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다헌정담(茶軒情譚)-일상의 談論

작품을 판다는 것.....

sosoart 2006. 4. 17. 01:15
 

<작품을 판다는 것......>           2006. 4. 16(일)   

 

 

전통공예의 기법엔 이런 나사못을 박는 기법은 없다. 그러나, 밖에 내놓는 우편함이기에 비와 바람, 그리고 강한 햇볕에도 견뎌야 하니, 그런 나무와 견고하게 하기위해 짜맞춤보다는 접착제 위헤 나사못으로 연결한후 나무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에나멜 페인트를 사용하였다.

전통 목공예를 한다는 사람이 작품을 이런 것으로 만든다면 마음이 어찌 편할 수가 있겠는가?

작품이 아닌 물건의 내구성을 위해 페인트와 나사못을 사용했는데, 목공예가가 만든 것이 이런 것이라고 소문이 나면, 이건 잘해야 본전이 아니라, 잘해야 곤장이라는 말이 옳겠다.

 

 

 


어제는 아내와  무명 실과도 같이 갸날프고, 허기진 인연이라고나 할수나 있을지? 그런 여인네가 동락재를 찾아왔다.

이 이는 우리가 홍천에서 살기위한 집과 땅을 보러 다닐 적에, 우리보다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살고 있던 사람으로, 연배로는 아내보다 아래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목공예디자인을 공부하고  작업실에서 작업에 정진한다는 것을 아내의 그리 가깝지 않은 친구를 통해 알고 있었고, 몇 차례 지나는 길에 작품구경을 하고 구입을 하겠다는 의사를 전해 온 적이 있었다고 들었다.


더구나 그이는 얼핏 들은 바로는 미술을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아! 과연 같은 예술을 한 사람이니 木藝術에도 관심이 많이 있나보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 년이란 시간도 흘렀는데, 며칠 전 아내가 그이로부터 우편함을 좀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대저, 그런 우편함이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친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거나, 부식되지 않고 견고해야 함으로, 이러한 목재의 제품 보다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녹이 슬지 않는 알미늄이나 스테인레스 제품이 적격일뿐더러, 그런 상품이 전원주택 용품을 취급하는 점포엔 이미 나와서 많이 유통이 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무로 만드는 것 보다는 그런 제품을 사서 쓰는 것이 實利的이며, 가격도 쌀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말해주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아내에게 말을 했더니,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지만,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기에 거절하지 못하고 만들어 주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말을 바꾸겠냐?”며 곤란 해 하기에, 아내의 체면도 있고 해서 그냥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러한 것들은 작품도 아니며, 내가 木手도 아니기에 그러한 부탁은 내가 통상, 들어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지만, 아내가 받아 놓았으니 어쩔 수 없이 만들어는 놓았다.


이런 종류의 물건을 만들 때에는 전통가구 처럼 결구법에서 짜맞춤을 하거나, 나무 고유의 칠이나 채색을 할 수도 없음은 물론, 작품의 제작과정 처럼 온갖 정신을 집중하여 만들 물건이  아니기에 단호히 거절을 해왔던 것이다.


혹여 만들어 준다 해도, 작품의 제작과정으로 여겨,  많은 시간과 정성, 좋은 재료들을 사용해야 하므로 가격은 시중에서 유통되는 대량 생산품과는 비교를 할 수가 없이 高價가 될 것은 당연한 것이므로, 구입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작품성이나 모든 면에서 작가의 상황을 이해하기 이전에, 비싸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하므로 나는 절대 이런 주문은 받지 않는다.


이런 주문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예술작품에 대하여 無知하기에, 작품성 보다는 가격을 중요시하고,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싸게 만들어 주겠지 하는 자기 위주의 생각만을 하는 단순한 사고의 소유자들이므로, 솔직히 그런 사람들은 되도록 나는 상대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아내가 수락을 한 상황에서 어쩌겠는가?


