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소니골통신-139: 시인모독 2/ 김용오

sosoart 2015. 6. 1. 00:11

 

 

 

 

시인모독2

 

아까운 나이에 불치의 병을 얻 어 시름시름 앓고 있던 젊은 후배 시인의 사망 소식을 받아들고 허겁지겁 달려갔을 때다. 그의 쓸쓸한 머리맡에는 다음과 같은 절규가 핏자국처럼 구겨진 채 놓여있었다.

 

하나님, 개새끼.

 

시인모독3

 

어느 날 술자리에서 굴지의 전자제품 회사에 중역으로 있다는 초등학교 동창 한분이 나의 옆자리로 슬그머니 다가와서는, 자네 시인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대체 시인이란 어떤 사람이냐고 비아냥거리듯 거나하게 취한 음성으로 물어왔다. 평소 지나치게 계산적이고 실리적인 잘 정돈 된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나는 반문하듯 조용하게 되물었다.

시인 : 만약 자네 집 뜨락에 가을 낙엽이 귀찮을 만큼 떨어져 쌓여 있다면 어떻게 하지.

친구 : 물론 빗자루를 들고 가서 한 톨 남김없이 깨끗하게 쓸어 모으고는 불에 태워 없애 버려야지.

시인 : 그래, 그것도 좋은 삶의 방법일 수 있겠지. 그러나 나는 자네처럼 하지는 않아. 깡그리 쓸어 모아 불에 태워 없애지 않고 조금은 떨어진 자연 상태 그대로 남겨둔 채 봄이 올 때까지 말라가는 잎들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덜 된 사람이지.

친구 : , 그렇다면 시인도 별게 아니군.

시인 : 맞았어. 자네 말처럼 별게 아닌 게 시인이야.

 

시인모독 4

 

얼마 전 교통사고로 아까운 시인 한사람이 나의 곁을 떠나갔다 그가 나에게 남겨놓고 간 시작노트에는 장래 훌륭한 시인으로 성공할 수 있는 필수 과목이 몇 가지 적혀 있었다.

첫째, 무슨무슨 협회라는 이름을 적당히 만들어놓고 썩은 정치가들처럼 감투싸움이나 계속할 것

둘째, 무슨무슨 상을 많이 남발하여 만들어 놓고 뒷구멍에 가서 로비 활동 잘하는 엉터리 시인에게 주는 법을 터득할 것

셋째, 문학잡지나 시 전문지 하나쯤 창간하여 철없는 시인지망생들. 돈푼깨나 가지고 있는 신인들의 등이나 쳐 먹을 것

넷째, 국가기관에 빌붙어서 빈대처럼 살아갈 것

 

시인모독5

 

스스로 잘난 척 하는 시인들이 시를 쓰는 같은 동업자들을 낮추어 평가할 때, 저 친구 시는 참 좋은데 사람이 형편없다든가 아니면 저 친구 사람은 참 좋은데 시가 형편없다는 뜻의 이야기를 곧잘 하지만 사실 시와 인격이라는 두 가지 문학적인 명제를 극복한 시인은 이 세상에 단 한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인모독6

 

시인들에게 지금 몇 살이냐고 묻는 것만큼 어리석고 치욕적인 질문은 없다. 나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선문답식의 답변을 한다. 왜냐하면 시인들은 나이가 없기 때문이다. 다르게 진술하면 시인들은 나이를 먹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동심을 살아야할 운명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인모독7

 

선배님, 아직도 시를 쓰고 있습니까?

 

위의 질문은 지난 날 그가 아껴주었던 허나, 지금은 어느새 아물한 기억의 저편으로 잊혀져 가고 있는 고향 후배의 두툼한 편지 속에 들어 있던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친구 집으로 놀러갔다가 천덕꾸러기로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선배님의 시집을 읽게 되었노라며 "아직도"라는 부사 속에는 아무래도 참 안됐다는 생각과 함께 한심하다는 느낌이 들어 있었다. 도대체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어려운 말장난이나 하고 있느냐 하는, 정말 안타깝다는 투의 빈정거림이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

 

시인모독8

 

밤마다 뜨거운 육체를 섞고 사는 아내의 입에서까지 당신이 시인이 될 줄 알았다면 절대로 결혼만은 하지 않았을 거야, 하고 지껄이는 변화된 현실을 외면한 채 그래도 시인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면 아마 그는 혼이 빠져도 단단히 빠져버린 쓸모없는 사람일 것이다.

