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동락재 통신-86: 산촌의 겨울 먹거리 갈무리

sosoart 2007. 4. 7. 16:00

대관령목장에서 한때:아들과 딸이 서로의 사진을 찍으며....

 

풍력발전기의 위용이 당당하다.

 

 

<동락재 통신-86: 산촌의 겨울 먹거리 갈무리> 06. 12. 13(수)


아침에 마당의 강아지들 밥을 주고, 물그릇의 얼은 물에 뜨거운 물도 부어주

고,  여기저기에 제 멋대로 싸놓은 개똥을 치웠다.


요즈음 같이 차가운 날에는 개똥이 얼어붙어 삽으로 퍼내거나 긁어내도 깨끗하

게 치워지지가 않아 성가시다.


네 놈이나 되니, 그 녀석들 밥 주고, 물 주고, 배설물까지 치우려면 그것도 한

30여분 시간이 걸리고, 두 마리의  토끼들도 사료 주랴, 물통에 얼은 물을 녹여

서 먹을 수 있게 하려면 뜨거운 물도 부어주어야 하니 여간만 성가신 것이 아니

다.


매일 해야 되는 아침행사를 마치고 공방으로 들어와, 공방에다가 만들어 마르

게 테이블 위에 깔아놓은 메주를 다 말랐으면 줄에 엮어서 매달아 놓으라는 마

나님의 엄명이 있었기에 - 된장 메주는 끈으로 엮어서 매달아야 하고, 고추장

메주는 청국장 띄우듯이 띄워야 한다니 - 어차피 내가 하지 않으면 그 누가 할

사람도 없으니 오늘은  일을 끝내려고 준비를 하였다.


전통 한 옥 같으면 처마 안쪽으로 대롱대롱 매달아 놓은 모습이 어울리겠지만,

이곳은 날씨가 추워 밖에 매달 수는 없으므로, 우선 된장 메주를 매어달기 위

해, 전에 아내가 의류매장에서 사용하던 옷걸이를 공방의 창고에서 꺼내와 다

시 조립을 하였고, 고추장 메주는 따뜻한 방에서 띄우기 위해, 청국장 띄우던

커다란 쟁반을 찾아 그 위에 거즈를 깔고 도우넛처럼 만든 메주를 펴놓고,  다

시 그 위에 천을 덮은 후 두터운 담요로 말아서 작은 방에 모셔다 놓았다.


된장메주는 짚으로 끈을 만들어 매달아야 더 잘 뜬다고 하지만, 요즈음은 시골

이라 할지라도 짚을 일부러 구하려면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마을의 논에 세워놓은 짚단을 주인의 허락도 없이 가져왔다간, 커다

란 낭패를 당할 수가 있고, 볏짚 1단을 마땅히 어디서 살 곳도 없어 시중에서

파는 비닐 끈으로 메주를 묶고 옷걸이에 매달아 놓았다.

메주는 이웃집 할머니네가 농사지은 콩으로 쑤었다.


그래도 장날 시장에 가서 사는 메주콩보다, 이웃집 할머니가 농사지은 것을 사

는 것이, 제일 믿을만하므로 해마다 아내는 기름을 짜는 들깨라든지, 메주를 담

는 콩이라든지, 고추 등속은 꼭 그 할머니에게 사서 먹을거리를 장만하고는 한

다.

홍천이란 곳이 강원도의 시골 조그마한 군청 소재지라 하지만, 시장에서 파는

각종 농산물도 중국산을 국산이다 토종이다 속여서 팔고 있으니, 믿을 수가 없

어서. 이웃집 할머니에게 살 수가 없으면 다른 마을까지 수소문하여 사가지고

오기도 한다.


이렇게 산 먹을거리들의 건사는 모두 내 차지이다.


이번 월동 준비에도 아내는 아이들 때문에 서울에서 주로 생활하고 있으니,  이

시골에 있는 내가 육, 칠십 포기나 되는 배추를 뽑기도 하고 배추가 좀 모자라

읍의 마트에 나가서 더 사오고,  옮기고, 절이고, 김장독 묻고, 또 고추를 말린

다든지, 콩을 삶는다든지, 메주를 만든다던지 노동력이 필요한 일은 내가 하기

마련이어서, 이제 나도 웬만한 살림꾼 아녀자가 다 되었다.


하긴 아내가 젊었을 적에도, 그러한 힘이 들어가는 일은 거의 도와주긴 했다.

