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동락재 통신-96: 밀린 편지의 답장을 하다

sosoart 2007. 4. 7. 16:19

 공방에서 작업을 마치거나 그림을 그리다가 좀 쉬고 싶을 땐 가끔 기타를 뜯어본다.

지난 젊은 날 불렀던 포크송이나 CCR의 노래도 Bee Gees나 Platters의 노래도

혼자서 목청껏 불러본다.

 

동락재 통신-96: 밀린 편지의 답장을 하다.   (07. 2. 28)


지난 설날을 전후하여 오랜 친구와 오랜 싸이버 카페 프렌드(Cyber cafe  friend-가상의 친구가 아니라 인터넷 카페에서 알게된 좋은 친구-너무 신조어를 함부로 만드는 것 아닌가, 몰러)에게서 온  편지의 답장을 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오늘에야 겨우 답장을 했다.

도시에서 산다면 더욱 바쁠 수가 있겠지만, 기실 山村이나 農村에서 살고 있는 촌사람들에게는 지금부터가 은근히 바쁠 그런 시기이기도 하다.


예년 이맘 때 쯤 이면 산이나 들과 같은 산천도 오랜 冬眠에서 깨어나 서서히 버들개지에도 기지개를 켤 그런 시기일 터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겨울이 짧고 기온도 빨리 올라가서 이 추운 강원도 산촌에도 한 낮에는 겨우내 단단히 얼었던 땅이 햇볕을 받아 녹아서, 마당에 물기가 흥건히 고여 있을 정도이니 빠른 농사의 준비를 위해 동락재의 마당 옆으로 나있는 도로를 왕래하는 농사용 트럭들이 비료나 석회, 볏짚, 각종 농사용 자재를 싣고 분주하게 오가는 풍경을 자주 볼 수가 있다.


나 역시 농사다운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고추며 상추니 하는 푸성귀 정도는 자급자족할 수 있게 채소농사는 지어야 하기에, 밭을 다듬는 작업도 하랴 주변의 나무들도 손보랴 아주 바쁘지는 않아도, 하루의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가고 있어서 이렁저렁 하다 보니 답장도 못하고 있었다.

 

싸이버 프렌드는 오래 전부터 꾸준히 소식을 주고받다가 한동안 뜸했었는데 이달 들어 일종의 敬老의 의무감에서라도 다시금 새해인사를 전해왔고, 설날 바로 전에 다시금 설날안부와 더불어 장문의 자신의 신변사를 스승에게 보내는 제자의 마음처럼, 남과 같지 않게 쭈뼛하지는 않으면서 담담히 보내왔기에 무언가 마음에 가 닿을만한 얘기라도 보낸다 하면서도 아직 답장을 못해 웬지  숙제를 아직 하지 못한 거시기한 마음이다.


또한 40여년 知己인 친구 역시 같은 백수의 처지이긴 하지만, 그 친구는 도시에서 일주일 내내,  하루는 클래식 기타를 배우며, 3일은 스키를 타러 다니며, 나머지 이틀은 아파트 경로당의 멤버들과 근교에 등산을 다니니,  시간이 무료하다거나 지루하게 보내는 것은 아니지만 제 자신의 말로는 “강원도 깡촌 산자락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는 아우가 걱정이 되어” 요즘 들어 빈번히 메일로 안부를 전하며 시답지 않은 弄 지껄이로  이 형님이 혹시 하루 종일  고적함에 빠져 울고 있을까봐 “기쁨조” 노릇을 한다는 돈 좀 있는 백수 놈이기도 하다.


나이 60이 지났다 해도 아직 궁댕이에 몽고반점도 없어지지 않을 나이인데, 주제에 경로당이나 출입하는 이 한심한 인사에게 “야! 이 나이에 늙은이들과 어울리면 더 늙어 임마, 되도록이면 젊은 사람들이 붙여준다고 하면 염치불구하고 그냥 젊은 애들하고 놀아! 그래야 덜 늙지 않겠냐?” 했더니, 황소 저리가라 할 정도로 고집이 센 인사라 이 형님의 말은 안 듣고 그 경로당의 막내로서 귀여움을 독차지 하는 뽄새인지 여전히 경로당에 개근을 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까 그 녀석의 慈堂께서도 90넘은 연세에 경로당을 다니시는데, 아니 그렇다면 제 어머님 오며가며 모시고 다니려고 경로당엘 함께.......?

아니,  그 녀석의 그런 돌머리에도 그렇게 깊은 뜻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알고도 모를진저.   그 녀석이 대한민국의 국민이면 다 알 정도로, 그렇게 효자는 아닌데....

젊었을 적에 여자 꽤나 밝히던 녀석인데..........


얼굴은 나보다도 훨씬 못난 놈이 마누라는 미인을 얻어가지고 지금도 꽤나 꺼떡거리고 다니고 있지만 서두..........


이러다 이놈이 이 글을 보고 당장 몽둥이 들고 쳐들어오고 있는 거나 아닌지 몰러.


