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충무 마리너리조트 앞의 한산도 행 선착장에서 배를 타기 전 딸이 찍다
이순신 장군이 멀리 두고온 가족들과 부하들 그리고 나라의 걱정에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리듯, 그 수루
아래에서 아내와 함께
<동락재 통신-48: 남해 여행 후> 2006. 3. 22 (수)
오늘은 지난 주 남해 여행을 하고 서울로 돌아와 하루를 아이들과 지내고, 피곤
해하는 아내와 함께 토요일 점심때쯤 이곳 동락재로 내려와서, 너댓새를 쉬다
가 아내는 오늘 오후에 시외버스 편으로 다시 올라갔다.
예전 같지 않아서, 나이도 먹어갈 뿐더러, 그동안 목구멍에 풀칠하는 생계유지
사업이랍시고 생전 처음 해보는 장사꾼(말이 사업이지 모두 다 장사꾼 아니겠
나?) 노릇에 온 몸과 정신의 진을 다 뺏기고, 더하여 2년 전 교통사고로 어깨 쇄
골의 골절 후유증 때문에 매일 어깨, 팔, 다리가 아프다고 하니.
아내 대신 아파 줄 수도 없고, 어찌됐던 내가 운전을 잘못하여 생긴 사고로 아
내가 평소에도 통증으로 아파하니 안타까울 뿐, 달리 치료방법도 없어 더더욱
답답할 뿐이어서, 이번에는 며칠 동안 만이라도 서울의 아이들 끼니는 저희들
이 알아서 해결하라 맡기고, 다른 때보다 훨씬 길게, 어거지를 써서 5일간 쉬다
가 돌아갔다.
오늘 아침에 샤워를 한다고 욕실에 들어가더니, 때가 밀린다고 하여, 들어가서
때를 밀어 주었다.
사고 이후로는 팔이 뒤로 잘 돌아가지도 않고, 때를 미는 일도 힘에 겨우니 목
욕할 때에는 꼭 딸이 때를 밀어주곤 했는데, 오늘은 딸이 곁에 없어 내가 밀어
주었다.
기실, 때를 밀어주는 일도 힘이 많이 드는 일이기에, 딸아이의 일도 덜어 줄 겸,
오늘은 아내의 때를 밀어 주었다.
우리 가족은 가급적이면 공중목욕탕은 잘 가지 않는 습성이 있어서 거의 목욕
은 집의 욕실에서 하며, 아내가 허약하여 결혼 후 지금까지도 내가 항상 때를
밀어주는 편이다.
남들이 흉을 볼지는 모르겠으나, 이제는 나의 일상의 일과가 되어 가족들은 모
두 그러려니 하며 일상사로 여기고 있다.
아들이나 딸이 저희들 출가 후에 그대로 따라서 한다 해도 말리고 싶지는 않
다. 다만 당사자는 힘이 들겠지만, 부부간에 서로의 등을 밀어 준다는 것도 하
나의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이 아니겠나 생각을 한다.
이 비밀을 공개했으니, 아내에게 핀잔을 듣지 싶다.
그러나 어떠랴. 남들이 뭐라 하든
아내를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태우고 바래다주면, 아내는 의례히 터미널 근처
농협의 파머스 마켓에 들려 홍천産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사가지고 간다.
굳이 사가지고 가는 이유는, 물론 맛이 있고 값도 조금은 싸기 때문이다.
서울의 아이들도 홍천産 고기 맛에 길이 들어 의례히 이번에는 무슨 무슨 고기
를 사오시라고 주문을 한다.
홍천의 한우고기도 횡성의 한우 고기처럼 맛이 있다.
서울의 한우나 돼지고기는 값도 많이 비싸기도 하지만, 약간 느끼한 편인데 이
곳의 고기는 맛이 느글느글하지 않고 강원도 특유의 우직하고 조금 거친듯 하
며 왜놈 말로 아싸리한 맛이 있다고나 할까? 아무튼 맛이 있다.
아내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모처럼 대청소를 했다.
청소를 아주 열심히 하고 있는 데, 마당의 복순이와 다른 두 녀석들도 요란하게
짓기에 내다보니 차가 한 대 마당으로 들어와 두 사람이 내려선다.
