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동락재 통신-8: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다는 아니야....

sosoart 2007. 3. 26. 05:49
 

 

산길로 가는 오솔길 옆 울타리의 솟대가 삼재를 방어하며......

 

 

동락재의 으뜸솟대

 

동락재의 막내 "길동이"녀석.  아메리칸 코커스파니엘이라나 뭐라나. 

이런 조그만 애완종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입양한 녀석이라 정붙이고 살아가네요.

 

<동락재 통신-8>     2003. 3. 17


오늘은 월요일, 또 다른 새로운 週의 시작입니다.


금요일 저녁에 춘천 집사람의 매장에 들러서 반가운 얼굴로 서로를 맞으며, 문을 닫을 시간까지 함께 있다가 홍천의 동락재로 향했습니다.


금요일엔 아들이 제 어머니의 일터로 아침 출근을 시켜드리고 학교로 가고, 저녁엔 아버지가 퇴근을 시켜드리니, 아들은 출근 부역(?)을 마침과 동시에 다시 동락재로 돌아갑니다.

아비를 잘못 만나서, 아비의 잘못된 시골행 욕심대로 강제로 강원도의 춘천에 있는 대학을 다녔고, 더구나 2년째 제 어머니의 출퇴근까지 책임을 져야하니, 아비로서 참 안됐고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제 어머니 출퇴근 때문에 재미있는 학교생활도 없고, 더러는 복학한 제 친구들과 생맥주라도 한 잔 해얄텐테, 이도 저도 못하고 자유분방한 대학생활을 보내지 못하게 한 것이, 모두 이 못난 아비 탓 같아서 가슴이 아픈 적이 많습니다.


모든 것 다 정리하고 다시 서울로 모두 올라갈까? 생각을 하다가도, 지난 3년 동안 너무 잃은 것이 많고, 미련도 많고, 또 아직은 여기서 해야 할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이 있어서, 어느 정도 끝을 본 연후에나 결정을 하려고 합니다.


서울 쪽에 있는 집을 처분하지 않고 남겨둔 때문에, 집사람과 특히 딸아이는 하루빨리 서울의 집으로 다시 들어가 모든 것 다 버리고, 잊고, 새로이 시작하자고 압력을 가해오지만, 이 아비의 미련한 고집 때문에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이 못난 아비의 판단 부족으로 제 발로 그야말로 좋은 직장을 내동댕이치고 나와서,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한 탓에, 가족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자책이 들 때가 많은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빗나갔군요.


그래서 주말엔 춘천과 홍천에서 이런저런 1주일 동안 미진했던 일들을 정리하고 추스리다 보면 저에게 힘에 겨운 주말이 되곤 합니다.


아직 학교수업에 완전적응이 안되어 피곤한데다, 더구나 주차 및 교통여건상 차를 가지고 등교를 하지 못해서 지하철을 이용하려니, 그것도 참 고역이더군요.


이제 한 달 정도 지나면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익숙해지리라 믿습니다.


그래도 매일 매일 새로운 학습과정에 들어가고, 이론과 실습을 겸하므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이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 좀 더 일찍 시작하지 않았는가? 후회가 됩니다.


옛날, 제가 대학입학시험을 볼 즈음에는 저와 같은 理科 지망생은 공대가 제일 선호대상이어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지만, 결국은 전공과는 직접연관이 없는 분야에서 오랜 직장생활을 해왔는데, 차라리 취미와 흥미를 가진 예능분야(음악이나 미술)로 입학을 해서 정진했으면, 아주 행복한 인생을 보냈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에 아주 후회가 많았습니다.


이제 와서 어리석게도, 생각해 보면 차라리 한의대나 교대, 혹은 사대에 갔었더라면 돈과 노후가 보장되는 편한 세상을 살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위의 열거한 직종에 비하면 내가 지금까지 바쳐오고, 노력한 것에 비하면, 그 당시엔 왜 내가 그런 학교를 무시하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는가? 바보스런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남편이 오죽 한심스러웠으면, 우리 안사람 역시 "내가 왜 불문학을 전공을 하고 교사 자격증을 땄을까? 차라리 그 당시 2년제라도 교대에 갔으면 평생직장을 삼을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참 우스운 얘기지요?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에서 평생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그나마 이제라도 늦었더라도 조금이나마 발을 넌지시 금(線:

