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동락재 통신-101:봄단장을 계획하며

sosoart 2007. 4. 7. 16:39


찻잔수납장 제작중

 

 

 

동락재 통신-101: 봄단장을 계획하며   (07. 3. 9)


산촌에서 7번째 맞는 봄이다.

하긴 그 사이에 나의 귀중한 모든 것을 거의 다 잃었고,  어느 곳에 재취업을 하

기도 하였고, 또 전통목공예 공부를 한다고 해서 이 홍천의 동락재엔 몇 년은

주말에만 왔다 갔다 했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7년이란 세월에 일곱 번의 봄을

맞는 다는 것이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기간 동안 많은 잠으로 변화가 있었고, 내 인생의 길이 전혀 예

측하지 않았던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으니, 인생이란 실로 無常, 無念한 것이라

할 수 밖에....


이 집은 원래 상업적 목적으로 전원의 음식점과 휴게쉼터로 건축을 한 것을 구

입하여 나의 작업실과 조그만 살림채로 리모델링을 한 것이다.

당시 시골집으로는 적지 않은 돈을 들여서 수리를 했고, 매년 수리를 계속하여

결과적으로는 전원주택을 신축하는 것보다 돈이 더 들기도 했다.


어쨌던, 이미 7년을 살았고 단독주택이란 것은 해마다 수리나 손을 보지 않으

면 안 되기 때문에 게으른 사람이나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하고 도시 또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가 보다.


올해에는 건물의 외벽을 벽화로 장식하여 공예가 또는 예술가의 집이란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바꾸어 볼 요량이다.

무언가 집에도 나만의 캐릭터가 있었으면 했었고, 또 남이 흉내 내지 못하는 그

런 집을 만들고 싶었는데, 올 해에는 그 작업을 시작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이제는 큰 돈 들이지 않고 손수 작업을 할 수 있는 경험과

know-how를 터득하기도 하였기에, 내 손으로 나만의 그림을 나만의 집에 그려

오직 하나 밖에 없는 집을 손수 꾸미는 재미가 여간만 좋은 것이 아니니 퇴직

전의 생활의 연속이 다 좋은 것 만이라고는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안정적 생활이 이렇게 생의 浮沈을 강요하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이제 나의 집 벽에 어떠한 그림을 그려 넣을 것인가?  이야기가 있는 동화풍의

장욱진 류의 그림?  끌레의 그림처럼 아기자기한 그림? 아니면 “동락재 이야

기”의 산촌일기와도 같은 그림?

아니면 우리의 순수 전통문양을 그려 넣을 것인가?

차분한 蓮에 부처의 마음을 얹어 그려볼까?


아니면 浮彫와 그림을 병행하여 벽 마다 다른 개성 있는 공간을 연출할 것 인

가?를 구상해야 하겠다.

또 벽의 채색은 비, 바람, 햇볕 등에 퇴색되거나 부식되지 않는 적당한 안료나

칠 또한 선택을 하여야 할 일이다.


어쨌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밑그림을 상상하는 일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나의

집 벽화의 구상을 하는 즐거움에 또 푹 빠져보자.

또 채색을 하는 기쁨은 또 얼마나 좋은 가?  오래된 좋은 술을 만나는 그러한

은근한 즐거움 보다 기쁨을 느끼는 중추신경을 한없이 자극하는 일이 아니겠는

가?

이런 기쁨을 도시에서도 느낄 수 있을까?


이런 것이 산촌이나 전원의 오두막에서 사는 즐거움이 아닌가 싶다.


퇴직 후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통 손해로 점철된 나의 생활에 성을 내고

불특정 다수의 불량인간들에게 탱천하는 증오와 응징의 칼을 갈고 있었지 않은

가?

누군가 걸리기만 하면 그야말로 죽음뿐이라는 것을 보여주어 나에게 부당하고

커다란 손해를 끼치며 휴매니즘의 상실과 파괴를 준 종자들에게, 내가 당한 것

이상의 것을 돌려주겠다고 정의로운 응징으로 아주 처참하고 흔적도 남기지 않

을 만큼의 핏빛 보답을 해주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지나치려고 한다.

더 피폐해지는 나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다고 그런 종자들을

용서하는 것은 아니다.

망각하는 것이 나에게 득이 된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고 싶어서 이다.

증명이 된다면 모든 것을 용서하리.........


周易의 失得勿慍(실득물온)을 마음에 억지로라도 심어 본다.

손해를 보았다고 성내지 않는다


손해를 보았든 이득을 보았든 빨리 잊을수록 좋다.

손해를 본 것을 잊지 못해 화풀이를 하면 두 번 손해를 본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렇게 마음이 상하게 되면 화를 내게 되고 화를 내면 분노하게 되어 이 怒氣가

하늘을 찌르면 사랑하는 마음과 방법을 잃게 되는 것.


성을 내면 모든 것을 편견과 오기로 바라보게 되며 그 분노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런 하찮은 종자를 도륙한다 한들 나에게 무엇이 남겠는가?

나를 위해 나를 스스로 다스리는,  버리며 사는 편안한 마음을 배우고자 성을

가라앉히기로 했다.

나에게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도록 만든 모든 인간과 행위로부터 자

유롭고자 한다.

집착도 분노도 희로애락도 다 버리면 “참 나”로 돌아가리니.


산촌에서 넓은 시공의 세계에서 미미한 나를 크게 하고 저, 나를 버리는 거다.

오로지 나의 작업세계에 빠져 헤엄치리라.

         

이 봄부터는 다시금 詩心에 빠져 메마른 나의 낭만을 적시고 싶다.

내 담배 먹던 시절, 그때엔 담배 연기처럼 낭만과 사랑의 바다에서 그 파도소리

에 취하곤 했었는데.......

  

신동엽 시인의 <담배 연기처럼>을 다시 담아본다.


들길에 떠 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멀리 놓고

나는 바라보기만

했었네.


들길에 떠 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위해주고 싶은 가족들은

많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멀리 놓고 생각만 하다

말았네.


아, 못 다한

이 안창에의 속 상한

두레박질이여.


사랑해주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하늘은 너무 빨리

나를 손짓했네.


언제이던가

이 들길 지나갈 길손이여


그대의 소맷속

향기로운 바람 드나들거든

아퍼 못 다한

어느 사내의 숨결이라고

가벼운 눈인사나.

보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