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에 핀 우담바라. 부처님의 자비와 사랑이 우리 앞뜰에 가꾼 가지에 나투시다.
<동락재 통신-104: 몸도 만들지 않고 산을 오르다> (07. 4. 5)
어제는 약 15년여 만에 산행을 했다.
동락재에서 5분만 가면 항상 그의 품을 열어놓고 있는 공작산 입구의 등산로가
있었지만, 아직까지 이곳 홍천에 온지가 7년째가 되었지만 정상까지는 한 번
도 오르지 않았었다.
지난 해 산림청과 인연이 닿아 숲 해설가의 활동을 했었고, 올 해에는 幸이라
할지 아니라 할지 뜻하지 않게 山行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하게 되었다.
해서 어제는 공작산의 정상을 오르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너무 오랜만에 하게
되는 산행이 되어 내심 긴장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공작산의 높이라 해봤자 887미터로 큰 산은 아니지만, 내가 너무 오
랜 기간 동안 산행을 하지 않아, 과연 나의 팔, 다리가 아무런 무리 없이 따라
줄 것 인가?를 염려하였었다.
거리가 너무 멀고 산행코스가 험준하다든지 하면 아무런 몸의 준비도 하지 않
은 채 산을 올랐을 때 무릎의 관절이 탈이나 부리지 않을지? 아니면 다리에 쥐
가 나서 고생이나 하지 않을지? 몸을 만들어 놓지 않고 별안간 산행을 하는 것
이 염려가 되긴 했으나, 그리 큰 무리 없이 정상에 오를 수 있어서 내심 다행이
라고 여기긴 했었으나 예상대로 하산 길에서 역시 쥐가 나서 몇 차례 쉬면서 다
리를 풀어주며 “아, 역시 오랜만에 준비운동도 없이 산행을 하는 것은 무리였
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맨소레담 로션으로 쥐가 났던 다리의 주
변부위를 광범위하게 바르고 맛사지를 하였다.
이렇게 모처럼의 산행을 힘들게 했을 때엔 가까운 홍천온천에라도 가서 탕 속
에 몸을 푹 담그고 한껏 근육을 풀어주는 것이 좋을 터이지만, 여기서 홍천온천
을 가려면 약 30분 가까이 가야 되기에 귀찮기도 하여서 그냥 집에서 쉬기로 했
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오늘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니 다리에 알이 배겨서 걸어
다니기가 거북했다.
몸이 편하게 걸을 수가 없었다. 하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젊은 시절도 아니고 이제는 건강을 위하여 평소에 꾸준한 운동도 하지 않았으
니 몸도 많이 고물이 되어가는 것이 싫기는 해도 부정할 수는 없게 되었다.
그런대로 인정하고 순응하는 수밖에.....
어쨌든 오늘은 팔, 다리에 알이 배긴 근육을 풀기위해서라도 어제와는 다른 코
스로 오르는 길을 택하여 정상까지 올라갔다.
처음 첫 발을 내딛으니, 어제의 첫 발보다 더욱 다리가 아프고 힘이 들었다.
그러나 자꾸 걸음이 반복되어야 빨리 풀리는 것이니 약간의 고통을 참고 약 3
시간을 올라 정상에 도착했다.
이제 앞으로 2-3일은 더 다리에 긴장한 근육을 풀어주어야 근육도 학습효과가
있어서 매일 산에 오른다 해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정상에서 커피 한 잔을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고 저 멀리 사방으로 둘러 서있는
산봉우리와 능선들을 조망했고 까마귀의 울음소리와 더불어 하산을 시작했다.
이 산의 정상에서의 전망은 사방이 낮게 한 눈에 내려다보이면서 확 트여 있어
주변의 산세와 홍천군을 조망하기가 참 좋은 점이 특색이라 하겠다.
내려오는 길은 더욱 다리 근육을 긴장케 했고, 알이 배긴 근육은 아파오며 이제
는 오른쪽 무릎 관절까지 삐그덕 거렸다.
오른쪽 무릎은 전혀 통증이 오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제처럼 다리에 쥐가 나지 않아서 한 시름은 놓았다.
자, 이제 몸의 건강과 생활화 된 산행을 위해서는 스트레칭과 같은 가벼운 운
동을 매일 지속적으로 계속하며, 보폭과 스피드를 하루하루 조금씩 증가시켜
운동의 강도를 높여가면, 내 몸에 큰 무리가 되지 않게 산행을 즐길 수 있으리
라.
