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명개리 계곡-1
명개리 계곡-2
명개리 계곡의 침엽수 오솔길
<동락재 통신-74: 잡초때문에 병 나것네> (06. 7. 3)
어제는 서울의 아들 일로 마음이 좀 무겁고 답답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골돌히 하다 보니, 잠도 쉽게 이루지 못하고, 오늘 아침 늦게야 눈을 떴습니다.
장마 비가 잠깐 그쳐서 날이 모처럼 개였기에, 장마 비로 인하여 고추밭은 괜찮은지 올라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지난 며칠 사이의 폭우와 바람에 고추나무가 반쯤 쓰러져 있었고, 잡초는 밭을 뒤덮어 버렸습니다.
여름날의 하루는 이렇게 잡초들의 천국입니다.
고추밭으로 올라가는 길도 좌우로 잡초가 뒤덮여 뱀이 나와도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어, 그냥 놓아두면 안 되게 되었지요.
호미를 가지고 올라가 쓰러진 고추나무를 다시 단단히 세워주고, 밭고랑의 잡초도 뽑아 주고, 지주를 세우고 고추나무도 쓰러지지 않게 하기위하여 끈을 매어 주었지만, 그 위에 한 번 더 끈을 매어 주어야, 고추나무가 자라도 쓰러지지 않게 되므로. 기왕에 일을 시작한 김에 끈도 한 번 더 매어 주었습니다.
아침나절이기는 해도 햇볕이 따가워 땀이 금세 온 몸을 흥건히 적시고 말았습니다.
고추밭에서 고추나무와 씨름을 하다 보니 벌써 2시간은 지났고, 고추밭을 오르내리는 길옆에 무성한 잡초를 낫으로 깔끔히 쳐주고, 옥수수 밭의 잡초도 아예 낫으로 대충 베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낫으로 베어 버린다 해도 이삼일 이면 금방 또 잡초가 무성하니, 여름의 밭일은 곧 잡초와의 싸움이라 해도 옳을 일입니다.
고추밭에는 또 탄저병 약을 뿌려 주었습니다.
장마철에는 잠깐 깜박하면 고추나무에 탄저병이 걸리게 되고, 탄저병이 걸리면 고추나무가 전멸을 하게 되므로, 고추농사는 또한 탄저병을 걸리지 않게 예방하고 관리하는 것이 큰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름철엔 대강 5-6회 정도 탄저병 약을 쳐 주어야 합니다.
따지고 보면 고추농사처럼 손이 많이 가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전문농사꾼이 들으면 가소롭다 하겠지요?
그러나, 무릇 살림살이도 1식구 살림이나 다섯 식구 살림이나 해야 할 것은 똑같지 않습니까?
이렇게 산촌에서 혼자 생활할 때가 많아도, 살림살이나 먹을 것, 입는 것, 빨래하는 것 등은 서울의 우리 자식들과 아내가 있는 곳이나 별 차이가 없으니까요.
냉장고, 김치냉장고, 전기밥솥.... 뭐 이런 생활전기용품은 물론이고, 오디오라든지 컴퓨터라든지, 무엇이든 다 갖추고 생활을 해야 덜 불편하게 마련 아니겠습니까?
한 때는 네 집 살림을 한 때도 있었지만, 그 때에는 모든 것이 네 개씩 있어야 했었지요.
딸 아이 따로, 아들 따로, 아내 따로, 나 또한 따로.....
얼마나 큰 낭비이고 쓸데없는 씀씀이 이었겠습니까?
백수주제에 너무 큰 낭비를 하고 살았던 적이 몇 년 됐었지요.
어쨌던, 고추밭 일을 마치고 내려오니, 텃밭의 고구마 밭과 상추밭의 잡초도 뽑아야 하고, 오이 밭과 도마도 밭도 건사를 해야 하니, 한 숨이 절로 나오고, 날이 더워서 오늘은 오후 작업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꾀도 나고, 아내도 없으니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이상하지요? 아내가 옆에 있으면 목공예의 작업을 해도, 밭일을 해도, 뒷산엘 올라가도 힘도 안 들고 재미가 있는데, 아내가 옆에 없으면 모든 게 다 귀찮고 의욕이 없어지니.....
나, 바보 다 됐나봐요!
백수가 되어 6년이 되니, 아내가 옆에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아니 아무 것도 하기 싫으니........
그렇다고 내가 안하면 누가 해줍니까?
온 몸이 땀에 젖어, 욕실에 들어와서 다 벗어 제치고 샤워를 하였습니다.
이 기분, 누가 알리?