청소를 하다말고 나가 “어떻게 오셨습니까” 물으니, 집이 예뻐서 들어 왔단다.
“밖에 <목공예 공방>이라고 표시판이 붙어 있어서, 작년부터 한 번 들어와 본
다 하면서, 오늘에야 들어와 본다”며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인사를 하
기에 작업실로 맞으며, “지금 청소를 하는 중이라......” 내심 “다음에 다시 왔으
면 하고” 바랬지만, 기왕 내 집을 찾은 사람들이기에 맞이 하였다.
어디 사시는 분이냐 물으니, 면사무소 가는 길에 산다며 교회의 목사라고 소개
를 한다.
아내는 조각을 전공하며, 이번에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인데, 나무 조각에도
관심이 많아서, 한 번 들려 보았다고 하는데, 그녀가 주로 다루는 주재료인 금
속(철)조각의 작품 구상과 재료의 혼합 구성에 관심을 가지고 온 듯싶었다.
그래서 동락재에 손님 맞이 용으로 마련한 방으로 안내를 하며 나열해 놓은 작
품을 보여 주고, 작품 제작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작업실을 보고 싶어 하기에 작업실도 보여주긴 했다.
실은 나의 작업실은 남에게는 잘 보여 주질 않는다.
나는 특히 나의 작업시간에는 남이 나의 작업 과정을 보는 것은 아주 질색이다.
작업 중에는 오로지 혼자서 작업에 몰입하여야 작품 구상이나 제작 과정에서의
잡념이나 좋지 않은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방을 허용하기 싫어서도, 보안상 기계, 공구류를 함부로 남에게 보여
주기도 싫기 때문이기도 한데, 어쩌다가 보여주고는 후회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도 또 보여주고 후회를 했다. 순간의 잘못으로 거절을 하지 못하
면 이런 게 탈이다.
어쨌던, 공예나 순수 미술 분야나 미를 추구하는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기에 서
로간의 대화는 이어진다고 할까?
2년 전에 조각가 한 사람의 방문에 이어, 조각분야의 전공자는 이번이 두 번 째
다.
밖에 공방의 간판을 내 건 이후, 주로 전통가옥 건축에 종사하는 사람, 흙집 짓
는 사람, 시인, 문인, 국악인, 도예가, 화가 등이 많이 다녀갔고, 특히 봄부터 가
을까지는 지나가는 閑良이나 여행을 즐기는 사람, 특이한 정신세계를 가진 여
러 부류의 사람들이 들렸다 가곤 한다.
물론 거의 모두에게 우리 同樂茶나 커피를 대접하기는 하지만, 우리 동락재나
동산방 특별 제조의 同樂酒나 東山酒를 대접한 길손은 특별히 없다.
멀리서 “한 잔 먹세그녀.....”하며 술 한 병(주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양주를 한
병씩 들고들 오거나, 저희들 술과 안주 대접하지 않을까봐, 술과 고기를 가지고
오는 친구들도 있지만)들고 오는 친구나 친지들에게는 귀한 술을 내놓는다.
사람차별은 하게 된다. 솔직한 얘기지만.
더 이쁜 사람은 좋은 술(예를 들면 2년 묵은 솔잎술(松葉酒) 나 솔방울 술, 아니
면 3년 묵은 매실주, 3년 묵은 앵두술, 꽃사과술, 자두술, 돌배나무술, 명자술,
가시오가피술 등 특별 제조한 약술 등)을 작업실 옆 술 창고에서 내온다.
아주 특별한 손님이라면, 또 그가 원한다면 뱀술도 내 놓는다.
내가 잡은 독사뱀 술이나, 선물 받은 북한산 능구렁이술도 있다. 나는 한 모급
도 먹지 않았다. 솔직히 우리끼리 얘기지만, 나는 뱀술을 먹는 인사들을 경멸
하지만 말이다.
이제 조금 더 있어, 마당에 노란 야생화(코스모스같이 생긴 꽃인데, 누가 이름
을 알려 주었는데 이 새대가리가 금세 또 잊어버려 기억이 나지 않는다)와 철쭉
꽃, 벚꽃이 피며, 계속 앵두, 꽃사과, 자두, 살구, 장미 등 여러 가지 꽃들이 연
이어 필 때면, 이 동락재나 자칭 “카페 心魂”도 바빠진다.
