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동락재 통신-98: 딸아이의 중국여행

sosoart 2007. 4. 7. 16:22

주말엔 펜션에 손님들이 찾아주어 작은 수입이지만 기본세금과 공방 유지비는 해결하고 있다. 

 

 

동락재 통신-98: 딸아이의 중국여행  (07. 3. 3)


3박4일의 일정으로 딸아이가 중국여행을 갔다가 오늘 밤 늦게 도착을 했나보

다.

서울지방엔 안개가 많이 껴서 비행기의 이착륙이 어려워 어떤 비행기는 제주도

에 착륙을 했다는 뉴스를 보니, 잘 도착을 할지 걱정이 되었는데, 서울 집에 전

화를 해보니  오후 8시경에 인천 공항에 안착을 했다는 전화를 아내가 받았다고 해서 안심이 되었다.


직장에서 지난 가을 일정기간 동안 그룹별 대민봉사활동을 했었는데, 봉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아마도 경진대회처럼 사후 평가하여 잘한 팀에게는 상금

을 주기로 했는데, 소속 팀이 일등을 하여  그 상금으로  3박4일의 중국여행을

갔다 오기로 해서, 3.1절 휴일을 끼고 무사히 갔다가 왔다니 마음이 놓인다.

아들도 아니고 딸이 되어서, 어디로 여행을 간다하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더욱

걱정이 된다.


자식이란 것이 성인이 되어 자신의 행동거지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에도 마

음이 안 놓이니,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공교롭게도 딸아이가 다니는 직장이 내가 다니던 국책연구기관이니 우연이라

기보다는 아주 다행스럽다.

아직도 국가기관이나 국책기관에서 근무하는 것이 딸을 둔 부모로서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줄 모른다.


여성의 경우 공무원은 아니지만 공직이란 특유의 전통과 제도와 관습상 그 구

성원들은 그래도 일반 기업에 비해 성차별이 없고, 여성이라 해서 불이익을 받

는다든지 성희롱에 노출될 위험이 거의 없는 편이어서, 개인의 능력이나 잠재

력으로 판단하지 않고, 여성의 경우 인물과 외모, 직장의 꽃으로 보고 뽑는 대

부분의 사기업에 종사하지 않는 것에 만족을 하고 있다.


단지, 딸아이 본인으로서는 아비가 다니던 직장이기에 적지 않은 부담을 가지

고 있겠지만,  그런 정도의 부담은 본인이 잘 극복하고 직무에 충실하여 자기

직장에 많이 기여하리라고 믿고 있다.


하긴 요즘같이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아비가 다니던 직장에 취업을 하니 남들

은 색안경을 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본인의 능력으로 당당히 공개채용의 절차를 거쳐 몇 차례의 관문을 통과하였

고, 비록 퇴직을 한 직장이지만 출근 몇 개월 후 딸아이의 상관이나 동료, 선배

들의 의견을 들어본 바, 잘하고 있고 대인관계도 원만하다 하니 딸아이에 관한

걱정은 이제 졸업을 하고 있는 편이다.

아직도 최고 관리층에 남아있는 지인들이 있으니 이면적으로 그들에게 지도편

달을 부탁하는 것이야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아비도 그 직장에서 부여된 책임과 의무 그 이상을 완수하고 더구나 자진해서

퇴직을 했으니 본인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아, 딸아이에게도 상하 모두 좋은

인상을 가지고 도와준다는 말을 들었으니 고마울 뿐이다.


짧은 일정이지만 기왕에 가는 거라면 일본이나 싱가폴엘 다녀왔으면 했는데,

대다수가 주어진 상금에 맞춰 여행을 하자고 해서 아쉽지만 중국으로 결정한

모양이다.


직장에서 어떤 목적을 가진 행사나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시상을 할 적에는  단

순히 직원들의 사기진작이나 포상의 개념이라 할지라도 장차 직장의 직무수행

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방향에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좋을 텐데 사후관리와 효

과분석에 대한 개념 없이 시행되는 점이 아쉽게 느껴졌다.

좋은 지도자, 관리자란 좋은 참모를 옆에 많이 두고, 사심 없이 바른 정책을 펼

치고 추진해 나가야 하는 것이며, 한 푼의 예산이라 할지라도 최대의 효율적 집

행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나?  더구나 적지 않은 연구비를 국민의

세금으로 쓰는 기관에서. 


현직에 근무할 당시에는 기관장께서 연령적으로 위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는 나의 한 20년 낚시 벗이었고 민영화 이전 공무원 신분 시절 때부터의  인연

으로,  점심 식사 후엔 거의 매일 나의 방에 오셔서 차 한 잔을 두고 이런 저런

사적인 얘기 외에도 공적인 말씀도 많이 나누고 해서, 그 시절에 이런 행사들이

치루어 졌다면 보다 효과적으로 개인적으로나 직장의 직무수행에 밑거름이 될

방안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제 퇴직을 한 지도 벌써 7년이 지났으니, 그러한 나의 생각은 시대에 뒤떨어

진다든지, 급변하는 이 시대의 트렌드에는 궤를 달리할지는 몰라도 진리는 변

하지 않는 것 아니겠나?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한 기관의 장이나, 한 부서의 장 또는 한 조직원으로서

의 개인이라도 나의 직무, 나의 직장, 나의 나라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

가를 고민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이 곧 나와 나라가 더불어 잘 되는 일에 적

극적으로 동참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詩經에 無折俄樹杞 (무절아수기)

“내가 심은 산버드나무를 꺽지 마라”

즉, “남을 간섭하지 말고 너나 잘 하세요”라는 말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또 내가

주제넘은 얘기를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