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동락재 통신-80: 고구마를 수확하며

sosoart 2007. 4. 7. 15:40

 

 

 

순천만의 갈대섬

 

충남 서천군의 춘장대 해수욕장 앞바다

 

<동락재 통신-80: 고구마를 수확하며>              (06. 10. 25)


어느덧 한 달 餘 만에 통신을 합니다.


그간,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이런 저런 많은 큰 일들이 일어나고, 개인적인  시름 위에, 대통령 하나 잘 못 만나서 커다란 걱정꺼리가 더 가중되어, 살아가는 일이 매우 힘들어집니다.


아무런 국민적 합의도 없이, 김대중정권부터 김정일이에게 조공을 갖다 바친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더니, 급기야는 나라 살림 거덜까지 내놓고는, 그 댓가라는 것이 핵폭탄을 우리에게 쏘아댈려고 하는데도, 4천5백만 국민 중에, 아주 싯뻘건 좌빨들 5백만을 제외한 4천만을 볼모로 위협을 하는 판이 되었습니다.


이미 예견된 일이었지만, 김대중이와 노무현, 그리고 그 추종자들은 저희들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아직도 햇볕이니, 달빛이니, 그 가당치 않은 입으로 게거품을 물고 지껄여 대며, 이 나라를 아예 통째로 싸서, 그 놈들의 입에다 쳐넣을 요량인 것 같습니다.


이것이 대통령이란 자리에 있던 인사들이 할 짓인지?  나중에 그 죄 값을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심히 걱정이 됩니다.


그저 “잘~ 되야 할텐데......”라고만 축수하는 수밖에 없는 힘없는 백성이니, 너무 분하고 원통하지 않습니까?


나무 관세음.....


그간, 고추 농사 지은 것 말리고, 오이, 도마도 농사 마치고,

김장 배추, 무 심고서,  얼마 전에야 고구마를 다 캤습니다.


올해에는 늦여름부터  비가 오지 않아, 너무 가문 날씨여서 그런지, 고추 농사도 시원찮고, 고구마 역시 수확이 별로 좋은 것 같지를 않았습니다.


지난 해에는 수퍼 고구마는 없었어도, 수확이 짭짤했는데, 올해에는 다섯 이랑에 고구마를 심었는데, 기대보다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아이 머리통만한 고구마가 몇 개는 나왔지만, 전체적 수확은 만족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겨우내 난로 가에서 고구마는 계속 구워먹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군고구마가 생각나시는 가족들께서는 달구지 타고 한 번들 오십시오.

연탄 난로위에 올려놓은 고구마 타며 익는 냄새, 그리고 동락재 고유의 한방차 달이는 내음은 이 겨울을 춥지만은 않게 해주며,

정담을 나누며, 고구마에 곁들여 차 한 잔

그리고, 홍천 누룽지 막걸리에 연탄난로에서 굽는 돼지불고기 맛은 누구나 쉽사리 맛볼 수 없는 동락재 만의 별미가 아니겠습니까?


지난 여름부터는 동락재를 “들꽃 펜션”이라 하여 민박을 치루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만.


근처에 야전수송교육단(야수교)이라는 군부대가 있는데, 금년 5월부터 교육생들에게 마지막 교육 한 주를 남겨놓고, 주말에 외박과 외출을 허용하여서 이 들꽃 펜션에도 매주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Daum의 블로그에도 올려놓았더니, 멀리 부산, 창원, 여수, 목포, 군산, 대구 등, 또 서울과 근교의 교육생 부모들이 아들의 면회를 위해 찾아와, 이용을 하고 가십니다.


다른 펜션과 민박들과는 달리, 동락재의 건물 전체를 1팀에게 빌려주니, 사용 공간도 넓고, 자유롭고, 청결하며 목공예나 미술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도 있어서, 이용객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아내가 서울에 가 있는 시간이 많은 관계로, 화실 동락재의 건물이 거의 비어 있는 시간에 많아서, 혼자 있는 고적한 시간도 달랠 겸, 투숙객들과 이야기도 나눌 겸, 펜션으로 활용을 하고 있습니다.


30평이 되는 단독주택의 건물이지만, 한 가족만을 받기에 사용하는 사람들로서는, 규모로 보아 여늬 펜션의 1/2이나 1/3 가격에 이용을 할 수 있으니, 사용후 평이 아주 좋은 편입니다.


주변의 펜션은 8-9평의 원룸 형태로서 비좁고 가격도 비싸지만, 우리 들꽃 펜션은 사용 면적이나 시설, 요금과 예술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한 번 왔다 가신 손님의 소개로 오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마치 무슨 광고처럼 되어버렸군요.


