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에 솟대를 만들어 울타리 3면에 세웠다. 그러다가 실내에서도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자그만 솟대를 만들면 어떨까?하고 작업하다 쉴 적에
간단하게 만들어 보았다. 그랬더니 나의 동락재에 놀러온 지인들이 너도 나도 하나씩 가져가겠다고 난리들이다.
동락재 통신-93: 두절되었던 “누리벗”들의 소식을 접하며 (07. 2. 9)
여기에서 나는 “누리벗”이란 단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이미 “누리꾼”이란 단어가 많이 통용되듯이, 나는 인터넷의 사이버 세상에서 알
고 지내는 사람을 길게 장황하게 설명하고 표기하기가 귀찮고 우리나라 한글학
자들의 오만과 게으름으로 알맞은 말이 아직 없기에 “누리벗”이란 용어를 쓰기
로 했다.
나중에 알맞은 용어가 쓰이게 되면 그때에 가서 수정을 하기로 한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제 요즘의 근황은 오늘 모처에 올린, 아래 글로 대신합니다.
언제 한번 찾아뵙고 차 한 잔 걸식하려 합니다.
건강하십시오.>
이 글은 2년 전 서울에서 춘천으로 귀농을 하겠다고 임시로 춘천에 거처를 정
하고 본격적으로 귀농채비를 하기 위한 현지답사 겸 파악을 위해 강원도의 이
곳저곳을 인터넷 상으로 정보를 탐색하다가 내가 가입했던 카페에서 나의 귀촌
생활을 접하고 이 동락재에 찾아왔었던 젊은이가 얼마 전 내게 보냈던 메일 내
용이다.
그는 약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귀농을 해서 농사를 짓기에는 다소 외모가 도
시적이라기보다는 좀 평범한 정신세계를 지닌 사람은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내 처소 동락재를 찾아와서 약 1시간 동안 귀농이나 귀촌생활에 대해서 나의
경험을 경청하며, 앞으로 자신의 계획에 대하여 잠시 담소를 나눈 적이 있던 터
였다.
대개 나의 처소 동락재의 마당에 설치한 木彫刻이나 목조형물들이 이곳을 지나
는 이들의 예술적 호기심이나 시각적인 유혹을 흡인력이 있는지는 몰라도, 도
시에서 귀농을 꿈꾸거나 장래 歸村하여 전원생활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이것저
것 장차 자신의 전원생활에 대한 조언이나 유용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
에 대한 자문이나 정보를 얻기 위해 들려서 정보를 얻고 공유하는 사람들이 적
지 않았기 때문에, 지나다가 우연히 들리는 사람에게도 기왕이면 나처럼 현실
을 파악하거나 적응하기 위해 버리는 시간을 줄여주기 위해 성심으로 나의 경
험담과 전혀 연고도 없는 外地의 산골이나 전원에서 전혀 준비가 안 된 사람들
이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대처방법이라든지 지혜를 알려주는 일
이 많았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터이다.
재작년에 왔다가 간 후론 가끔 메일로서 그의 근황을 알 수 있었는데, 지금쯤은
아마 춘천에서 인터넷 문학카페의 주인으로서, 또 그의 문하생은 아니지만 그
지방에 살고 있는 작가 이외수씨와도 연결의 끈을 이어 그의 영향을 받는 듯도
했고, 또 그 지역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나 문학 지망생들과도 활발한 교류와 활
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는 춘천에서 어린 자식의 교육문제나 이혼 후의 안정되지
않은 생활의 영향으로 춘천에서의 완전한 터전을 잡지는 못했을 거라고 짐작을
하고 있었으며, 가끔은 그의 무작정 인듯한 귀농계획에 우려하는 마음을 버리
지는 못했었다.
그런 그가 한 번 들리겠다하니, 그간의 생활이 자못 궁금하던 나로서도 궁금증
을 풀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겠다.
단, 나는 그가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자로서 자연으로 귀의한 스콧과 헬렌 니어
링 부부를 열렬히 동경하고, 다소 좌경화로 기울어진 듯한 그의 정신적 이념이
내면의 정신구조는 극우에 가까운 나의 보수적 생활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
이 많고, 자유민주주의적 사상과 이념에 열등과 무조건적 반감을 가지며 이미
실증되어 폐기된 사회주의의 몽상에서 미몽사몽 헤매는 이념의 정박아 내지 이
단아들과는 어떠한 정신적 지원이라든가 한 수 가르침은 무의미한 것이라 여기
기 때문에 그가 다시 찾아온다면 그의 이념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여 차 한 잔
나눌 시간을 부여할 것인가를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물론 지금의 50대 이하는 6.25 동란 이후의 세대로서, 그 비극적이고 악질적인
전쟁의 실체를 모르고, 경험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금 우리 민족의 비극의
淵源이 되고, 민족을 좌우 양편으로 분열, 갈라지게 하여 더욱 더 큰 비극을 만
들어 내는 그 좌익분자들의 음모를 모르고 있으며, 그 선동에 이미 대뇌의 판단
능력을 잃어 광분내지는 홍위병의 노릇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가엾은 무리들
이지만, 아무리 판단능력을 상실한 무뇌아들의 집단이라 할지라도 세계적으로
이미 검증이 되어 빨간 사회주의는 이미 죽어 없어져 그들의 망령만이 미친 짓
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민족적이고 자주적이라는 미명하에 휩쓸리는 그
무리들에게 동정심을 일으키기 보다는 이제는 분노만이 충천하여 정의와 우리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하고 싶을 뿐인 6.25체험세대와 피해세대(그들의 부모와
형제들)의 깊은 원한을 모르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무리 모른다 해도 저희 할아버지, 아버지를 죽여 없앤 그놈들을 따라 광란의
짓거리를 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텐데 말이다.
