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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락재 통신-77: 몇 십 년만의 폭우 속에 찾아온 친구

sosoart 2007. 4. 6. 23:17

맹꽁이- 복돌이가 주둥이로 이리 저리 냄새를 맡으니, 벌러덩 누워서 꼼짝을 않고 있습니다.

 

 미련한 건지? 약은 건지?

 

 

<동락재 통신- 77: 몇 십 년만의 폭우 속에 찾아온 친구>                    (2006. 7. 21)


백수의 처지에 매일 매일이 휴가이고, 또 매일 매일이 노는 날이어서 그런지, 백수 6년차에 들어서니 이제 노는 것도 이골이 나서 슬슬 일을 하기가 꾀가 나고 노는데 익숙해져 간다는 것이, 어째 좀 껄쩍지근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긴 백수라 해도 또 늦은 나이에 노는 것이,  젊은 백수들에 비하면 쬐끔은 덜 미안한 것도 있지만,

어찌 늙은 백수나 젊은 백수나 노는 것이 자랑일 수는 더더욱 없고, 그 썩어가는 속이야 어느 누구가 알아 주겠습니까?


나이 먹어가는 사람의 마음도 이럴진데, 팔팔한 젊은이들이 일을 하고 싶어도 취업을 못하고 놀고 있는 백수들의 마음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하기좋은 말로, 눈높이에 맞추면 왜 취직을 못하겠느냐?고 말하는 인사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그 인사들이야 철부지나 다름없어서 눈높이를 아주 땅바닥으로 낮추어서 일을 하여도, 악덕 업주 놈들은 애써 일한 노동의 댓가도 지불하지 않고, 떼어먹는 놈들이 적지 않으니. 이 젊은 백수들은 어디에 가서 하소연을 하겠소이까?

요즈음 젊은이들은 때를 잘못 태어나 일을 하고자 해도 일거리를 만들어 주지 않는 대통령 노무현을 탓만 하다가는 굶어죽기 십상이니, 참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소이다 그려.

   

그러니 이련 면에서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이 사람도 젊은 백수들과 코드가 딱 맞아 떨어진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려.

  

그 징그러운 “코드” “코드”......


내가 현직에 있을 때는 이 “코드”라는 것이 연구과제의 “code no."라는 용어가 몇 십년간 익숙해 있어서 그저  연구비의 예산배정과 연구관리를 위한”사업번호“정도라고만 인식을 했었는데,


어느 날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더니, 코드가 맞네, 안 맞네 하면서 유행가가 되다시피 한 요놈의 “코드”란 말은 지금 들어도 아주 소름이 끼치고, 혓바늘이  솟을 정도로 알레르기 체질이 되어버린 지 오래 됐습니다 그려.


폭우가 시작되던 그 7월 15일 날 오후.


느닷없이 나으 절친한 아우(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야,  아우야(이 버르장머리 없는 인사는 꼭 제 형을 보고 ”아우야!“ ”아우야!" 합니다. 한 방 쥐어 메기고 싶어도 키가 나보다 커서......) 웬 비가 이렇게 쏟아 붓는거냐?“ 면서 전화의 서두를 늘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석이 또 “수제비나 해 먹는다”고, 아니면 “비가 오니 자리에 누워 이리 뒹글 저리 뒹글 하면서 제 마누라 궁둥이나 두드리면서 논다”고 전화를 하는 줄 알았습니다.


“너, 어디냐? 비 오는데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어? 여기 홍천이야!”


“아니, 이놈이 미쳤나?  비가 이렇게 오는데 무슨 홍천이야? 정말이냐?”


“엉. 육촌동생 내외하고 설악산 콘도 예약을 해놓아서 가는 중인데, 비가 너무 쏟아져서 차창 밖이 하나도 안 보인다....”      


“정말인 모양이구나, 그럼 여기서 하루 자고 가라마” 했더니


“콘도 예약을 해 놓아서 가야돼.”


(빌어먹을 놈, 그럴려면 뭐 하러 전화는 하누....?)