그런데, 기실 펜션의 수입은 별로 되지 않습니다.

남들처럼 한 건물에 몇 팀의 손님을 받는 것도 아니고, 2명이 되었건 8명이  되었건, 하루에 한 팀만을 받으니 주말마다 예약이 찬다 해도 몇 푼 되지는 않는 것이지요.


그런데, 소위 민박이라는 것을 치루어 보니,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사람 사는 것이 참 재미있구나!”라고 느끼게 됩니다.


전국 각 지역에서, 군에 간 자식의 면회를 위해 애뜻한 마음으로,  아들에게 먹일 음식을  바리바리 정성껏 싸가지고,

밤을 낮 삼아 밤새 차를 달려 이곳 홍천의 아들이 있는 부대를 마다않고 찾아오는 부모의 마음,

또 군대에 있을 때엔 누구나 효자가 되듯이, 두어달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느새 훌쩍 어른이 된 듯, 철이 든 듯한 늠름해진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흐뭇한 부모들의 얼굴과 아들의 정겨운 모습을 보면, 바라보는 아내와 저도 지난 날, 아들 면회 갔던 때가 회상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 누구보다도 귀한 내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의 그 애틋한 마음을 자식인들 지금은 어찌 알겠습니까?

저희들이 자식을 낳고 키워봐야 아는 것이지. 아무리 효자라 한들, 어찌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있겠나 싶습니다.


저도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늙어가면서 부모란 것이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나는 네 나이 때는 안그랬어...!”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상사는 이치가 참 재미있고 우습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 민박을 치루면서, 별의 별 사람들을 접하게 되니, 그저 재미있는 세상이라고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산골에서 민박이나 치루며 사니, 어줍잖은 인생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고, 공기좋은 곳에서 좋은 취미생활하며 산다고 부러워하며, 자신도 이렇게 살고자 희망한다는 사람도 있고, 

아무튼 좋은 사람, 덜 좋은 사람, 차 한잔 이라도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 대포 한 잔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면 밤을 새워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은 사람, 또 예술과 공예를 아는 사람, 그저 제 가진 만큼만 쬐끄만 사람......

좋은 인생공부 하면서, 산골의 하루 하루를 마음의 일기장에 적어가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들꽃 펜션에서 민박을 하고 간 나그네들에 얽힌 “民泊夜話”릴까? 그런 이야기들을 옮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록들을 계속하여 모아 놓으면 훗날 참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이 동락재 통신과는 별도로 “민박야화”를 따로이 엮어 볼 것입니다.


아무튼, 사람을 만나는 일은 더구나 이런 고적한 산촌에서는 괴로움 보다는 즐겁고, 재미있는 편이 더 많습니다.


목공예의 작업을 하면서,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면서, 또 그림을 그리면서, 매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 해보고, 또 가끔은 주 중에 조용한 여행을 즐기는 깔끔하면서도 소박한, 그러면서 이지적이며 예술을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더 없이 행복하고 아낄 것 없어 좋습니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일의 연속이 아니겠습니까?

이 민박을 하면서, 또 주 중에는 차를 마시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차를 판매한다기보다 대접하면서 나누는 지금을 살아가는 소박한 이야기를 나누는 조그마한 행복은 도시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포만감이라 할 수 있겠지요.


물론, 아주 가끔은 하잘것 없는 村老의 대접을 받기도 하지만요.


그러나, 그런 것이 뭐 대수이겠습니까?

그런 인사는 제 가진 것이 그 것 밖에 없으니, 남을 보는 시야도 아주 쬐끄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니, 그저 “나무관세음.....”하며 자신을 추스르기도 하니,

이 어찌 도를 닦는 수행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뭐 내가 가진 것도 아주 아무 것도 없을 지경인데, 남이 가진 것이 “쬐끔”이라고 폄하 하는 것도 도를 닦는 중생이 할 짓은 아니니까요.


그저, 태어난 시간만큼 살다가 가는 것이 인생일진데,

그냥 그렇게 물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날리며, 구름처럼 흔적없이 가는 것 또한 평범한 인생이거늘..........


大學의 “致知在格物” “치지재격물” 을 되뇌어 보며, 오늘을 접어 봅니다.


“앎에 이르는 것은 온갖 사물을 극진히 탐구하는 데 있다” 


시쳇말로 “더 알고자 하면 다친다”고 하지만,

짐승이 아닌 사람으로 태어 났다면,

무언가 더 알고자 탐구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하여 가고자 하는 것이 짐승과 다른 것이 아닌가 주장을 합니다.

저급한 열등의식의 발로인 “하향 평준화”, “일률적 하향 평등”이 사람이 추구할 바는 아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