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동락재 통신-75: 사람을 찾습니다

sosoart 2007. 4. 6. 23:14

동락재 입구의 왕솟대.  등나무가 솟대의 다리를 타고 어디까지 올라가려나...?

 

 

산 속 으슥한 곳의 토종벌통

 

 

동락재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홍천의 금강산. 깊고 맑고 그윽한 풍광 수려한 곳.

좋은 님들에게만 보여주고 싶은 곳.......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서낭당.   어떤 염원이 느티나무의 새끼줄에 얽혀있을까나...?

 

<동락재 통신-75: 사람을 찾습니다>        (2006. 7. 6)


아침나절에 고추밭 이랑에 비닐을 덮지 않은 고추나무는 生長이 더디고, 고추

도 잘 맺지를 않아서 이랑에 비닐을 덮고 흙으로 덮었습니다.


지난봄에 고추를 심을 때 밭이랑에 덮기 위해 밭으로 가지고 간 비닐이 모자라,

다시 가지러 가기가 귀찮아서 비닐을 덮지 않았더니, 그 표시가 금방 이렇게 나

타나고 마는군요.


꾀를 부리면 더 힘들어 지는 것을.....


밭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들어와서, 이것저것 정리를 마치

고, 점심 먹은 것이 소화가 잘 되지 않아서, 맥주 한 잔에 오징어와 땅콩으로 안

주를 하니 배가 고프지 않아, 저녁을 대신하기로 하며 뉴스를 보고 있는데,


밖의 강아지 녀석들이 요란하게 짖습니다.


밤에 웬 나그네가 들어왔나? 아니면 지나가던 차를 마당 앞에 세워놓고 있나?

생각하며,  마당의 외등 스위치를 올리고 보니, 웬 여자들의 목소리가 “안계세

요?” 하며 묻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가 길을 묻나? 하며 문을 열고 나가보니, 웬 젊은이와 나이가 들은이 등  여

성들 셋이서,

“밤에 죄송한데, 혹시 할머니 한 분 못 보셨어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마당의 텃밭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도 지나가는 할머니나

사람을 보질 못해서,


“아니, 못 봤는데요.” 하니


“저희는 신봉리 사는데요,  머리에는 비녀를 꼽고,  키는 작은 할머니인데 혹시

내일이라고 보시면 연락 좀 해주세요.  신봉리 조씨네 집으로요...”


그러기에, “아니 신봉리 조씨라고만 하면 어떻게 합니까?  전화번호라도 가르

쳐 주어야지.” 했더니


“그냥 경찰서에다 신고를 해주셔도 되어요” 하더군요.


“아니, 할머니께서 혹시 치매라도..?”하니


“예! 약간 치미기가 있으세요” 합니다.


“많이 걱정이 되시겠군요.  예! 알았습니다.

혹시 그런 할머니를 보게 되면 곧 연락을 하지요.“ 라며 그들을 보냈습니다.


강아지들은 그때까지도 계속 요란하게 짖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집을 나간 지  며칠 되었다는데.  그 가족들이 얼마나 걱정이 되겠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그 가족들은 물론 많이 걱정이 되겠지만, 그 당사자는 또 얼마나 고생을 할까하

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 우리나라도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을 했는데,  가족과 자식들을 위해 그

렇게 모든 고생을 짊어지고 삶을 살아오다가, 이제 나이가 들어 자식들의 공경

을 받고 살거나, 아니면 자식들의 멍에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고 한가롭게 살아

야 할 나이가 되니, 치매라는 몹쓸 병에 걸려, 본인은 물론 자식들에게 짐이 되

는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너무도 마음이 아프고 남의 일 같지만은 않게

생각이 되니, 저도 늙고 힘이 없어져 가는가 봅니다.


그 할머니가 빨리 집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정신도 되찾고 자식들과 남은 생애

잘 보내기를 마음속으로 깊게 소망을 해보았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불행한 일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행복과 용기를 줄 수 있

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런 산촌의  공기 좋은 시골에서  비록 몸은 고달프게 농사일을 한다고는 하지

만, 그래도 건강한 삶이 보장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기실 이런 시골에서 늙어가는 삶이 좋다고만은 할 수가 없지 않은가도 생각이

됩니다.