솔직한 얘기로 아무리 70년대라 하지만 시집온 새색시가 무얼 할 줄 알겠는

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던 아가씨들 치고는 그래도 내 아내가 음식솜씨도

좋고, 그 어떤 이들보다 잘해왔다고 생각을 한다.

세상에 마누라 자랑하는 팔불출의 대열에 꼈다고는 하지만, 친구들의 마누라들

과 비교한다 해도 자랑스러운 것은 사실이어서, 사실을 사실로 얘기하는데 어

떤 X이 뭐라고 하겠나?

   

어머니의 걱정을 들을까봐, 어머니 몰래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기도 했고, 우리

아이들 기저귀도 어머니 몰래 빨아주기도 했다.


왜냐하면, 아내는 시집 식구는 아무도 없고, 친정 식구라야 장모님 살아계실 때

나 약간의 도움을 받았지, 거의 모든 일들을 혼자 해야 했기에 남편인 나로서는

아내를 도와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내는 몸이 약한 편이어서 힘도 쓰질 못할뿐더러, 항상 내가 옆에서 도와 주었

기에, 아내 역시 내가 없으면 큰일은 아무 일도 하질 못할 지경이다.

그러니, 하구한날 항상 붙어서 내가 잘하니, 네가 못하니 하면서 티격태격 쌈질

하면서 집안의 큰일들을 항상 같이 해왔다.


지금도 아내와 나는 하루를 싸우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며 싸우다가

서로를 보고 웃는다.


몇 년 전엔 아내의 사업장인 매장으로 출근을 시켜주다가, 빙판에 차가 미끄러

져 얕기는 하지만 길 가 둑 아래로 뒹굴어, 아내는 어깨의 쇄골이 부러져 보름

을 입원한 후로는,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오른 팔을 잘 쓰지 못한다.

그러니. 남편이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백수인 내가 아내의 팔 노릇을 해주지

않으면 누가 해주겠는가?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골절을 당하지 않도록 특히 조심해야 할 일이다.

젊은 나이 같으면 뼈도 잘 붇고, 회복도 빠르겠지만, 나이를 먹으면 회복은  커

녕 그 후유증이 무덤까지 가는 것 아니겠는가?


이제 올해의 남은 일은 고추장을 담그는 일인데, 다음 주에 아내가 홍천의 동락

재에 내려오면, 방앗간에 가서 고추장 메주와 고추씨를 빻아서 고추장을 담근

다고 하니, 그 때에 또 보조 노릇만 잘 하면 될 일이다.


보조라고 해야 마님의 머슴노릇이지......

뭐 가려오라면 가져오고, 옮기라면 옮기고, 고추장 휘저으라면 좋은 힘으로 젖

고 하면 되니까.

어쨌든  이제 고추장만 담그면 올해의 일은 끝나고,  내년 봄에 막장만 담그면

된장, 고추장 등 오래 두고 먹을거리는 끝내는 셈이다.

만들 때는 힘이 들고 귀찮아도, 해놓고 먹으면 맛도 있고 장의 색깔도 좋고, 우

리 재료로 만든 우리 음식이니 좋기는 하다.


우리 가족은 무엇이든 사먹는 것은 꺼려하고, 꼭 만들어 먹기 때문에 귀찮고 

힘이 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홍천의 조그만 텃밭에서나마 이제는 농사를 지어

키워먹기까지 하지만 힘이 들때면 "에잇! 내년에는 농사고 뭐고 그냥 사다 먹읍

시다.“해놓고는, 해마다 다시 봄이 되면 언제 그랬냐?I는 듯이 종자를 사다 심고

가꾸고를 되풀이한다.


비단 우리 내외만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며칠 전 이웃집 할머니가 마실 오셔서,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유! 이젠 힘이 들어서 내년에는 농사를 조금만 지어야 겠어유!” 하신다.

그래서 우리 내외가 “할머니, 이제는 할머니 잡수실 것 조금만 농사지으시고,

자식들이고 뭐고  고추장, 된장, 김장이다 깨니 감자니 콩이니  일일이 싸줄 생

각하지 마시고, 힘이나 덜 들게 사십시오” 하면,


“예! 그래야 겄어유.  정말 내년부터는 조금만 해야 되겄어유!”라고 대답을 하시

지만, 내년되면 또 자식들 많이 해줄 욕심에 하루 종일 밭에 나가 사시곤 한다.

 

거, 참! 자식이 뭐길래......

우리 이웃집 할머니는 우리가 “할머니!”  “할머니!” 하면 싫어하신다.

