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樂茶軒-문화와 예술/詩가 있는 뜨락

시인모독, 31~54/ 김용오

sosoart 2017. 2. 18. 18:25




시인모독/ 김용오

 

31. 시인을 만들어 주면 거금 백만 원을 선뜻 내놓겠다는 정신 빠진 놈이나 풍만한 육체라도 바치겠다는 매춘부 같은 년들. 모두 빨리 죽어서 조용히 사라지거라. 종교에서 들먹거리는 불타는 지옥으로.

 

32. 시인이 많은 세상에는 언어를 버리고 시를 쓰지 않는 시인이 더 위대할 수도 있고, 존경받을 요인도 더 많다. 내가 꼬집어 말하지 않아도 그 이유는 시인들 자신이 더욱 잘 알고 있을 테니까.

 

33. 시를 가르쳐서 시 때문에 밥을 먹고사는 대학 교수들이 시를 오염시키는 장본인은 아닐까. 하여 진짜 시는 가르칠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으며 그런 학문적인 범주 밖에 자연스럽게 존재해 온 것은 아닐까.

 

34. 가슴으로 시를 쓰는 시인보다 머리로 시를 쓰는 시인이 훨씬 더 불순하고 타락되어 있다.

 

35. 나는 어려서부터 손발 씻는 일이나 속옷 갈아입는 것조차 싫어할 만큼 게으르기 짝이 없는 놈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쉬는 날은 그저 하늘이나 멍하니 쳐다보며 진종일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어하며 앉아있다. 그렇다면 내가 시인이 된 것은 순전히 신의 실수였거나 아니라면 천성적인 게으름의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36. 생각만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생각만으로 사랑을 하며 모든 것을 생각만으로 처리 하려는 시인들, 그들은 행동보다 생각이 지나치게 기형적으로 발달한 구제 불능의 환자다.

 

37. 시인의 천재성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에 길이 남는 시인은 몇 사람 안 된다. 그러므로 엑스트라 같은 시인들이여, 어서 찬물 한 사발 들이키고 마음을 돌려 먹을 지어다.

 

38. 젊은 나이에 아깝게 자살한 시인이나 죽어버린 시인들은 그나마 신의 축복을 받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주변에서 욕을 얻어먹으면서까지 고향에다 자신의 시비나 세우려하고 감투에 목이 말라 동분서주하는 늙은 시인들의 보기 흉한 노탐에 비한다면.

 

39. 나는 나의 시를 읽은 독자가 무슨 뜻인지, 무엇을 노래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할 때마다 고개를 돌리고 허허 웃으며 하늘을 쳐다본다. 시를 공부하는 사람이나 시인을 위해 시인들이 시를 쓰는 시대,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도대체 갈피가 잘 잡히지 않는다.

 

40. 장사꾼들 보다 더 약삭빠르고 비양심적인 시인들. 시를 쓰는 일에 전심전력하기보다 세상 눈치 보기에 더욱 바빠진 시인들-----------신이여, 간구하오니 용서 하소서.

 

41. 슬픈 일이 있을 때나 고통스러울 때 실컷 울고 나면 마음이 한결 시원해지고 가벼워진다. 그러나 시를 읽고 나면 왠지 마음이 갑절 무거워 지고 갑절 어두워지기만 하니, 눈물 한 방울보다 못한 시를 쓰는 눈물 한 방울보다 못한 시인들에게 어느 누가 박수를 칠 것인가.

 

42. 시는 정신이 배설한 똥이다. 언어의 구린내가 물씬 물씬 나는.

 

43. 삼라만상이 다 아름답고 경이로움을 안겨주는 살아 있는 시들이다. 그런데 시인이라는 작자들이 그 생동하는 자연의 작품들을 오물 같은 자신의 시로써 공연히 더럽히고 있지나 않은지 한 번쯤 자성해 볼 지어다.

 

44. 시 그것은 남자 대장부로서 평생을 다 바쳐 투자해 볼 만한 가치 있는 사업이라고 말한 노 시인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짧은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 해 보아도 그 말은 개인적인 이기심의 소치나 마지막 자존심 같기도 하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튼소리 같기만 하다. 더구나 요즘 같은 시대에.

 

45. 시인들은 고독한 정신노동자. 시장에 내어 놓아도 흥미는 고사하고 전혀 교환가치가 없는 문화적인 상품을 생산하며 살고 있는 불쌍한 노동자에 불과하다.

