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풍경/ 오탁번

sosoart 2015. 1. 4. 13:01

 

 

 

 

 

풍경

 

                                        오탁번

 

영월에서 열리는 시낭송회에 가려고

제천에서 시외버스를 탔다

깊은 가을 뙤약볕이 눈부셔서

불붙는 단풍에 불을 델 것 같았다

중간중간 버스가 설 때마다

내리는 사람이 한둘은 됐다

차창 밖 풍경에 푹 빠져 있던 나는

그때 참 이상한 풍경을 보았다

학생이고 아주머니고 할머니고

내리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운전기사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건성으로 하는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한창 나이 운전기사도

제집에 온 손님 배웅하듯 했다

-, 고맙습니다

 

아아, 우리네 진짜 풍경은

차창 밖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젳천 영월간 38번 국도

허름한 시외버스가 실어 나르는

호젓한 풍경에

나는 그냥 눈이 시렸다

 

 

오탁번 시집 시집보내다” 23, 문학수첩 발행, 2014.

 

 

나는 오탁번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

젊은 시절부터 중년의 나이까지는 한참 조병화 시인의 시에 푹 빠져 그의 서정과 시어에 매달려 생활도 그의 시처럼 닮아가기도 했다.

 

그런데 이순을 지나 고희에 이르며 세상의 모든 일이 언어에 녹아들어 몇 글자의 시어(詩語)로 표현하는 시인들의 이야기에 동화되고 나의 마음이 대변되는 몇 몇 시인들의 시에서 나의 살아가는 의미들을 발견하고 성찰하게 되고 그들의 시를 항상 내 곁에 두고 친구하며 산촌의 하루하루를 나의 영혼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산골에 귀촌하여 살아온 지 어언 15년이 다 되어가면서, 또 공직을 은퇴하고 산골짜기의 실개천 물소리와 자작나무 비탈길 아래 마구 피어나는 야생의 들꽃과 들풀들을 벗 삼아, 공예예술에 입문하여 정진하는 공예작가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 평범하면서도 인생의 짙은 지혜와 마음이 녹아있는 시작(詩作)들은 도시에서 귀촌한 사람들에게 적대적이고 폐쇄적이며 은폐적인 단순한 다수의 현지인주민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그들에게 기대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귀촌인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커다란 위안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허나, 가끔 시골의 버스를 올라타면 뜻밖에도 중년의 운전기사가 매우 상냥하고 밝은 얼굴로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넬 때는 나의 현지인들에 대한 선입견도 봄눈 녹듯이 스르르 사라지며 기쁜 마음으로 ,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며 가벼운 읍내 나들이 길을 떠나게 된다.

 

세상엔 참으로 하찮은 몇 마디지만 영혼이 담기지 않고, 지나가는 소리가 아닌 진심이 담긴 한 마디가 얼마나 긴 시간의 감동을 주는지.... 그런 한마디 인사말에 나도 오탁번 시인의 말처럼 눈이 시리다.

 

새해가 밝았다.

가진 것도 없고 무엇 하나 남을 위해 제대로 베푼 적이 별로 없는 내가 새해에는 은퇴 후 세상과 사람들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로 인해 그 모든 것에 적개심을 가지고 마음을 굳게 닫았던 문을 이제 살며시 비껴놓고 따뜻한 바람을 맞아들이고자 한다.

 

모든 이에게 마음의 훈풍이 불어오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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