지나다 들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올 해에는 마당에 파라솔을 몇 개 더
놓아야 할 것 같다.
내가 초대해야 할 사람도 늘어나겠지만,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를 통하여 알게
된 이들 중에서 이곳에 오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을 만나고 싶어서이기도 하며,
친구나 지인들을 많이 초대하려고 한다.
이제 봄이 되니, 농사(?)일도 바빠진다.
올 해에는 앞, 뒤 마당과 옆의 손바닥만한 밭에만 농사를 지려고 한다.
작년에는 우리 능력으로는 힘에 부치는 넓은 밭에 농사를 지어, 작품 작업을 거
의 하기가 힘이 들어서, 약 사,오십 평 정도에만 야채를 심을 예정이다.
그래서 올 해에는 퇴비를 30 포 만을 샀다.
내일은 아내의 원격명령에 따라 뒷곁의 김장독에서 이제야 익어가는 동치미를
꺼내 김치 냉장고에 넣고, 짠 무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으니, 별도의 명령이 있
기 전까지는 독을 파내지 못하니, 다음 달에나 김장독을 모두 파내고 고추모를
심을까 한다.
작년에는 고추농사가 잘 되어, 여름에 풋고추를 실컷 따먹고 가을에 고춧가루
로 열근을 수확 했는데, 올해에는 아내가 서울에 주로 머물게 되니, 나 혼자서
는 농사와 작품 작업을 병행하기가 어려워 최소한의 농사만을 지을 계획이다.
작년에는 솔잎 술 만들다가 실패를 하여 솔잎식초가 되었으니, 나는 섭섭한데,
아내는 솔잎식초가 감식초보다 훨씬 좋은 것이라고 좋아라한다.
그래서 올해는 솔잎을 많아 따서 솔잎 술 한 독(약30리터)과 솔방울 술 한 독
(약30리터)은 아내 몰래 만들어 놓으려고 한다. 아내가 “술도가”냐고 비양거리
기는 하지만....
그 많은 솔잎을 따려면 따가운 햇볕을 맞으며 한 사흘은 고생을 해야 할 터이지
만, 그래도 귀하고 좋은 술을 마실 생각을 하면 힘이 들기는커녕, 힘이 솟아나
는 것이 어찌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내일부터는 이제 작품 제작에 몰두를 해야겠다. 오전엔 김장 독 비우는 작업,
오후엔 통나무를 이용한 燈 제작 작업을 하여야 겠다.
이번 燈은 절의 석등을 援用한 형태로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 일주일 정도 예정
인데, 그 안에 잘 마무리가 될지?
틈틈이 書刻 작업, 인테리어용 木彫刻 작업도 병행할 예정이다. 다시금 작업을
시작하면 서울 올라가는 일이 없으면 완성될 때까지 계속하게 되겠지.
내일은 홍천국유림관리소에 전화를 하여 퇴직 고령자나 고학력 실업자를 대상
으로 <숲 해설 생태전문가>를 모집한다 하니, 지원에 관하여 문의를 해보아야
겠다.
禪林寶典의 “妄念不生爲禪(마음에 허튼 생각이 일지 않는 것이 선이다)”
을 되새겨 보며 오늘을 접는다.
禪은 망념의 너울을 잡아 고요하게 하는 것
밖으로부터 모양을 떠남이 禪이로다
禪하면 안으로 어지럽지 않음이 일어난다
고요한 마음 그것이 곧 定이 아닌가!
禪定 그것은 망념을 버리는 것
행복을 누리되 소유하려고 하지마라
그러면 俗人의 선정이다
불행을 맞이하되 한으로 품지 마라
이 또한 속인의 선정이다
망념은 좋은 것을 영원히 소유하려 하고
망념은 싫은 것을 영원히 뿌리치려 한다
이러한 분별이 곧 고통과 절망의 근원인 것을 어이하리
이러한 고통과 절망에서 벗어나게 하는 자유의 길이
삶의 선정이라고 여겨도 무방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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