 

46. 있는 그대로를 보지 않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고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듣고 자기가 먹고 싶은 것만 골라서 먹는 편협한 이기주의자. 정말 처치 곤란한 존재를 어찌하여 사람들이 시인이라고 부르며 이따금 선망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로구나.

 

47. 한 번 더 강조하기 위해 이야기하지만 시가 감동을 준다고 해서 그 작품을 쓴 시인까지 감동을 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시와 시인은 밥 따로 국 따로 식탁에 올려놓은 "따로 국밥" 같은 것.

 

48. 멍청한 시인과 함께 살다 끝내는 진저리가 난 늙은 악처가 이웃 친구들에게 하는 말을 몰래 도둑질하여 들었다. "아마 시인들의 똥은 배고픈 개도 안 먹을 거야".

 

49. 이 세상이 좀 더 조용하고 깨끗해지기 위해서는 우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늘어나는 시인들의 숫자를 막아야 하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거든 어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아 시집 화장터라도 하나 건립해야 할까보다.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일이지만 숫제 쓰레기처럼 쌓이는 시집들을 불 속에 던져 넣고 한참동안 기다렸다가 화장터의 높은 굴뚝으로부터 한 줌의 허무한 여기로 사라지는 시집들의 마지막 운명을 마음에 똑똑히 새겨 두기 위해서는.

 

50.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게 되고, 직업을 묻게 되는 경우 나는 왜 한 번도 떳떳하게 시인이라고 답변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집을 떠나 호텔이나 여관 같은 곳에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는 경우에도 나는 왜 숙박일지의 직업란에 당당하게 시인이라고 기록하지 못하고 끝내 회사원이라고 써야만 했던 것일까. 논밭에 씨를 뿌려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농부도 엄연한 직업이라면 원고지 밭에 언어를 심어 영혼의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시인도 분명 성스러운 직업 일텐데...... 그럼 나는 아직도 시인으로서 자격미달자란 말인가. 한마디로 하늘 보기가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이로다.

 

51. 대철인大哲人 플라톤이 제일 미워하고 싫어한 대상은 역시 가난하고 힘없는 시인이었다. 그는 그의 공화국으로부터 유독 시인만을 추방해야 한다고 나름대로 논리적인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 공화국의 허구성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천부적인 혜안을 소유한 사람은 역시 시인뿐이란 걸 처음부터 그는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라면 그렇게 민감한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일 필요가 하등 없지 않겠는가? 시인들이 자기보다 한 수 높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증명한 쾌거가 아니겠는가. 그런 허튼소리를 이름난 동양의 선사들 앞에서 지껄였더라면 아마 긴 주장자로 머리통을 세차게 한방 얻어맞았을 것이다. 이 한심한 밥벌레야, 하면서.

 

52. 어떤 직업의 사람들이 제일 오래 살까. 예나 지금이나 스님이 첫 번째로 꼽히고 그 다음이 실업가, 그 다음이 정치가, 또 다음이 의사 순으로 내려가다 제일 짧은 그룹에 예술가, 그 중에서도 시인이 제일 단명하여 57 세를 넘기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최근 일본의 한 교수에 의해 발표 되었다. 한 방면에만 재능이 뛰어나면 아무래도 전체적인 정신 안정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시인의 단명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을 덧붙이고 있었다. 만약 그런 조사 결과가 어느 정도 사실에 속하고, 예나 지금이나 시인들을 창조자에 비유하여 부르고 있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로 믿는다면 다음과 같은 나의 해석이 오히려 외로운 시인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진혼곡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조물주의 비밀을 남 몰래 훔쳐본 아름다운 죄 때문이라고"

"조물주의 부끄러운 질투심 때문이라고."

 

53. 용서해 다오 그 동안 나의 시를 읽어준 고마운 독자들이여. 그동안 나는 네 권의 시집을 내고 그대들로부터 시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사실은 그 작품들이 모두 가짜요 거짓말에 불과 하다는 것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고백한다. 용서해 다오. 그대들을 속인 죄, 천벌을 받아도 마땅하겠지만 앞으로 남은 세월 동안 단 한편이라도 진짜를 써서 그 죄 값을 받고 가려 하오니 부디 용서해 다오. 얼굴을 똑바로 들고 쳐다볼 수 없는 미지의 독자들이여.