그래서 다 만들어 놓고, 찾으러 오면 “그냥 무상으로 주라”고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재료대와 수고비(즉, 통상적인 작가가 아닌 목수의 일당액)로 따진다 해도, 시중 판매물 보다는 가격이 상당히 높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물건을 만들어, 이득도 없는 값에 준다고 해도, 경우가 바른 사람들이 흔하지 않은 것이기에, 나로서는 아무리 잘 해봐야 본전 밖에는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작업은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작가들의 통례이다.

무엇하려고, 애를 써서 작품을 만들어 놓고, 잘해야 본전인 일을 하겠는가?


작품성을 알지도 못하는 인사들일수록 모양이 어쩌네, 값이 비싸네, 색깔이 어쩌네 하며 가진 주접과 제 무식을 만천하에 떠벌리는 것이 예사이므로, 그런 허접한 물건들에게 시간과 정신적 낭비를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사람이란 것이, 자기의 작품에 대하여 공감하고, 그 의미를 잘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소위 나의 작품을 잘 이해해 주고, 의기투합하는 경우라면 얼마든지 그냥 선물도 할 수 있는 것이 작가들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세상에서 공짜로 주면 그 작품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기에, 작가들 사이에서는 자기의 작품을 절대로 공짜로 주지 않는다.

또 막말로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서론이 너무 길어졌다.


어쨌던, 지난 금요일에 찾으러 오기로 했는데, 내가 서울엘 갈 일이 있어서 훗날 오라고 약속을 변경을 했었다.


그런데,  어제 그녀가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동락재 마당에 내 차가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있으려니 하고 들렸다.

즉, 주문품을 찾으러 온 것이다.


그녀의 언니라는 사람과 같이 왔기에 들어와서 차 한 잔 하라며, 앉기를 권했더니,

“물건(?)을 많이 만들어 놓으셨다”며, 이것저것 돌아보며 구경을 하더니, 각 작품의 “가격이 얼마냐”고 물어본다.


그래서 그 옆에 가격이 붙여져 있으니 보라고 했다.


“어머! 뭐가 이렇게 비싸요?” “이게 한 짝에 00만원이에요?"

“이 다탁은 얼마에요?”  “어머! 너무 비싸다....” 하며 마치 내가 무슨 시장의 난전에서 물건을 팔거나, 인사동의 길바닥에서 되지도 않은 물건을 파는 사람으로 착각을 했는지, 말을 하는 폼 새가 漸入佳境이다.


적어도, 나는 그녀가 대학교육을 받았다는 것으로 들었고, 소위 잘나가는 강남에 사는 여자로서 돈도 많고, 강남과 용인에 아파트가 몇 채가 있다는 둥, 게다가 미술 전공을 했다고 해서 예술에 대해서는 많은 애호와 이해가 있으리라 여겼는데, 실제로 그녀의 말하는 수준을 보니, “이것은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겨우 고등학교의 물이나 조금 먹었을까? 라고 생각할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그 누시깔에는 돈밖에는 보이지 않는 그런 물건이었다.

 

그러면 내가 저를 보고 "네 몸값은 얼마짜리냐?"

"네 단 몇 만원 입니다!"

"뭐? 아니, 뭐가 그렇게 비싸냐?"하면 좋을까?

나는 그런 물건들을 보면 경멸한다. 


그래서 한 마디 말을 섞어보면, 대충 상대의 교양이나 지식과 교육 수준이 어느 정도인 것을 알 수 있기에, 더구나 사람의 인상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어느 정도 첫 대면에 상대의 관상을 파악하는 편이어서,  아니다 싶으면 되도록 상대를 하지 않고 한마디 말로 보내 버린다.


내가 그런 허접한  인간을 상대해서 나의 맑은 마음을 탁하고 더럽게 만들고 싶지가 않아서 이다.

그리고 나의 참을성이 한계에 다르면 나의 입에서 향기로운 말은 절대 나오지 않고, 욕설이 나온다.


