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동락재 통신-100 : 작품 한 점을 시집 보내다

sosoart 2007. 4. 7. 16:37

 

 

 

 

동락재 통신-100: 작품 한 점을 시집보내다 (07. 3. 8)


며칠 전 삼일절 샌드위치 휴일인 주말 아침 시간에 전화를 받았다.

“000 선생님이시죠?”

낯 선 목소리다.   

핸드폰 창에 뜬 전화번호에 이름이 없는 것을 보니 번호등록을 하지 않은 것이

므로, 또 무슨 광고나 선전 인가보다 생각을 하고 “네........” 했더니,  아무개인

데 오후에 찾아가도 되겠느냐? 는 전화였다.


전에 다녔던 직장에 근무하는 분인데, 이 분은 지난 해 초겨울에 목공예 작업에

관심이 있어서, 먼저 퇴직을 하고 목공예 작업을 하고 있는 나에게 이런저런 궁

금한 사항을 실제로 눈으로 보고 알고자, 그의 부하직원이며 나의 고교 후배이

기도 한 친구와 함께 다녀간 적이 있는 분이다.


이 양반은 방사선치료분야의 국내 최고 귄위자로 손꼽는 몇 안 되는 분의 한 사

람인데 정년을 몇 년 안남기고, 정년 후에 이미 시골에 마련해 둔 전원주택에서

소일거리와 취미생활로 목공예의 작업을 계획하고 있기도 하다.


처음에 후배와 함께 방문했을 때에는 막연히 목공예에 관한 사전지식이나 준비

도 없이 나의 작업실과 작품을 훑어보고 훗날 다시 오마며 짧은 시간동안 머므

르다 갔었다.  

“다음엔 집사람과 같이 오겠다.....”며


요 근래에는 누군지 전화를 하고 아무 말도 없이 끊어버리는 사람이 있고, 또

어줍잖은 스팸성 전화가 유난히 많이 오기에 전화받기가 귀찮기도 하여, 누군

가? 했었는데......


아무튼 이 동락재를 방문한다는 기별을 받으면, 한결 활기가 나며 손님맞이를

위해 대충 집안 정리도 하고, 부지런을 떨게 되고 게으른 산촌생활에 적당한 자

극을 받게 되니 그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손님이 도착할 시간까지 어제 작업을 했던 인터넷 관련 싸이트를 통한 “한국 목

공예” 관련 자료를 수집, 스크랩하기 위해 부지런히 인터넷 서핑을 했다.

점심 식사도 잊고 열심히 자판의 키를 두드리고 있는데, 마당의 개들이 요란하

게 짖는다.

혹시 벌써 도착을 하였나? 하고 바깥을 보니 펜션 간판을 보고 들어온 차가 두

대나 서있었다.


나가서 “오늘은 손님 예약이 되어서 방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라며 돌려보

냈다.

나는 누가 이 동락재를 방문하기로 하는 날은 펜션의 손님을 일체 받지 않는다.

모처럼 방문한 손님에게 소홀히 하지 않고, 나 역시 방문객과 즐거운 수다를 떨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적막한 산촌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이런 기분을 알지 못할 것이다.


이제 손님의 도착시간이 거의 다 된 것 같아서 수집정보를 저장하고 컴퓨터를

막 끄려 하는데, 또 개들이 시끄럽게 짖어서 마당으로 나가보니 기다리던 손님

들이 도착을 했다.


부인과  딸의 가족 등 일행이 차에서 내려서고,  “0박사”님과 반가히 악수를 하

고 가족들에게 “어서들 들어오시라”하니 아담하고 예쁘게 잘 꾸며놓으셨다며

마당에 설치된  작품이나 오브제 그리고 주변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천천히 안

으로 들어섰다.


아내가 없이 혼자 있으니 살갑게 차 대접을 할 수는 없었지만, 때때로 남자들이

대접하는 차도 그리 못 마실 것은 아니어서 커피와 녹차를 내놓았다.

요즈음은 우리 동락재의 특제 건강약차인 “同樂茶”를 만들지 못했다.

이 동락차는 우리 동락재만의 엄선한 각종 약재를 넣고 적어도 12시간 이상을

달여야 그 특유의 약초의 향과 다향이 아주 굳(good)인데, 아내가 옆에 없고 혼

자 있으니 그렇게 好事를 즐기지 않고 자숙하고 있는 터이다.


이 “0박사”라는 분은 오래 전부터 퇴직 후를 위해 시골에 전원주택을 마련해 놓

고,  퇴직 후의 할 일들을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는 분이다.

그 한 가지로 시골의 특성상 주변의 구하기 쉬운 나무를 가지고 무언가 작품은

아니더라도 손수 만듦으로서 창작의 즐거움을 맛보고 더 나가서는 목공예나 다

른 취미생활, 텃밭 가꾸기 등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각자의 취향과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전원이나 산

촌에서 생활하고 잇는 사람끼리 때때로 서로 왕래하며 교류를 갖는다면 이 또

한 노년의 즐거움이자 생활의 활력소가 되지 않겠는가?


처음 동락재를 방문하였을 때 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목공예작업에 관한 준

비, 작업과정, 재료나 공구 등 의문사항을 질문하였고, 나는 간략하게 설명을

하였다.