 

54. 사랑하는 나의 오랜 친구여. 어느 날 불어오는 바람결에 조용히 내가 눈을 감고 죽었다는 전갈을 받게 되거든 모래알만큼도 슬퍼하거나 울지를 말고 그저 조금은 세월이 지난 다음 내 외로운 무덤 앞에 자그마한 묘비를 하나 세우고 다음과 같은 묘비명을 몇 자 써 다오.

'여기 시를 자기 생명보다도 더 아끼고 좋아 하다가 오히려 시를 더럽히고만 죄 많은 시인 한 사람이 영원히 잠들어 있다'.

 

 

김용오 시인의 시인 모독의 전문全文을 이번 3회를 마지막으로 끝을 맺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시인의 자기비판적인 적나나한 내용은 시인의 사회에서도 일부 시인들의 비아냥이 분명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모든 바른 말에는 거센 적대세력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그러나 그러한 모든 반응을 염두에 두고도 이렇게 시인의 사회를 까발리는 것이 쉽지는 않을 터인데 그 용기와 진심에 공감을 합니다.

 

시인을 만들어 주면 거금 백만 원을 선뜻 내놓겠다는 정신 빠진 놈이나 풍만한 육체라도 바치겠다는 매춘부 같은 년들. 모두 빨리 죽어서 조용히 사라지거라. 종교에서 들먹거리는 불타는 지옥으로.”

 

밥술이나 먹게 되니 언젠가부터 유한有閑마담족이나 학벌이나 지식 등 남에게 내세울 것이 없는 일부 돈 있는 자들이 정치판에 뛰어들 듯이 시인이 되겠다고 시인에게 접근하여 돈으로 시인의 명함을 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예전엔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당선되거나 유력 문학지에 시인의 추천으로 신인 시인으로 등단을 하였지만, 지금은 알지도 못하는 무슨 무슨 문학지에 추천을 받아 등단하는 시인이나 수필가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들의 작품이란 걸 읽어보면 참 요즘 시인이나 수필가란 것이 참 별거 아니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찌릅니다.

자본주의 나라이니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까요?

 

그렇다면, 우스개 소리지만 시인이나 수필가 등 문학인들도 1급 시인, 2급 시인.... 이렇게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지요?

 

그런데 김용오 시인 혼자서 이렇게 공분한들 세상이란 것이 어디 꿈쩍이라도 하겠습니까?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다가오는 서글픈 현실이지요.

 

인생 70을 넘기고서도 아직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모르는 본인도 그렇게 독야청청 혼자서 외로이 세상을 향해 외친들 그 입만 아프고 쓸쓸한 침묵으로 돌아오니, 세상 그저 조용히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그렇게 살아가야지, 독립투사처럼 처연하게 외롭거나 어렵게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김용오 시인의 이 시인 모독을 읽다보면 극명하게 대비되는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가 떠오릅니다.

此亦何如彼亦何如(차역하여피역하여)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城隍堂後垣頹落亦何如(성황당후원퇴락역하여)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我輩若此爲不死亦何如(아배약차위불사역하여) 우리도 이같이 하여 백년까지 누리리라

-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

 

此身死了死了(차신사료사료) 一百番更死了(일백번갱사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白骨爲塵土(백골위진토)魂魄有也無(혼백유야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向主一片丹心(향주일편단심)寧有改理與之(영유개리여지)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

 

려말麗末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조선건국의 반대파인 정몽주(鄭夢周)의 진심을 떠보고 회유하기 위하여 마련된 자리에서 지어 부른 것으로서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는 누구나 알고 있는 시조이기도 합니다.

 

결국 정몽주는 지조志操를 지키려다가 방원의 철퇴를 맞고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게 됩니다만 어쨌던 이렇게 정의롭지만 모나게 살다가는 이 험한 세상에서는 비교적 그렇게 잘 살지(well-being)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은 절대 정의의 편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목표를 향해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김용오 시인의 이러한 말에는 동의를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천부적으로 타고나지 않은 사람은 전문가가 될 수 없다는 다소 우월적 금수저?적인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시인의 천재성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에 길이 남는 시인은 몇 사람 안 된다. 그러므로 엑스트라 같은 시인들이여, 어서 찬물 한 사발 들이키고 마음을 돌려 먹을 지어다.”

 

돈을 주고 사는 시인이란 딱지는 영원한 엑스트라라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이런 시인도 분명히 존재할 것 같습니다.

 

젊은 나이에 아깝게 자살한 시인이나 죽어버린 시인들은 그나마 신의 축복을 받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주변에서 욕을 얻어먹으면서까지 고향에다 자신의 시비나 세우려하고 감투에 목이 말라 동분서주하는 늙은 시인들의 보기 흉한 노탐에 비한다면.”

