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암벽등반에 미쳐서 직장이 끝나자마자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도봉산 선인봉으로 향했던 시절의 모습
지난 사진을 디지털카메라로 다시 찍어보니 선명하게 나오질 않아서, 가입한 어느카페에 사진 잘 올리는 법을 물었는데, 아직 답글이 없다.
지난 사진을 다시 찍는다는 것은 기술적인 어려움이 많이 따를텐데.......
한 20년전쯤의 사진같다. 오대산 노인봉 등반시가 아닌가 기억이 된다.
산악회장을 맡았던 어느 해 봄의 시산제에서 제주로서 한 해동안 무사한 산행을 기원하며....
이 젊은 친구들이 벌써 40대가 되어 사회의 각분야로 흩어지기도 하며, 제 몫을 하고 있겠지.....
내가 산악회장을 맡았을 때가 아마 산악회의 활동이 제일 활발했던 것 같다. 그때는 젊은 산악회의
간부들이 열성을 가지고 활동을 했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그리운 얼굴들이다.
전임 산악회장과 그 친구분들 그리고 우리 산악회의 일꾼들이 한 자리에서 찰칵!
소백산 산행 후 도담삼봉에 들려, 모두 한 자리에서......
아마 여기가 노인봉 정상이 아닌가......?
이 젊은 친구들이 이제는 모두 중고교 학생들의 학부형이 되었을 게다.
대략 20년 전이었으니, 내 나이도 불혹의 나이 밖에 되지 않아, 몸도 마음도 젊어서 무엇이든지 추진력
있게 행동할 나이었지.....
이 중에는 직장내의 산악회 커플이 많이 탄생을 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성상 사람보다는 산을 더 좋아하니, 산 이외의 곳에서는 연애할 시간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자연 산에서 어려움을 같이 겪는 동료애가 애정으로 발전하는 것은 젊은 사람들의 당연한 특권이 아니겠나?
그 시절에도 여성들의 여가활동 참여가 적극적이어서, 남성보다는 여성회원들이 많았다.
한라산 백록담 앞에서
이 때에도 산애서 취사행위를 할 수가 없었는데, 그래도 자랑스럽게 그런 행동을 하는 별종들이 있었다.
한라산 등반시에도 등산로에서 버젓이 취사를 하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었다,
우리 산악회는 그런 점은 철저히 지키는 모범산악인들이었다.
한라산 철쭉꽃 앞에서 꽃보다 훨씬 미운 남정네가 꽃이 되고 싶어........
지금은 모두들 가정을 꾸미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 사람들. 그리운 사람들이다.
처음 내가 산악회 회장을 맡았을 때, 젊은 혈기로 폭우가 쏟아지는 10월 설악산 등반을 강행하자고 하는
젊은 친구들을 핀잔주고, 제지를 할 때에 불만을 하던 친구들이 몇 있었는데, 그들도 회원 모두의 안전산행의 책임을 맡는다면, 이제는 그렇게 하진 않겠지.
<동락재 통신-84: 홍천의 숲해설가 활동을 마감하면서> (06. 11.30)
오늘은 그간 8개월째 일을 해왔던 “숲 해설가”의 활동을 마감하는 날이다.
처음 나에겐 생소한 일이었던 “숲 해설가”란 일을 맡으면서, 내가 이 맡은 바 소
임을 충실하게, 아니 “썩 내 마음에 들 수 있도록” 흡족하게 해낼 수 있을까?
생각하며, 반은 자신감을 갖고, 또 그 반은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시작을 했
었다.
두려웠다는 것은 일이 어렵거나 무섭다는 것이 아니라, 이 나이에 그런 일을 해
나가면서, 심오한 전문적지식이나 경륜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기에, 혹여 감각
이나 행동의 민첩성을 요구하는 일이라면 “역시 늙은이들은 무슨 일을 맡겨도
안돼!” 하는 어떤 평가와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지 않을까?
또 그러므로 해서 동년배나, 나보다 인생 선배들의 사회활동 참여에 누를 끼치
지나 않을까? 해서 자못 조심스러운 출발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숲 해설가의 활동을 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로 이미 진입된
상황에서, 정부의 “노인들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의 일환으로 정부 각부처
에 할당한 사업으로, 이 일은 산림청의 주관으로 올해에 처음 실시되는 사회 봉
사적 개념이 강한 한시적인 사회활동이라 할 수 있다하겠다.
더구나 서울이나 도시도 아니고 강원도의 낙후된 군 단위 지역에서 활동을 하
게 되므로, 나름대로는 좀 더 지역사회에 봉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또 한 달에
10여 회의 활동이지만, 최선을 다하여, 고령자를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활동을 하였다.
그러기에, 소속기관의 관할 국유 임도와 산림의 위치, 지형, 주변 자연환경 등
을 거의 대부분 순회, 파악하였고, 삼림생태계의 현황과 산림정책에 대한 이해
도 많이 하게 되었다.