그러기에 되도록 나는 허접한 인간들과 무릎을 맞대며, 눈을 마주치지 않는 다는 것이 내가 인간을 대하는 방법이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시간을 가져야 한다면, 참을성의 한계까지 참고 있다가, 급기야 그 한계를 넘어서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욕이 내 입에서 나온다.


나의 성질은 그렇게 과격하고 더럽다고 할 지경이다.  직설적이며 이리저리 재는 성격은 아니다.

그래서 많은 피해를 보기도 하지만, 그런 인간은 그렇게 대해 주어야 오랜 시간 대면을 해야 하는 마음의 괴로움을 피할 수 있다.


그런 그녀의 짓거리를 보고, 참으려고 노력을 했고, 더 있게 하면 내 입에서 욕이 나올까봐, 우편함을 두 개 만들어 놓은 것을 보여주고, “마음에 드는 것, 아무거나 하나 가져가소”했더니, 그래도 보는 눈은 있어서 크고 좋은 것으로 가져간다고 하기에, 던지다시피 얼른 주어 버리고, “잘 가시오”했더니, “선생님 계좌번호 좀 알려 주세요” 한다.


그래서 “괜찮으니 그냥 가시오”하고 보냈다.

그랬더니 “어쩌구, 저쩌구...이러면 안되는데.....?”하며 “그냥 어떻게 가요?” 한다.

속에서 “그래 그냥 안가면 어떻게 할래?”라는 말이 목구멍을 맴돌았지만, “정 그러면 나중에 술이나 한 병 사 오시오“라며 얼른 보내 버렸다.


내가 강조하는 말이 있다.


“얼굴이 예쁘면, 하는 말이나 행동도 예쁘다”고.......

예쁘다는 것은 다분히 주관적이어서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말하는 얼글이란 상대의 “얼굴과 심성이 조화된 아름다운 마음”이란 의미이다.


세상에 돈 몇 푼 아끼기 위해, 남을 깎아 내리든가, 아니면 제 수준의 판단대로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분 못하는 물건들을 보면 화가 나기보다는 불쌍하다.

“그러고 살아간들, 네가 잘 살고 있는 건지 한 번 생각을 해봐라!” 이런 말을 그들의 뇌리에 꽂아 버린다.  나의 강력하고 강렬한 눈과 뇌파가 그걸 말하며 상대의 머리통에  비수를 꽂듯이 꽃아 버린다.

 

그런데 머리 나쁜 것들은, 그런 것 마저 알 리가 있겠는가?

그냥 제 뒤통수만 조금 가려울 뿐이겠지....... 


지난해 여름에, 윗마을에, 소위 전원주택이랍시고 지어 살고 있는 시골 고등학교 교감인지 교장으로 퇴직을 했다는 인사의 부부가 지나다가 작업실로 들어와서, 저희들 여름에 사용할 평상을 만들어 달라기에 거절을 했었다.


춘천에서 교편을 잡았대나, 어쨌다나........


저희가 생각하기엔 선생이란 대단한? 직업에,  교장이란 대단한? 직위를 가진 인격체로 생각을 할 터이지만, 그 나이에 대부분의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서울이나 도시의 교장 노릇 한 번 못해보거나, 다른 분야에 종사하던 사람은 사회적인 지위가 저희보다 못하였겠는가?


그 알량한 교감인지 교장 신분이 뭬 그리 대단하다고 거드럼을 떨며, 거만하게,  일개 일꾼에게 얘기하듯 하기에, 차분히 대꾸를 해주었다.


“나는 시중의 목공처럼 그런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고, 전통목가구나 목조각을 하는 사람이므로, 내가 그런 물건을 만들면 값이 싸질 않으니 시내의 목공소에 가서 의뢰를 하던지, 직접 만드시오!  그리고 시골에서 생활하려면 거의 다 손수 자기가 만들어야 하는 법이라오”라는 말을 해 주었다.