 

장사꾼들 보다 더 약삭빠르고 비양심적인 시인들. 시를 쓰는 일에 전심전력하기보다 세상 눈치 보기에 더욱 바빠진 시인들-----------신이여, 간구하오니 용서 하소서.”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바른 말 하고 바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단명한 것이 사실일거라고 믿게 됩니다.

 

어떤 직업의 사람들이 제일 오래 살까. 예나 지금이나 스님이 첫 번째로 꼽히고 그 다음이 실업가, 그 다음이 정치가, 또 다음이 의사 순으로 내려가다 제일 짧은 그룹에 예술가, 그 중에서도 시인이 제일 단명하여 57 세를 넘기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최근 일본의 한 교수에 의해 발표 되었다. 한 방면에만 재능이 뛰어나면 아무래도 전체적인 정신 안정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시인의 단명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을 덧붙이고 있었다. 만약 그런 조사 결과가 어느 정도 사실에 속하고, 예나 지금이나 시인들을 창조자에 비유하여 부르고 있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로 믿는다면 다음과 같은 나의 해석이 오히려 외로운 시인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진혼곡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조물주의 비밀을 남 몰래 훔쳐본 아름다운 죄 때문이라고"

"조물주의 부끄러운 질투심 때문이라고."

 

오래 잘 먹고 잘 살려면 시쳇말로 보고도 못 본 척, 알고도 모르는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하며 사는 것이 장땡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요즘 세상이 너무 어수선합니다.

대통령의 통치행보가 최순실에 의해 국정농단의 회오리의 중심에 처하게 되어 탄핵이다 아니다 라고 국론이 반 토막이 되니 국민들은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게 되고, 그 반대편의 정치하는 자들은 때는 이때다 싶게 저희들 대통령되기에 아전인수로 이 나라의 여론과 방송매체를 농단하고 있으니, 참으로 이 나라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뜻있는 국민들은 북한 김정은의 미친개 날뛰듯 하는 치기어린 수작에 이 나라의 안보만은 정쟁이 될 수 없다는 마음을 모아가고 있음을 종북 세력들은 알아야 할 터인데 말입니다.

 

하루 빨리 이 사태가 끝나고 나라의 안정을 되찾고, 의인이 홀연히 나타나서 이 나라의 젊은 청춘들이 일상생활과 적정 보수가 보장되는 열심히 일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마음 놓고 아기들을 낳아 기를 수 있는 세상, 자식들을 키우고 가르치기 위해 노후보장이 전혀 안되어 있는 노인의 복지가 보장되는 그런 나라를 만드는, 정말 자신보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국민의 심부름꾼으로 나와 주기를 하늘에 대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허공에 대고 손을 저어 봐야 하늘이 무슨 대답을 하겠습니까?

 

 

 

재미없고 지긋지긋한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는 버려두기로 하고,

 

귀촌하여 강원도의 산촌에 살면서 강원도의 해파랑길이나 바우길을 걸어보질 못했습니다.

서울의 북한산 둘레길이나 제주도 올레길과 유네스코 지질 트레일 길은 걸어 보았고 앞으로도 꾸준히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기 위하여 걸을 예정이기는 합니다만, 오늘 TV로 시청한 동해와 강원도의 수려한 산에 대한 애정이 잠시 식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년 시절부터 노후가 되면 강원도가 아니면 살지 않겠다던 마음이 실제 퇴직 후 살다보니 본인에게는 적지 않은 돈을 날려 버려 하층계급으로 전락한 지금, 경치와 공기가 좋은 강원도라 하지만 만나는 사람 거개가 강원도의 자연처럼 좋지만은 않았고, 화전민이 터전이던 강원도 산촌의 인심은 생각보다 순박하거나 후하지는 않았으며, 농작물이나 과실나무들이 자라지 못하는 추운 기후여서 나이가 들어 늙어가는 귀촌한 노년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는 것과 동절기 기간이 11월부터 4월까지 일 년의 반을 차지하기에 과다한 난방비와 고혈압 등 만성적 질환을 가진 노년들에게는 개인적으로 가까이할 수 없는 당신이 되어 간다는 것이 서글픈 현실이 되어 갑니다.

 

그렇지만 더 늙기 전에 내 나라 국토를 더 알고 싶고 그 속살을 더욱 눈여겨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합니다.

