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타인의 인생을 망가뜨리고도 처벌받지 않는 ‘불멸의 신성가족’- 본문 중에서

sosoart 2016. 12. 5. 16:11

http://news.bookdb.co.kr/bdb/Column.do?_method=ColumnDetail&sc.webzNo=27593


요즘 뉴스는 지리산 피아골 단풍보다 볼 만하다. 아름답지 않아도 단풍보다 오래 시선을 잡아끈다.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청에 불려갔음에도 팔짱을 끼고 웃음을 잃지 않는 전직 청와대 민정수석의 모습은 단연 최고의 포토제닉이다. 그의 당당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백수가 되기 전, 언론사에 10년을 다닌 탓에 지금도 기자들을 자주 만난다. 최근 모 매체의 기자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의 모 검찰청 검사들과 출입 기자단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일부 검사는 파일 하나씩을 들고 모임에 참석했다. 한 검사가 식탁에 앉아 파일을 펼치고 잠시 훑어봤다. 그가 고개를 들고 기자들을 보면서 한마디 했다.

“근데, 왜 우리 검찰청 출입기자들 중에는 서울대 출신이 없어요?”

알고보니 그 파일은 해당 검찰청 출입 기자들의 신상 자료였다. 서울대 출신을 찾는 검사도 이상하지만, 당시 현장에서 그의 발언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점도 신기하다. 왜 우리는 검사들의 거친(?) 언행에 관대할까?

 
한국에서 끈끈한 조직력의 대명사로 해병대 전우회, 고려대 동문회, 호남향우회가 거론된 시절이 있었다. 이것도 옛날 이야기다. 오늘날 한국에서 최고 튼튼한 조직력을 자랑하는 이들은 사법고시를 패스한 판사-검사-변호사들인 ‘사법 패밀리’가 아닌가 싶다.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책 제목으로 명명한 대로 이들은 그야말로 ‘불멸의 신성가족’이다.

타인의 인생을 망가뜨리고도 처벌받지 않는 ‘불멸의 신성가족’

한국에서 모든 직군의 사람들은 직무상 중대한 잘못을 범하면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불멸의 신성가족’ 특히 판사-검사는 이런 처벌에서 거의 열외다. 근대 이후, 한국에서는 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간첩으로 조작됐다. 이들 중 상당수는 민주화 이후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아 누명을 벗었다.

결국, 과거에 검사가 엉뚱한 기소를 했고, 판사가 오판을 했다는 것이다. 이들 중 처벌을 받은 사례가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단 한 명도 없다. 누명을 쓴 사람들은 교도소에서 많은 세월을 보내고, 삶이 망가졌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간첩 조작 사건만 그런 게 아니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묻혔지만 일명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으로 누명을 쓴 ‘삼례 3인조’가 17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삼례 3인조는 지적장애인, 저학력, 가난한 집안의 미성년자들이었다. 완주경찰서는 몽둥이질로 이들을 살인범으로 조작했다. 이들은 검찰로 넘겨졌을 때, 검사를 구세주로 여기고 “우리는 범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사는 “너희들 그러면 사형 구형한다!”며 협박을 했다고 한다.

보호관찰소 측은 지적장애인인 3인조의 정신감정이 필요하다고 했으나, 법원은 이를 무시했다. 1심에서 3심까지 모두 유죄를 내렸고, 기간은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국선변호인은 극적인 역할을 한다. 3인조는 국선변호인을 믿고 “우리는 범인이 아니다”고 호소했다. 국선변호인의 답은 이랬다.

“이러면 곤란합니다.”

변호인이 오히려 3인조에게 허위 자백과 반성을 유도했다. 이 국선변호인, 현직 판사다. 3인조에게 유죄를 선고한 판사 중 한 명은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17년 만에 법원은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여기에 관계된 법조인 누구도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 당연히 처벌도 받지 않는다.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사법 엘리트들에게 ‘할 말’을 하자

직무상 중대한 잘못과 실수를 범해도 처벌을 받지 않는 ‘불멸의 신성가족’. 이 말처럼 한국의 사법 패밀리를 제대로 표현하는 말이 또 있을까 싶다. 이들은 처벌만 면제받는 게 아니다. 고위 판사-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일반인들이 구경하기도 힘든 돈을 단기간에 벌어들인다.

과거 정치인 대선자금 수사로 한때 ‘국민검사’ 불렸던 안대희 전 대법관. 그는 대법관을 그만두고 변호사로 활약한 5개월 동안 수임료로 16억 원을 받았다.

<불멸의 신성가족>(창비/ 2009년)에는 비교적(?) 진보로 평가받았던 고위 법관들의 변호사 수입도 나온다. 노무현정부 시절 대법원장이 된 이용훈 전 대법관은 5년 변호사 활동으로 60억 원의 수임료를 받았다.

“진보적인 판사로 일찍부터 이름을 날렸고, 그 결과 대법원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는” 박시환 전 대법관은 22개월 변호사 활동으로 19억 원을 받았다. 오타 아니다. 정확히 22개월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대단한 변론활동을 한 건 아니다. 대체로 공동변호인단에 도장 한 번 찍어주는 정도다. 그 도장 값, 정말 어마어마하다.

김두식 교수는 책에 이렇게 썼다.

사람들은 대법원으로 가는 사건에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아주 잘못된 믿음이 아닌 것이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면 최소한 심리불속행 기각은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이런 믿음이 살아 있는 한,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앉아서 떼돈을 버는 현실은 달라질 수 없습니다.

물론 떼돈을 버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건 아니다. ‘불멸의 신성가족’ 내부에서 대법관 이름 석자는 무시하기 어렵고, 그 무게가 클수록 판사의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물론 법원은 “전관에 흔들림 없이 재판을 한다”고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전관 변호사들의 시장 가격이 그렇게 높을 리 없다. 세상에 공짜 없다는 건, 사법 엘리트들이 더 잘 알 거다. 

<불멸의 신성가족>은 법조계 내외부 인사들을 심층 인터뷰해 분석한 책이어서, 한국 사법 현실을 들여다보는 데 좋은 책이다. 저자 김두식 교수는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은 법, 유독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법 엘리트들에게 할 말을 하자고 제안한다. 쉬운 말로, 쫄지 말자는 뜻이다. 책이 다루는 무시무시한 사법 현실에 비해 대안은 다소 힘이 빠지지만, 무엇보다 현실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한 책이다.

우린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배웠지만, 현실의 법은 만 명에게만 평등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찍’ 소리도 못하고 살고 있다. 우리, 언제까지 사법 패밀리 앞에서 쫄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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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박상규

백수다. 2014년 12월 31일, 10년 일한 언론사에 사표를 냈다. 취재, 글쓰기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다. '계급장' 떼고 기사로 말하고 싶다. 자전 성장소설 <똥만이>와 에세이집 <이게 다 엄마 때문이다>를 냈다. 시인 백석, 고정희를 사랑하고 김중식의 시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을 좋아한다. 이 문장 때문이다. "나를 닮아 있거나 내가 닮아 있는 힘 약한 사물을 나는 사랑한다." comune1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