기실 이러한 손수 손으로 하는 작업은 무어라 딱히 설명을 하기보다는, 막연한

의문점들은 실제 작업을 해보아야 작업과정에서 터득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이해와 자신과 부합하는 창작의 작업인가를 판단할 수 있기에 더 깊은 부연설

명은 오히려 본인들의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시작하기 에 걸림

돌이 될 수도 있으므로  상세한 설명은 생략하였다. 


차를 한 잔 마시면서 그 가족들은 걸려 있는 작품들을 감상하며 간단한 이야기

를 주고받았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아주 먼 거리는 아닐지라도 이렇게 나의 처소를 방문해 주

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더구나 나의 작품을 칭찬해 주는 방문객들이라면 더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동안 작품인지 상품인지도 모르면서 나의 작품을 시장의 물건처럼 싸니, 비

싸니 뭐가 어떠니 하면서, 작가의 면전에서 몰상식과 자신의 교양없음과 무식

함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적나라하게 들어내며  돈이나 몇 푼 있다고眼下無

人, 남 앞에서 거드름을 떨고 오만한 잡것들이 얼마나 또 왔다가 갔었는가?


먹고 입는 것은 비싼 것 좋은 것 입는다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말을 하는 자들

이, 미술이나 음악 등 예술작품과 작가 앞에서는 그의 무식과 무교양이 한 없이

주눅이 들고, 그 주눅 듦을 감추기 위해  상스런 설레바리를 떠는 하찮은 인간

들이 이 동락재에도 더러운 악취를 남기고 몇 몇이 왔다갔었는가?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멀리서 일부러 찾

아와서 차를 한 잔 앞에 두고 이런 저런  정담을 나누고 문화적으로 정서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공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고맙고 좋은 일인가?


나는 그런 일들을 수차례 겪으면서 나의 동락재와 동산방에 방문하겠다는 사람

이나 지나다가 방문하는 사람들은 유심히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혹여 상서롭지 못한 종자들을 안으로 들여놓았다가 나의 영혼이 상처를 입을까

두려워서이다.

 

여하튼 이렇게 자신의 퇴직 후 알찬 생활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해 나가는 사

람들은 전원생활의 실패보다는 성공의 확률이 더욱 큰 것은 자명한 일이라 하

겠다.


“0박사”의 부인께서 동락재의 거실에 매달려 있는 오브제 “강아지 목탁”이 마음

에 든다고 구입하여 가져가셨다.

작품을 판매 했다는 것 보다, 나의 작품이 마음에 든다는 말을 들을 때는 은근

한 흐뭇함을 느낀다.


기실 작품제작의 시간과 인건비를 따진다면  작품의 값이라고 할 수 있겠는

가?  또 그렇다고 작가의 품과 재료와 시간이 들어갔다 하여 그 모든 것을 환산

하여 판매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서 굶고 고생하는 유능한 작가들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어쨌던 나는 나의 작품을 마음에 든다고 구입해간 분들에게  항상 고마움도 느

끼지만, 그것보다는 나의 작품을 좋아하는 그 마음을 항상 간직하고 있다.

그러한 사람들이 있으니 작품 활동을 계속할 이유와 動力도 생기게 되는 것이고, 재료 구입비의 조달도 되니 계속적인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지속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의 그림 작업실 동락재와 목공예 작업실 동산방을 찾아 주는 모든 나의 손님

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더불어 산촌에서의 정담을 나눌 수 있는 벗으로 항상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고 보니,  나의 퇴직 후 도시를 떠나 생활을 하면서 느낀 斷想을 기록한 이

“동락재 통신”이 100회를 채우게 되었다.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훗날 내가 살아온 흔적이 되니 나중에 나와 아내의

작품전시회와 더불어 이 “동락재 통신”도 같이 책으로 출판하여 나의 흔적을 만

들어 놓고 싶은 욕심이다.

그간 나의 외곬으로 흘러가는 흐름의 모양을 지금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돌이켜

보고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莊子의 物無非彼 物無非是로 오늘의 황혼을 정리한다.


“사물은 저것 아닌 것도 없고 이것 아닌 것도 없다”


난 솔직히 지금도 이렇게 뜨뜻미지근한 것은 싫어한다.

사내로서 할 일이 아닌 것으로 치부를 했었다.  얼마나 야비하고 기회주의적인

것인가?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대나무처럼 꼿꼿함을 표방하고 한 길로만 살아온

결과 옳은 것은 항상 이긴다고 생각하기보다 옳게 살면 항상 불이익을 당하고,

불의에 무릎을 꿇게 되며, 돈은 절대 나와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 같은 生이었나?  나는 차치하고라도 그 알량한 自存 때

문에, 이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불편함과

좌절감은 또 얼마나 많이 주었을까?” 를 생각하면 가슴이 에이듯 부끄럽고 슬

프다.


그러나, 세상은 모든 것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렁저렁 이방

원의 권유처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

들 어떠하리?” 이렇게 살았어야 했다.


내 자식에겐 “세상을 이렇게 살아라” 하고 자신 있게 확신하며 삶의 지침을 내

려주지 못하는 부모의 시린 마음을 누군들 알겠는가..............?


공자의 말처럼 耳順으로 살아가는 것이 순리대로 사는 것일까? 이것이 내 생의

화두이다.


耳順은 “남의 생각을 그대로 들어준다.”  “모든 것을 순리대로 그대로 인정한

다.”로 풀이 하고 있지만 과연 “내 눈앞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이 곧 순리”라

고 인정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