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전통 목공예작업을 하는 목공예가의 집안을 들어가는 관문인데, 이 현관문의 미닫이 문이 그냥
싸구려 나무인채로, 주인과 손을 무심히 맞이하므로, 차제에 아름다운 우리의 단청문양으로 바꾸어 보았다.
사람도 돈이 들어가거나 옷을 바꾸어 입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듯이, 그저 시골 농가의 미닫이 문이
화려한 단청 옷으로 갈아 입었다.
화사한 색깔로 손과 주인을 맞이 하는 즐거움을 머금은 문짝이 어여쁘다.
화려한 단청의 오방색과는 다른 gradiation효과를 주며 단순한 동일계 색으로 채색을 해 보았다.
그런대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품위가 엿보인다고나 할까?
역시 사람의 손과 노력이 있어야 아름다웁다.
몇 가지 당초문양
이 문양도 목가구에 사용하면 아름다운 문양의 하나이다.
아름다운 당초문양이지만 이 문양은 정성과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
어느 문양이라한들 어찌 정성과 시간이 안들어가겠냐마는.........
색조의 gradation과 단청의 색깔은 많은 연관성이 있다.
<동락재 통신-92: 미닫이 문짝에 단청의 색을 입히며> 07. 1. 31(수)
지난 주말쯤에 오래 미루어 왔던 木家具 작업을 시작하는 둥 흉내만 내다가 웬
지 재단작업은 뒤로 미루고 싶어서 넌지시 미루고, 동락재의 현관 금속제 현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거실 입구의 중문인 미닫이문이 있는데, 목공예를 하는 사
람의 눈으로 보면, 문창살이나 문짝의 목재가 粗惡하여 몇 년을 마음 불편하게
여기고 있던 터였다.
그러다가 작년쯤에 “그 문짝에다가 어떠한 그림을 그려 넣는 것이 좋을까? 아
니면 얇은 판재에 어떠한 문양을 음각이나 양각을 하여 바꿔 끼우는 것이 좋을
까?”
또 그도 아니면 “귀찮기도 하고, 일을 크게 벌리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에다
가 약간만 손을 대어 단청 문양에 단청의 채색을 입혀볼까?” 하며, 몇 가지 궁
리를 하고 실행은 미뤄 왔었다.
더구나 주로 공방 건물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 즈음에, 덜렁 혼자서 쓰지도 않고
뭉개고 있기에는 아까운 단독건물을 펜션이라 이름하여 민박 객을 받다보니,
주말마다 오는 손님들에게 이 들꽃펜션만의 독특한 藝香의 내음이 그득한 것들
을 많이 보여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거실 장식장 작업을 하다가 문짝에 그
려 넣을 단청의 문양을 구상하고. 도본을 만들어 문 두 짝에 앞뒤 양쪽을 셈하
니 모두 4개여서 거기에 단청문양 밑그림을 그려 넣었다.
실은 지난주에 채색을 하고 그 위에 마감 칠을 하려 했으나, 주말에 손님이 들
면 칠 냄새가 나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이번 주 초에 작업을 하려고 마음을 먹
고 있었던 터였다.
지난 일요일 오후에 모처럼 아내가 내려와서 하루를 같이 있다가 월요일 다시
함께 서울로 올라갔었다.
화요일에 大雪이 오고 날이 많이 추워진다고 하여, 눈길 운전을 피하기도 하고
또 날이 추워지면 공방의 난로불이 꺼지면 안 되겠기에 어제 다시 혼자서 동락
재로 歸村을 하였다.
어제는 도착하여 입구 간판의 들꽃민박이란 글씨를 떼어내고 들꽃펜션이란 글
자로 다시 바꾸는 작업을 하느라고 단청 문양의 채색을 하지 못하고 오늘 아침
에 공방 정리 좀 하고, 마당의 강아지들 밥 주고, 물 주고, 개똥 치우고 나서야
겨우 정오 전에 시작을 하였는데,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채색작업이 끝이 났다.
내일 마감 칠을 해야 작업이 끝이 난다.
문짝이 달려있는 상태에서 아래 부분의 문짝에 그려 넣은 단청 문양에, 불편하
게 쭈구리고 엉거주춤 앉아서 채색을 하려니 목과 다리가 아프고 저리다.