 

해서 올해는 비교적 시간과 경비가 덜 드는 남해나 제주도 보다, 가까운 강원도의 바우길이나 해파랑길을 많이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올레길이나 둘레길을 혼자서 걷다보면 혼자라서 좋은 점도 있지만, 혼자라서 지루한 점도 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고독한 여정을 걷다보면 길동무가 있다면 대화의 묘미도 있고 지루한 도보여행에서 나이를 초월한 우정도 만들어 갈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제주도의 올레길을 걷다가 조금 힘이 든다 싶으면 서귀포 해안의 외돌개가 있는 길을 찾게 되는데 개인적인 선호도가 높은 길로서 오두막 같은 숲 속 까페에 들어가 비교적 값이 싼 핸드드립커피를 마시며 혼자 있음을 마음껏 즐기기도 하면서 돔베낭길의 종점이며 시작점으로 빠져 나가 숙소로 가기 위해 서귀포여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곤 합니다.

 

지난 해 가을 이 돔베낭길의 끝머리에서 제주도에 살고 있는 50대 초반의 젊은? 길동무를 우연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가다가 그 길동무가 선생님, 잠깐 들어가 대포 한 잔 하시고 가시겠습니까?”하며 친절을 베풀었는데, 아침 일찍부터 둘레길을 걷다보니 심신이 피곤하여 빨리 숙소로 돌아가 샤워하고 쉬고 싶었고, 더구나 요즈음은 혈압 때문에 하루에 한 병씩 마시던 그 좋아하던 술도 거의 마시지 않게 되었는데, 그 길동무와 술친구가 되어 술을 마시게 되면 객기가 발동하여 과음을 할 것 같아 기약 없는 만남을 약속하며 아쉽게도 그 자리를 떠났었습니다.

 

여행길에서의 길동무, 더구나 혼자서 외롭고 힘든 도보 여행길에서의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은 하나의 엷은 두려움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은 또 다른 기쁨을 갖게도 합니다.

저의 경우는 남자들은 오히려 아무 부담이 없는데, 여성의 경우 제주도의 올레길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6~8배는 더 많이 눈에 띄게 되는데, 길을 걸으며 혹여 여성이 말을 걸어오면 오히려 더 두렵고 거리를 두게 됩니다.

 

아마도 요즈음은 여성들이 더 적극적이고 거세어지며, 좁은 길을 걷다가 마주치게 되어도 상대여성이 어리거나 젊거나 나이가 들었어도 내가 비껴갈망정 여성이 비껴가는 것을 보지 못할 정도로 연장자에 대한 공중의 예의나 배려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남자들은 어른 대접을 하고 비껴가고 여성에 비해 깍듯이 연장자에 대한 배려를 하며, 또한 연장자는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먼저 비껴주고 행동을 삼가기 마련이어서 남자들끼리의 대화는 오히려 편하고 안도감을 주게 됩니다.

 

가끔은 경치나 풍광이 좋은 곳에서 자그마한 스케치북을 펴고 연필이나 색연필로 스케치를 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멀리 여행을 갈 때에는 짐을 줄이기 위해 스케치 보다는 사진을 주로 찍고 있습니다만 시간에 쫓기지 않을 여정의 여행이라면 작정을 하고 간단한 스케치 도구를 챙겨가는 때도 아주 드물게 있곤 합니다.

그럴 때엔 지나가던 여성 올레꾼이나 관광객이 십중팔구 말을 걸어옵니다. 호기심이 많은 건지 어떤지는 몰라도. 이 늙은이에게 말을 걸어서 무엇을 얻겠다고.......?

 

좀 더 여행지에서의 스케치가 쌓여 가면 “uncle Kim의 스케치 여행이라는 여행기도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만.

 

허리 때문에 많은 비행시간을 요하는 해외여행은 이미 단념했고, 더 늙기 전에 국내 여행만이라도 그 중에서 섬 여행을 많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화가도 아닌 것이, 시인도 아닌 것이, 여행가도 아닌 것이............

 

오늘 하루를 또 접습니다.

 

 

일요일에는

 

교외선 기차라도 타 보는 거다

무거울 것도 없는 내 체중은

의자에 잠시 버려 놓고

차창 밖이라도 내다 보면되지

장흥.... 일영....

별로 달라지는 것도 없는

풍경때문에

피로하지도 않은 시계(視界)

어릴 때 뒷마당에서 무심히

바라보면

산이며 구름을 보듯

원근(遠近)을 보면 되지

그리고 다음 주에는

고속버스도

타 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