땀을 흘리고 샤워를 한 후, 시원하게 한 잔 꿀꺽꿀꺽 마시는 맥주의 맛은 그 어느 꿀 맛 보다도 달고 시원합니다.
늦게나마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어제 오이를 썰다가 처음 손을 베어서 그냥 미숫가루로 때우기로 했습니다.
어제 점심때에 시원하게 오이냉채를 해먹는다고 오이의 채를 능숙하게(?) 썰다가 주부생활 6년 차에 처음으로 손톱과 손가락 끝을 베었습니다.
잘못하면 손이 절단 날 뻔 했지요.
아내에겐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얘기하면 또 쿠사리를 먹을 게 뻔하니...
이렇게 농촌이나 산촌에서 밭을 매고 농사를 지어가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든 일인 줄은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면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농촌 출신 젊은이들이 절대 시골에서 살려고 하지 않고, 시골 사람과 배필의 연을 맺지 않으려 하는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늙어서 전원생활 하는 것이 소망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기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하는 얘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저의 친구는 절대 시골에서 살지 않겠다고 합니다.
“야! 이 시골에 와서 우리와 이웃에서 같이 살자!”
“그리고 조그만 카페같은 것을 차려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얘기도 하고, 생음악도 하고, 또 작업도 하고, 잡스러운 글도 쓰고.....” 얼마나 좋겠냐? 몇 몇 친구들과 같이 마을을 이루고 산다면, 그것처럼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어디 있겠냐?“고 꾀어도, 자기는 죽어도 시골에서는 안 산답니다.
그냥 지금처럼 산촌의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친구의 집에 가끔 놀러와 쉬었다 가겠답니다.
참 인정머리 없는 놈이지요.
그 친구와 대학 초에는 기타도 같이 치며, 노래도 부르며 주변에서 인기가 아주 좋았었는데.......
서유석이라든지, 트윈 폴리오, 김세환, 은희, 박인희, 양희은, CCR, Neil Diamond, Glen Campbell... 등등의 노래들을 무척 즐겨 부르기도 했었는데.
지금도 그의 아내는 전원의 생활을 동경하는데, 그 나쁜 놈만 싫다고 합니다.
찌들은 공기와 매연, 매연에 쩔은 군상들이 무에 좋다고, 서울을 고집하는지....
하긴, 이렇게 혼자서 산촌에 틀어박혀 있는 내가 괴짜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은 얘기라 할 수 있지요.
사람은 늙을수록 도시에서 생활하는 것이 좋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제일 좋은 것은 마음이 맞는 벗들 몇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서 전원생활을 한다면, 여러모로 좋기는 하겠지만, 각자의 사정이 다르니 소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겠지요.
이런 시골에서 살아가려면, 자기의 소일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취미라든지 특기라든지 뭐 그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인생을 정리하여야 하는, 이삼십년의 나머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짦은 우리들의 생애!
최소한의 먹을거리를 얻기 위한 노동(자급자족의 농사일)과 서양 사람들처럼 무엇을 만들고 그 창작과 완성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취미나 특기가 있다면 나물 먹고 물 마시는 빈한한 삶이라 해도, 두 부부가 같이 한다면 그렇게 고적하다거나 살 수 없는 생활은 아닌데.........
아! 제일 우선적이며 크고 중요한 덕목은 욕심을 버리는 일입니다.
그것이 전제가 되어야 전원생활은 가능합니다.
단, 서민들의 경우겠지요.
더 훌륭하고 돈이 많고 큰 뜻을 가진 사람들의 속내는 이 소인배가 알 수가 없으니, 그들에 관해서는 언급마저 할 수 없음이 저의 한계이지만서두 말입니다.
산촌에서의 어둠이 그 자락을 호수의 湖面에 내리고 있습니다.
며칠 간 목공예의 작업을 하지 못해서, 내일은 꼭 해야 할 터인데 할 수나 있으려나?
오늘 하지 못한 고구마와 상추밭 그리고 철쭉 꽃밭의 잡초를 뽑긴 뽑아야 하는데........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또 내일로 ......
바다로 가는 언덕 위에 앉아
황혼이 나를 부르고 있읍니다
황혼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환멸할 내 모든 그것을 나도 갖고
나 호올로 가기 싫어
저렇게도 찬란한
황혼을 마주보고 있읍니다.
바다로 가는 언덕 위에 앉아
오늘도
황혼이 나를 부르고 있읍니다.
-조병화 시인의 “黃昏”
동락재 앞의 저 호수에도 황혼이 오늘의 이별을 덮으며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고 있습니다.
내일은 또 장마 비가 중부지방에 많이 쏟아진다는 예보가 있습니다.
집중호우에 대비하시고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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