Line) 안에 들여놓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감사하고 고맙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큰 후회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현대를 잘, 그리고 유능하게 살아가려면,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는 필수사항인데, 이것 또한 인생을 사는 방법처럼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이겠습니까? 아마 그런 것은 태생적인 감각이나 동물적인 우수한 본능을 지닌 사람이라야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호수에 이는 파문(波紋)에 따라, 물결대로 흔들리며 떠있는 나뭇잎처럼 모든 것을 초월한 듯 살아가는 것이 아마 제일 팔자 좋은 방법이 아닌가도 역설적으로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튼 사람답게, 또 나에게 충실하게, 아름답게, 무의미하지 않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과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죽어도 깨우치지 못하는 그런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지금을 살아가고, 또 내일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고도 생각을 해봅니다.


아직도 지금을 처음인 듯 살고 있어도, 세상을 보는 지혜를 터득하지 못하고, 지금 시간을 헤어져야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듯, 하염없이 버려두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청맹과니처럼 아직도 이 시간을 헤매고 있음에 조병화님의 <눈에 보이옵는 이 세상에서>처럼 세상을 알고, 또 보고 싶습니다.


눈에 보이옵는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아니하옵는 저 세상에

혹, 떠나신 지

어언 수삼 년

당신의 말씀 그 목소리


얘, 너 뭐 그리 생각하니

사는 거다

그냥 사는 거다

슬픈 거, 기쁜 거

너대로 

다 그냥 사는 거다

잠깐이다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눈에 보이옵는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아니하옵는 저 세상에

혹, 


떠나신 지

어언 수삼 년


당신의 목소리 그 말씀

얘, 너 뭐 그리 혼자 서 있니

사는 거다

그냥 사는 거다

슬픈 거, 기쁜 거다 

너대로 그냥 사는 거다

그게 세상

잠깐이다 



이제 다시금 돌아오는 몇 번째의 봄 인줄 모르겠지만, 나이를 얼마나 더 먹을런지는 모르지만 항상 새롭고 싶은 마음 거둘 수는 없습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시절 그 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속에서, 땅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쉬임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무가지에서 물위에서 뚝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해마다 봄이 되면>의 전문(全文)입니다.


이제 밤의 이야기, 그 첫 번째 이야기, 제1장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지금 너의 눈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네, 죽음을 보고 있읍니다


지금 너의 눈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네, 죽음을 생각하고 있읍니다


지금 너의 눈은 무엇을 찾고 있는가?

네, 죽음을 찾고 있읍니다


지금 너의 눈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가?

네, 죽음을 고민하고 있읍니다


어제 너의 눈은 무엇을 보았는가?

네, 어머니를 보았읍니다


어제 너의 눈은 무엇을 보았는가?

네, 눈물을 보았읍니다


어제 너의 눈은 무엇을 보았는가?

네, 슬픈 나라를 보았습니다


어제 너의 눈은 무엇을 보았는가?

네. 당신을 보았습니다


지금 너의 눈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네, 마지막 그 눈을 보고 있읍니다


이 정 많고, 남겨둔 것이 많은 세상을 떠나신  시인은 그의 밤의 이야기라는 連作 詩의 첫 번째 장부터 죽음이라는 이야기로 밤에 나누고 싶은, 밤에 하고 싶은 이야기의 서두를 열었습니다.


유족과 친지들이 전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가시는 날, 그 얼굴이 참 평온 했다고.....


항상 이별과 죽음을 연습하고, 준비하며 살았던 그 분, 자신의 시처럼 세상을 그렇게 살고 싶어 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다가 가신 분의 죽음의 이야기 이지요.


어찌 보면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것을 이별과 죽음과 어머님과 눈물, 대지(땅)와 구름, 바람 이 모든 것들을 서로 연관 지어 시어로서 표현을 하였음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항상 내일을 준비하고, 먼 훗날 일지라도 끝나는 내일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그러한 마음을 갖는 생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이별하는 연습을 하며, 이별하는 순간 너무 큰 슬픔을 맞이하지 않기 위하여.......


월요일부터 가라앉은 심해(深海)의 어둠을 이야기 한 것 같군요.

 

 

나무관세음

동락재의 동산 드림

 

 

<댓글>

 

아낙: 이제는 되돌아와 거울앞에 선 내 누이같은.... 님의 글 항상 잘 읽고있습니다. 늘 마음을 다스리는 모습이 보기좋네요. 2003/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