또한 유치원, 초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한 숲과 생태에 관한 현장교육이자 살
아있는 교육을 실시하고, 자연보호와 생태계 보호와 보존이 곧 우리네 인간과
더불어 공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인식 시켜주는데, 아주 조그맣게
나마 일조를 할 수 있었다는 자부심도 느낄 수가 있었다.
또한, 관광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유명산과 풍광 수려한 이름 모를 계곡과 산림,
임도 등에서 일반 행락객을 상대로 산과 들과 계곡, 그리고 주변의 생태 식물이
나 동물에 관한 여러 가지 현장학습과도 같은 산지식과 상식들을 전달하여 자
연과 생태의 이해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 역시 마음 뿌듯한 일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환경과 자연보존에 관한 살아있는 지식과 교육을
제공하려면, 우선 내가 비 전공분야이지만 전문가에 버금갈 만큼 열심히 공부
하고, 현장답사와 탐사, 학습을 통하여 남보다 먼저 습득한 지식을 전달해야
하므로, 광범위한 관련 자료(도서나 연구논문, 보고서 그리고 많은 references)
는 물론 인터넷을 통한 다각적 자료의 접근, 활용을 통해 습득한 자료 등을 재
구성하고, 또한 산촌의 전원생활에서 습득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생활 등을 체
계있고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설명하고 안내하는 일을 하므로써, 나 또한 자연
과 환경, 그리고 산림생태와 경영 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귀중한 지식과
상식도 습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참으로 뜻있는 8개월간의 숲 해설가 활동
을 수행해 왔기에, 이러한 활동을 하게 허락하여 준 관계 당국에 진심으로 감사
를 하는 마음이다.
물론, 제반 활동에 대한 정부의 제도적 장치나, 숲 해설가 자신들의 활동상황이
첫 해의 활동부터 만족할 수는 없을 것이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수정, 보완
해 나가야하겠지만, 이는 정부 당국에서 비록 일자리 창출의 사업의 일환으로
시행해 나가는 새로운 접근법이라 해도, 보다 효율적인 활동의 전개와 관리를
위해 더 연구, 발전하는 평가와 계획이 확립되어 신속하게 현장에서 실행이 되
기를 한편으로 희망해 본다.
정부의 정책에 대해 피사용자로서 직접 참여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정책수립
을 위한 현장의 목소리를 원한다면 기꺼이 협력을 할 준비는 되어있다.
오랜 현직에서의 습관 때문인지는 몰라도, 본인의 그간 활동상황 등을 일지형
태로 기록하고, 개선방안이나 앞으로 지향해야할 방향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를
해 놓았으니,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면 산림청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건의도
할 예정이다.
다만, 한 가지 섭섭한 것은 그나마 오뉴월 곁불도 쬐다 말면 섭섭하다는 말이
있듯이, 정규 일자리는 아니었으나 이제 올 해의 활동이 끝났다고 하니 적지아
니 서운하다.
젊은 나이라면 정규직으로 활발히 일을 할 수 있겠지만, 다만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는 나이 60이면 새로이 인생을 시작하는 나이로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
으로도 또는 일 처리의 완숙도를 높일 수 있는 능률면에서도, 얼마든지 10년 이
상을 일 할 나이라고 자부하고 있는데, 사회적으로 인정을 해주지 않으니 속이
상할 일이다.
하긴, 한 참 일을 해야 할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갖지 못하고 있는 가슴 아픈 현
실을 보면 우리네 늙은이들이 일을 하고 싶다고 말을 하는 것은 투정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긴 하지만.
젊은이들은 그들에게 걸맞는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그들의 일자리 영역을 침
범하지 않을 그런 일자리에서, 일을 하고자 하는 은퇴자들 누구나 일을 할 수
있는 날이 오도록, 대통령이나 공무원, 기업인들이 온 몸을 던져서 소임을 다해
주기를 기대도 해본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일자리 창출 사업활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된다면, 내년
에도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으려니 하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으며, 내년에는
더욱 더 전문화된 지식과 관련 정보로 무장하여 더욱 재미있고, 유익한 숲 해설
과 자연생태와 인간에 관한 폭넓은 정보를 각급 학교의 학생과 일반 탐방객들
에게 제공하여, 그들을 정신적으로 살찌게 할 수 있는 도우미로 거듭 태어나고
자 한다.
간단한 일화가 있었다면,
지난 봄, 입산통제기간 중 산불감시요원이 근무하는 곳으로 숲 해설활동을 나
갔을 때, 본인이 산림청 감독관인줄 알고 그 지역 산불감시요원이 군대의 사병
처럼 부동자세로 거수경례를 하여 검연쩍게 인사를 받은 적이 있었고,
여름철 어느 경치 좋은 관내의 임도를 가로지르는 계곡에서 취사금지나 쓰레기
투기금지의 안내판 바로 밑에서 개고기 파티를 하는 무리에게 취사금지와 쓰레
기 투기를 삼가해 달라! 고 하니 술에 취한 갓 40이 넘은 친구가 덤벼든 적도 있
고,
입산금지 기간에 나물을 채취하고 뱀을 잡으러 다니는 땅꾼들도 적지아니 볼
수도 있었다.
