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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본 보그- 복잡성에서 단순성으로의 이행/ 윤진섭

sosoart 2015. 3. 21. 22:01

이본 보그 / 복잡성에서 단순성으로의 이행


윤진섭(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Yoon, Jin Sup


 90년대 초반에 한국을 방문한 이래 이본 보그는 약 20여 년 간에 걸쳐 다양한 직업의 한국인들과 친분을 쌓아왔다. 그녀는 작가, 큐레이터, 비평가는 물론 사업가와 외교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친분을 맺으면서 한국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그녀의 작품들이다.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그녀의 작품은 멀게는 자신의 고향인 스코틀랜드의 추억에서 가깝게는 최근에 다시 찾은 한국에서 얻은 삶의 결정체이다. 그 사이에 제 2의 고향인 호주와 잠시 머물렀던 파리, 그리고 동경에서의 추억이 존재한다. 말하자면 그녀의 작품은 총체적으로 볼 때 그녀가 삶의 여로에서 만난 숱한 물상과 풍경, 사람, 동물, 가족에 대한 감정과 인상들의 복합체인 것이다.  



 

Namsan Park,Spring (dyptich), acrylic on canvas,162×260 cm, 2014 ⓒ 표 갤러리


 이처럼 기나 긴 삶의 여로에서 만난 대상들에게서 받은 인상을 이본 보그는 단순화된 색과 선, 면으로 표현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색과 선, 면과 같은 회화의 기본적인 조형 요소는 작품의 바탕이면서 동시에 주제이기도 하다. 그녀가 최우선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공동체 사회의 근간이 되는 언어와 소통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그녀가 한 공동체 사회를 접했을 때, 특히 그것이 외국의 경우, 이방의 문화를 접하고 난 후에 받은 문화적 충격이나 낯 선 풍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를 조형적으로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로 집약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1995년에 청주를 방문, 약 3개월 간 체류하면서 느낀 다양한 감정을 작업으로 소화해 낸 것이 그것이다. 그녀는 당시 청주에서 받은 인상이 자신이 태어난 스코틀랜드와 비슷했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느낀 이런 친연성은 곧바로 작업으로 연결돼 수십 점의 회화와 판화 작품을 낳았다. 


 이본 보그에 있어서 색은 자신의 감정을 실어 나르는 매개물이다. 따뜻한 색은 긍정적인 뉘앙스를, 차가운 것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함축한다. 거기에 덧붙여 굵거나 가는 선, 혹은 직선적이거나 곡선적인 선들이 이러한 감정들을 연결시킨다. 그녀의 작품은 어떤 것은 작가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상징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관객이 이를 다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그녀의 작품에 나타나 있는 색이나 선, 면의 느낌은 보편적 정서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관객이 이해하기에 마냥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추상과 구상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는 이본 보그의 그림은 그 안에 작품 해석을 위한 열쇠를 담고 있기도 하다. 단순한 선과 면으로 표현된 집, 사람, 나무, 개 등등의 사물들은 다양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조형 요소와 연결돼 관객들로 하여금 각자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녀가 소통을 중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그것은 곧 화자(話者), 곧 작가 자신과 청자(聽者), 즉 관객 간에 이루어지는 대화의 장으로 작품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War Memorial Museum (dyptich), acrylic on canvas, 162×260 cm, 2014 ⓒ 표 갤러리


 이본 보그의 작품에는 자신의 고향인 스코틀랜드, 생애의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호주, 또 잠시 머무른 적이 있는 파리와 동경, 한국의 서울과 청주 등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는 작가의 주변인적인 정서가 깃들어 있다. 그것은 세계를 떠도는 외로운 영혼의 페이소스일 수도 있고, 반면에 현재 머물고 있는 곳에 대한 강한 애정의 감정적 표현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어디에 머물든 현지에 대한 문화적 호기심과 그로부터 받은 인상을 작품에 내면화하는 일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그녀가 보여주는 순수한 추상의 세계는 그 형태면에서 볼 때 ‘복잡한 것으로부터 단순한 것으로의 이행’으로 풀이할 수 있다.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