그래봐야 연세가 70내외 인데 별 차이도 나지 않으면서 “할머니”라고 부르지

말고 아주머니라고 불러달란다.

나이로 보면야 아내의 큰 형님뻘이지만,  아내는 그렇게 부르기는 어색한 모양

이다.

하긴 어떤 이는 저보다 나이가 어머니뻘인데도 형님! 형님! 하는 사람도 있으

니.......


자식들은 의례 그러려니 하고, 무슨 때가 되면 하루 그저 횡하니 왔다가 이것저

것 바리바리 차에다 잔뜩 실어가면서, 제 홀어머니 용돈 한 번 넉넉하게 주지도

않는 것 같더구만.....


저희들이 어디에 가서 돈 안들이고 순 우리네 농산물을 그렇게도 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말인가?

정말, 부모라는 것이 평생 자식들의 뒷바라지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이려니 생각하니, 나 역시 부모의 입장에서 참 남의 일 같지가 않

아 보인다.

우리 내외는 전부터 자식들에게 선언을 했다.

“결혼하면 엄마, 아빠는 멀리 시골에서 살고 있으니 어떠한 도움도 바라지 마

라.

더구나 엄마는 몸도 약하고, 오른쪽 어깨와 팔을 쓰지 못하므로 절대로 무슨 일

을 해달라든지, 아이를 봐달라고 하면 이 아빠가 용납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너희들에게 부모의 부양에 관해서는 일체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결혼

자금에 대해서는 일체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 벌어서 하라” 


요즘 같은 세상에 어느 자식이 제 부모의 사랑을 알고 보답을 하겠는가?

또 누가 요즈음 자식의 보답을 기대하는 부모가 있겠는가?

부모, 자식 간의 사랑도 이제는 비즈니스가 되어가는 세태이니 허망할 뿐이다.


오늘 어느 방송을 보니, 어느 노년의 연극배우가 당뇨 합병증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이 되었는데,  그 장애와 고난을 잘 극복하고 나머지 삶을 긍정적으

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당사자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극복하기까지의 그 사람 자신과 가족들의 어

려운 속내를 짐작하자면, 남자인 나로서도 여성 사회자처럼 왠지 눈물이 앞서

는데, 나도 직장을 버리고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어가면서 이렇게 마음도 약해

지고, 갈수록 상실감이 커지는데, 저렇게 장애자가 된 사람은 오죽하겠나? 하

는 생각을 해본다.

同病相憐이랄까?


그의 아내에게 사회자가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어라 하시겠느냐?

하니, “나는 결혼을 한지가 40년 가까이 되었는데, 지금까지 남편과 자식들만

을 위해 한 길을 살아와서,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며 목이 메어

말을 잘 잇지 못하며 안경 아래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고 있는 모습

을 보았다.

우리 나이 또래나 우리 선배들의 아내들은 거의 모두가 자신의 일생을 남편과

자식만을 위해 받쳐오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그런 아내와 어머니를 자식들은 아들이 되었건 딸이 되었건 또 남편이 되었든

간에, 그 힘들고 희생해왔던 시간들에 무엇으로 보답을 하고 보상을 해주었던

가?” 

지금 나의 아내에게 나는 어떻게 해주었던가? 를 견주어 생각을 해보면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


이런 생각은 세상의 모든 남편과 자식들이 하기는 할게다.


그래도 나는 아내에게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잘 해왔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래보

았자 아내의 희생에 견주겠는가?

더구나 지금은 나이를 먹어, 그 젊었던 좋은 시절을 아내 소중한 것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보내놓고, 지금에 와서 후회를 한들 가버린 세월과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경제적으로나 다른 면으로나 힘(能力)이 다 증발하고 없어졌는

데.....


젊은 시절 바르고 옳게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되도록이면 큰

길을 벗어나지 않으려 모든 악의 유혹으로부터 꿋꿋이 나를 지키고 살아왔지

만, 지금 나의 가족에게 또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차라리 이럴 바에는 남들처럼 돈이라도 챙겼더라면, 노년의 생활이 풍성하지나

않았을까?

나의 그 알량한 생활 속의 가르침으로 내 자식들도 나의 길을 걷는 모습을 보

며, 지금에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남들처럼,  아주 커다란 도둑질 안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그렁저렁 얽히고 설켜

살았으면, 경제적으로는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또 더욱 출세를 하였을 터

인데....... 하고 후회도 많이 했지만, 나의 인생에는 이제 큰 미련은 없다고 스

스로를 자위하지만, 아이들에게는 현실적인 면역력을 키워주지 못하고, 약고

강하게 남을 밟고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못한 데 대한 후회와 절망, 그

리고 상실감은 감출 수가 없다.


