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속없이 바쁜 백수의 나날 중에, 오랜만에 어느 여성 수필가의 문안인사를 받았습니다.
다향처럼, 또는 다도를 수행하는 다인처럼 다소곳한 그녀가 처음 나의 동락재를 찾았을 적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무언가 많은 이야기를 머금은 연꽃의 이슬처럼
어느 까마득한 기암절벽에 굵은 뿌리 하나의 의지로
보느 사람의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하지만
단호한 그 자태는 쉽사리 범접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으로 있으리라 생각되는 사람이지요.
저에게 이른 새벽의 시간에 기별을 보냈더군요.
새벽이란 시간이 범상한 시간은 아니며, 또 그 시간에 보낸 메세지는 또한 범상치 않은 맑은 언어가 아닌가도 느껴집니다.
이제 겨우 발견하고 답을 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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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인 일로 새벽시간까지 잠을 청하시지 않고 그러십니까?
素月의 개여울이 생각나는군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 앉아서...
삶이 당신을 머뭇거리게 하나요?
아니면 사랑이 당신을 새벽에 버려 두게 하나요?
그도 저도 아닌 바로 당신 스스로가 마음 둘 곳 헤매이게 하는지요?
세상은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은 저는 아주 요즈음에 알았습니다.
그렇게 철따구니 없는 시간을 마구 버리며 온 것을
귀중한 시간을, 헤픈 마음을, 어리석은 자존을
속절없이 가치없이 마냥 물쓰듯
이렇게 함부로 버리며 온 삶이 마냥 부끄러운 요즈음입니다.
그동안 내 삶의 무게는 누구보다도 더 무겁다며
내가 아닌 모든 것을 원망하며
나이값도 못하며 많은 것을 증오하며
생활이란 시간 속을 헤멘것 같습니다.
지금쯤은 철이 좀 나야 되겠는데,
아직도 적지 않은 것을 아내에게 배우고 있습니다.
아내는 참으로 평안하게 모든 것을 버리며
해탈로 가고 있는데,
이 소인배는 가진 것도 없이, 손바닥 한 줌의
자존을 버리지 못하고
참으로 속절없이, 대책없이 생존의 비린내를 풍기고 있습니다 그려.
이제부터는 목공예 작업도, 자신을 반추하는 열등의 원망스런 외침이 아닌
참으로 내 인생을 사랑하는 따뜻한 글을 쓰고자 합니다.
뭐 글이라 한들, 00님처럼 작가는 아니라서 사회적인 책임은 없는 글이니
그저 편하게 나를 비추는 그런 독백이지만,
공감해주는 따뜻한 마음들이 있기를 소망하며
나를 발견하는 첫걸음을 내디딜까 합니다.
주중에는 동락재가 쓸쓸합니다.
요즈음 가을 걷이는 모두 끝났고, 겨울 준비도 모두 끝났고, 이제는 자신을 거두는 작업을 시작할 겁니다.
겨울이 오면 동락재의 한방 차가 맛이 있습니다. 물론 차는 맛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겠지만.
부담느끼지 않은 친구분과 함께 같이 오세요.
바람도 쐴겸.
단, 헛탕을 치지 않으려면 전화 미리 주고 오십시오.
東山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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