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다헌정담(茶軒情譚)-일상의 談論

어머님의 기제사일

sosoart 2006. 4. 24. 12:08

오늘은 어머님의 기제사일이다.

22년전, 그날도 이렇게 날씨가 화창한 날이었다.

 

6개월간 암투병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계시다가 , 집으로 모신 지, 한 달 만에 며칠 간의 곡기를 끊으시고 세상과의 인연을 마치셨다.

 

나는 병원에서 어머님과 함께 6개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어머님의 곁에서

대소변을 받아내고, 어머님의 침상 옆에서, 거의 뚠눈으로 새우잠을 자며 병구완을 했고, 1주일에 한 번만 어린 자식들 얼굴보기 위해 집에 들를 수가 있었다.

 

아내는 내가 병실에서 밤을 지내고 출근을 할 때에, 아침에 암병동의  병실로 출근을 해 내가 퇴근하여 병원으로 올때까지 어머님의 곁에서 수발을 하곤, 저녁에 나와 교대를 하고 집으로 가곤 했었다.

형제가 없는 외아들의 어려운 점이 이러한 점들이 아닌가 싶다.

 

 

집안에 가족이 장기간 병원에 입원을 하면, 집안의 살림과 사람 살이의 꼴이 말이 아니라고들 한다.  

우리 가족 역시 그랬다.

 

어린 아이들도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고, 말기 암의 통증에 괴로워 하시는

어머님에게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다는 무기력함만이 우리 내외의 마음을 끝간데 없이 괴롭혔다.

 

그렇게 돌아가시기 직전에,  살이 썩어 들어가는 욕창과 통증으로 너무 괴로워 하시던 모습이, 해마다 이맘때면 뼛속과 심장의 혈액을 파고들면서 어머님의 하고자 하시는 말씀을 못하심은 물론, 입술과 입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마지막 투병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의사의 권유대로 병원에서 집으로 모시고 와서는, 정히 통증을 견디지 못하실 때엔, 의사로 부터 마약을 타와서 내가 손수 주사를 놓아드리곤 했다.

 

그리고, 집으로 모신 한 달간, 독실한 불교신자이신 어머님을 위하여 매일 스님께 서 오셔서, 염불과 함께 좋은 말씀을 해주십사하여, 그렇게 스님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집으로  오셔서 염불을 해 주셨다.

 

물론, 스님이 안계실때엔 거의 지장경과 불경을 고인의 머리 맡에 종일을 틀어 놓곤 했다.

 

돌아가시는 날, 저녁 황혼이 질 무렵

어머니는  그야말로 뼈대만 앙상하게 남을 정도로 깡 말랐지만, 온화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으셨다.

 

장례를 마치고, 절에 모셨을 때, 노랑나비가  하늘하늘 우리 자손들의 곁에서 한참을 머물다 날아갔는데, 어머니가 환속을 한 것이라고들 스님과 여러 어른들이 말씀들을 하셨었다.

 

 

 

<어머님 급하시다기에>

어머님 급하시다기에

달려갔읍니다 

달려가 

당신 방문 열자

어 너 왔구나

자식 무심도 하지

난 이젠 틀린 것 같다

오랜 못 살 거 같다

더 살 거 같지 않다

이걸로 


당신이 떠나시기 전

한 주일 전 일이옵니다

여름 날이었읍니다


이날부터 한 주일

시름시름 

당신은 자리에 누우신 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제 손을 꼭 잡으시고

스스로를 보고 계셨읍니다


어린 제 눈에도 선히 보이는

당신 떠나시는 준비

서서히 

이 세상 자리 거두시는 준비

아, 그 마지막 작업

눈 감으시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떠나시는 길

고요히 

정히 

맑게 해 드리기 위해서

의사는 부르지 않고

당신 곁에 꼭 앉아 있었읍니다

일 주일을 두시고


눈을 감으셨다 떴다

또 감으셨다

이 세상 두루 마지막 살펴 보시곤

하시던 모습

식어가는 그 말씀


너 거 있구나




<적선을 배우면서>


거리에서, 골목에서,

지하도에서, 

손을 내미는 측은한 사람 보면

올해 들어부터 부쩍 어머님 생각


한푼이고, 두푼이고, 빠짐없이

동전을 집어 주고 지나시던 어머님 모습

불쌍도 하지,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적선을 하시던 먼 어머님 생각


나도 그렇게

적선을 배운다


광화문 지하도 젖물리고 앉아 있는 여인

종로 지하철 입구

아이 잡아매고 앉아 있는 눈 먼 여인

덕수궁 긴 담 모퉁이

장안의 먼진 다 쓰고

지장보살처럼, 묵묵히

그저 묵묵히

세월을 마냥 앉아 있는 다리 없는 사나이


보이는 게 모두 눈물

느끼는 게 모두 눈물

생각 도는 게 모두 눈물

아, 나무아미타불


어머님! 

어머님처럼 적선을 하며

적선을 배워도 배워도

모자라는 게 적선이옵니다.



한 겨울에도, 한 여름에도 그저 길가 난전에서 이것 저것 몇 덩이 놓고 파시는 할머니들의 싱싱치 않아 보이는  채소도 마다 않고, 일부로 사러 나가셨던 어머니.

 

적선이란 많이 크게는 하지 못해도, 그렇게 하는 것이 적선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 수가 있고, 또 아내도, 나도 그렇게 적선을, 아니 우리의 업보를 사멸키 위해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