 

“시중의 목공소에서 만든다 하여도 베니어 합판 12mm에 사용하는 각목의 양도 만만치 않고, 목수의 인건비까지 하면 아무리 적어도 20여만 원은 달라고 할거요“ 했더니, 그자의 마누라가 놀라서 하품을 하고 간 적이 있었다.


그 물건들이 올해 초에 또 들렸다.

작품구경을 하고 싶다고.....


그래서 나는 오는 사람 막지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성격이기에, 작품이 걸려져 있는 안으로 안내를 하고, 차 한 잔을 대접했다. 

이 차는 우리 집에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접을 하는 것으로서, 그들이 내 작품의 고객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 내놓은 것은 절대 아니다.

 

잘되고 않되는 싸가지는 떡잎부터 알아보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들을 내가 보는 관상으로 판단하기에는 예술품의 구매고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 인사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윗마을에 작년에 이사를 와서 마당이 백 평 정도 되는 데에 조립식 건물로 한 15평 농가주택을 지어놓고, 나에게 “놀러 오시라”고 흰소리하며 거만을 떨더니, 내년에 저 멀리 “좌운리”라는 곳에 몇 백평 넓은 땅을 사서 멋있는 집을 지으려고 하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전통가구를 거기에 들여 놓기 위해 가격을 알아보러 왔다며“ 이런 저런 쓸데없는 너스레를 떨더니,

 

집에서 쓰던 나무 도마가 하도 오래 써서 가운데가 움푹 패였으니, 좀 평평하게 만들어 달라며, 읍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들리겠으니 손 봐 달라며 나간다.


한 시간 정도 후에 다시 들려서 고쳐 놓은 도마를 가져가면서, “얼마를 드려야 되느냐”며 묻기에 “그냥 가지고 가시오”라고 준 적이 있다.

 

아무리 인간이 낯짝이 두껍다 해도, 어찌 그렇게 할 수가 있겠는가?

돈 몇 푼 아끼려고, 제 품격을 곤두박질을 시키는 꼴이라니.....

하기야 그런 물건들이 품격인들 있겠냐마는,

 

솔직히 처음부터 도마 좀 손 좀 봐달라고 하면 되지, 누가 저희를 나의 작품의 고객으로 생각을 할까봐.......  언감생심. 꿈도 야무지지.


마침 이웃 할머니가 “아무리 사람들이 경우가 없다 해도,  하다못해 소주 한 병이라도 내놓고 물건을 가지고 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욕을 하기에 “선생님을 했던 사람이라 그런 모양입니다. 다 그런 거는 아니지만, 일부 못된 선생들은 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사람을 부려먹을 줄만 알고, 또 그저 공짜로만 받을 줄 알지, 주는 것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 아닙니까?“하니, ”그려, 그려! 그 말이 맞어유.......“ 한다.


“너희는 왜 그러고 사니?”라는 말을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하잘 것 없는 물건들이, 시골의 고등학교 교장이라 해야 공무원 몇 급이나 된다고, 가진 교만을 떨더니, 도마 하나 살돈 몇 푼 없어서, 거지보다 못한 행동을 하는 인간들을 보니, 참 인생이 저런 서글픈 인생도 있구나 하는 마음에 “나무관세음보살”을 마음으로 되뇌었다.


그 전에는 또 윗동네에서 제법 고급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부부가 書架(책꽂이)를 만들어 달라고 왔기에, “가구점에 가서 사시오”라고 말을 했다.