“그래? 그러면 잘 놀다 와라.  그리고 서울 갈 적에 들렸다 가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비가 너무 쏟아지는 것이 심상치가 않았습니다.


5년 전 수해를 입을 당시가 생각이 났지만, 설마.... 하며 TV를 보니, 미시령, 한계령, 진부령 넘어가는 길을 모두 통제했다는 자막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까 친구에게서 전화 온 시간이 벌써 2시간은 지난 시간이기에, 이미 미시령 고개를 넘어 설악산 콘도에서 여장을 풀고 있겠구나! 생각을 하며 점점 더 쏟아지는 빗줄기만을 보며, 수해에 대비해 긴장을 하고 여기 저기 집 주변을 살펴보고 들어왔습니다.


비가 너무 쏟아지니, 마음도 심난하고 서울의 가족들도 걱정이 되고, 설악산에 간 친구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빗줄기는 그칠 염도 없이, 점점 더 쏟아 부우니 마음도 점점 걱정이 깊어졌습니다.


그러던 차에, 또 전화가 왔습니다.


친구네가 탄 차가 인제에 도착하니, 경찰이 모두 돌려보내며, “서울로 돌아가시는 것이 좋을겝니다.”라며 서울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다며,


“여기서 속초로 가려면 어디로 가는 것이 좋으냐?”며 묻기에 “그러지 말고 비가 너무 쏟아지니, 우리 집에 와서 하룻밤 자고 상황을 봐서 출발하라”고 했더니, 그 똥고집이 고속도로로 가면 괜찮을 거라고 길을 알려달라고 해서, 그러면 ”다시 홍천으로 거슬러 들어와 중앙고속도로로 원주까지 가서, 거기서 영동고속도로로 갈아타라“고 일렀습니다.


그때까지도 좋았었겠지요.


지놈이 저는 자기 아내와 룰루랄라 휴가 간다며, 이 형은 여기에서 혼자 있게 놔두고 놀러가니, 하늘인들 그냥 보내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저녁시간이 다 되었는데, 또 전화가 왔습니다.


“야! 원주에서 고속도로로 진입을 못하게 해!”

“너희 집으로 가려면 원주에서 어디로 빠져나가는 것이 빠르냐?” 묻기에. 내심 “요놈 산길로 오는 길을 가르쳐 줘! 말어?  그래야 산사태로 무너진 길에서 꼼짝없이 갇혀서 배를 쫄쫄 굶을 텐데......!”하는 장난기가 꾸물꾸물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 산적같은 놈의 마누라, 천사같은 제수씨와 그 동생 부부가 안됐어서, 하는 수없이 좋은 길을 가르쳐 주고 말았습니다.


“응, 고저 다시 홍천으로 오라우.  홍천에서 시내로 들어와서 소방서 가는 길을 물어보고 그 길로 들어서면, 다니던 길이라 알거야.”

(고거 참 쌤통이다.  어이구 고소하다. 흐 흐 흐 흐....)


이렇게 해서 저녁이 되어 동락재에 비는 퍼붓는데 도착을 했습니다.

비가 그치면 내일 아침에 다시 출발한다며.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고속도로가 막힐 정도면 네놈은 여기서 꼼짝 못하고, 며칠 있어야 돼. 흐 흐흐 흐)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될 줄은 몰랐지요.


저녁시간이지만 아내가 함께 없으니, 친구 일행에게 아내의 정성이 담긴 따뜻한 식사의 제공은 할 수는 없고.......

삼겹살이나 구워먹자고 했습니다.


뜻밖의 친구의 방문이니, 미리 반찬거리를 준비한 것도 없고 게다가 아내도 같이 없으니, 제수씨 일행이 저녁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구와 그의 아우가 기왕이면 밖에서 숯불구이를 해먹자고 해서,  창고에서 숯을 꺼내어 숯불을 피우고,  밖의 테라스 탁자에 제수씨보고 반찬을 차려놓으시라하고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왔습니다.


