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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락재 통신-105: 오랜만에 연거푸 산을 오르니....

sosoart 2007. 4. 19. 08:26

나무가지가 옆의 바위때문에 뻗어나가지 못하고 생장을 멈추었다. 

 

 그러면서도 가지의 굵기는 어느시점까지는 자랐나 보다.

공작산 줄기 약수봉에서 수타사 계곡으로 내려오는 풍광이 수려하다.

 

 

<동락재 통신-105: 오랜만에  연거푸 산을 오르니....>   07. 4. 10


지난주부터인가? 그야말로 20여년 만에 며칠을 계속하여 연거푸 산엘 오른 것 같다.

산도 그리 높지 않은 해발 887미터에 불과한 산인데, 숫자로만 보면 도봉산보다는 높은 산이지만, 산행기점이 해발 약 300미터부터 시작을 하니 600여 미터 정도도 올라가지 않는 등산인 셈이다.

도봉산은 서울이란 곳에 있어서 그렇지 지방 먼 곳에 있었다면 서울의 산사람들이 자주 찾아갈 그러한 명산이기도 하며, 산세나 풍광이 좋음은 물론 산행의 난이도는 초보에서부터 전문 암벽등반까지 고루 경험하고 훈련할 수 있는 그러한 드문 명산 중의 명산이 아니던가?


한 때는 도봉산을 제집 안방 드나들듯이 눈 감고도 여러 개의 코스로 오를 수 있다할 만큼 다녔었고, 그 산에서 잔뼈가 굵었다 할 정도로 친숙한 산이기도 하며 전문등반 훈련의 場이어서, 정말 나를 듯이 다니기도 하였었는데, 아무리 오랜 세월동안 산행을 하지 않았다 한들 이렇게 몸이 말을 듣지 않으리라고는 아예 염도 하지 않았었다.


아니나 다를까? 올라갈 적에는 몸을 달래고 서서히 적응하기 위해 천천히 올라서 별 무리가 없었지만, 내려오는 내리막길에서는 8부 능선을 내려오기도 전에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내려오다가 다리를 진정시키며 쉬엄쉬엄 내려오면서 나의 체력에 대한 비애 아닌 비애감마저 느꼈다.


더불어 후회하는 마음도......


그간 전혀 산행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소위 날라리 산행으로 그 공백 기간을 때웠고, 기껏해야 동락재의 뒷산 해발 400여 미터 정도나 될까하는 야산에 산책코스로 다녔던 것이 최근의 일이었다.


그나마 그것도 매일 다니지도 않고 꾀가 나면 거르기를 밥 먹 듯했으니, 젊은 시절의 체력만 가지고 몇 십 년을 버티고 있었으니, 비축했던 그 힘도 소진이 될 밖에....


그리고, 그날 하루를 지나고 나서는 양쪽 넙적 다리와 종아리에 알이 배어 며칠을 찔뚝거리며 요상한 모습으로 조그만 텃밭도 갈고 복순이와 다른 개들의 똥도 치우며 마당일을 했다.   


역시 나이를 먹었다는 것과 그간 너무 보잘것없이 비축했던 체력을 과신한 탓에 체력과 건강관리에 소홀히 했다는 것을 깊이 통감을 했다.


아니 되겠구나! 이제부터 정말 체력관리를 철저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우선 등산으로 모든 힘의 기본이 되는 다리의 근력을 되찾고, 상체를 단련하며  다시금 젊었던 시절처럼 배에 왕(王)字를 새겨야겠다는 아이들스러운 야무진 꿈을 실현시키기로 결심을 했다.

  

어제부터는 산을 오를 때 완전히 풀리지 않은 다리의 근육을 서서히 풀며, 하산할 때에도 쥐가 나지 않도록 몸을 서서히 적응시켜 나가고 있는 중이다.


왕년의 악바리 山꾼! 체력하면 대한민국의 어느 누구라도 능가한다는 자신감을 다시 찾을 날이 그리 머지않으리.....


이제 매일 계속 산행을 하노라면, 약 한달 정도의 적응 기간이 끝나면, 다시금 젊음의 활력을 되찾을 몸만들기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오늘도 다시 공작산 정상을 올랐는데, 안공작재의 코스는 약간의 岩稜이 있어서 약간의 긴장과 조심을 하게 되긴 했지만, 이 암릉을 오르내리니 옛날 암벽등반을 배우기 전이었지만, 워킹코스에서도 도봉산의 자운봉을 자유자재로 맨손으로 다람쥐처럼 오르내렸던 기억도 스쳐가며, 암벽등반을 하다가 자칫 방심하다 스립(slip)이 되어 선행자가 확실한 확보를 하지 않았다면 이 세상을 하직 할 뻔도 했던 장면, 암벽등반의 “암”자도 모르는 친구 녀석들을 비교적 쉬운 코스이긴 해도 한 겨울에 도봉산의 만장봉으로 데리고 가 하강훈련을 시키던 일 등이 머리를 스쳐가기도 했다.

