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동락재 통신-88: 군자유구사君子有九思

sosoart 2007. 4. 7. 16:03

 한계리의 개울 풍경

 

 쓸쓸하고 추워보인다.

 미시령 도롯가 휴게주차장에서 바라본 울산암

 

 

<동락재 통신-88>     06. 12/28(목)


이번 12월 달에 들어서는 왠지 몸과 마음이 찌뿌듯한 것이 작품 작업을 하긴 해

야 되는데, 하기가 싫어서 마냥 허망한 시간만 버리고 있다. 


가끔은  내 일상의 무미건조함과 변화 없음에 心思가 뒤틀려서 인지, 게으름 때

문인지 마냥 멍한 채로  움직이기가 싫다.


아마 이런 것이 도시를 떠나 山村에서 생활하고 있는 격리된 사람들이 고적함

과의 지루함의 시간 속에서 겪어야 하고 극복해야할 과제임과 동시에 閑裕하며

마냥 게으른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져가는, 그야말로 본격적인 백수의 터

널로 빠져 드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러한 생활이 시대적 흐름을 타고 자의이던 타의에 의한 본인의 결정이던 간

에 스스로 선택한 고적함과 적막한 시간과 공간이기에, 그러한 시간들을 자각

하게 되거나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나의 일에 몰두하려고 하는 것인데.....


조각도와 끌을 가지고 때로는 통나무를 파며, 조각의 작업을 하기도 하고, 좋은

목재를 골라 톱으로 켜고, 자르고 마름질을 하면서 짜맞춤의 전통 목가구를 만

들다가 지루함을 느낄 때에는 다시금 붓과 물감을 들고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

다던지, 음악을 듣거나 기타를 뜯으며 스스로의 마냥 늘어진 시간에 긴장을 풀

지 않고 있음이었다.    


해서 죽도 밥도 아닌 그저 헛된 시간과 공간이 되지 않기 위해 다시금 雜筆을

끄적거려 보기도 하고, 인터넷의 사이버공간에 들어가 이런 저런 시답지 않은

소리도 올려보며 시간의 때를 가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거나 마음이 허탈한 것은 여전하고 망상과 허

상의 떠오름을 억누르기 위해 머리를 털며, 뒷산에 올라 차거운 공기도 쐬고 

쓸데없이 심어놓은 저 자작나무의 흰 숲을 바라보며 “저것도 나와 같구나....”하

는 또 다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연이어 솟아나오는 요즈음의 시간이다.


해서 소위 성탄절이라고 하는 지난 일요일엔 모처럼 아내와 아들이 함께 同樂

齋로 내려왔기에, 머릿속의 잡스런 먼지를 털어내려고 함께 동해로 향했다.


마침 아내와 아들도 요즈음 입맛도 없고, 회가 먹고 싶다고 하여 바람도 쐬고

횟감도 사러 갈 겸.


가는 길의 풍광은 역시 한계령 길이 단연 으뜸이겠지만, 이번엔 눈길이 미끄러

울까 미시령을 넘어서 횟감을 사기위해 가진, 간성의 항구 쪽으로 갔으나 고기

가 잡히질 않았는지 횟감이 없다고 하여 시장을 들렸으나,  이곳도 역시 마찬가

지여서 속초로 방향을 돌렸다.


연휴나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철엔 역시 시장에서 싱싱한 회를 떠가지고 집으

로 와서 깨끗하고 느긋하게 먹는 것이 편안하므로, 속초 중앙시장에서 싱싱한

활어와 해삼, 멍게 그리고 홍게를 푸짐하게 사가지고 오니 저녁시간이 다 되었

다.


오순도순 세 가족이 앉아서 2년 전에 만들어 놓은 약술 중 한 가지를 골라 한

잔을 곁들이니 이보다 더 좋은 저녁이 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 가족은 되도록이면 외식을 하지 않는다.

음식점이란 고급이던 저급이던 조리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 알고 먹으면 불

결하여 먹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아내는 손수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씻고, 조리하는 것이 매우 귀찮은 일

이긴 하지만, 가족의 건강을 위해 반드시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여 먹는다.