도시에서처럼 분주하지 않고, 긴장된 삶이 아니기에 정신을 저만큼 멀리 놓고

살 수도 있고, 또 노인들끼리  농사일을 하다 보면 누구와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식들이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또 매일처럼 전화라도 해주는 자식

이 몇이나 되겠나 싶습니다.


부모들이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모든 힘을 기울여 키워 놓으면, 시골에서 농사

짓는 것이 싫다며 도시로 다들 떠나고, 남아있는 늙은 부모는 자식에게 짐 되지

않으려고, 그나마 두 부부가 먹고 살기위한 농사 일로 하루 종일 논 밭에서 일

을 하니, 그것이 사람다운 삶이라고 진정 말은 할 수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 아

니겠습니까?


자식인들 그런 부모를 모를 리는 없겠지요.


모르지 않으면서도 마음과 같이 하지 못하는 삶의 현실이 그렇게 만든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모두 사람으로 태어난 原罪가 아닌가도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것을 보면 대가족, 즉 삼대, 사대가 모여 살던 옛날의 생활이 그리워지기

도 합니다.


외글와글, 웅성웅성, 그렇게 복닥거리며 사는 것도 나쁜 일만은 아닐 진데.


늙지 않고 살고 싶고,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게 살고 싶고,

그저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부부가 백년해로하고,

같은 날, 같이 조용히 손을 꼭 잡고 떠나고 싶은데........


과연 그런 음덕을 내가 쌓아왔는지? 모를 일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사망의 사이

한 걸음을 두고

내일 모르는 일을 살아 있을 뿐

  실로 깊은 것은

  그 한 걸음이다.


인생은 다음, 다음

사랑으로 이어감에

마냥 그 자리지만


흔적없이 사라져 갈 너와 나

한 걸음 넘어선

어디서 만나리.


인간은 누구나 사망의 사이

한 걸음을 두고

인생에 잠시 있을 뿐


실로 깊은 것은

너와 나의 그 한 걸음이다.


조병화 시인의 <한 걸음> 이었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나의 옆에서 평생을 같이하는 친구이며 나의 분신인  내

사랑하는 아내와, 또 내 몸처럼 깊이 끝없이 사랑했던 나의 자식들과도 헤어질

날이 올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하늘하늘 힘이 없는 우리네 보잘 것 없는 작은 생명들은

그것을 거역할 자격이 없겠지요?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사랑하는 사람들과 또 미워하는 사람들과도 이승에서의

밉고 고운 정을 끊어야 하며, 저 彼岸의 언덕 밑자락으로 발을 옮겨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날이 올 때, 우리는 덜 외롭고, 덜 서럽기 위해 서서히 “헤어지는 연습을 하

며” 오늘을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입술, 아름다운 목

아름다운 손목

서로 다 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리니

인생이 그러하거니와

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 일은

“떠나는 일”일세.


실로 스스로의 쓸쓸한 투쟁이었으며

스스로의 쓸쓸한 노래였으나


작별을 하는 절차를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말을 배우며 사세.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인생,

아름다운 정, 아름다운 말.


두고 가는 것을 배우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 우리 서로 마지막 할

말을 배우며 사세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제가 조병화 시인의 시 중에서 제일 마음에 두고 공감하는 시입니다.


사람이 사는 데에도 예절과 절차가 있고

옳게 살아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름답게 살아가려면 그만큼 절차와 예절과 방법을 배우며 실천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언젠가 나 떠나는 날,  나에게,  사랑하는 나의 가족에게, 또 나의 가까운 진정

한 벗들에게 울음만은 놓고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살아가는 일과 헤어지는 일에 대하여 또 만나는 일에 대하여 다시금 조

용히 생각을 해보며, 오늘을 닫습니다.


이 시는 저의 생애의 좌우명처럼 젊은 날부터 마음에 새기고, 되도록 그렇게 살

려고 노력을 했던 그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