수타사와 같은 곳은 절의 탐방객과 공작산 등반객, 그리고 관광객들이 적지 않
은 곳인데, 게 중에는 아주 시건방지게 거만을 떨며, 하인 부리듯 하는 자들도
더러 있기도 하다.
그럴 때에는 내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며, 좋은 말로 응대를 해주도록 노력을 하
는 편이어서, 인격수양에도 많이 도움이 되었다면 억지춘향일까?
계곡에서 불을 피우고 떠들썩거리며 취사와 음주를 하다가 취기가 올라 하늘이
돈짝만 하게 보이는지, 설익고 아직 장년도 안되보이는 녀석들이 버르장머리
없이 굴적에는 박살을 내고도 싶지만, 참으며 내 스스로를 다스리는 연습도 많
이 하였다.
본인 역시 마음은 아직도 한, 두 놈은 덤벼도 문제없다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인적이 없는 곳에서 무리지어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면 실은 조금
두렵기도 하다.
숲 해설가이면서 명예산림보호지도원의 임무도 수행을 해야 하였기에, 산림훼
손이나 숲의 생태를 해치는 행동을 보면 제지하거나 계도를 하게 되는데, 대부
분의 사람들은 잘못을 시인하고 협조를 하지만, “못된 소 엉덩이에 뿔난다”고
인간 중에도 그런 못된 종자들도 있어서 가끔은 시비에 휘말리게 되기도 하지
만, 아직까지는 절대 그런 자들에게 동의를 해주거나, 모른 척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심은 해야겠다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친개에 물리면 약도 없다는데, 물리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에 대응하
기 위해 방어를 하다가, 나의 격한 감정을 이기지 못해 일을 그르친다면 미친개
밟아 놓고, 사람값을 물어주어야 하는 경우가 생길까봐 두려운 것이다.
忍, 忍, 忍, 적어도 세 번은 참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무언가 움직이지 않으면, 못 견디는 성격이어서, 내가 할 수 있는 마땅한 자원
봉사의 일을 해볼까 생각을 하고 있다.
올 봄에는 부근의 군부대의 자원봉사를 하고자 최고책임자에게 편지로 의사를
전달했더니, 환영을 한다며 나의 동락재로 찾아와서 면담을 하고 가며, 곧 상부
사단과 의논하여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는데, 군부대란 특수상황이어서 그런지
“일을 해주십사”는 연락이 없다.
그래서, 전직 도서관장의 일도 해 본 터여서, 이번엔 군의 공공도서관장에게 자
원봉사를 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자원봉사를 원하는 사람이 여자가 아니고 남자라서 그런건지,
나이가 많아서 인지, 아니면 호락호락 만만하게 다룰 수 없는 경력의 소유자로
판단을 하여서 그런지, 자원봉사를 하겠다면 앞에서는 고맙다고 하면서, 시간
이 지나면 연락을 하지 않는다.
무슨 이유일까? 곰곰이 생각도 해봤는데, 앞의 세 가지 나열한 이유는 모두 포
함이 되는 것 같고, 공연히 노인네 데려다 놓고 시집살이하기가 싫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끝까지 내 의지를 관철하여 활동을 해보려고 한다. 무언가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보겠다는 것이 일개인의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아무려면, 현직에서 근무하는 자기들에게 내가 해를 끼치겠는가? 그렇다고 자
원봉사자가 저희들 일을 간섭하고, 감 놔라 배 놔라 하겠는가?
역시 지방의 관리들은 생각이 촌스러운가? 시쳇말로 cool 하지가 못한 것 같
다.
국가의 중앙부처나 공직에서 풍부한 경륜과 관리자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 저희
들 일을 도와주겠다는데, 왜 싫어하나?
돈도 들이지 않고, 선진 경영과 관리의 know-how를 전수해 주겠다는데.....
끼리끼리의 사회, 코드만 맞는 못난 놈끼리 놀자는 사회는 반드시 고쳐져야 할
텐데.....
천상병의 시 “無名” 처럼 나도 “알려고 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할 것이다.
무명(無名)
뭐라고
말할 수 없이
저녁놀이 져가는 것이었다
그 시간과 밤을 보면서
나는 그때
내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봄도 가고
어제도 오늘도 이 순간도
빨가니 타서 아, 스러지는 놀빛.
저기 저 하늘을 깎아서
하루 빨리 내가
나의 무명을 적어야 할 까닭을
나는 알려고 한다.
나는 알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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