어제 오늘은 다리에 쥐도 나지 않았고, 다리에 알이 밴 근육도 거의 다 풀려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 져, 자신감을 찾게 되어 마음이 흐뭇했다.


지금 신고 다니는 등산화는 예전에 신고 다니던 등산 수제화의 명문 “松林제화” 제품인데 송림제화의 등산화로는 몇 번째로 20년 전에 구입한 등산화인데도 아직 멀쩡하다.

이제는 가볍고 방수투습이 되는 Gore-tex 등산화도 많이 나와 있으니, 등산장비의 고급화, 전문화가 되어 요즈음 시대를 사는 산악인들은 얼마나 복을 받은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에 딸아이가 아빠의 Gore-tex 등산화를 사놓았다고 하니, 가죽 등산화가 아닌 그런 등산화도 신어보게 되었다.

Gore-tex 제품의 윈드자켓이나 등산용 바지 등은 지금도 사용하고 있지만, 등산화는 처음이어서 과연 발목의 보호나 산악지대의 보행에 가죽등산화 만큼의 안정성이 있는지는 신어보아야 알 것 같다.


내가 등산을 다닐 적엔 등산장비라고 해야 군화, 군용 반합, 군용 수통, 군용 휘발류 버너, 군용 A텐트, 군용 배낭..... 등 온통 군용 일색이었고, 70년대에 들어서서 겨우 KOLON에서 등산제품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는 겨우 등산장비 전문점의 모습을 갖춘  남대문, 동대문시장의 장비점들이 대량으로  생겨나면서 전문등산장비라기 보다는 저가 위주 등산장비의 국산화가 서서히 되기 시작한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이 된다.


그 당시에는 돈이 생기면 가늘고 색깔이 화려한 외제 암벽등반용 자일과 카라비너, 스웨덴제 스베아 석유버너, 스톰파커, 오리털 파커, 윈드쟈켓 등 양질, 고가의 전문등반장비를 장만하는 것이 제일 뿌듯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남들은 명동의 생맥주집 OB Cabin이나 음악 감상실, 음악다방 등을 돌아다니며 서유석이나 포크송 가수 통기타 음악에 매료되어 예쁜 아가씨들과 데이트 할 때에 나는 더 좋은 등산장비를 사려고 데이트는 하지 못하고 산에 미쳐있던 시기였었다.


그 "산에 대한 나의 열정“은 지금 생각하면 대단했었다.

그렇게 몹시도 추운 겨울날에도 산에 가고 싶으면 훌쩍 야영 장비를 챙겨 산 속에 들어가 혼자서 추운 겨울의  짜릿한 야영의 맛을 즐기곤 했다.

텐트 밖에 있는  코펠이나 야영 장비를 만지면 손에 쩍쩍 달라붙도록 추었는데 그 당시에 추운 줄도 모르고 텐트 안에서 겨울날의 깊은 밤의 단독야영의 그윽한 기쁨을 만끽하는 날이 많았었다.

그 추운 날에도 미군용 닭털침낭 하나만 있으면 별로 추운 줄 모르고 견디곤 했다.


외아들이어서 어머니가 완강히 제지를 하였지만 젊은 고집통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암벽등반을 할 적에는 자일, 카라비너 등 암벽 등반 장비는 집에 가지고 가질 못하고 山친구에게 맡기고 일반 등반만 하는 걸로 어머니를 계속 속였었다.

알고도 모른 척하셨겠지만.  말릴 수 없는 그 젊은 피는 어찌하랴!


어쨌던 다시금 등반을 시작하면서 무릎의 관절이 조금은 걱정이 되지만, 나의 체력과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또한 몇 개의 산을 집중 탐사하여 많은 등산로를 답사 및 발굴하여 나의 블로그를 통해 산의 정보를 생생한 현장의 사진을 곁들여 소개할 수 있다는 소득도 올릴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


아주 오랜만에 산을 다시 오르게 되면서

近思錄의 心生道也 라는 말씀처럼

“마음을 살아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道”라 하듯이


나의 마음을 다시금 활기 있고 생생하게 살아있게 해주는 山과 자연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의 모든 형상과 돌아가는 이치에 겸손하고자 한다.

  

들에 핀 야생의 들꽃 역시 자연을 이루는 하나의 의미이며 서울을 버리고 들꽃처럼 살아가는 나 역시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자 하며 오랜만에 김용택 시인의 <들꽃같은 내 인생>이란 시를 머릿속으로 읊어본다.


그런 소리 마시오

다 가도 나는 안 갈라요

도회지 좁은 화단 같은 데서

심심풀이로 물 주고 거름 주는 곳

그렇게 먹곤 나는 못 사요

아파트 베란다 같은 데

붉은 벽돌집 창가 좁은 화분 같은 데서

어느 일없는 여인이 주는

물이나 화학비료로

나는 못 사요


나는 그렇게는 못 사요

그냥 바람과 햇빛과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그리고 수많은 꽃과 풀과 나무들 사이 사이에서

제때에 꼭 피고

제때에 꼭 지는

그런 데서,

그런 거친 데서 나는 살라요

들꽃같이 살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