼마나 자유로울 것인가?


잠시의 여유이지만, 대장장이의 담금질처럼 나의 아들도 시간과 마음의 담금질

을 아직도 더해야할 제한된 벗어남이지만, 언제고 훨훨 날을 수 있는 이륙을 준

비하고 있는 시간이겠거니.


전망 좋은 산꼭대기 모텔에서 석양을 보며 오늘 일정을 정리할까 하다가, 아직

도 해는 떠있고, 날은 밝으니 시간이 아까워, 시간의 절약을 위해  목포까지 가

기로 했다.

몇 군데 모텔엔 “숙박료 25,000원에 조식 제공”이란 프랙카드를 걸어 놓은 곳

이 있었다.

제법 깨끗하고 시설이 좋아 보이며,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관광지라 해도, 여름 한 철이 지나면 철지난 바닷가처럼 쓸쓸하기만 하다.

더구나, 해외여행이 붐을 이뤄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으니, 국내의 서민층

상인들의 경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터이며, 이런 커다란 건물의 겨울철

유지비는 어떻게 충당을 할 것인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기실 전직 장관을 지냈던 “흙속에 저 바람 속에”의 저자 “이어령”선생은 관광지

의 상인들이 여름 한 철 비싸게 받는 다고 욕을 할 일은 아니라고 한 글을 본 적

이 있다.

왜냐하면, 일 년에 한 철 벌어서 먹고사는 상인들을 외지의 관광객들이 “바가지

씌운다”며, 음식 값이나 숙박료를 비싸게 받는 것을 비난하지만, 그들은 손님이

없는 겨울철에는 거의 수입이 없을뿐더러, 비수기나 겨울철의 건물관리에 들어

가는 난방비, 수리비 등 유지비를 생각해 보면 그들 역시 간신히 먹고사는 서민

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나의 아내도 나의 퇴직 후, 몇 년간 소위 남들이 사업이라고 하는 장사라는 것

을 해 보았지만, 결국 IMF 이후 창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에 옛날같이

어리숙한 것이 장사가 아니라는 것을 실제로 체험을 해 보았고, 양심적으로 장

사를 하면 백이면 백 모두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깨닫기 위한 수업료로서 억대의 돈을 지불했다면, 차라리 편안하

게 앉아서 놀고먹는 것이 더 나았을 터인데 말이다.

그러기에 장사나 소위 사업이란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장

사를 하면 사람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사람의 마음이 황폐해지는 지름길이라

는 것도 부수적으로 알게 되기도 했다.  


그러니, 장사꾼 똥은 개도 안 먹는다 하지 않았던가?


요즈음 같은 세상에 퇴직을 하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 보면, 남의 일 같지 않고

제발 노력하는 만큼 잘 되기를 응원하는 마음이다.


너무 멀리 다른 곳으로 빠졌나보다.

옛날엔 이럴 때에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졌다”고 표현을 하니 실제로 삼천포

사람들이 볼멘소리로 항의를 하곤 해서 가급적 그런 표현은 하지 않으려고 한

다.

그러나, 그런 표현을 쓴다고 해서 삼천포 주민들을 폄하하기 위한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늦은 시간에 도착하면 또 저녁을 먹기 위해 우왕좌왕해야 하니, 좀 서둘러 도착

하기로 하고 떠났지만, 목포로 가는 길  역시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목포하면 옛날엔 음식점 인심이 아주 좋은 곳이었는데, 더구나 밤이어서 구분

을 하지 못하고, 이정표를 따라 부둣가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 초행길에 이정표를 따라 가면서 목적지를 잘 찾는다면 여간 신기

한 일이 아니어서 인지, 몇 번을 헤매다가 목포항에 도착하여 숙소를 정하고 저

녁을 먹었다.


음식점 주인 왈, 여기에서도 중국산이 많다고 하니 그냥 다 그러려니 여기며 먹

는 수밖에는.....


저녁을 먹으며 아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그간 하지 못했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아들의 깊은 의중을 더 알고 싶었

으나, 간섭이 되고 부담이 될 것 같아서 그냥 그 정도에서 멈추었다.


부모의 마음이란 것이, 나의 자식은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알고 싶고, 힘이 되고, 앞길을 밝혀주는 등

불이 되고 싶기는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간섭이 되고 부자유스런 속박을 하

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


제 갈 길, 제가 알아서 잘 가려니 여기다가도, 걱정이 되는 것이 다 부모의 마음

인가?

그런 것들이 정말 다 부질없는 걱정이었으면 싶다.


어쨌던, 내 아들을 신뢰하고 맡겨놓을 수밖에 없는 일이니 그것이 부모들의 한

계이기도 한 것 같다.

다 잘~ 돼야 할 텐데.........


내일은 고창 선운사와 변산반도, 진안 마이산 그리고 금산으로 갈까 하는데, 모

르겠다.

아침이 되어 가다가 보면 또 길은 어디든 나오지 않겠는가?

아들이나 나나 딱히 어디라고 목적한 곳은 없으니, 마음 가는 데로, 핸들 돌리

는 데로 가면 되지 않겠나?


다만, 몇 년 전 남도의 여행을 할 적에 진도의 운림산방엘 들렸으나, 시설의 개

축관계로  남종화의 대가 허유 일가의, 대를 물린 작품을 보지 못하고 온 것이

너무 아쉬웠는데, 이번에도 역시 마음도 편하지 않으면서 시간의 여유도 없는

여행이었기에 작품 관람의 기회를 놓쳐서 허전한 마음이지만, 오히려 이다음

기회에 온 가족이 모두 함께 남도로의 깊이 있는 문화여행을  기약하는 계기로

삼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