 

시인모독9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던가, 개새끼 같은 짓거리를 해놓고도 자기네들끼리 모이면 시인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잘잘못을 얼버무리려 하지 말라. 단지 시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걸 다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 한다면 나는 그대의 얼굴에 침을 뱉으리라.

 

시인모독10

 

시인들은 사물의 비밀이나 인간의 마음을 상처 하나 없이 훔쳐내는 천하 제일의 도둑놈이다. 다들 잠든 사이에 모국어와 상상력이라는 두개의 무기만으로도, 거뜬히

 

김용오 시인

  

 

 

경북 포항 출생, 2012. 12. 25 숙환으로 별세

건대 대학원 수료

 

1982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

11 회 현대 시인상 수상

24 회 시문학상 수상

 

시집

신의 수염, 동화작용, 두 사람에 관한 성찰, 사부곡, 멀티 오르가즘, 명상집 여자 현상학, 시인모독

동인당 약품() 회장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이 시는 어느 인터넷카페 조병교 시인이 연재한 시인 "김용오"님의 시인모독의 일부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에 대해 많은 점을 시사하고, 또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나에 대해 더불어 성찰하는 계기를 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자괴감이나 상실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어디 시인 뿐이겠습니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분야의 성실한 보통사람들에게도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들이어서 모든 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이 됩니다.

 

어쩌면 인류가 이 지구상에 생겨나서 부터 이 세상은 모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부를 많이 축적한 사람 중 제대로 양심과 사회규범, 도덕성에 똥칠을 하지 않고 큰 돈을 사람이 있다면 어디 한 번 데리고 나와 봐라!” 한다면 누구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요?

 

또한 매스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사회적 명망을 얻는 유명인사? 예를 들자면 정치가, 사업가, 의사, 교수 , 예술가 기타 등등.......... 그들은 과연 모두 휘황한 조명과 각광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인지?

 

정직하고 묵묵하게 사회를 든든히 지탱하고 있는 대다수의 옳바른 삶을 견지하고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의 자화상이 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서든 칭송을 받거나 존경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사회적 루저(loser)로서만 따돌림 당하고 비아냥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 슬픈 현실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세계야 말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이 극명하게 보여지는 곳이 아니던가요?

 

이러한 현상이 비록 우리나라뿐만이 아닌 전 세계적 또 고금을 막론하고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개선이 안되고 있다는 것이 인간의 슬픈 숙명이라고도 생각을 해봅니다.

 

되도록 바르고 선하게 성실하며 상식적으로 살아가는 많은 대중들이 고난과 역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부의 편중만이 더욱 심화되는 글로벌 세상이 우리를 더 바르게 살아라하는 명제로 구속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용오 시인의 말대로 시인은 영혼이 맑고 어린아이 같이 순수해야 하는데, 그 시인의 세계도 인간의 집단이므로 별의별 목불인견目不忍見의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겠지요.

어딘들 않그렇겠습니까?

 

이 나라 장래의 대들보를 육성해야하는 교육을 담당하는 어린이집 교사부터 초등학교, ,고등학교 교사, 대학의 교수들까지 본인들의 사리사욕과 치부를 위하여 온갖 더러운 행위와 악의적인 정신과 행동을 불사하는 작금의 행태는 더 이상 우리 국민들에게 절망을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과 면역력만을 키워놨지 않습니까?

 

하물며 영혼의 순수와 창작의 고통과 성찰 등이 반영되어 대중의 고단한 영혼을 위로해 주어야 할 미술가, 음악가, 시인 등 문학인들의 작가 등단에 있어서도 돈과 학연, 지연 등의 백그라운드가 없으면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실례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와서 이제는 그러한 모든 수작들이 우습지도 않은 꼴들이 되어버린지 오랩니다.

 