상추는 마침 어제 비가 오기 전에 미리 따놓아서 오이를 따다가 식탁에 올려놓으니 싱싱한 야채와 함께, 비가 쏟아진다고 해도 고기를 구워먹는 맛은 각별할 수밖에 없겠지요.


친구일행은 맛이 있다며,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취하지 않을 것 같다며 계속 술잔을 채웠습니다.


아내는 오후에 홍천으로 내려오려다가, 홍천행이나 경유하는 버스가 도로가 막혀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내일에나 버스가 운행한다면 오겠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저야 이곳에서 매일을 생활하고 있으니 잘 느끼지 못하지만, 처음이나 가끔 찾아오는 벗들은 공기 좋고, 경치 좋으니 부럽다고들 합니다만.......

그것이 인사치레의 말인 줄은 모르겠으나, 친구의 아우가 공기좋고, 경치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연실 칭찬을 해댑니다.


밤이 늦어지고 있었지만, 쏟아지는 빗줄기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내일이 아니라 며칠이 지나도 설악산 쪽으로는 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동해나 설악산 방면으로 가는 모든 도로는 막혔고, 여기저기의 수해 상황이 긴박하게 보도가 되니, 더 이상의 수해가 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휴가차 나온 사람들은 날씨 때문에 계획이 어굿나고, 현지에 사는 사람들은 수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이번 장마의 예기치 않은 폭우의 피해였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와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로 밤의 한 가운데에 들어와서야 각자의 잠자리로 들었습니다.


밤새 비는 쏟아지고, 제발 수해를 입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다음 날, 아내가 내려오고 손님들과 서로 반가운 만남, 그리고 비오는 날의 빈대떡, 수제비 등, 별미 음식을 해먹고 비가 잠시 소강상태(그래보았자, 쏟아내려 붓지 않는 상태)를 보이자 낚시터를 안내하라는 친구와 동생의 보챔에 5분여 거리의 공작산 아래 저수지로 낚시를 갔습니다.


고기가 잡히리라는 기대보다는 집안에만 있기가 답답하니 바람을 쐬자는 마음이었겠지요.


그래도 이곳은 별 피해는 없었기에 다행이란 생각에 안도를 했습니다.

낚시터에서 함께 있다가, 저녁 준비를 위해 친구와 그 동생,  두 부부를 남겨두고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저녁시간이 되니 낚시터에서 친구일행이 돌아왔습니다.


물론, 고기 구경도 못한 것은 당연하지요.

흙탕물이 유입되어 오고 물이 계곡에서 많이 내려오는데, 고기들의 입질이 있겠습니까?


다시금, 저녁 식사와 재작년에 담그어 놓은 약주 한 잔은 저녁시간의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을 보며, 장작불을 펴놓고 캠프파이어 하는 낭만은 맛볼 수가 없어,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어서 아쉬움이 남긴 했습니다.


8월초에 다시 와서, 천렵도 하고 쉬었다 가겠다며 좋은 천렵터를 찾아놓으라는 당부를 하기에, “천렵터, 계곡, 산 어디든 가고 싶은 곳만 얘기해라!


20분 내의 거리에서 다 해결을 해주마!“라며 천렵의 즐거움을 미리 예약을 해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이틀째의 밤을 보내고,

오늘은 가겠다는 친구 일행과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빗줄기의 기세가 약간은 꺾인 듯하여, 오전에 수타사 관광을 하고 점심엔 유명한 홍천 화로숯불구이 맛을 보러가자는 친구의 제의에 다들 좋다며 동의를 하였습니다.