70년대 初엔 오전에 근무가 끝나는 토요일에도 어김없이 배낭과 자일을 메고
도봉산의 선인봉과 같은 암장으로 부지런히 달려가서 훈련을 하고 해가 질 무
렵엔 하산을 하여 도봉산 입구의 빈대떡집에서 막걸리 사발을 부딪치며, 산이
인생의 전부인양 하던 적이 그립고 그때로 다시 돌아가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기도 하다.
산과 바위에 미치고, 새벽녘 낚시터의 湖面에 이는 물안개의 환상에 미쳐 남들
장가갈 때에도 철없이 산의 뒤꽁무니와 물 냄새만 쫓아다니던 노총각의 시절.
밤길의 야간 도봉산 하산 길도 눈뜨지 않고도 갈 정도로 익숙해 있던 그 시
절......
달 빛 하얀 한 밤중 농촌의 저수지로 난 산길을 걸으며 이슬을 맞던 그 시절이
벌써 30년을 훨씬 지나 40년이 가까운 세월이 지나갔다.
지금은 그때의 체력이나 패기, 자연의 낭만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시절은 사
라졌다 할지라도 마음은 항상 그때와 같다는 억지를 부려보는 인생의 후반기
시절이 되었다.
“아! 그리운 옛날이여.....”
그렇지만 이제는 “설레는 앞으로의 나의 산행길이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시인 김지하는 산을 이렇게 노래했었지만.........
<빈 산>
빈 산
아무도 더는
오르지 않는 저 빈 산
해와 바람이
부딪쳐 우는 외로운 벌거숭이 산
아아 빈 산
이제는 우리가 죽어
없어져도 상여로는 떠나지 못할 아득한 산
빈 산
너무 깊어라
대낮 몸부림이 너무 고달퍼라
지금은 숨어
깊고 깊은 저 흙 속에 저 침묵한 산맥 속에
숨어 타는 숯이야 내일은 아무도
불꽃일 줄도 몰라라
한줌 흙을 쥐고 울부짖는 사람아
네가 죽을 저 산에 죽어
끝없이 죽어
산에 저 빈 산에 아아
불꽃일 줄도 몰라라
내일은 한 그루 새푸른
솔일 줄도 몰라라
김지하의 세상사는 방법이나 생각하는 사상과 가치가 다른 나로서는 그의 이런
“빈 산”에서 얘기하는 의미와는 다른, 지금 내가 느끼는 산은 사뭇 다른 희망적
인 산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은 비어 있는 산 -산불방지를 위한 봄철 입산금지 기간(대부분 3월15일부
터 5월 15일까지)-이지만, 지금은 비어 있어 고즈녁하여 더욱 좋은 빈 산이며
이제 신록이 우거지는 오월이 되면 연한 연둣빛 나뭇잎들에게로 생기와 활기가
올라 무엇이든 희망과 의욕에 찬, 눈동자 또랑또랑하여 이글이글 타오르는 패
기 가득 찬 초록의 열기를 상상하면 내 마음도 벅차오른다.
세상이 나를 속이고 비껴갈지라도 나는 나대로 초연하게 진실을 살아간다면 무
엇이 거칠 것이 있겠는가?
論語의 以直報怨(이직보원) -원수에게 원한을 앙갚음으로 갚지 마라- 하는 마
음가짐으로 나머지 한 세상을 살아간다면,
나물먹고 물마시며 한 세상 살아간들 삶에 욕심이 없는 바보라고 누군들 말 할
수 있겠는가?
과거의 나의 판단과 행동이 지금의 진실을 호도하는 세태의 흐름으로 견주어
보면 어리석었다 할지라도
“淮南子”에 欲滅迹 而走雪中 욕멸적 이주설중
즉, “어리석은 흔적을 지우자고 눈 위를 달린다”면 이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 일
이겠는가?
나의 어리석었던 지난날의 흔적은 흔적대로 놓아두어 훗날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을 정표로 삼으면 될 것이고, 그 흔적을 지우기 위해 눈 위를 달려 또 다른 어
리석은 흔적을 더욱 크게 할 것이 아니라, 선하고 지혜로운 새로운 흔적으로 그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지우려 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라는 생
각을 하며 오늘의 산행을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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