저의 산촌 우거에도 예술가와 문학인들이 찾아오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토론도 하며 세상 사는 이야기도 나누기는 하지만, 돈으로 작가로 등단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예술과 문학인들이 창작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면 그러한 현상이 줄어들지는 모르겠으나, 일부 중견작가나 돈으로 작가가 된 자들이 돈을 더 벌기 위해 또는 투자한? 돈을 회수하기 위해 다단계적 작가를 팔기위해 전시회, 음악회, 공모전을 열기도 하고, 작품이 수록된 월간지를 일정량 할당하여 구입을 강요하는 구린내 나는 시스템으로 작가를 양산하는 것이 만연되어 있음을 김용오시인이 시인세계의 고백적 양심선언으로 이 시의 내용에도 암시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사동이나 서울 시내의 갤러리를 순방하며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참으로 작품같지 않은 작품들이 화려한 액자에 싸여 초라함을 애써 감추는 현상도 너무 많이 보아왔고, 소위 외국의 학교나 음악원에서 음악이나 연주를 공부하고 왔다며, 자기 연주발표회의 초대권을 대량 무료로 살포하여 관객을 동원하는 일들이 소위 돈 좀 있다고 하는 집안 자녀들의 대줌매체에 노출되게 하기위한 더티 플레이 등은 이미 보편화된 세상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진정한 작가를 분별하는 것은 관중과 우리들 자질의 몫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돈 있는 자들이 돈으로 박사학위를 사는 행위, 돈으로 각종 신문, 잡지, 언론매체에 돈을 뿌리고 기자와 평론가들을 매수하여 한다고 한들 무에 보통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예술과 문학 애호인들은 흑백을 선별하는 지혜와 지식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손가락으로 얼굴은 가릴망정,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세상이 모두 이렇게 돌아간다면 어디 우리 서민들이 살맛이 나겠습니까?

 

조병화 시인의 편운재기(片雲齋記)라는 시가 이러한 우리의 마음을 대변해 주기도 합니다.

 

보이는 곳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눈이 오가는 곳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사람의 목소리 들리는 곳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작별이 바쁜 이 무상 부근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이 세상에선 평생토록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하늘 이 자리, 한 생각 묻어

있을 수 있는 동안, 그냥

떠 있으려 했어요

 

차례가 있는 자리, 차례 속에

누구의 것도 아닌 이 차례, 가벼이

떠나려 했어요

 

번창의 페허

이 이웃 부근, 버려진

영혼의 의자

 

시간에

앉아

 

보이는 곳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눈이 오가는 곳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사람의 목소리 들리는 곳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우리네 보통 사람들은 일제강점기에 포악한 쪽바리 왜놈들에게 무기력하게 무저항적으로 대응 했던 것처럼, 이렇게 체념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의 목소리 들리는 곳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물론 이 시는 조병화 시인의 자신의 고향 오산에 당호堂號를 편운재片雲齋라 하여 어머님을 그리며 시작詩作하기 위해 집을 지었고, 지금은 고인이 된 시인의 문학관으로 개방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국내 중견시인으로 또는 대학의 강단에서 교수로 재직했던 이 시인에게도 이러한 인간에 대한 갈등과 용서할 수 없는 일들이 있는데, 하물며 울화와 갈등과 화를 글로서도 카타르시스 할 수 없는 평범한 대중들은 어떻게 마음의 괴로움과 병을 풀어나가야 할까요?

조병화 시인의 내일 어느 자리에서라는 시입니다.

 

되도록이면 만났다 가세

네가 너를 세우기 위하여

간교롭게도 저질러 놓은 것들이

얼마나 남의 생애를 갉아먹었던가를

알기 위하여

내일 어느 자리

내가 원하는 데서

잠시 만났다 가세

 

너의 지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철면피한

시골 자객의 녹슬은 송곳이라는 것을

알기 위하여서도

부디 오래 살아 주게

그리고 네가 정말로 인간이라면

더구나 붓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면

시간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 날이 있을 걸세

 

지금은 무식하니까, 그리고

기운이 세니까

모든 것 맛 모른 채 잘 먹고, 더럽게도

아무데나 잘도 배설하지만

참 용감도 하네

 

그러나 조심하게

남의 새로운 옷에

똥이나 오줌을 마구 싸고 흘려서야

되겠는가

아무리 예의가 없다손 치더라도

 

되도록이면 만났다 가세

용서를 하기 위하여선

내겐 긴 세월이 필요하네

 

주역周易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失得勿慍 실득물온

손해를 보았다고 성내지 말아라.

성난 마음은 사람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아져서 편견에 사로잡히기 쉽다.

편견은 독단을 낳고, 독단은 고집을 부리게 한다. 성난 마음이 고집을 부릴 때 분노가 쌓인다.

물불을 가리지 못하는 성미보다 더 거칠고 사나운 것은 없다. 마음이 그렇게 되면 세상은 막다른 골목처럼 느껴져 분노가 되고 그 분노가 치밀어 미쳐버리게 되어 추락하게 된다.“

 

요즘 소위 자주 회자되는 자신의 분노를 조절할 수 없는 처지까지 간다면 본인에게 더욱 불행한 일이 생기게 마련이겠지요.

 

분노를 승화하는 나만의 바람직한 그것을 찾아 오늘 밤 같이 나서 보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