세상이란 것이 모범적으로 정도를 걷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世人들의 눈으

로 볼 때 결국 바보, 병신처럼 자존심이나 세우는 꼴값을 하는 것으로 밖에는 

보지 않겠는가?

오로지 얼마만큼의 돈을 가졌는가? 로 평가되는 것이 요즈음 세상인데....


다른 것은 몰라도, 아이들에게 세상과 타협하며, 혼자서 독야청청하지 말고, 그

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면서 저의 실속을 챙기는 그런 유능한

(?) 인간으로 키웠어야 하는 건데, 그렇게 자식들을 키우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된다.

앞으로라도, 제발 아비의 그런 점은 닮지 말고, 처세에 능한, 도덕과 정의를 제

일(first)로 하지 않는, 시대의 트렌드에 뒤떨어져 낙오가 되지 않는 생활인이 되

기를 바라는 것이 숨김없는 나의 바람이다.

더 솔직히 말하면 “살인만 하지 말고 돈 많이 벌어라!” 는 말까지도 하고 싶다.

정의와 도덕과 휴머니즘이 뭐 말라빠진 것이냐?

이 더러운 세상, 악의 종자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대통령이라는 인사도 제멋대로 사는 세상에서, 무슨 정의와 사명감을 가지고

힘들게 살아갈 이유가 있겠는가?  


韓非子는 世有三亡이라 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세 가지의 망하는 길이 있다고 했다.  즉,


亂이 治를 공격하면 망한다.

邪가 正을 공격하면 망한다.

逆이 順을 공격하면 망한다.


그런데, 이래서 망하는 놈들을 보았나?  역설하면, 오히려 세상을 살려면

한비자가 망한다는 세 가지의 방법으로 살아야 돈도 벌고 출세도 하고 오래오

래 잘 사는 길이다.


왕년의 대통령을 하던 자들을 보라.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모두가 망해야 할 자들이 만수무강 호화롭게 잘 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살라고 얘기하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禮記의 樂不可極 이란 말이다.

“즐기되 끝까지 가지 마라”.  “즐기는 것을 마지막 목적으로 삼지 말라”는 말이

다.


나는 내 자식들에게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적당히 즐겨라. 모든 것을 적당히 할 수 있는 지혜를 길러라.  생각과 행동을 극

으로 까지 치닫지 말고, 어느 정도 되돌아 올 수 있는 곳까지만 가라.


한 가지 덧붙이자면 도둑질과 부정한 행동이 용서되는 세상이라면, 남을 해꼬

지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해라.

그런 것을 악의 원천이라고 배척하고 아무것도 안한다면 그 버러지 같은 인간

들에게 낙오가 될 것이니.  이 애비처럼....

세상이 잘 못 돌아간다 하더라도, 시대적 트렌드를 값싼 것이라 내치지 말고,

최대한 활용하여 돈을 벌어라.

정말로 이렇게 얘기하고 싶은 것이 나의 세상에 대한 감정이다.

차가운 理性으로는  세상을 유유히 헤쳐 나가지 못하므로.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마음껏 써라.

그러나, 반드시 남을 위해 20% 정도는 기부하라.


사람의 사귐도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사람의 사귐도 끝이 있는 것이며, 결국은 잇속을 따지는 것이 인간이기에,

이별이 와도 또 다시 만나는 재회의 시간이 와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귀어

라.


信義禮知가 뭐 말라비틀어진 것이냐?

눈부시지 않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않되, 반드시 승리자가 되라.

그리고 남에게 보이려는 호탕한 웃음보다는, 조용히 항상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생활인이 되어라.    


무엇보다도 나와 내 가족의 행복한 삶이 되도록 항상 노력하라.

그리고 여가시간은 가족과 함께 즐겨라.

한 가지의 악기, 한 가지의 예술적인 재능, 그리고 항상 가족과 함께 여행을 즐

겨라.


역설적으로 내가 자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지만, 다 올바른 것이 아니기에

이렇게 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비와는 달리 최대한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삶이

기를 바란다. 


나도 지금 내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 줄을 모르겠다.


價値觀과 人生觀이 혼미해지고 本末이 顚倒되는 미친 세상에서, 그저 미친놈처

럼 사는 것이 현명할진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