그 역시 저희들 위에 사람 없는 種子들이 되어, 온갖 세상 돈은 제가 다 가진것 처럼 거만함을 다 떨더니, 겨우 한다는 소리가 싸게 물건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그들이 가고 나서 이웃집 노인이 "그 사람은 대기업 부장을 했던 사람이어서 저 위 물골에 아주 큰 집을 짓고 산데유...." 한다.  아무리 대기업 부장 출신이라해도, "그 자는 도대체 회사 돈을 얼마나 해쳐먹었기에 그렇게 4~5억 씩이나 돈을 들여 집을 지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하긴 "이승만 대통령이 설립했던 이 나라최초의 국가 연구소 였고,  정부 출연연구소의 최고 직급의 보유자였던 이 내 신세는 참 모질구나....." 이런 생각이 얼핏 머리를 쑤셨다.


전직 사회적 경륜으로 보나,  무엇으로 보아도, 작업복을 허름하게 입고 작업을 하다보니, 저희보다 못하게 보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세상엔 별 시답지 않은 물건들이 너무 많다.


목공예공방이라 하니 시골 촌놈이 나무뿌리나 주어다가 만드는,  소위 뿌리공예나 하는 목공 나부랭이로 치부를 하고, 없수이 여기기에, 그런 놈들 꼴 보기 싫어서, 공방의 간판에 東山房, 同樂齋, 전통목가구, 전통목조각, 목예술, Uncle Kim.s Woodworking Studio, Woodcraft Art Gallery, Gallery Simon(갤러리 心魂) 등으로 일부러 꼬부랑 글씨로 써붙였었는데......

 

너희 놈들처럼 적어도 그렇게 무식한 사람이 아니고, 나무뿌리로 탁자 만드는 것이 목공예로 알고 있는,  너희 처럼 무식한 놈들은 이 근처에도 얼씬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그랬더니, 어떤 놈은 매우 유식한 척하며 “同樂齋(동락재)”라 陰刻한 의 서각 간판을 보고 “거  동락제라고 잘 썼네요”라면서 나는 무식한 놈이라고 나에게 알려주려고 몸부림을 치는 작대기도 있었다.


그런 시답지 않은 놈들하고 대거리를 하고 있으니, 아내도 한심한 지, “여보, 제발 그런 인사들 하고, 말 섞지 말고 그냥 웃는 낯으로 보내요”라고 하지만 이 성질이 또 어딜 가겠나?


많이 도를 닦기 위해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하찮은 짓거리 하는 놈들을 보면 “야이 개새끼야! 뒤지고 싶어? 이 상놈의 새끼”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런 소리를 하고나면,  상대방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을 가지만, 아직도 뭇 잡놈들에 대한 살기와 기운은 펄펄한 것 같아서, 내심 “나도 오래 살겠구나” 생각이 되기도 하지만, “나 같은 작자가 더 소인배”다 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게,  마음이 심히 더러워 진다.

“애이, 저런 개새끼들 때문에 내 입만 더러워진다”며 남의 핑개만 대며..... 


“그래서 모두 용서하고, 웃는 낯을 보이자”며 하루를 눈을 뜨면 그야말로 결심을 한다.


오죽하면 이렇게 남들은 살지 못한다는 산골에서 살고 있겠는가?

오늘도 나를 돌아보며 반성을 한다.


나보다 못한 인간들을 보면 돌보듯 하라.

내가 과연 배워야 할 性情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진실로 배우려고 하는가?

지식과 지혜야 남만큼은 가겼다 하지만, 너그러운 마음은 아직도 멀었으니, 착하지 않은,  남의 결점을 진정으로 배려하고 용서할 수 있는 좋은 마음의 덕을 쌓기 위하여 오늘도 반성의 시간을 가져본다.

     

  

 최승호의 “말잠자리의 고독”을 옮긴다.


 이슬 희어지는 백로도 지난 늦가을 연못을, 철지난 말잠자리가

날아다닌다. 텅 빈 연못을 혼자서, 혹시 살아남은 말잠자리가 있나

하고, 지나온 길도 다시 가보며, 회백색 갈대꽃들이 시드는 연못 가

장자리로 날아다니는 늙은 말잠자리의 고독은, 아마 당신이 말잠자

리가 되어 몸소 날아다녀 봐야 알 수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