수타사를 들어서는 길이, 약간은 옆의 산에서 토사가 흘러나와 도로에 덮여있었으나, 차량통행에는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았고, 이곳 역시 피해는 그리 없었던 것 같아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수타사 경내가 새 건물을 증축 중이라서 다소 어수선하기는 했지만, 월인석보를 보관하고 있는 전시관에 들어가서 각종 문화재와 괘불 등을 보여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영산회상도와 괘불 등은 일전에 제가 언급했듯이, 전시공간이 적어서 아랫 단을 둘둘 접어서 전시를 해놓은, 어처구니없는 지방의 문화재보관 및 보존 자세에 대해 치부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러한 상태로 보관을 한다면, 그 보존 수명이 얼마나 짧아지려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작태에 지방 관리들의 한심한 면을 볼 수 있어 현 노무현의 정권 돌아가는 모습과 흡사하여 분노까지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개운치 않은 감상을 끝내고, 먹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한 하오안리 양지말에 있는 홍천 화로숯불구이 맛을 보러 핸들을 돌렸습니다.


도착하니 넓은 주차장에 자기들의 업소로 안내하기 위해 주차안내원들의 경쟁이 부산하였습니다.


“양지말 화로구이”라는 집으로 들어가니, 대기번호표를 나누어 주기에 할 수 없이 조금 기다리다, 차례가 되어 숯불 돼지양념구이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저의 내외도 한 3년 만에 와보는 것이라서 조금은 낯설기도 하였습니다.


평가를 하자면, 물론 값도 서울보다는 훨씬 싸고, 양도 많고, 맛도 있기는 합니다만, 개인적인 입맛으로는 단 맛이 나는 음식은 저희 내외는 좋아하질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음식점의 음식 맛이 단맛 일변도이기에, 그 맛에 길들여진 대중들의 입맛엔 맞을지 몰라도, 그러한 맛 때문에 우리 가족은 외식을 별로 하지 않는 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곳은 평일이던 휴일이던 간에 항상 손님들로 들끓는 곳은 확실합니다.


홍천을 방문하는 외지의 분들은 한 번 정도는 꼭 이곳에서 숯불화로구이 맛을 보시면 후회는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친구와 그 동생 내외는 얼마나 맛이 있던지, 각각 3인분씩은 해치웠습니다. 

친구의 얼굴을 보는 순간, 왜 그 하얀 암퇘지의 얼굴이 오버랩 되어 보이는 걸까요?

이백 킬로는 되어 보이는 그 허연, 쌀진 디룩디룩한 암퇘지.....


고혈압이나 성인병에 주의를 하여야 하겠지만, 아직도 열심히 운동을 하는 친구이니까 괜찮겠지요.


하긴 그 친구는 아직도 돌을 씹어도 소화를 시킬 한참의 나이이니까, 부럽기는 합니다.


맛있는 식사를 끝내고, 그 음식점을 나와 바로 그 뒷길로 올라가면 계곡의 경치가 수려한 삼마치라는 마을이 나옵니다.


산과 계곡이 좋은 곳인데, 별명이 “높은터”라는 마을 이름으로 불립니다.


숯불구이 맛을 보고, 식사 후의 휴식을 위해 약 30여분 할애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이곳의 계곡 물에 잠시 발을 담그고 쉬었다가도 좋은 곳입니다.


물론 거기에서 5분 정도의 거리에 며느리고개라는 곳에는 삼림욕을 할 수 있는 임도가 있는 곳이 두 군데나 있고, 낚시를 할 수 있는 상오안 저수지라는 곳도 있습니다.


하여, 친구의 동생은 계곡에서 프라이 낚시를 해보겠다며 낚싯대를 꺼내어, 몇 번 던지기도 하고, 계곡의 폭포와 같이 도도히 흘러내려오는 흙탕물 구경도 하다가 다음을 기약하며 친구 일행과 아쉬운 작별로 헤어졌습니다.


모처럼의 계획한 휴가를 빗속에서 며칠간을 지냈으니, 많은 아쉬움이 남기는 하겠지만, 덕분에 며칠을 같이 보낼 수 있었으니, 그 또한 즐거움이 아니겠습니까?


찾아오는 친구들을 자주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이런 산촌에서는 일상의 커다란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다음엔 좋은 날씨에 다시 와서, 개운하고 편안하고 맛있는 휴가를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