이 형님이 바쁘다는 핑계로 답장을 보내지 않으면 잔뜩 삐져가지고 볼멘소리로 온갖 상소리를 해 댈 터이니,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험한 소리 안 듣기 위해 금방 답장을 넣어야 하는데, 미적 거리다가 오늘에야 답장을 보냈다.


이 인사에게 내가 “노년에 다시 시작하는 인생을 더욱 뜻있고 재미있게 살자”며 “서울 근교 변두리에 아주 조그마한 사랑방 같은 카페나 더불어 차리고, 다양한 프르그램을 마련하여 생음악 국악연주, 창을 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주말엔 저하고 나하고 둘이서 미사리 통기타는 아니지만, 옛날 실력을 살려서 라이브 음악이나 하면서 늙은 언니들에게 ”젊은 오빠“ 소리 들으며, 때대로 각종 그림이나 목공예 작품 전시회나 하면서 두 夫婦가 한 동네에 같이 사는 방법을 연구해보자고 한 적이 있었지만, 돼지에게 진주 격으로 그저 먹고, 놀며, 이쁜 여자만 밝히는 무식한 놈이라 그런 浪漫을 아는 로맨티스트가 될 수조차 없는 놈이니, 그런 제안을 한 내가 어리석은 놈일 밖에......


잘 먹고 살찐 돼지 보다는, 나물먹고 물 마셔도 낭만파 인생을 즐기자는데, 피앙감사(平壤監司)도 제 싫으면 못하는 법.


이 불쌍한 인생을 누가 인도하려는지 친구로서 그 놈 걱정을 하면 당최 잠이 오질 않는다.


나같이 머리 좋은 사람은 再修란 것을 모르는데, 이놈은 再修인지 三修인지 해서 겨우 S대 약대를 보기 좋게 미끄러지고, S공대 다음으로 쳐주는 H공대에 들어가긴 했지만, 그러니까 대학은 나의 까마득한 후배 녀석인데, 같은 외아들이고 가정형편도 고만고만한 지라 고교시절엔 가장 가까이 지낸 친구들 중의 하나였는데, 내가 워낙 급우들이나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탱천하니 나를 무척이나 동경하며 어떻게 하면 내 행동 일거수일투족을 따라할 수 있을까? 하면서 晝夜로  열심히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녀석이었다.


이러구러 대학 시절엔 녀석과 기타 하나 씩 둘러메고 교외선의 일영이나 송추, 서울근교의 춘천 등지에 나가면 예쁜 아가씨들이 줄줄 따라다니던 호시절도 있었다.

놈은 얼굴이 아주 하얀 것이 뽀샤시 해서 아가씨들이 많이 따를 것 같지만, 여성들에게는 워낙 숫기가 없고 부끄럼을 많이 타서 내가 쓰다 버린(?) 아가씨들만 주워서 써도 녀석은 모자람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시는 오지 못할 참으로 그리운 시절이다.


그 시절 아주 친한 너 댓 명의 친구들과 더불어 나는 미팅을 많이 주선했다.

나야 뭐 고교시절에 여학생들을 많이 따라다녀서, 그때엔 이미 여자라면 신물이 나고 入神의 경지에 올라있었지만,  이 순진한 아우 녀석들은 여학생이 쳐다만 봐도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울렁거려서 숨이 막힐 지경이 되는 그만큼 순진한 녀석들이었는데, 지금은 내 상투 위에서 젊은 언니들을 가지고 놀고 있으니, 무릇 무슨 도구든 간에 갈고 닦으면 도사의 경지에 오르게 되나보다.


이놈들은 그간 피나는 훈련을 했는지, 이제는 젊은 언니들 꼬시는 데는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 釣仙(젊은 언니들 꼬시는 신선)의 경지에 올라 나를 굽어보고 있으니 나로서는 “아. 옛날이여~ !”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밖에.


하긴 젊은 시절, 휴일엔 나는 자연과 더불어 산(등산)과 물(낚시)에 미쳐 있을 때, 이놈들은 여성들에 미쳐 있었으니, 지금도 나는 산으로 들어와 산신령으로 得道를 하려하고, 이놈들은 꾸정물 보다도 더한 그들의 놀이터에서 온갖 젊은 언니들과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으니 나의 求道의 길은 멀고 외롭기만 하고나.


지난 해 연말에 하지 못한 마누라들을 모시고 재롱을 부리려 했던  듀오 리사이틀(Duo Recital)을 올해에는 할 수 있으려는지.....


올 봄에는 그 사랑하는 아우, 시러배 잡놈과 어울려 남녘의 호숫가에서 神仙의 흉내나 내며 흐르는 구름 바라보며 낚시나 던지고 싶구나.  


위의 두 친구들에게 孟子의 

“里仁爲美”라는 말씀을 丁亥年의 話頭로 넘기고 싶다.


“사랑하는 어지러운 마음으로 머물면 모든 것이 아름다우리니.”


나의 오랜 친구, 그리고 젊은 언니 친구여!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질고 아름다웁게 사는 방법을 배우며 사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