그건 그렇고,
며칠 전 또 다른 누리벗의 기별을 받았다.
이 여성은 40대 초반의 서울의 직장여성인데 기억으로는 이 누리벗도 재작년
부터 어느 인터넷카페의 인연으로 가끔은 소식을 주고받는데.....,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연장자이니 일상사를 얘기하기가 편하기도 하겠지만,
그녀에게 나는 인생의 선배로서 또 늙은 영감에 접어드는 나에게 어떠한 일반
적 편견이나 부담이 없을 것 같으니, 상담이라든지 그냥 털어놓음으로 해서 마
음이 편안할 수 있는 그런 상대로 인식을 했기에 가끔은 사유의 편린들을 털며
얘기를 했던 그런 사이버상의 벗이다.
이 여성 아주 귀여운 딸을 둔 아이의 엄마로서 또 사랑스런 한 남편의 아내로서
대부분의 직장여성들이 그러하듯이 여러 가지 역할을 한 몸으로 해나가는 건강
한 주부이기도 한데, 산골 구석에서 생활하며 조병화 시인의 시를 좋아하고 穿
鑿하는 나에게 최근 간행된 그의 시집을 일부러 서점에서 사가지고 선물로 보
내주기도 했던 사람이다.
그녀가 막연한 친근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서울을 버리고 강원도의 춘
천에서도 2년간 생활을 했고 홍천의 이 산골에 들어와서 살고 있다는, 강원도
라는 同鄕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도 큰 몫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겠다.
어쨌던 그녀는 나이를 먹은 사람에게 예절을 지킬 줄도 알고, 이제 不惑이라는
테두리의 나이에 들어서서 인생을 어느 정도 알아가는 것에 대한 약간의 두려
움과 희망도 아울러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이라고도 생각을 한다.
그런 그녀에게서 아주 오랜만에 메일을 접했을 때, 사이버 공간에서의 교류가
마냥 허상과 익명에서 오는 반작용과 인간성이 상실되어가는 세태와 몹쓸 인터
넷 강국(?)의 실망스런 트렌드만이 이 세상을 지배해 간다는 感傷만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니어서 내심 아직도 우리들의 휴머니즘은 그 명맥을 유지하며 살
아가는 사람들이 적지는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좌우간 세상이 도덕과 예절, 그리고 이성과 인간성을 아무리 내팽개치고 한없
이 끝으로 -개신교도들의 표현대로- 末世로 흘러간다 할지언정 인간이기를,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이 진정한 즐거움
이 아니겠나? 생각을 하게 된다.
어쨌던 이 세상이 無腦兒的이고 狂奔의 左傾化로만 치닫지 말고, 차가운 이성
과 마음 따뜻한 동양적 思考와 예절을 잃지 말고 인간성과 진실성을 회복하는
사회로 조속히 복귀되길 간절히 바래본다.
공자는 논어의 顔淵편에서
足食 足兵 民信之矣 라 했다.
즉, “공자는 바른 정치의 요건으로 먹을 것이 족하고, 외침의 위협으로부터 막
을 힘이 있으면 백성은 믿고 따른다” 했다.
작금의 우리나라 대통령과 정치하는 자들이 다른 짓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남
은 짧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국민을 어렵게 알고 위와 같은 마음으로 죽을 각오
로 제 몸을 바쳐야 하는데.......
또한 民無信 不立 이라 했다.
즉, “백성들이 믿음이 없으면 왕의 자리에 설 수 없다.” 라는 말이다.
스스로 알고 물러나는 자의 뒷모습은 그래도 연민의 정으로 감싸지기나 할터인
데......
세상사 흘러가는 꼬락서니에 이 나라의 정치를 맡고 있는 대통령과 그 무리들,
또 한 번의 국회의원을 더 해보기 위해 주인을 물어뜯는 개만도 못한 자들은
저희들이 온갖 야비한 술수를 동원하여 만들어 놓은 것을 저희들 스스로 “있어
서는 안 될 몹쓸 놈의 정당”이라고 깨부수는 놈들에, 온갖 수구꼴통이라는 소리
를 들으면서도 정신 못 차리고, 권력을 다시 잡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야당이
라는 자들 또한 모두 한 보따리에 싸서 저 태평양 제일 깊은 곳의 짠 바닷물 맛
을 보게 하지는 않고, 귀신은 뭐하나? 저런 것들 안 잡아가고......!
이런 분노한 국민들의 소리를 저들은 듣지를 못하리라.
더러운 세상은 더러운 대로, 그것이 곧 이 나라의 운명이고 백성들의 명운일
진데, 산골 촌에 살고 있는 나물이나 뜯어먹고 사는 일개 居士가 상관할 바 아
니니 사랑타령이나 한 마디 늘어놓고 가려고 한다.
김용택의 <푸른나무 1>이라는 詩 한 편 읽어본다.
막 잎 피어나는
푸른 나무 아래 지나면
왜 이렇게 그대가 보고 싶고
그리운지
작은 실가지에 바람이라도 불면
왜 이렇게 나는
그대에게 가 닿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지
생각에서 돌아서면
다시 생각나고
암만 그대 떠올려도
목이 마르는
이 푸르러지는 나무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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