절이나 궁궐에서 단청작업을 하는 畵工들은 얼마나 목이 아프고 온 몸이 힘이
들었겠는지 체험을 해보니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런 그들은 예술가의 대접도 받지 못하고 기껏해야 종7품 정도의 대접을 받았
다 하니 옛날엔 예술인들이 자기의 하는 일에 미쳐있지 않았다면 견디지 못했
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여하튼 단청의 흉내를 내서 그려 넣어보니 안한 것 보다는 훨씬 낫다.
나무를 만지다가 조금 싫증이 나면 채색작업이나 그림 작업을 한다.
솔직히 나무를 만지는 작업 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좋다. 그림을 그리고
채색을 하는 일은 행복하다.
아무런 잡념이 없고 몰입하며 그 아름다운 색의 배열과 조화의 마술에 빠져든
다.
아름다운 색을 가지고 또 더 아름다운 색을 창조하고 내 마음의 행복을 디자인
하고 그 속에 흠뻑 빠져있는 그 시간은 이 세상 어느 것과 견줄 수 없는 최고의
행복을 만끽하는 시간이다.
사실 지금까지는 그림을 그리는 일만을 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아무것도 부러
울 것이 없을 것 같다.
이제 목공예와 더불어 그림의 소재는 더욱 더 풍부해 졌고, 표현의 방법과 영역
도 그전 보다는 아주 무궁해졌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으니, 앞으로 내내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과 표현을 캔버스나 목판에 그림으로 부조로 또는 다양
한 목재와 목공예와 미술이 혼연일체가 된 예술의 모습으로 옮겨놓을 수 있다
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내는 아내대로 자기 그림을, 나는 나대로 서양의 그림과 표현을 빌린다 하지
만, 앞으로는 동양화의 재료와 기법으로 나름대로의 현대적인 발견을 통해 표
현하고 싶다.
지금은 아이들이 출가를 하지 않아 아내가 돌보기 위해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
지만 아이들이 모두 제 짝을 찾아 一家를 이룬다면, 그때에는 아내와 둘이서 이
곳 산촌의 同樂齋에서 마음껏 서로의 작품세계를 펼쳐볼 수 있으리니, 오직 지
금은 그 때만을 위해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그 날이 오리라 믿으며, 온 마음을 다해 준비하고 있다.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고, 또 마음 가는 대로 다시금 古典을 깊이 음미하며 읽
으며, 또 손 길 가는 대로 생각을 옮겨 적으며 게다가 사이버의 공간에서 아름
다운 생각을 나누며 공유하고, 거침없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그런 호사스런 생
활을 하고 싶다.
도시의 생활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림과 책과 목공예 속에서 자연과 한 몸으로 살고 싶다. 그러다가 많이 지루
하고 정신과 육체가 신진대사를 원하면 훌쩍 아내와 차를 달려 훌쩍 여행을 떠
나는 것만이 진정 우리 내외에게는 무한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아마 그런 시간이 조만간 빨리 올 것이라 기대하며, 마음 깊이 기도하고 있다.
욕심 없이 사는 그러한 나를 찾아 떠나는, 자기성찰의 시간여행에서 내 앞에
펼쳐지는 짧지 않은 희망찬 생애를 보내고 싶다.
남들은 “늙은이가 무슨 희망찬 생애?”라고 할 지 모르지만 뭘 모르는 소리는 하
지 않는 것이 좋겠다.
저희는 뭐 안 늙나? 그리고 앞으로 몇 십년 후면 인간은 永生의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한다마는, 뭐 그렇게까지 영생을 한다면 이 인간들의 세상은 또 어
떻게 바뀔 것인가?
생각만 해도 毛骨이 悚然해지는 얘기가 아니겠나?
적당한 때에 사라질 줄 아는 그런 삶이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정호승의 <슬픔으로 가는 길>을 음미해 본다.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낯선 새 한 마리 길 끝으로 사라지고
길가에 핀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내 진실로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슬픔으로 걸어가는 들길을 걸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하나
슬픔을 앞세우고 내 앞을 지나가고
어디선가 갈나무 지는 잎새 하나
슬픔을 버리고 나를 따른다.
내 진실로 슬픔으로 가는 길을 걷는 사람으로
끝없이 걸어가다 뒤돌아보면
인생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저녁놀에 파묻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나기 위해
나는 다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나, 세상의 온갖 더러움과 야비함과 탐욕을 더 이상 마주 하기 싫고 자연의 청
아함에 몸을 씻고자 산촌 寓居에서 나물먹고 허접한 베잠방 걸치며 내 삶의 진
정한 시간을 도모하면서, 論語의 子罕편에 있는 말씀을 스스로 위안삼아 뇌어
본다.
子曰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어진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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