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동락재 통신-73: 산촌에 산다는 것

sosoart 2007. 4. 6. 23:10

 

거미줄 사이로 본 옥수수밭

 

도마도가 잘 익으면......

 

콩 넝쿨이 울타리를 타고 올라가고 있네요.

 

홍천의 가리산 휴양림

 

 

가리산 휴양림의 골짜기. 장마가 지나면 물이 훨씬 많아지겠지요.

 

산막으로 올라가는 길이 잘 포장되어 있습니다.

 

 

 

 

<동락재 통신-73: 산촌에 산다는 것>           (06. 6. 29)


이곳은 늦은 밤이나 내일 새벽부터 며칠간 장마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습니다.

요즈음 예보는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지만, 비가 오기만 하면 엄청나게 퍼붓는 경우가 많아서 은근히 겁이 나기도 합니다.


조금 전에 서울의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돌풍과 함께 비가 많이 온다고 하니 두루 두루 살펴보고, 주무세요”라고....


아내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보는 일 없으니 -얼마 전까지는 혼자만의 고집으로 하는 모든 일이 신통치가 않아서, (실은 신통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다 말아먹는 형국이 되니) 나도 모르게 언제부터인가는 아내의 말에 절대 순종(?)하게 된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만- 진즉부터 아내의 말쌈을 잘 들었다면, 갑부도 되고 모든 일이 잘 되었을 법하기는 합니다.


그래서 밤이 깊어가는 동락재의 마당에 불을 켜고 나가서, 마당에 펼쳐져 있는 파라솔을 다 걷고, 벤취도 테라스에 올려놓고, 우리 마당의 식구인 복돌이, 복순이, 길동이, 해피 이렇게 네 녀석들의 집과 먹이도 보살펴 보고, 토돌이, 토순이의 집도 살펴보며, 이것저것 두루 점검하고 들어왔습니다.


요즈음 오는 비는 장마 비가 아니라 쏟아졌다하면 집중호우요, 왔다하면 시간 당 100미리가 기본이 되어버렸으니, 이런 산촌이나 농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비를 한다고는 하지만, 대자연의 그 커다란 힘에는 속수무책인 동시에 일개 먼지에 지나지 않는 인간의 초라한 존재를 너무나도 잘 알게 되어,  하늘의 마음에 反하는 일은 아예 하지 않는 관습과 마음을 가진지 오래된 듯합니다.


지난 월요일엔 아내의 지시(?)대로 고추 말리는 건조대를 다시 조립을 했습니다.


이 건조대는 4-5년 전, 홍천 읍내에 제작 주문을 하여, 앵글을 절단해서 가져와 건조대 2개를 만들어 쓰고 있었습니다만


많은 고추를 말리기에는 감질이 나고 자리만 많이 차지하여, 조립을 해체하여 놓았다가, 재작년에 두 개를 한 개로 조립하여 썼다가, 그만 태풍이 오는 바람에 다 무너져, 모두 해체해 놓고 있었는데,


아내가 여름부터 고추가 빨갛게 익은 것은 그때그때 따서 말리는 것이 덜 품이 가니, 건조대를 하나만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해서, 3-4시간을 낑낑거리며, 어떤 태풍에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게 다시 조립을 하여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비가 올 것에 대비하여 비닐 막도 튼튼하게 쳐 놓았습니다.


기실 이런 시골에서 살아가려면, 목수도 되고 대장장이도 되고, 미장이도 되고, 모든 일들을 사람을 사서 하지 않고, 혼자서 해결할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시골의 산촌 구석에서 사람을 부르면 1-2일이 걸리기는 다반사이고, 부른다 해도 출장비나 경비가 서울에서 사람을 부를 때보다는 배가 더 들어가니 스스로 자급자족하는 능력을 키우고, 방법을 알아야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가 무척 힘이 들고, 버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집수리와 관리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대처하지 못하면, 매우 불편할뿐더러 돈이 무척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와 반대로 좋은 점 또한 많다는 것이 이곳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는

하늘이불을 덮고

물소리가 요란한

노자바위에 누워

허욕을 버리고

푸른 산정에 걸린

흰 구름에

마음을 둡니다.

권달웅 시인의 <흰 구름>이라는 詩처럼, 이러한 마음의 풍요는 어느 도시인이 갖지 못 할 큰 행복이기도 합니다.  


이번 비는 얼마나 또 억수로 내릴지, 걱정이 됩니다.

무사히 그냥 잘 지나길 바라며, 또 적게 짓는 밭농사이지만 농작물에 피해 없이 잘 지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제는 觀照보다는 행동하는 젊은 마음을 실천하기 위하여, 조병화 시인의 시는 잠시 되도록 멀리 하려 했으나, 이런 밤이 오면 절로 그의 시가 손에 쥐어 집니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 남남이지만

난 너의 숙소

넌 나의 숙소

인간 서로 끼리끼리의 존재의 숙소로

서로 그 증인이 되어

생각을 통로로

떨어져 있는 거리만큼, 그 만큼

가까이 멀리 서로 맞살고 있지만

너, 나, 떠나면

누가 널, 날, 이야기하리


사람은 누구나 서로 남남이지만

너와 난

아직은 같은 이 우주의 역전마을

만나면 이야기 되고

떨어지면 아쉼 되는

인간의 자리


만나며 헤어지며 다시 만나며

가까이 멀리 서로 맞살이 하고 있지만

너 없고 나 없는

아주 먼 훗날이면

누가 널, 날, 이야기하리


한달이 지난다

일년이 지난다

십년이 지난다

백년, 천년이 지나면

너와 나, 묘연한 흔적

둘 하나 여기요, 한들 그게 영원하리.


그의 시 <남 남, 38장>이었습니다.


사나운 폭우가 아닌, 사랑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 주는 그런 촉촉한 장마 비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