이렇게 하면 음식의 청결함과 신선함 그리고 가격 면에서 훨씬 싸고 맛있게 먹

을 수 있다는 것이 아내의 지론이다.


우리 가족이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만, 단지 아내가 또는 엄마가 귀찮고 힘

이 들기에 미안하고 송구스러울 뿐이다.


외식을 하고 들어오면 아내나 아이들은 꼭 속이 안 좋다하고, 특히 아내는 체하

기가 일수이기에 거의 외식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기에 온 가족이 멀리 여행을 가더라도, 시장에서 그 고장의 별미가 되는 음

식재료를 숙소로 사가지고 와서, 되도록이면 해먹는 편이다.


그러기에 불가피하게 매식을 할 경우에는 음식점의 선별이 어려워서, 가급적이

면 간단히 요기를 하는 편이며 숙소에 돌아와서 만찬을 즐긴다.

귀찮고 힘이 드니 밖에서 먹고 가자해도 아내가 마다하니, 가족인 우리도 그렇

게 길이 들어있다.  

남들이 보면 참으로 유난을 떤다고 하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그렇게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장차는 우리의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겠나? 싶다.

그렇게 엄마가 해주는 음식에 길이 들어있는데, 그 아이들이 결혼을 하면 누가

그렇게 해주겠는가?


그래도 또 저희들 방식대로 잘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사람의 살림살이이려니,

잘 적응해 나가겠지.


단지 그 아이들의 장차 생활방식에 우리가 적응을 못할 뿐이지........


어느덧 세월은 흘러 금년도 이제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 역시 아무것도 마음 흡족하게 이루어 진 것 없이 덧없이 흘러갔다.

덧없이 흘러간 것이 아니라, 나의 열열한 준비와 노력과 실행이 없이 흘려보냈

다는 것이 옳은 말이겠다.


내년엔 좀더 實하게 생활을 꾸려가고 싶다.

더욱 나의 목표에 매진하여, 인생 후반기의 승부를 시작하는 해로 그 元年을 잡

을 생각이다.


할 일은 많고  능력은 점점 줄어드는 것이 나이를 먹어가는 일이지만, 나이를

먹는 만큼 나의 생활의 의미 있는 흔적들은 돌탑을 쌓듯이 급하지 않게 천천히

쌓아나갈 작정이다.


내년에는 좋은 일들만이 나를 맞이할 것이라 생각하며, 그 좋은 일들을 맞이하

기 위한 예절을 나는 정리하여야겠다.


성심으로 그 좋은 일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열심히, 선하고, 지혜롭게,

마음을 베풀며 사는 것이 최소한의 나의 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는가?


나는 신뢰한다, 나의 선택을.

세상이 내일 꺼꾸러진다 해도 나와,  나의 아내와, 나의 자식들이, 건강하고 아

름답고, 맑은 정신으로 힘차게 내일을 살아갈 것임을.


孔子는 論語의 季氏 편에서 군자가 지켜야 할 세 가지 戒律과 두려워해야 할 세

가지와 생각하여야 할 아홉 가지를 말씀한 바가 있다.


그 중에서 새해에는 아홉 가지를 생각하며 실천하고 살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자 한다.


公子曰(공자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君子有九思(군자유구사)하니, 군자에게는 아홉 가지 생각하는 것이 있으니

視思明(시사명)이요, 보는 것은 밝을 것을 생각하고

聽思聰(청사총)이요, 듣는 것은 밝을 것을 생각하고

色思溫(색사온)이요, 안색은 따스할 것을 생각하고

貌思恭(모사공)이요, 용모는 공손할 것을 생각하고

言思忠(언사충)이요, 말에는 정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事思敬(사사경)이요, 일에는 공경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疑思問(의사문)이요, 의문이 있으면 물어볼 것을 생각하고

忿思難(분사난)이요, 분하면 환난이 있을 것을 생각하고

見得思義(견득사의)니라, 얻을 것을 보면 의를 생각한다.


젊은 시절엔 다하지 못한 군자의 길일지라도, 나이를 들면서 부끄럽지 않은 군

자가 되기를 노력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