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신(魯迅)/ 김광균
시(詩)를 믿고 어떻게 살아가나
서른 먹은 사내가 하나 잠을 못 잔다.
먼― 기적 소리 처마를 스쳐가고
잠들은 아내와 어린것의 베개맡에
밤눈이 내려 쌓이나 보다.
무수한 손에 뺨을 얻어맞으며
항시 곤두박질해 온 생활의 노래
지나는 돌팔매에도 이제는 피곤하다.
먹고 산다는 것,
너는 언제까지 나를 쫓아오느냐.
등불을 켜고 일어나 앉는다.
담배를 피워 문다.
쓸쓸한 것이 오장을 씻어 내린다.
노신(魯迅)이여
이런 밤이면 그대가 생각난다.
온―세계가 눈물에 젖어 있는 밤.
상해(上海) 호마로(胡馬路) 어느 뒷골목에서
쓸쓸히 앉아 지키던 등불
등불이 나에게 속삭어린다.
여기 하나의 상심(傷心)한 사람이 있다.
여기 하나의 굳세게 살아온 인생이 있다.
- 잡지『신세계』3호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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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등’과 ‘추일서정’으로 잘 알려진 김광균의 해방 이후 시다. 그를 두고 김기림은 ‘소리조차 모양으로 번역하는 기이한 재주를 가진 시인’이라 평했을 정도로 그의 작품은 탁월한 회화적 기법과 세련된 감각으로 1930년대 모더니즘 시를 확산시키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하지만 이 시는 이미지즘 계열의 시와는 사뭇 다르게 시인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의 심경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자신의 처지와 시에 대한 갈망 사이에서 번민하며, 중국의 ‘노신’을 등불삼아 고뇌하고 있다.
잠든 가족의 모습을 보고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새삼 생계의 부담에 괴로워한다. ‘먹고 산다는 것’ 때문에 비굴한 삶을 생각하지 않고 지조를 지키기를 원하지만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한 회의는 여전하다. 그 불면의 밤에 시인은 노신을 생각한다. 노신은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문필로 조국에 기여하겠다며 문학의 길로 들어서 중국 근현대 문학의 대부가 된 인물이다. 좌우의 협공에도 꿋꿋하게 이념문학을 비판하면서 5.4신문학 운동의 주역이 된 노신의 본명은 주수인(周樹人)으로 주은래와는 먼 친척뻘이다.
그가 13세 때 가정의 중심이었던 할아버지의 갑작스런 체포 구금으로 노신의 일가는 큰 타격을 입었고 생활은 곤궁해졌다. 현 지사와 중앙정부 관리까지 지냈던 할아버지였다. 그의 아버지는 병약하여 당시 폐결핵으로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는 거의 매일 어머니의 장신구 등을 전당포에 맡기고 받은 돈으로 약을 사왔지만 아버지는 결국 그가 16세 때 사망했다. 할아버지 역시 같은 시기에 사망하여 집안은 풍비박산되었다. 노신은 가난한 형편에서도 신학문을 닦기 위해 상급학교에 진학했고 한평생 신념을 지키며 살다갔다.
그러나 뒷날 김광균의 행로는 노신과 달랐다. 이념대립을 지양하는 '제3문학론'을 내세웠으나 6.25전란 후 건설회사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문학을 떠나 사업에만 열중했다. 송도상고를 나온 김광균은 무역업에 뛰어들어 경제적 부를 쌓았고, 한때 재테크에 관한 책을 쓴 일도 있다. 무역협회장과 상공회의소 소장을 지냈고 사업가로 성공한 그이지만 1993년 80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사람들에게 시인으로 기억되길 희망했다. 실제로 김광균은 성공한 사업가보다는 흐릿하나마 시인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걸 보면 그로서는 다행이라 할까.
권순진
The Bell Rings Monotously - Bolshoi Cho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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